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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심판' '대안 모색' 동시 진행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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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권 심판' '대안 모색' 동시 진행돼야

재신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2003년 10월 10일 청와대 발(發)로 급격한 정치적 폭풍을 몰고 온 재신임 정국이 시간이 지나면서 그 전개양상이 정국 주도권의 향방을 놓고 대선 이후 최대의 권력투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 권력투쟁의 전개와 결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따라 한국정치의 미래는 진퇴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이 기로에서 우리가 도달해야 할 궁극적 결론은 현 정국불안의 제1차적 원인이 된 노무현 정권의 정치적 무능과 의혹이 깊어지고 있는 비리부패를 최우선적으로 혁파하고, 그에 기초한 제도적ㆍ정치문화적 대안의 확립을 꾀하는 작업에 있다.

무엇보다도 재신임 정국을 근거로 개혁체제를 만들어 나가려면, (i) 개혁주체의 자격 여부를 점검하는 과정 없이는 불가능하며 (ii) 향후의 국정전개에 대한 예상 가능한 일정과 장치, 대안의 국민적 합의가 선차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은 재신임 과정은 저열한 정쟁과 정치적 사기극이 될 가능성이 높을 뿐이다.

실로, 모든 권력투쟁이 악(惡)은 아니다. 그것이 역사적 대의(大義)를 놓고 민의(民意)의 일대 승부를 가리는 과정이라면 그것은 당연히 해야 할 바이다. 어떤 힘이, 어떤 세력이, 어떤 요구가 우리의 현실과 역사를 주도하게 할 것인가는 우리 모두의 삶에 근본적인 의미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는 민족사적 위기와, 각종 모순이 날카롭게 드러나고 있는 내치(內治)의 현안들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의 원칙을 새롭게 확립해야 하는 엄중한 도전 앞에 서 있다. 그 도전은 어떤 정파적 이해관계나 지역 파벌적 고려를 뛰어넘는 “국가적 책무의 차원에서” 접근되어야 할 대국적 긴급현안이다.

***재신임 정국의 본질,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이는 현재의 시점에서는 우선, 재신임 정국의 본질적 성격이 어떻게 규정될 것인가에 달린 문제라고 하겠다.

즉, 재신임 정국의 흐름이 (1)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불신의 축적>이라고 표현한 사안인 노무현 정권의 실정과 비리에 대한 국민적 심판에 기초한 정치적 결론 도출이 될 것인가, 아니면 (2) 불신임 이후의 대안부재로 인한 불안감이 보다 지배적이 되어 헌정중단과 파국적 상황은 일단 막아보자는 대중들의 선택이 중심에 설 것인가로 압축된다.

전자 (1)의 경우,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재신임 발언의 직접적 도화선이 되었다고 밝힌 <최도술 사건의 진상>이 어떤 것인가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동시에, 그 결과에 따라 노무현 정권은 개혁정권의 주체로 설 수 있는 공적 신뢰기반을 잃어버리고 말 수도 있다.

따라서 노무현 정권으로서는 재신임 정국의 주요 초점이 이에 맞추어지는 것을 극력 제어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유형의 문제는 지난 시기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치권 전반에 걸친 현실에서 발생한 이른바 관행적 사건, 다시 말해서 현실을 따라주지 않는 기존의 정치자금법상 불가피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 정당화하고 싶은 처지에 놓일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전반의 개혁이라고 강조하게 될 것이다. 그와 함께 야당의 정치자금 문제를 보다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자신의 문제를 상대적으로 최소화하는 전략을 택하게 될 수 있다. 돈과 관련한 정치권 전체의 공멸을 피하자는 암묵적 합의 아래, 앞으로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정책적 조처가 보다 의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논리를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정권 비리의혹이 심판 대상 되는 재신임 돼야**

그런데 재신임은 이러한 의혹의 분명한 규명과 지난 시기의 실정을 그 심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절대적 전제로 하지 않는 한 그 재신임의 판단 기준이 모호해진다는 점에서, 노무현 정권의 현재에 이르는 과거를 정치적 공론의 내용으로 정리하는 과정은 피할 수 없다. 아무리 야권의 정치자금관련 비리가 양적으로 크다 해도 권력을 쥐고 있는 측의 문제는 국가이익의 훼손과 직결되기 때문에 질적으로 보다 심각하다는 점에서 만일 이와 관계된 정치적 논란을 노무현 정권이“정쟁”으로 매도하게 된다면 이는 재신임의 의도가 달리 있다고 보게 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러한 부담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노무현 정권은 이 문제의 엄정하고도 명쾌한 검증을 어떤 방식으로든 받아들여 의문을 깨끗이 해소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의혹은 남고 개혁적 조처의 정통성은 끊임없이 흔들리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지도 하락의 주요 원인이 된 노무현 정권의 실정과 비리 문제에 대한 명확한 실상을 대중들이 알고 평가하며 논쟁해가는 절차 없이 정치권 전반의 개혁을 먼저 내세우는 방식이 되는 것은 개혁 주체가 될 수 있는지의 여부가 검증되지 못한 존재가 개혁의 깃발로 자신의 비리를 가린다는 혐의를 받게 된다는 점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재신임 발언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노사모>에게 친서를 보낸 사건도, 공정하거나 신중한 처사라고 보기 어렵다. 측근비리에 대한 책임 통감으로 재신임 의지를 표명했다고 밝혀놓고서는, 마치 그간 노력해왔던 개혁정치가 좌절된 고군분투의 현실을 돌파하기 위한 용단처럼 상황을 호도하는 듯한 인상을 준 것은 스스로 재신임 대상이 되기로 자청한 자성(自省)하는 존재로서 겸허한 자세를 갖춘 것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신임 정국을 개혁정치의 분기점으로 삼는 것은 이러한 절차가 보다 치밀하게 전개되지 않는 한, 위기에 몰린 정권의 <국면전환 정략>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며 재신임 이후에도 계속해서 효율성과 정통성의 문제로 권력적 위기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재신임 정국의 향방 결정할 핵심은 대안의 존재 여부**

후자 (2)의 경우, 국정불안심리를 해결하는 심도 깊은 대안논쟁과 구체적인 대안마련이 없는 상태에서 방법론 중심의 재신임 논란은 대단히 무책임한 국정운영 자세라는 점을 주시하게 된다. (재신임의 방식이나 날짜까지 대통령이 못박으려 드는 것은 제왕적 행태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재신임 대상이 된 존재가 자신의 재신임 방식과 일정을 스스로 결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재신임 이후 권위주의적 독재를 우려하는 소리가 한 편에서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러한 자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지지도는 낮으나 재신임 선택율은 그에 비해 높다는 최근 여론조사의 모순된 결과는 노 정권에 대한 적극적 재신임 의지의 표명이라기보다는, 국정불안에 대한 반응으로 만들어진 “억지 춘향적”정권 유지책이 됨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다.

노무현 정권으로서는 재신임 선택율이 높다는 여론조사에 고무될 수도 있으나, 그것으로 득의만면한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옳지 않다. 이러한 재신임 선택율은 노무현 정권의 개혁역량에 대한 신뢰도의 반영이 아니라 정국불안의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한 대중들의 “어쩔 수 없는 자구책”이라는 점에서, 이는 대안이 있기만 하면 곧바로 노 정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할 엄청난 반발과 저항의 저수지라는 점을 정직하게 주목해야 할 것이다.

야권이 처음 재신임 정국에 대해 쉽게 생각했던 것은 이러한 대중들의 국정불안 심리가 얼마나 심각한지 고려하지 않은 경박한 처신의 결과였고, 그동안 정치권 전반이 대안 마련의 실천적 역량이 얼마나 부재한지를 드러낸 생생하고도 구체적인 실례라고 할 수 있다.

재신임 정국이 어떻게 풀릴 것인가는 사실상 대안이 무엇인가에 핵심적으로 달려 있다. 노무현 정권의 현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심할 수 있는 대안이 제시되거나 출현하면, 노무현 정권의 불신임은 피하기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노무현 정권은 대안의 등장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으며, 야권은 대안 경쟁이라는 중대한 정치적 실천에 몰입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정파적 이해관계 뛰어넘는 대안의 준비 반드시 필요**

그 대안은 노무현 정권 불신임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사퇴로 인한 헌정중단을 막을 국정 운영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나 권력 분권으로 외교와 내정의 분리를 통해 노무현 체제는 유지하되 그 권력은 제한적으로 재조정하여 대통령 1인에 과도하게 집중된 국가역량을 사안에 따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 또는 노무현 이후의 정국을 이끌고 갈 만한 인물의 등장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 마련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재신임이 되지 않았을 때의 상황을 전제로 하는 이 같은 대안 논쟁은 재신임 정국에서 있어서 매우 중요한 몫을 차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안까지 공론의 장에서 정리하여 우리의 미래에 필요한 제도적ㆍ정치문화적 개혁의 기반을 확립해나가야 한다.

한 가지 첨언하자면, 가령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이 확정될 경우 곧바로 대통령의 하야로 이어지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논의도 신중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이토록 어려운 경제적 고통과 정치적 동요의 시기에 대선을 또다시 치르도록 한다는 것은 국가의 에너지를 말할 수 없이 낭비하게 한다는 점에서도 불신임이 가진 정치적ㆍ제도적 의미규정을 공론의 장에서 정교하게 할 필요가 있다.

***노 정권 무능ㆍ비리 심판/국정 불안 대안 마련, 두 사안의 통합적 틀 필요**

아무튼, 앞에서 논의한 이 두 가지 사안은 서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총체적인 틀로 결합되어 오늘의 정국을 풀어나가야 할 기준을 만들어 내는 기반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오늘의 재신임 정국이 만일의 경우에 있을 수 있는 노무현 정권의 책임전가용 국면돌파 정략이나 냉전 수구적 구도의 복구를 기도하는 파시스트세력의 정권탈환 전략으로 악용되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해서, 노무현 정권의 무능과 부패에 기인한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그에 대한 국민적 판결이 정국 불안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대안의 미래를 선택하고 실현할 수 있는 역사적 계기로 작용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오늘의 정국은 국가적 미래의 파국을 운명적으로 감지해야 하는 사망의 계곡이 아니라 새로운 역량의 집결을 통한 변혁의 현장으로서 생명의 들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결의가 우리 사회에 강력하게 존재할 때, 취임 8개월 만에 임기 말의 권력 누수기에 해당하는 지지도 10퍼센트 대에 이르게 된 노무현 정권의 내적 한계를 혁파하고 이를 고리로 하여 정치권 전반의 개혁적 진전을 이루는 제도적ㆍ정치문화적 대안의 실현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그렇지 아니하면, 노무현 정권의 문제는 그대로 지속된 채 재신임 이후의 사태악화가 이어지거나 또는 헌정중단이라는 정국 불안의 심화로 우리의 발전이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실로, 재신임 정국의 핵심은 노무현 정권의 무능과 비리에 대한 국민적 심판을 기본적인 근거로 하여, 정국 불안의 요소들을 확인하고 제거하면서 새로운 대안이 도출되는 국민적 합의의 역사적 공간이 될 수 있는가에 집중되어야 한다. 그것이 재신임의 대상과 내용을 충실하게 하는 동시에, 우리의 정치발전을 건강하게 이루어낼 수 있는 합리적이고 타당한 표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재신임 정국의 결말이 노무현 체제의 몰락인가, 아니면 보다 강력한 동력을 확보한 재기(再起)가 될 것인가에 대한 여러 예상이 난무하는 가운데, 우리가 결코 놓쳐서는 아니 될 바는 재신임 정국의 출발은 부인할 길 없이, 노무현 정권의 실정과 이에 비롯된 지지도 하락이라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점에서 결단코 책임전가의 논리를 내세워서는 아니 된다. 노무현 정권이 이를 겸허히 받아들여 오늘의 정세를 대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각 정파간의 정략적 사술(邪術)의 엉킴 속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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