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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 영화 속의 프랑스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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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 영화 속의 프랑스어 (2)

최연구의 '생활속 프랑스어로 문화읽기' <10>

영화가 탄생한 곳이 유럽인 만큼 20세기 들면서 유럽은 나라별로 나름대로의 영화전통을 만들어간다. 재미있는 점은 신흥강대국으로 떠오른 소련이나 독일 같은 나라가 영화를 정책적으로 장려했다는 것이다.

1917년 러시아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면서 최초의 노동자국가가 탄생한다. 사회주의 소련은 영화라는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혁명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매체로 활용한다. 대중매체를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결합시킨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련에서 발달된 영화기술이 소위 ‘몽타쥬(montage)'이다. 몽타쥬라고 하면 범죄용의자의 합성사진을 생각하게 되고 흔히 경찰서앞 게시판의 수배자 전단을 떠올리지만 예술에서도 몽타쥬라는 기술은 많이 이용된다.

‘몽타쥬’는 프랑스어로 ‘조립’이란 뜻이다. 어린이들의 과학모형물 조립도 몽타쥬고, 부품을 가지고 직접 만드는 것은 모두 몽타쥬라고 부른다. 영화에서는 ’편집‘이란 뜻인데 20세기 초반 프랑스의 영화이론가 무시나크가 처음으로 이 용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영화에서의 몽타쥬는 토막토막 촬영된 신(scene)의 필름단편들을 의도된 목적에 따라 잘라 붙여 작품을 만드는 편집기술이다. 특히 푸도프킨, 에이젠슈타인 등 소련 감독들이 몽타쥬 기술과 이론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켰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발전하려던 1910년대에 유럽은 제1차 세계대전을 맞는다. 유럽전역이 폐허가 되었고 이 때문에 영화발전이 단절된다. 반면 전쟁의 피해를 전혀 입지 않은 신대륙 미국은 전쟁 중에 유럽영화인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오히려 눈부신 발전을 이루게 된다. 1차대전을 거치면서 영화의 중심은 차츰 미국으로 옮겨진다. 하지만 문화의 전통이 강한 유럽은 나라별로 문화부흥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고 나름대로의 영화사조를 만들어간다.

독일은 영화를 통해 문화발전을 꾀했다. 미국영화의 주도권에 대항하면서 표현주의(Expressionism)라는 예술사조를 영화에 도입한다. 독일의 표현주의라는 장르(genre)는 공포, 사랑, 불안감 등의 인간의 감정을 과장된 리얼리티로 형상화하는 경향의 영화인데 ‘카메라 움직임에 심리상태를 담고, 명암이나 조명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며, 기하학적이고 과장된 무대장치를 사용하고, 연극같이 과장된 연기를 한다’는 등의 특징을 들 수 있다.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독일의 영화인들은 대거 미국으로 건너가 헐리우드 영화 발전에 크게 기여한다. 1930-40년대 유행된 필름 누아르(암흑가 영화)나 프랑켄슈타인(1931), 드라큘라(1931) 등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공포영화시리즈, 그리고 알프레드 히치코크의 영화 등은 모두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한편 이탈리아에서는 파시즘체제에 대한 대응으로서 ‘네오레알리스모(신현실주의)’라는 영화장르가 만들어진다. 파시즘에 대한 직접적인 저항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서민, 소외계층의 암담한 생활을 영화스크린에 담담하게 그려내는 경향의 영화이다.

2차대전후 프랑스에서 나타난 영화는 ‘누벨 바그(Nouvelle Vague)’이다. ‘누벨’은 영어의 ‘뉴(new)’에 해당되고 ‘바그’는 ‘웨이브(파도)’란 뜻이다. 누벨 바그는 개성있는 프랑스의 젊은 영화감독들이 추구했던 영화의 ‘새로운 물결’이다. 새로운 실험과 작가정신에 기초한 누벨 바그를 이끈 인물로는 데미지(원제 Fatal, 파탈)의 감독 루이 말, 알랭 르네, 프렌치 히치코크라고 불리는 클로드 샤브롤 그리고 장-뤽 고다르(jean-Luc Godard) 감독 등을 들 수 있다. 이중 누벨 바그의 상징적인 인물은 고다르이며, 고다르 감독의 대표작은 1959년의 작품 ‘아 부 드 수플르 A bout de Souffle(숨이 차서 기진맥진한 이란 뜻)’이다. 영어로는
‘Breathless’이고 우리말로는 ‘네멋대로 해라’로 번역돼 있다.

이들 누벨바그 감독들은 1950년대 프랑스를 풍미했던 소위 ‘작가주의(auteurisme)’이론을 대중적으로 추구했던 이들이다. 그들은 ‘영화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감독이기 때문에 영화감독은 영화작가나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작가란 말은 프랑스 단어 오퇴르(Auteur)에서 나온 용어이다. 개인적 통찰력과 예술적 창의력에 바탕하여 영화를 만든 감독을 작가라고 지칭했고 이런 작가주의를 추구했던 영화인들이 바로 누벨 바그 감독들이다.

원래 이 용어는 1948년 아스트뤽의 ‘카메라 만년필’이라는 글에서 처음 사용되었고 50년대 프랑스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cahier du cinéma. 영화노트란 뜻)’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고다르, 샤브롤, 트뤼포 등의 신세대 영화인들은 ‘카이에 뒤 시네마’ 지에서 비평가로 활동하며 당시 세계영화계를 주도하던 할리우드 영화는 유명 스타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국화빵 찍듯이 만들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고 영화는 감독의 것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7년 5월, 제50주년을 맞은 칸느 영화제에서 자신의 작품이 초청돼 참석한 고다르 감독을 한국의 영화잡지 시네21이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이 인터뷰 내용을 보면 고다르의 작가주의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고다르는 대뜸 “영화는 감독의 것이다. 감독이 선택하고 편집하여 작품을 빚어낸다”고 대답했다. 또한 ‘어떻게 영화를 시작했고 언제까지 현역으로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당신은 내가 영화를 선택했다고 보는가. 아니다. 우리가 영화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역사)가 우리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언이나 종교, 계시 뭐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피카소가 한 얘기와 비슷하다. 그는 ‘언제까지 그림을 그리겠느냐’는 질문에 ‘그림이 나를 거절할 때까지 그리겠다’고 했는데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거만한 그의 대답에는 거장으로서의 영화관이 분명히 담겨 있다. 프랑스에서도 그는 괴짜로 통하는데 프랑스인의 기질과 예술가적인 독창성으로 똘똘 뭉쳐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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