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3일, 중앙일보에 특별기고의 형식으로 단식 8일째의 심경을 기술했다. 최 대표는 이날 한겨레신문에도 '노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이라는 이름의 글을 기고했다.
특검 재의 표결이 실시될 4일 조간에 보수신문 중 하나인 중앙일보와 진보신문이라 할 수 있는 한겨레에 함께 글을 기고한 것은 어떤 의미일까.
***<중앙일보> 특별기고 "분신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
중앙일보는 최 대표가 2백자 원고지 20장으로 육필 원고를 보내왔다고 기고 글을 소개하고, 3면의 절반을 할애해 육필원고의 일부 사진과 함께 글을 실었다. 아울러 인터넷판에는 전문을 게재했다.
최 대표는 이 글에서 대부분의 지면을 노 대통령에 대한 강한 비판과 단식, 국회 공전의 불가피성을 설파하는데 주력했다.
"오늘이 단식 8일째다. 배가 고프고 온몸에 힘이 빠진다”로 글을 시작한 최 대표는 “단식은 대통령의 특검 거부를 보면서 이런 국정 행태로는 나라가 절대 안되겠다는 절체절명의 판단 때문이었다”고 주장하며 “대통령이 바로서고 나라가 잘 되고 국민이 좋아진다면 단식이 아니라 분신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자신의 단식에 따른 국회마비에 대한 여론의 비난을 의식한듯“국회 마비와 야당의 본분과 책임을 다하지 못한 비판은 당연하다”면서도 “그러나 국회 정상화보다 대통령의 정상화가 더 중요하다”고 단식과 국회 공전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최 대표는 우리나라의 현 상황을 “민생이 곤궁하다. 경제가 추락하고 있다. 사회가 어지럽다. 외교가 불안하고, 안보가 흔들린다”며 총체적 난국으로 규정하고 나라가 이 지경이 된 원인은 “대통령이 대통령답지 못하고, 정권이 정권답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대통령과 정부에게 그 책임을 돌렸다.
또한 대통령 주변의 386세대에 대해서도 "1980년대 반체제 주사파 인사들이 사회 곳곳에 진출해 있고 청와대는 386세대가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며“그들은 위중한 나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통일과 민족공조만을 부둥켜안고 씨름하고 있다”며 '색깔론'을 펼치기도 했다.
최 대표는 “대통령의 존재가치는 민생과 국가인데, 지금 대통령에게는 내년 총선 말고 무슨 의제나 명제가 있는가”라며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고, “대통령의 자기 혁신과 정권의 자체 변혁이 가장 절박하고 절실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겨레> 통해선 '노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
한겨레를 통해 노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도 노 대통령을 비난하고, 단식의 불가피성을 주장했던 중앙일보의 글과 내용상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편지 형식으로 최 대표의 구술을 받아 적은 것이기 때문에 경어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좀 더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최 대표는 “대통령께서 제가 제안한 일대일 공개토론에도 아무 응답이 없으셔서, <한겨레> 지면을 통해 지상토론을 요청합니다”고 이 글을 싣게된 이유를 밝혔다.
최 대표는 “지금 한나라당에 대한 정당 지지도가 내려가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뒤, “하지만 저의 단식을 대통령이 바뀌는 모멘텀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 저의 솔직한 소망”이라고 단식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그는 “대통령이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철회하고, 정상적인 국정쇄신을 하라는 얘기를 했다”며 단식의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최 대표는 중앙일보에서와 마찬가지로 외교, 경제 등에 대한 나라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그 책임과 원인을 대통령 자신과 정부, ‘청와대 386’이라는 대통령 측근들에게 돌렸다. 그는 “대통령이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특검 거부권 철회와 재신임 철회를 요구했다.
최 대표는 “청와대건 내각이건 다 뜯어 고쳐야 한다”며 “그렇게만 한다면, 교육문제, 부안문제, 이라크 파병, 한-칠레 자유무역 협정 등 모두 도와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총선이 다가오는데, 야당으로서도 국정을 돕는 것이 표를 얻는데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 대표는 “며칠 밥 더 굶는 것은 무섭지 않으나, 우리나라가 여기서 주저앉을까 더 큰 두려움이 앞선다”며 “대통령과 일대일로 만나서 흉금을 터놓고 토론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국장시절 YS단식 보도 안해**
최 대표의 이 두 글은 지난 26일 단식에 돌입하면서 밝혔던 기자 회견 내용과 특별한 새로운 얘기는 없었다. 다만 추가된 것이라면, 단식 8일째를 맞은 소감과 심경 정도랄까.
최 대표가 거듭 주장했던 “국정 혼란의 주범은 대통령과 정부이고, 우리는 국회 공전의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국정쇄신을 요구한다”는 주장은 원내 의석 절반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제1당의 국정 혼란에 대한 '일방적 네탓 타령'이라는 점에서 동의하기 어렵다. 단식이라는 극한 방법의 투쟁에 대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80% 전후가 비판적인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대표는 이같은 국민적 냉대를 '언론' 탓으로 돌리고 있으며, 이날 중앙일보와 한겨레 기고도 이같은 차원에서 직접 국민에게 자신의 주장을 설파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최 대표는 단식 사흘째였던 지난달 28일 “소설 쓰던 사람들 다 어디 갔냐"며 "대통령이 야당에 대해 이죽거리면서(노무현 대통령의 개와 고양이 발언) 수준 낮은 비아냥이나 늘어놓고 있는데 이게 대통령이 할 짓인가. 그런 부분에 대해 언론이 제대로 짚지 않는 것은 이해가 안 간다”며 노골적으로 언론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한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야당시절 장기단식을 했던 1983년에 당시 조선일보 편집국장이었던 최대표는 보도통제 압력도 있었겠지만 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었다.
최대표는 이번 단식을 통해 '당내 리더십'을 세우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한 분위기다. 그러나 국민 80%는 최대표 단식과 한나라당의 국회마비에 차가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최근 하락을 거듭하던 한나라당 지지도가 3일 중앙일보 여론조사결과 민주당에게 1위 자리를 내 줄 정도로 급락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구여권 출신의 한 원로정치인은 "정권을 두번씩이나 놓친 정당치고는 너무 변화가 없다"는 말로 한나라당 침체의 원인을 지적했다. 남 탓만 하기에 앞서 '내 탓'부터 하는 자성적 모습을 보여야만 비로소 국민의 관심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최대표가 되새겨 들어야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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