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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會昌씨와 폭탄주와 北核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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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會昌씨와 폭탄주와 北核 문제

남재희 회고 文酒 40年-그래도 잘 마셨다 <46>

***李會昌씨와 폭탄주와 北核 문제**

두 번이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여 많지 않은 표 차이로 떨어진, 말하자면 대통령이 될 뻔한 사람 이회창(李會昌)씨 이야기.

이씨와 나와는 인연이 있는 셈이다. 그의 선친이 검사여서 전근을 다니니 아들인 그는 청주중학교에도 오게 되었다. 해방 후 어린 학생들 사이에는 세 사람의 영웅이 있었다. 첫 손가락이 베를린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孫基禎) 선수, 오래된 일이지만 왜정때는 화제가 덜 되다가 해방이 되니 이야기꽃을 피운 것이다. 둘째 손가락이 씨없는 수박을 만들었다는 우장춘(禹長春) 박사. 근래에 와서 그가 개발한 게 아니고 일본에서 다른 사람이 성공한 것을 한국에 전파한 것이라고 말하여지지만, 그 당시의 우 박사 인기는 대단했다. 마지막이 이태규(李泰圭) 박사. 미국 유타대학 교수(마침 첫 딸이 최근 그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인데 일본 교토(京都)대학에서 연구할 때부터 소립자(素粒子)로 이름을 얻어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는다면 아마 이 박사가 최초가 될 것이라고 학생들이 떠들어댔다.

그 이태규 박사의 친조카가 청주중학에 왔단다. 폭발적 화제였다. 3학년인 나는 2학년인 이회창 학생을 구경하러 가본 기억이 있다. 그 후 나는 서울대 의예과 2년을 거쳐 서울대 법대에 신규입학하고 보니 그가 역전하여 1년 선배로 있는 게 아닌가. 청중 1년 후배들이 그와 친하게 지내니 나도 계속 그의 소식을 들어왔으나 특별한 접촉은 없었다.

1993년 이회창 총리와 함께 나도 노동장관으로 새 내각에 들어갔다. 반가웠다. 놀라운 것은 첫 국무회의에서 그가 용감한 돌출발언을 한 것이다. “언론에서 내각에 실세가 있다고들 보도를 하고 있는데 실세가 어데 있고 비실세가 어데 있습니까. 모두 실세라고 생각하고 일들 하세요.” 내무장관으로 같이 출발한 최형우(崔炯佑)씨를 지목하는 발언이란 것은 누구나 아는 일. 그리고 말을 이었다. “내가 평소에 존경하는 남재희 장관이 노동부를 맡아 마음 든든하게 생각합니다.” 이게 왠 말인가. 딱 나 한 사람만 거명하다니…. 그 때부터 이 분이 대단한 용기와 정치성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적중한 셈이다.

대법원 판사까지 이른바 6법전서 하고만 씨름을 하며 생활해와 무미건조하고 딱딱할 거라고 짐작한 것은 잘못이었다. 몇 번인가 각료들을 대원각 불고기 파티에 초대했는데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우리 시작해 볼까요” 하고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고 돌린다. 폭탄주 실력도 수준급이다. 분위기는 금새 부드러워지고 이야기의 꽃이 핀다. 참 정치적이구나 하고 또다시 느꼈다.

우리와는 기분 좋게 폭탄주를 마셨지만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폭탄주 끝에 이회창씨가 심한 표현의 이야기도 했다는 것은 정계나 언론계에는 널리 퍼져있는 소문이다. 술에 먹힌 모양이다.

폭탄주 이야기를 좀 하면, 폭탄주는 서양에서도 마신다. 돈이 부족할 때 돈 덜 들이고 빨리 취하기 위해 큰 맥주 잔에 적은 양의 위스키를 넣어 마신다. 실제로 캐나다 국회의원들이 한국에 왔길래 폭탄주를 소개했더니 잘 안다면서 ‘뎊스 차지(depth charge)' 라고 소리치며 만들어 마신다. 구축함이 바다 속의 잠수함을 폭뢰로 공격하는 것을 뎊스 차지라고 하는데 맥주 잔에 위스키 잔을 넣는 것이 그 모습을 닮았다.

가령 자기가 10명쯤의 사람들에게 술을 낸다고 생각해 보자. 보통 같으면 10명 모두에게 술잔이 갔다와야 한다. 그러면 10잔이 된다. 그런 식이라면 몸을 버리기 쉽다. 폭탄주는 만드는 사람이 먼저 마시고 모두에게 골고루 권한다. 잔은 하나뿐이니까 한 번 돌면 전원이 똑같이 폭탄주 한잔씩 마신 셈이 된다. 얼마나 공평하냐. 그리고 내는 사람에게도 부담이 적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군대에서 지휘관들이 선호하여 퍼지기 시작했으며, 그 다음 검찰, 그리고 일반 사회로 유행한 것이다. 위스키 대신 소주로도 만든다.

1994년 북한의 핵폭탄 개발, 그러니까 북핵문제가 한창 뉴스의 초점이 되던 때다. 그 때 국무회의에서 이 총리가 전보다 훨씬 신속하게 상정된 안건을 모두 처리하고는 “자, 이제 우리 이야기나 해봅시다.” 하고 돌아본다. 처음 있는 일이고, 결과적으로는 마지막 있던 일이다.

그리고 느닷없이, 정말 느닷없이다. “요즘 북핵문제가 심각한데 그 방면에 조예가 깊은 남 장관이 한 번 말씀해보시지요.” 한다. 내가 어찌 그 문제에 조예가 깊을까. 그리고 그 문제라면 국방장관, 외무장관, 통일원장관 등 업무관련 장관이 줄줄이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왜 내가 일 번 순서인가.

내 순발력도 자화자찬으로 대단했다. 지체없이 다음과 같이 술술 이야기를 해나갔다.

“요즘 북핵 문제에 대응하는 것을 보고 제가 혼미스럽게 느껴집니다. 국무위원인 제가 혼미스럽게 느낄 때 국민들은 어떻겠습니까. 우선 신문에 보니 북핵 문제에 대한 정부의 창구를 외무장관으로 단일화한다고 났습디다. 그럴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니까요. 그런데 다음에 보니깐 청와대 비서실장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그 문제를 다룬다고 신문에 났습니다. 이상한 일로 생각합니다.

외무장관으로 부족하면, 통일원장관이 있지 않습니까. 왜 통일원장관을 부총리로 했습니까. 여러 장관을 조정하란 뜻 아닙니까. 그리고 부총리인 통일원장관으로도 어려우면 헌법에 있는 대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어야 합니다. 국가안보회의가 왜 헌법에 규정되어 있습니까. 그런 거 다루라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난데없이 청와대 비서실장입니까?”

역시 신문사 논설위원으로의 훈련 덕분일 게다. 청산유수로 말이 나왔다.

그 때, 이 총리, “자!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방망이를 쾅쾅 치고 일어선다. 나 하나의 발언으로 끝이다.

그 후 함께 점심을 하자고 총리의 연락이 왔다. 둘이서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요는 그렇게 중요한 북핵 문제에 총리인 자기를 제쳐두고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하여금 주도하게 하는 것은 법리에도 어긋나고 정치책임상도 불가하다는 것이다. 기습을 받다시피하고 한 나의 발언이 어떻게 그렇게 이 총리의 생각과 일치했을까. 나는 대통령이 그렇게 한 것이니 YS와 맞붙지 말고 간접적 방법을 택하라고 걱정하는 말을 했다. 그러나 YS의 용맹스런 저돌성과 이 총리의 법대로의 고집불통은 곧바로 정면충돌, 이 총리의 해임사태를 가져 온 것이다.

그 후 노동부도 담당하는 청와대의 경제수석을 만났더니 각의에서의 나의 발언으로 청와대에서의 나의 평판이 아주 나쁘다고 말한다. 그래서 “내가 자진해서 한 말입니까?”, 총리가 물으니 내가 바른 대로 말할 수밖에 없지요.” “총리가 먼저 물었습니까?” “국무회의에는 기록이 있으니 알아보시지요.”

세월이 많이 흐른 2002년 5월 17일 동아일보 기획기사에선 그 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총리직 사퇴 파동도 이 후보의 원칙이 빚은 YS와의 충돌 때문이었다. 이 총리는 1994년 4월 ‘통일안보정책회의에 회부된 안건이라도 총리의 사전 승인을 받아 시행해야 한다’ 고 주장했고, YS는 이를 대통령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사퇴냐 해임이냐에 대해서는 지금도 설이 엇갈린다. ”

선거에 이기든 지든, 이것 하나만 아니었으면 달랐을 것 하는 것이 열 가지쯤 거론된다. 이회창씨의 경우, 아들 병역문제만 아니였으면, 미군이 여학생 치사사건의 언도재판만 대선 후로 미루었더라면…… 역시 열 손가락 꼽히는 가운데 하나만 달랐어도 혹 몰랐을 것이다.

이회창씨는 대통령이 될 만한 훌륭한 자질을 갖추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시대정신(時代精神)이라고 뭉뚱거려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무엇과의 괴리 때문에 실패한 게 아닐까. 비록 선거 때 돕지는 않았지만 둘 사이의 특별한 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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