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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텐트 안이면 오줌을 밖으로 누울 것”

남재희 회고 文酒 40年-그래도 잘 마셨다 <47>

***“텐트 안이면 오줌을 밖으로 누울 것”**

김종필(金鍾泌)씨와의 술인연은 참 오래 되었고 정이 많이 담긴 것이었다. 신문사의 정치부 시절부터 시작되어 신문사 간부 때로 이어지면서 자주 있었고, 대개가 의미있는 자리였다. 끈끈한 유대도 생겨났다. JP는 매력있는 사나이였으니까 말이다. 신문사 친구 이명원(李明遠) 한국일보 문화부 부장은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정치감각도 있는데 그는 70년대 후반에 “전기를 꼭 쓰고 싶은 세 사람이 있는데, 첫째가 JP고, 둘째는 살롱계의 유명 마담 김봉숙씨며, 셋째는 한국일보의 장기영(張基榮) 사장” 이라고 말하였었다. 그 때 나도 화제성에서는 완전히 같다는 느낌이었다.

나의 정치입문의 첫발로도 공게롭게도 JP와 시작되었다. 서울신문 주필로 있다가 불시에 낙하산 공천을 받고 잘 모르던 서울 강서구에 낯을 익히려 갔더니 윤주영(尹冑榮) 선배로부터 전화가 와서 당장 JP와 술을 하러 시내로 오란다. 순천향병원 앞에 있는 살롱에서 늦게까지 왕창 마시며 정치에 관한 이런저런 조언도 듣고 또 어줍잖은 기염도 토했다. 일어나면서 공천서 선거날까지 꼭 1백일인데 하루 손해났다고 했더니, JP "손해가 아닐꺼야.” 고 어깨를 두드린다.

궁정동 총소리 이후 JP가 공화당총재가 되어 대권경쟁을 준비할 때다. 대한극장 앞에 있는 대림정이란 큰 불고기집에 충청도 출신 노조간부들 2백여명을 초대하여 단합대회를 했다. 마침 나는 국회의 보건사회위원회 소속이고 그때는 노동청이 보사부 산하였기에 유관 의원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거기에 더하여 나도 충청북도 출신이 아닌가. 노조간부에 아는 사람도 많고 하여 여러 사람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살려나갔다.

공화당간부의 연설도 있었고 노조간부의 지지발언도 이어졌다. 그런데 한 유명 노조간부가 “JP가 충청도니까 총청도 노조간부는 단결하여 밀어주자”는 요지의 연설을 하는 게 아닌가. 술을 많이 마셨지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앞쪽으로 가서 마이크를 얻어 그 간부를 나무라는 연설을 하였다. “여러분 JP가 충청도니까 JP를 밀어주자는 말은 안됩니다. JP가 이 나라에 필요한 인물이고 또 우리 노동자들도 걱정해 주고 권익도 신장해 줄 정치인이니까 JP를 밀어주자, 이렇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어떻게 충청도끼리 뭉치자는 말을 합니까.” 찬물을 뿌린 셈이다. JP가 그때 어떻게 느꼈을까, 그 후에도 계속 궁금했던 일의 하나다.

세월이 흘러 YS에 의해 노동부장관으로 임명되었을 때 나는 당혹스러웠다. YS는 내가 전에 입각을 사양한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들어와 일을 해야겠어.” 라고만 전화를 해왔지 어떤 자리인지는 말이 없었다. 노동부장관이라는 것은 라디오를 듣고 알았다. 당시 노동문제에는 큰 난제가 있었다. 노조세력이 둘로 크게 나뉘어있는데 정부는 한쪽인 한국노총만 인정하고, 다른 한쪽인 민주노총(그때는 이름이 달랐다)은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얼마간 압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철학(?)은 정부의 것과 달랐다. 당시 조선, 자동차 등 중요 대기업 노조는 거의 모두 민주노총 산하이고 분규의 대부분은 거기서 일어나는데 그 민주노총을 인정 않는다면 마치 타조가 사막에 머리만 박고 잘 숨었다고 하는 것과 같은 꼴이다. 그러니 당혹스러웠던 것이다. 임명된 각료들 가운데 언론과의 인터뷰를 안한 유일한 각료가 되었다. 나는 언론을 피하고 있었는데 마침 방일영(方一榮) 조선일보 사주의 초청이 있고 하여 그 분과 함께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고민하였다. KBS에서도 집으로 유일하게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다고 싫은 소리를 해왔단다.

당시 JP가 집권당인 민자당의 대표위원이다. 한 번은 당사로 와서 노동정책을 설명해 달란다. 가장 신임하는 박길상(朴吉祥) 과장을 데리고 가서 JP를 비롯한 중요 당직자들에게 당면 문제를 설명하였다. 당연히 민주노총문제가 안 나올 수 없었고, 민주노총 합법화의 불가피성에 이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YS계열의 거물급 간부가 민주노총은 색깔이 불그레 하지 않느냐고 제동을 건다. 나는 “그 가운데 그런 사람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민주노총 자체를 그런 식으로 판단하면 대세를 그르칠 것이다.”고 반론을 폈다. 그리고는 JP를 향해 이렇게 비유적으로 말했다. “미국의 존슨대통령이 말썽이 많은 한 사람을 입각시키려니까 측근 참모가 그 사람은 문제꺼리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했대요. 그랬더니 존슨 하는 이야기가 ‘그 말썽꾼을 텐트 안에 넣으면 오줌 눌 때 텐트 밖으로 눌 것 아니야. 밖에 놓아두면 텐트 안으로 오줌을 갈겨 댈꺼고.’ 하더랍니다.” 그 때의 박 과장은 지금 노동부차관으로 승진했는데 나를 만나 이야기할 때는 자주 그 존슨의 일화가 일품이었다고 감탄한다.

JP는 역시 거물이다. 얼마 후 한국노총 간부 10여명쯤과 용산에 있는 용호정에서 술자리를 마련했다. 용호정은 국방부와 가까운 거리에 있어, 익살로 정호용 국방장관의 이름을 뒤집은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한다. JP는 고급양주를 갖고와서 성의를 보였다. 즐겁게 마셨다. JP는 “이봐, 한국노총 좀 잘 봐주어.” 그 한 마디뿐이다.

한국노총의 이상한 간부가 나에 대한 색깔공세를 펴 이회창(李會昌) 총리와 뒤이은 이영덕(李榮德) 총리의 귀까지 이르렀다. 이회창씨는 나에게 “고약한 소리를 하는 모양이더군.”하고 가당찮다는 태도였다. 그는 법원에서 노동관계도 다루고 하여 그 분야에도 상당한 이해가 있었다. 민주노총의 합법화는 유엔산하 국제노동기구(ILO)(묘하게 내 둘째딸이 제네바에 있는 본부에 근무하게 된다)의 요청에도 맞고 합리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얼마 후 나는 국회 노동위에 출석하여 기업단위 노조는 단수로 놔두고 상위 노조는 복수화, 그러니깐 한국노총에 더하여 민주노총을 복수로 합법화할 방침이라는 것을 공식으로 밝혀 버렸다.

당시 YS는 그 문제에 가타부타 태도를 밝히지 않고 계속 신중한 검토만 당부했었다. 나중에 나 다음으로 강서을지구당을 맡은 이신범(李信範)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다 들으니 YS가 통일민주당의 총재로 있을 때 이 의원도 정책수립에 관여하여 단위기업은 단수노조, 상위는 복수노조로 당론을 정한 바 있었다고 한다. YS가 검토만 당부하는 신중론을 펼 때 그 사실을 들어 설득하였으면 좋았을 것이란 때늦은 이야기를 하였다.

YS는 임기말에 가서야 민주노총의 합법화를 허용했는데 정부안이 여당에 넘어온 후 이상한 몇몇 의원이 장난을 쳐서 민주노총합법화에 유예기간을 두기로 개정하여 그런 저런 사정이 합쳐져 전국적인, 유례없이 대규모인 노동파업, 이른바 노동대란이 일어났다. YS가 큰 망신을 당한 셈이다.

JP의 대범한 태도는 훌륭하다. 그후 교보빌딩 뒤의 빈대떡집에 소주를 마시러 가자고 초청하니 서슴없이 따라왔다. <경원집>에서 빈대떡에 족발에 푸짐하게 들고 소주도 2병 이상 마신다. 대단하다. 국무총리를 지낸 여당의 대표가 그렇게 서민적인 데를 마다 않고 가다니……. 그와 지위가 비슷한 다른 사람들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한번은 “이봐, 당신 선거구에 맛있는 집 없어?” 하고 대란다. 옛 통합병원 근처의 <소나무집>의 양고기가 좋다고 했더니 한번 와보고는 아예 단골이 되어 버렸다. 여의도에서 가까운 거리이기 때문도 있다. 계산을 할 때 갑절로 주인에게 지불하고는 내가 다음에 오면 돈을 받지 말란다.

그런 JP인데…. 같이 정치하자는 요청을 못 받아들여 미안한 느낌이다. 정분(情分)으론 따뜻하게 끌리는데 명분(名分)은 어쩐지 내친다.

얼마 전 부여관광을 갔더니 백마강에서 낙화암을 바라보며, 가이드의 말이 부여의 주산인 부소산이 얼굴을 돌리고 앉아있어 부여에서는 큰 인물이 안 난단다. 왜, JP는 큰 인물이 아닌가. 나이 많은 가이드는 JP가 대권을 못잡은 것을 슬며시 엉뚱한 풍수설에 핑계를 대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미쳐 못보았지만 그는 눈을 꿈뻑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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