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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신임 정국, 민주노동당의 역할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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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신임 정국, 민주노동당의 역할에 주목한다

정작 풀어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

노무현 정권의 주도하에 전개되고 있는 재신임 정국이 그 정작의 본질이 실종된 채, 예상했던 대로 각 정파간의 정략적 대결로 치닫는 중이다. 그 결과, 재신임 정국의 출발에 근본적 요인이 된 노무현 정권의 실정(失政)과 비리 의혹에 대한 정리, 규명 그리고 반성적 극복을 전제로 하여 대안모색의 국민적 합의를 지향해야 할 상황이 매우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이렇게 진정한 현실적 과제의 명확한 설정이 혼미에 빠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최소한 다음의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즉, 첫째, 지지 세력의 이탈을 포함하여 <불신의 축적>을 가져온 자신의 실정과 비리의혹에 대하여 국민적 재신임을 자청(自請)한 노무현 정권이 어느새 그 논의의 축을 <자성적 쇄신과 국민적 심판의 겸허한 수용>에서부터, <정치권 전반을 겨냥한 개혁공세>로 바꿔치기해버렸다는 점이다. 둘째로는, 한나라, 민주, 통합신당, 자민련 등 의회정치를 구성하고 있는 각 정파 역시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는 공세와 방어라는 구도에만 매몰되어 있는 채로, 자신들의 문제에 대한 겸허한 반성과 함께 한국정치가 현 단계에서 감당해나가야 할 우선적 과제의 제시에는 무력했다는 점을 들 수가 있다.

***재신임 정국의 왜곡 - 주제가 바뀌고 있다**

먼저 첫 번째 사안과 관련해서 우리는 노무현 정권이 본래 재신임 정국의 변으로 내세웠던 내용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것들로 교묘하게 대체된 것을 주시하게 된다. 이와 같은 재신임 정국의 왜곡은 일차적 책임의 소재를 타자에게 전격적으로 전가하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의 정략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권은 지금껏 수세에 몰렸던 상황에서 일대 승부수를 던짐으로써 정국 주도권의 고삐를 쥐게 되었다고 득의만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노무현 정권으로서는 여론조사로 가늠되고 있는 재신임 선택율 예상치가 높게 나온 것을 가지고 개혁정권으로서의 위상을 회복하게 되었다고 여기는지 모르나, 검증된 정치적 정결(淨潔)과 민족적 과제해결의 원칙 실천이 빠진 개혁주도는 역풍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엄격한 자기쇄신과 지난 시기의 오류교정 의지가 부재한 권력의 개혁구호는 그 개혁의 가치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존엄함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문제는 그 틈에 최소화 내지는 은폐하려는 것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노무현 정권과 그 친위세력이 측근비리로 인한 책임통감을 토로하면서 무엇보다 먼저 스스로를 국민적 심판대에 희생제를 치르는 심정으로 올려놓겠다고 했던 태도를 순식간에 버리고, 오만하게도 자신을 정치권 전반에 대한 심판자로 내세우는 모순에서 기인하는 문제이다. 노무현 정권이 개혁정치에 고군분투 진력하다가 좌절한 끝에 이를 돌파하기 위해 도달한 재신임 정국이라면, 그래서 개혁정치의 본격적 시동을 가하기 위한 역사적 용단이라면 노무현 정권에 대한 개혁세력의 힘 실어주기는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바이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노무현 정권의 성립을 가능하게 했던 역사적 요구라고 할 수 있는, 자주적 민족문제 해결과 진보적 개혁정치의 실현에 자신을 전적으로 걸고 나서지 않은 결과 노무현 정권의 지지 기반은 그간 급속도의 유실(流失)을 자초했던 것이다. 너무도 분명한 것은, 지지도 하락이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수구냉전세력의 조직적 반격에 기인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도리어 이에 맞서 결연한 정치적 원칙을 견지했다면, 노무현 정권의 지지기반은 분열 약화될 까닭이 없었다. 이에 대한 다른 설명을 내세우는 것은 기만이다.

***노무현정권 지지 하락, 개혁정치 좌절이 원인 아니다**

여기에 비리의혹까지 가세하면서 독점 대자본과 권력의 정경유착구조가 노무현 정권에서 폐기되기는커녕, 노무현 대통령 최측근으로 활동해왔던 최도술의 “적극적 요구”라는 방식으로 나타난 것은 그간의 정치적 관행의 하나라는 식으로 그저 지나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정치자금과 관계된 실정법의 한계에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 기존의 정경유착 구조에 안이하게 기생한 권력의 “가려진 실상”을 보여주는 실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노무현 정권의 경제정책이 어찌해서 민중들의 절박한 삶과 치밀하게 밀착되지 못했는지 그 이유의 한 단서를 발견하게 된다.

거듭 주목되거니와, 지지세력의 분열을 가져온 우선적인 까닭은 노무현 정권이 민족사적 위기를 위엄 있게 풀어내거나, 절차적 참여 민주주의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사회경제적 갈등을 진전된 방식으로 접근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국민적 심판과 성찰적 자기쇄신이 없는 재신임 정국의 전개는 지난 시기의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연장될 수밖에 없다. 혹여 재신임을 받았다고 해도 정국의 불안은 심화되어갈 것이며, 재신임을 받은 것을 내세워 권력은 보다 교만하고 강포해질 수 있다. 모두에게 불행인 것이다.

실로 이런 식으로 자신의 문제는 도외시한 채 나머지 세력들의 문제만 부각시켜 위기를 벗어나려 한다면, 재신임 정국을 한국정치의 개혁과 민족사적 문제 해결의 중심을 바로 잡는 계기로 만들자는 광범위한 합의가 형성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감당할 주체로서의 노무현 정권의 자격과 능력 시비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한국사회 일각에서 재신임 정국 자체를 거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은 이 나라가 정작 진력해야 할 과제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국가적 역량이 분열, 혼미에 빠져들고 있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은 재신임 정국이 자신의 기사회생을 위한 정략적 공간이 되기를 기도하지 말고, 이 나라가 어떤 과제들을 해결해나가야 하는지 보다 본질적인 과제설정과 이를 위한 방도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정도이다. 바로 그 고뇌에서 권력과 이 나라 전체가 살 길이 열리는 것이다.

***민주당, 평화개혁 정당으로서의 선명성 치명상 입어**

둘째의 사안, 즉 각 정파의 재신임 정국에 임한 자세의 문제는 무엇인가? 이른바 4당 체제의 정국 인식의 골격이 밝혀졌다는 점에서 이는 향후 정국전개 전망에 중요한 준거가 된다.

냉전수구세력의 정치적 집결처라고 할 수 있는 한나라당의 경우 재신임 정국 전개의 출발이 된 비리의혹 규명의 우선적 관철을 제기하는 것에는 일정하게 성공했으나 정치자금과 관련된 자신의 문제를 함께 그 심판의 대상으로 놓는 것은 완전히 침묵함으로써 자기쇄신이 포함된 진정한 정치개혁의 의지는 없음을 드러냈다.

이와 함께 한나라당은 그간, 시대착오적 냉전형 정치를 주도하려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역사의 반동적 퇴행을 조장해왔을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패권체제의 요구에 적극 순응하고 군사적 대결주의를 지지하는 등의 파시즘적 정세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발전의 장애로 기능해온 것을 스스로 돌아봐야 할 것이다. 자민련의 경우, 한나라당의 노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분당 이후 박상천 대표체제로 들어선 민주당의 경우, 재신임을 위한 국민투표의 헌법적 논란을 제기하는 것에는 일단 정치적 주목을 받았지만, 노무현 정권과의 대립각을 세우기 위한 전략으로서는 “경악스러운”, 냉전수구세력과의 연대를 선택함으로써 평화개혁정당으로서의 선명성을 상실하는 중대한 치명상을 입었다.

또한, 그 결과 노무현 정권이 지향해야 할 민족사적, 정치경제적 과제의 원칙들을 거론, 대안적 정책의 제시를 하는 작업에는 실패함으로써 대안정당으로서의 위상에 심대한 타격을 자초했다고 하겠다. 즉, 민주당 내부의 평화 개혁적 요소가 분명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정치적 이미지를 낙후시킴으로써, 만일 이러한 상태가 지속될 경우 중도적 진보세력의 지지 기반이 약화 내지는 무너질 것이 예상된다. 이는 정국의 개혁적 주도권을 민주당에게서 기대하기 어려워짐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의 동력이 상실될 수 있는 위기를 신속히 감지해야 할 것이다.

이른바 “노무현 정권의 정치적 전위세력으로서의 친노(親盧)정당”이라는 현실적 규정을 일견 부담스러워하고 일견 적극 수용하고 있는 움직임이 혼재하고 있는 통합신당은 재신임 정국과 관련한 노무현 정권 방어라는 입장은 명확히 했지만, 노무현 정권의 지지기반이 허물어져 내린 보다 본질적인 원인을 깊이 있게 짚어 교정해나가는 의지를 밝히지 못한 한계를 노출했다.

재신임 정국이 개혁정치의 신호탄이 되어야 한다는 원론은 타당한 것이지만,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전제가 다만 노무현 정권의 내부 쇄신만이 아니라 그간 논란이 되어왔던 특검 정국, 이라크 파병문제, 환경정책, 경제정책 등의 사안에 대한 정책적 원칙의 확인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의지의 표명이다. 그러나, 가령 이라크 침략전쟁에 대한 파병문제에 대하여 김근태 통합신당 원내대표는 평소의 파병반대 소신을 끝내 밝히지 못한 채 여러 요인들을 열거한 신중론으로 끝내고 만 것은, 향후 노무현 정권의 결정에 종속되어 이를 방어해야하는 위상의 딜레마를 보여준 셈이라고 하겠다.

***통합신당, 노무현 정권의 친위 <돌격대 정당> 전락 가능성 우려돼**

결국, 통합신당 내부에 우리에게 소중한 평화개혁적 요소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합신당은 노무현 정권이 보인 기존의 모순과 문제들을 격파해나갈 수 있는 역량으로 자신을 규정해나가기 보다는, 노무현 정권의 친위세력 내지는 정권 보위를 위한 위성정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지난 시기 노무현 정권이 민족사적 과제해결이나 정치경제적 갈등의 대응에서 보인 한계를 넘어서도록 견인해낼 수 있는 정당으로서의 모습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차원에서, 자칫 <돌격대 정당>의 운명이 될 수 있다. 이는 이미 통합신당의 주요 지지기반의 하나인 <노사모>와 개혁정당출신 정치세력의 입장에서 확인되고 있는 바이다.

바로 이와 같은 정국의 현실 속에서 <민주노동당>의 존재와 역할은 새롭게 주목된다. 현재 의회정치를 움직이고 있는 4당 체제가 배제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은 대중적 위상에 있어서 그 역량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는 대중들을 제대로 충분히 흡인하지 못하는 민주노동당의 정치력에도 일부 기인하는 것이기는 하나, 기존언론의 민주노동당 격하나 의도적 무시가 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일대 약진한 민주노동당은 이 나라 진보정치의 구현을 위해 어려운 여건에서도 원칙의 흔들림 없이 성장해왔고, 민족적 사안, 정치경제적 현안, 대외관계 등에서 한국정치의 보수적 경계선을 넘기 위한 노력을 치열하게 축적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은, 우선 진보정치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 부족과 분당 이전의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던 개혁적/진보적 대중에 대한 장악력, 냉전수구세력의 집권에 대한 깊은 우려, 언론환경의 열세 등으로 정치적 불리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정권의 등장을 가능하게 했던 지난 대선의 경우에도, 민주노동당은 반 이회창 전선의 통일적 연대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없던 진보적 대중들의 선택에 의해 지지기반이 일정하게 희생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였었다.

***민주노동당, 현 정국에서 풀어야 할 본질적 과제 제기**

하지만, 오늘날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위상과 그 의미는 매우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 없다. 즉, 기존의 4당 체제가 앞서 간략하게나마 검토했듯이 노무현 정권 시대의 모순과 한계를 본질적으로 교정해나가는 역할에 있어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현 재신임 정국의 공간은 민주노동당의 정치력을 시험하고 한국정치 발전의 활로를 새롭게 뚫어내는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민주노동당은 재신임 정국과 관련하여 이를 정략과 무책임이 결합한 국정혼란의 원인으로 규정하고, 비리 의혹 규명과 근본적 국정개혁의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비상시국회의>를 통해 6대개혁 과제를 해결하도록 하자고 밝혔다.

민주노동당이 표명한 6대 개혁 과제는 (1) 대선자금 전면수사와 독일식 정당 명부제 도입 등 근본적인 정치개혁 (2) 이라크 전투병 파병 거부 (3) FTA 협상 등 농업개방 철회 (4) 핵 폐기장 문제를 비롯한 反환경 정책 철회 (5) 부동산 폭등, 가계부채 등의 민생 현안 해결 (6) 노사관계 발전방안 마련 등이다. 이 과제 발표에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비리 공방이나 설득력이 약한 재신임 용단론 내지는 책임 규명이 모호한 개혁정국론의 한계를 넘어서, 한국 사회가 본질적으로 고민하고 힘을 합쳐 추진해야 할 과제에 집중하고자 하는 점이다.

민주노동당의 이러한 주장은 재신임 투표 거부를 전제로 했기에, 재신임 절차가 현실적으로 진행이 되어갈 경우 필요한 정치일정, 불신임 이후의 정치적 제도적 장치 마련 등의 논의가 없다는 것이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나라가 민족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 서민대중들의 삶이 고통을 겪고 있는 현안 등에 대해 정치적 역량을 모아나가는 것이 곧 현 정국의 위기를 돌파해나가는 요체라는 점을 환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 하다.

물론, 이러한 주장과 정책의지를 민주노동당이 현실에서 실현시킬 방도에는 아직 여러 제약이 있다. 그러나, 언론과 대중들이 대안의 모색을 갈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역량이 배제되는 구조가 지금처럼 지속된다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 나라는 노무현 정권과 기성 정치권만의 나라가 아니다**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지배력이 여러 차원에서 강화되고, 독점 대자본의 정치개입이 구조화되어 있는 현실에서 근본적인 개혁은 민족적 주체를 바로 세우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땀 흘려 일하는 서민대중들의 정치경제적 권리가 존엄하게 보장되는 길을 만드는 것에 그 요체가 있다. 이 본질적 과제가 외면된 정치논쟁과 공방, 그리고 정국의 흐름은 정치인들끼리만의 이해관계 계산의 정략에 불과해진다. 민주노동당의 상대적 약세가 곧 그 주장과 논리의 의미 없음을 뜻하지 않는다.

보다 본질적인 과제설정과 근본적 해결의지가 박약한 노무현 정권을 비롯한 기존의 정치권 전반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육성이, 평화와 개혁, 그리고 국민적 통합을 바라는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한 일반 서민대중들의 염원과 심도 있게 결합한다면 오늘의 난마같이 얽힌 정국을 풀어 가는 데 있어서 적지 않게 일조하게 될 것이다.

재신임 정국은 노무현 정권과 기존 4당 체제의 잔치 또는 난장으로만 끝나서는 아니 된다. 이 나라는 그들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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