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그간 초대형이슈가 연이어 터졌다. 국회의원의 9급 운전비서직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발표됐던 디도스 공격에 의한 국기문란, 김정일의 돌연사, '영일대군'과 '방통대군' 휘하 병력의 분탕질, 한나라당 대표 선출과정에서 거액이 살포됐다는 소속 의원의 커밍아웃 등.
그래도 그렇지, 대한민국 국권 침탈의 신호탄이 된 한·미FTA를 벌써 망각의 늪에 빠트려버리다니. 그처럼 중요한 담론을 "세월이 약"이라고 팽개쳐 둔다면, 우리는 또다시 식민지로 전락해 버릴 거다. 미국의 경제 식민지로.
여기 "그럴 수는 없다"며 분연히 일어나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는 자가 있다. 박석운(朴錫運). 남들 부러워하는 서울대 법대를 나와 민주화 투쟁에 투신한 후, 노동운동, 인권 운동을 거쳐 언론민주화, 총체적 진보연대화에 이어 급기야 한·미FTA 저지운동에 까지 발을 들일 정도로 오지랖 넓은 자다.
지난해 11월 22일 사망선고를 받은 대한민국 국권의 천도재(薦度齋: 49재)를 맞아, 이 오지랖을 만났다. 인터뷰는 오지랖의 편의를 위해 서울 남영동 노동인권센터에서 진행했다.
▲ 박석운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
윤재석=참 뵙기 힘드네. 도대체 어딜 그렇게 분주히 다니시나? 통화도 힘들고.
박석운=바빠야 사는 팔자인가 봅니다. 어제 경기도 양평에서 열린 6월민주포럼(대표 윤준하) MT에 가서, 2012년 사업계획 및 4·11총선대책, 시민정치의 현황과 과제 등에 관해 논의하고 오늘 잠시 집에 갔다가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서 디도스(DDos) 국기문란범죄 몸통 수사 촉구 긴급기자회견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다행히(?) 기자 분들이 바쁘다고 해서 보도 자료로 대(代)하기로 했어요. 덕분에 이렇게 쉬게 됐고요.
윤재석=새해 들어선 좀 휴지(休止)할만도 한데.
박석운=윤 선배도 알다시피 내가 걸치고 있는 게 좀 많잖아요.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에다, 민주언론시민연대 대표. 거기다 노동인권회관 소장까지 하고 있으니….
윤재석=지난 며칠 무슨 일로 바빴는지 얘기나 한번 들어봅시다.
박석운=지난주만 해도 미디어렙 관련 기자회견(4일), 교사·공무원 정치기본권 보장 촉구집회(5일 오전), 민주노점상 전국연합 2기 출범 격려사(5일 오후), 민주노총 본부 강의실(경향신문 본관)에서 한·미FTA 시민학교 강사단 회의(5일 저녁)에 참석했어요. 12일부터 3월 1일까지 매주 목요일 강의가 있는데, 강사님들에게 강의의 효율적 기조와 맥락 조정을 조정하고, 강사단과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에 대한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죠.
6일 아침엔 진보연대 사무실에서 4·11 총선대응 방침과 올해 사업계획에 관해 논의했어요. 이번 총선에서 야권연대를 통한 진보진영의 약진과 MB정권 및 한나라당에 대한 심판을 어떻게 할 거냐에 관한 회의였죠. 구체적으론, 총선에 필요한 좋은 정책을 주도적으로 제시하고, 좋은 후보는 적극 돕되 나쁜 후보는 떨어트리는 운동을 전개하자는 거였어요.
사업계획 중엔 총선대응같은 단기적 접근만이 아니라 국민주권 운동이 절실하다는데 공감하고 이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논의를 했습니다. 오후엔 '좋은 서울 시정을 위한 노동 진보 단체 간 간담회' 연석회의에 참석했고요.
윤재석=아이구 숨이 턱 막히네. 근데 체력이 견뎌내나?
박석운=체력이야 천부적으로 타고났죠. 그나마 다행이예요.
윤재석='서울대 출신들이 우리나라 다 말아먹은 거 아니냐, 특히 법대 출신들이.' 그런 얘기 안들어요?
박석운=당연히 듣죠. 저는 이렇게 응대해요. "나쁜 놈도 있지만 착한 데모꾼도 많다. 긴급조치 9호 시절 남들 꼼짝 못할 때, 서울대 출신이 중심이 돼 데모에 앞장섰고, 그 중에서도 법대 출신이 가장 많이 주도했다. 그러니 너무 미워하지 마라."
윤재석=고향이 부산인 걸로 아는데, 그쪽 사람 중에 꼴보(꼴통 보수)는 더러 있어도 좌빨은 별로 없잖은가?
박석운=많아요. 70년대 김병곤 선배를 비롯해서…. 저 역시 그 중 하나고.
윤재석=그런데 그대는 정말 메뚜기 같애. 이거 하고 있는 것 같더니만, 저거 하고. 그러다가 그거하고. 몇 년 지나고 보면 엉뚱한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물론 총체적으로 보면 같은 맥락의 좌빨 운동이지만.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박석운=특별한 이유라기보다 그때 그때 이슈가 되고, 중요한 의제가 될 때 새로운 영역을 넓혀가다 보니 그렇게 된 거예요.
윤재석=촛불 집회 때 역할은?
박석운=외국산쇠고기 수입저지 국민대책회의, 속칭 '광우병대책회의'에서 운영위원회 임시 소집책을 맡았어요. 조직의 구심점 만들어 주는 것, 300여 참여단체를 일관성있는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 집회전략 설파 등이 제 역할이었죠.
윤재석=그 때 곱상하게 생긴 박원석이 주로 사회를 보던데, 왜 뒷방마님 신세가 됐었는지?
박석운=2007년에 한미FTA 반대투쟁하다가 28년 만에 빵(감옥)에 갔죠. 서울 구치소 수감 중 집유(집행유예)로 나왔고. 집행부 애들이 "집유 걸린 상황이니까 일을 하시되 앞에 나서지 마시라"고 그래요. 해서 원석이를 상황실장으로 세우고, 저는 뒤에서 회의나 주재했죠.
윤재석=이를테면, 조정자(mediator)였구먼. 근데 그 때 박원석과 같이 달렸나(감방갔나)?
박석운=제가 먼저 달렸죠. 원석이는 공개수배, 나는 계속 요시찰 상태에서 어떻게 하다보니 내가 먼저 달렸는데, 그게 또 웃기는 짜장면이죠. 당시 한나라당이 서울시 교육감으로 공정택을 당선시키기 위해 꼴통 대오를 결집시키려다 보니 날 지목한 거예요. 8월 13일 영장도 없이 체포됐죠.
윤재석=법돌이(법대 출신)를 불법 체포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만.
박석운=나도 맞고소했어요.
윤재석=이쯤에서 FTA 담론으로 들어가지. 작년 11월 22일 신묘늑약(辛卯勒約)의 중심인물은 역시 김현종. 무식한 노무현은 김현종의 농간에 넘어간 거고.
박석운=노무현은 무식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상당히 똑똑한 분이였죠. 미국에 대한 시장 개방에 지나치리만치 자신감을 가졌던 게 문제죠. "우리 예전에 괴나리봇짐 싸가지고 무작정 상경했지만, 지금 이렇게 잘 살지 않나. 모두 준비해서 갈 필요가 있나." 그렇게 말했어요. 저는 그게 노무현의 본심이라고 생각해요.
윤재석=노무현 때 빵에 간 사람이 노무현을 옹호하다니. 아무튼 김현종이 검은머리 미국인. 뼛속깊이 엉클 샘인 것만은 틀림없지. 그때 자초지종 좀 들어봅시다.
박석운=2005년 노무현의 남미 순방 때 김현종이 수행했어요. 미국에서 남미로 가는 길이 멀잖아요. 대통령 1호기 안에서 노무현과 장시간 독대를 합니다.
윤재석=노무현, 토론 좋아했지.
박석운=독대 때 노(盧)를 구워삶아 꼬신 거지. "한미FTA 만이 우리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노무현으로 하여금 잘못된 확신을 갖게 해요. 노무현이 속아넘어간 거지. 나중에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를 보고 "큰일 날 뻔했다. 지금이라도 다시 조정해야겠다"고 후회를 해요.
윤재석=김현종 다시 한번 짚어보세. 지금 어디 있나? 삼성전자 부사장! 말도 안돼. 근데 한미FTA의 귀엣말 책사가 김현종이라면, 블루 프린트(이론서)는 삼성경제연구소(SERI)에서 나온 거 아닌가.
박석운=노무현 대통령은 굉장한 자질을 가진 분이셨죠. 인권 변호사시절부터 잘 알았어요. 노동자를 위해 일도 많이 했고, 훌륭한 품성 가진 분이셨죠.
윤재석='바보' 노무현, 사람은 괜찮았어.
박석운=문제는 대통령 되고 나서 '삼성 프레임'에 갖혀버린 거예요. 삼성하고 <중앙일보>가 노무현 대통령 못되게 온갖 못된 짓을 다해 방해했는데, 정작 본인은 그걸 다 용서하고 삼성 프레임에 갇혀버렸으니.
윤재석=삼성 프레임의 클라이맥스는 홍석현의 주미대사 기용이지.
박석운=제가 듣기론 노 정권이 유엔 사무총장을 만들기 위해 경력 관리 차원에서 보낸 거라던데.
윤재석=그래서 노무현 진짜 바보야. 아니 총리급 공관장, 특히 우리의 황제국인 미국 사절로 어떻게 전과자를 보내느냐고. 그것도 미국에서 가장 파렴치한으로 취급하는 조세포탈범을 말이야. 그리고 삼성 입장에선 또 다른 음모가 있었어. 홍석현을 대통령 시키는 게 최종 목표였거든. 현대에 정몽준이 있다면, 삼성엔 홍석현이 있다, 이거지.
박석운=노무현의 순박한 인간성을 이용해 덮어 씌워 '둘러먹는'데 당한 거라고 보면 되죠. 다행히 홍이 7개월 만에 낙마했지만….
윤재석=한미FTA 때 준비가 거의 없었다는 소문도 있는데, 실제로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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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석=면담은 어떻게 진행?
박석운=김현종은 도망가고 한미FTA협상 수석대표 김종훈과 단장 이혜민이 나온대요. 우리도 격을 맞추느라 위원장급이 가기로 했죠. 저도 집행위원장이니까 가서 토론 하는데, 한 시간쯤 지나 내가 화제를 돌렸어요.
윤재석=뭔 얘기로?
박석운="FTA초안을 보면 주는 건 있는데 받을 게 없다. 협상이란 게 어차피 쌍무협상 아니냐, 우리가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게 있어야 하지 않냐. 퍼줄 거만 얘기하고 받을 건 얘기 안하냐" 하니까 김종훈, 이혜민이 벙찌는 거야. 계속했죠. "반도체 같은 제품에 대해 미국이 남용하는 슈퍼 301조 이런 거 어떻게 할 거냐. 반덤핑 관세제도나 무역장벽에 대해 남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즉 무역구제를 확실히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윤재석=뭐래, 그 자들.
박석운=김종훈, 이혜민이 정말 무식하더군. 내 얘기에 길길이 날뛰면서 그건 사법절차에 관한 거지, 통상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거야. 둘이서 난리 블루스를 추더군.
윤재석=그건 완전히 미국 입장이지. 어느 나라 공무원인가?
박석운=아무튼 박박 우기는 거야. 근데 이사람들이 5월 들어가서 무역구제를 집어넣었어. 6월부터 협상 시작됐는데, 11월 들어서 미국한테 "이거 안 받아주면 협상 결렬(deal break)"이라고 내질렀다누만. 결국 나중엔 구렁이 담넘어가듯 빠져버렸지만. 아무튼 상관없다고 그렇게 난리치던 아이템을 몇 달 뒤에 넣을 정도로 뭔지도 모르는 선수들이 협상을 한 거죠.
윤재석=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Investor-State Disment)는 어떻게 된 거유?
박석운=ISD는 첫 협상에서 (미국이) 달라 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줘요. 뭐가 뭔지도 모르는 거지.
윤재석=끝까지 갖고 있어야지. 아니 주지 말아야지.
박석운=당시 법무장관이 천정배였는데, 첨엔 몰랐다가 나중에 알았어. 사법권 침해야. 큰일 났거든. 그래서 법무부에서만이 아니라 민변 변호사 얘기까지 들어서 노무현한데 보고했다는 거예요. 근데 천정배가 장관을 그만두면서 유야무야되죠.
윤재석=사실 ISD는 쟁점 자체가 안돼. 주권에 관한 거거든. 그런 점에서 요즘 판사들이 들고 일어나는 거는 당연한 이치. 최은배, 김하늘, 이정렬, 서기호. 애들 괜찮아.
박석운=그분들 인터뷰 들으면서 느낀 점. 주눅 들지 않고 그야말로 쿨하게 말하는 거 보면 존경스러워요.
윤재석=그런 모양을 보면서 난 실낱같은 희망을 느껴. 우리 사법부 얼마나 웃기냐구. 박 소장 선후배들, 기득세력 이익 챙기는데만 골몰하고 있는 한편에서, 스마트한 신세대 판사들이 ISD로 대변되는 한미FTA의 부당성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똥침 날리는 거 보고 사법개혁의 방아쇠가 당겨질 것 같다는 희망이 생기더군. 근데 작년 10월에 왜 단식을 시작한 거유?
박석운=수순이 뻔하니까. 날치기 통과가 눈에 보이니까, 단식으로 맞설 수밖에요.
윤재석=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24일 간 단식했죠? 그대가 단식 9일 째 됐을 때 길승이 형(양길승 녹색병원장)하고 같더니 세미나 하러 갔다고 하데.
박석운=전 단식하면서도 할 건 다해요. 22일 째 되던 날엔 충북 진천에서 농민들이 FTA 관련 강연해 달라고 해서 강연도 하고 왔어요.
윤재석=근데 그 전에도 단식을 해 봤나?
박석운=2004년 8월 이라크 파병 반대 11일 단식, 그해 12월 국보법 폐지 촉구단식 26일,
윤재석=또?
박석운=2007년 FTA 협상 때 수배 상태에서 당시 영등포 민주노총 본부에서 21일간 단식.
윤재석=단식은 그 자체도 자체지만 섭생, 그리고 회복 시 보식(補食)이 중요하다고 하던데.
박석운=앞서 세 번은 제대로 못했는데, 이번엔 '선수'한테 24일짜리 식단과 프로그램을 짜달라고 했죠.
윤재석=누군데?
박석운=민언련 대표 지낸 최민희 대표요. 아토피 치료 전문단체인 수수팥떡 대표거든요. 보통 단식한 날짜보다 2~3배 보식을 하지만 단식 날짜만큼만 하겠다고 부탁했죠. 단식 끝내고 처음 8일 동안 미음과 죽만 먹다가, 중간 8일은 생야채+밥 반공기(단계별로 60%, 70%로 올리고)+된장국+두부, 마지막 8일은 밥 80%에 생야채+두부+흰살생선.
윤재석=단식 기간 중에도 조심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을 텐테.
박석운=그건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한테 조언을 얻었죠. 단식 중 중요한 건 관장(灌腸)과 목욕인데요. 대한문 단식 중 매일 아침 다동사우나에 가서 관장하고 냉·온욕(10냉9온)을 했어요. 참 신기해요. 몸무게가 0.5kg, 0.4kg, 0.3kg 이런 식으로 정확히 빠져요. 총 10kg 뺐어요. 단식에도 필(feel)이 온다고 할까. 몰입하면 단식을 해도 고통보다 상쾌한 느낌이 들어요.
윤재석=마라토너가 느끼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비슷한 거겠지. 그건 그렇고 다시 FTA로 돌아가서. 당시 FTA와 관련해서 대중의 관심이 그리 크지 않았잖아.
박석운=맞아요. 또 투쟁 동력 자체가 상당히 떨어진 상태라 걱정이 많았어요. 그렇게 되면 투쟁이 쉽지 않죠. 특히 다 끝난 거 아니냐하는 자포자기 심정이 문제죠.
윤재석=당장의 일이 아니니까 절박감도 없고.
박석운=그런데 "월가를 점령하자(Occupy Wallstreet)" 팀에서 요청이 왔어요. "오큐파이 서울(Occupy Seoul)" 하자고. 한 줄기 서광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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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석=우리는 뭐, 모이는 데 선수니까.
박석운=사실 촛불집회의 원조가 우리 아닙니까. 했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 걱정 많이 했어요. '촛불을 재점화하자' '광장을 점령하자' 주문을 외웠지. 다음 손학규 당시 민주당 대표가 현장에 왔어요. 그때 나도 단식 중이지만 연설했고, 손학규 대표도 단호하지만 명쾌하게 연설을 해요. 거기도 FTA 찬성파가 있는데. 몸통이 움직여준 거죠. 두 번째 서광. 세 번째 서광은 의외로 농민·노동자 그룹에서 비쳤어요. 사실 농민 참여는 어려웠죠. 추수기라.
윤재석=추수기에 가을걷이 안하면 죄(罪)지.
박석운=그런데 FTA 통과 된다니까 농민들 추수기인데도 현장에 와요. 노동자 역시 현장에.
윤재석=그래서 작년 10월 28일 중앙집중 집회를 강행하게 되고.
박석운=그때 어느 정도로 처절했냐 하면, 노동자전국회의라고 있는데, 수석부위원장 중 암수술한 사람이 저에게 동조 단식을 해 와요. 하도 동력이 안 생기니까. 집행부에서 만류했죠. "하루만 해라."
윤재석=상징적으로….
박석운=실제론 6일을 같이 했어요. "그래야 대오가 온다"면서. '처절 모드'로 사람을 불러모으려는 궁여지책. 하지만 10월 26일 서울시장 재보선 끝나고 이틀 뒤인 28일 국회 본회의 날. 아무리 닥닥 긁어모아도 2000이 맥시멈. 노동자 1000, 농민 1000.
근데 막상 집회를 앞두고 대오가 꾸역꾸역 몰려오는 거예요. 나중에 금속 대오까지 합세하니 노동 대오가 2000~3000. 노점상, 철거민 등 민중 대오까지 꾸역꾸역 모이다 보니 오후 2시쯤엔 '여의도 대첩'으로 변신해요.
산업은행 앞에 포진 경찰과 대치한 상태에서 대오 일부를 옆으로 빼 순복음교회 옆으로. 또 막아. 그러면 둔치 쪽으로. 그래서 5000 이상의 대오가 국회의사당 서쪽 본관 옆까지 갑니다. 1975년 국회 이전 이후 최초로 국회를 포위한 셈이죠. 백기완 선생을 따라간 일부 대오는 국회 담을 타고 들어가기도. 몸이 풀린 거야.
윤재석=그럼 단식 풀어야지.
박석운=그날로 단식 해제했지. 제가 단식한 건 절박한 심정, 플러스, 저라도 해야 인연 있는 대오들이 합류할 것 아니냐는 생각에서 한 거요. 투쟁거점의 필요성도 있었고. 아무튼 '여의도 대첩'이란 신조어가 나올 만큼 성과가 있었어요.
윤재석=그 다음은 어찌됐어?
박석운=11월3일이 두 번째 국회 본회의. 전날 2000 대오 되는 진짜 촛불이 산업은행 앞에 나왔어요. 밤이라 조직 대오는 없었어요. 화장빨, 쌍코, 파리쿡, 유모차, 중·고생 등 2008 촛불 때 나왔던 자발적 대오가 다시 나온 거죠. 3일엔 낮에 조직 대오 밤엔 대중 촛불. 22일 국회 날치기 통과되자마자 7시반에 "시내로 가자!"고 500여명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는데, 한 시간 안에 명동으로 집결. 무려 만여명. 그걸 우리는 '명동 대첩'이라고 부르죠.
윤재석=나도 거기 갔지. SNS로 움직이니까 대학로, 홍대 앞에 있던 애들이 젤 먼저 도착했지. 오히려 여의도 팀은 젤 늦었어.
박석운=그런데 재미있는 현상 하나. FTA 저지 동력이 교착국면에 빠졌을 때, 판사들이 들고 일어난 거라. "이건 사법권 침해다." 우리가 6년 동안 부르짖은 문제점들을 판사들이 단시간 열공하고 170여명이 스터디 그룹을 결성하다니.
윤재석=이정렬 부장판사 말이 걸작. "좌편향이 문제냐 나도 좌편향이다. 나, 나가겠다. 그렇다면 우편향 판사도 나가라."
박석운=사실 그동안 광우병 괴담, FTA 괴담이라고 해 왔는데, 법을 전문적으로 해석하는 사법부에서 문제를 제기해요. 주권 침탈이라고. 정신 차린 거지.
윤재석=SNS가 사적공간이냐, 공적 공간이냐.
박석운=본래 친구라는 게 뭐예요? 사적 공간에서 외연을 약간 넓힌 것뿐인데.
윤재석=사법부는 뭔가 센서(검열)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거든. 근데 판사들이 그걸 깨부수고 나온 거라. 참 재밌는 현상. 그래서 난 오늘 대한민국 사법부에 실낱같은 희망을 봐요. 비열하고 편파적인 사법부가 스마트한 판사들에 의해 개혁될 거라는.
박석운=맞아요. 이분들 정말 쫄지도 않고 쿠울(cool)하게 자신의 생각을 설파하는 걸 보고 법을 공부한 사람 입장에서 존경의 염(念)을 느끼게 되더라구.
ⓒ프레시안(최형락) |
윤재석=개인적이기도 하고 공적인 질문 하나. 일각에선 한나라당이 망하지 않는 이유가 박석운이 때문이다. 걔네들이 해먹을 게 있는 거다. 워낙 기가 쎈 좌빨이다 보니 얘를 공격하기 위해서 한나라가 긴장하고 그러니 두 존재가 결국 적대적 공생(hostile cohabitation)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는데 본인 생각은?
박석운=저는 사실 탄압만 받아왔고 혜택 받은 거 하나 없어요. 실제로 MB와 한나라당이 몰락의 길로 있지 않습니까. 한미FTA 날치기 통과시키는 걸 보고 "저게 MB와 한나라의 무덤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디도스로 확인 사살이 된 거죠. 내가 한나라와 적대적 공생을 하고 있다는 데 대해선 "너나 잘 하세요"라고 하고 싶네요.
윤재석=박 소장 그룹의 대북 스탠스는 정리를 좀 해 줄 필요가 있어.
박석운=저를 친북 좌빨, 종북세력 어쩌고 하는데, 저는 북한을 한 번도 못 가봤어요. 그 흔한 금강산 역시 마찬가지고요. 바빠서 도저히 낼 시간이 없어요. NGO 회의 참석차 해외는 가끔 가죠.
윤재석=어떻게 먹고 사나? 사모님이 좀 버시나?
박석운=집사람도 외국인 이주노동자 상담을 하고 있어요. 긴급조치 9호 위반 숙명여대 국문과 빵잽이 출신 석원정(54)인데요. 긴급조치 9호 빵잽이 모임에서 만났어요. 같은 길을 가는 거죠. 뭐, 대충 먹고 삽니다. 굶지 않으면 되죠.
윤재석=자제는?
박석운=아들(28) 하나 있는데 광주과학기술원(GIST) 컴퓨터공학 박사과정이에요.
윤재석=기득세력이 되더라도 따뜻한 가슴을 지닌 인간이 되라고 하시오.
박석운=걔, 촛불도 열심히 하고 에미, 애비도 잘 도와줘요.
윤재석=마지막으로 한·미FTA 이걸 어떻게 하나. 앞으로의 투쟁 방향성은?
박석운=재협상하겠다고 했지만, 부동산 매매계약서 쓰고 등기까지 했는데 턱도 없죠. 우선은 투쟁 동력을 유지시켜서 MB로 하여금 재협상하는 시늉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게 급선무고. 더 큰 문제는 자발적 개방 ISD 래칫(한번 개방한 건 무를 수 없는 역진방지조항) 간접수용이니 농업개방이니 이런 여러가지 문제가 있죠. 특히 FTA가 재벌의 민원 수리용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거. 삼성이 의료민영화를 바라고 있는데, 이걸 외국인 투자자의 입을 빌어서 할 수 있어요. 또 불법유출된 자본, 즉 검은머리 미국 자본이 역도입돼서 한국 자본 시장을 교란시킬 수도 있고.
따라서 총선에서 여소야대를 만들어 국회에 한미FTA 비준 철폐를 상정하고 12월 대선에서 정권을 바꿔 6개월 뒤에 폐기선언하면 깨끗하게 해결될 수 있죠.
윤재석=근데 FTA폐기하면 큰일 나는 줄 알잖아.
박석운=일본, 유럽연합(EU)은 미국과 FTA 안하고도 교역 잘 하고 있고. 호주는 FTA 했지만 ISD는 안하고. 그래도 잘 살고 있는데. 왜? 우리는? 그래서 투쟁은 확대해야죠. 또 추가로 퍼주는 게 있어요. 30개월령(月齡) 이상 쇠고기 추가개방, 2014년 쌀시장 개방이 예정돼 있구요. 그래서 투쟁을 계속 확대해야죠.
윤재석=문제는 방법론과 투쟁의 추동력 아닌가.
박석운=문화행사, 축제 등 일반 시민 참여 프로그램으로 컨셉을 잡았어요. 이미 작년 12월부터 매주 토요 문화 축제, 산타와 함께하는 촛불, 송구영신 촛불 문화제 등으로 행사를 이어오고 있죠. 범국민적인 축제로 승화시켜서 추동력과 동조를 이어가겠다, 뭐 그런 거죠.
윤재석=박 소장 얘길 들으니 오늘 대한민국 국권 천도재를 지내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 조만간 소주나 한잔 합시다.
박석운=고맙습니다. 반가웠습니다.
박석운(朴錫運) biography
-1955년 2월 부산 출생
-1967~73년 부산중·고 졸업
-1973~86년 서울대 법대 법학과 졸업
-1983~89년 시민공익법률상담소 상담역
-1989~91년 노동인권회관 초대 소장
-1992~98년 노동정책연구소 소장
-1998년~현재 노동인권회관 소장
-1995~96년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 공동대표
-1996~2009년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집행위원장
-2003~2007년 전국민중연대 집행위원장
-2003~2006년 한국방송(KBS) 시청자위원
-2005년 이라크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 공동운영위원장
-2006~2008년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
-2008~2009년 한국진보연대 상임운영위원장
-2008~현재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2009년~현재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2009년~현재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박석운과의 緣
중앙일보 노조위원장 시절이었던 1991년 여름, 회사와의 단체협상을 앞두고 논리개발과 대처 방안을 배우기 위해 그를 초청했다. 한눈에도 다부지게 생긴 그는(지금은 상당히 온화해졌다), 거침없는 언변으로 특강을 이어갔다. 강연이 끝난 후, 노조간부 하나가 물었다. "저분 서울대 법대 나온 거 맞아요?" "맞아. 그것도 무려 13년이나 다녔어."
그해 단협에서 중앙노조는 사측으로부터 세 가지 쟁점을 쟁취하는 데 성공했다. 정년 4개월 연장(역진방지조항에 따라 중앙일보 정년은 지금도 55년 4개월이다), 노조 상근자 순증(純增) 1명, 블루칼러직 명예차장직 신설 등.
그 후 그는 국가적 핵심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현장에 있었다. 그리고 감방 드나들기를 내집 드나들 듯. 이따금 농성 현장의 저만치서 그를 바라보곤 했다. 때로 언론이라는 또 하나의 막강한 기득세력 우산 아래 살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13일, 양길승 형(녹색병원장)과 함께 그가 한미FTA 저지 투쟁 차 단식투쟁하고 있는 대한문 옆 천막을 찾았다. 가운데 자리가 비어 있었다. 원탁회의에 회의 주재하러 갔다고 했다. 그리고 어제 그를 만났다. 그는 상당히 온화해졌지만 여전히 에너제틱했다. 그에게서 희망을 봤다. 대한민국이 잘못된 길을 가지는 않을 거라는.
*필자의 이메일 주소는 blest01@daum.net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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