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절을 만나 힘든 고비를 넘고 계시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진심어린 인사를 드립니다.
대통령께서, 아무리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국정의 표류>라는 현실 앞에서 얼마나 참담한 심정으로 재신임 정국의 결단을 하셨는지 멀리 있는 저로서도 지극히 비감(悲感)어린 마음으로 소식을 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에 깊은 진실성이 있다고 봅니다. 세간에는 여러 흉흉한 짐작과 어지러운 탄식이 있지만, 대통령이 자신을 전적으로 걸고 나서는 방식이 아니고서는 더 이상 정국의 돌파가 불가능하다는 절박한 인식에 도달한 나름의 선한 결론이라고 생각됩니다.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 진실성 있어**
내세운 명분은 <정권의 도덕성>이며, 배수진으로 스스로에게 요구한 것은 <신뢰의 회복>이고 정작 구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정치의 올바른 정립>임을 밝히셨습니다. "나 하나 희생되는 한이 있다 해도, 이로써 민주주의적 정치발전의 계기가 된다면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살신성인(殺身成仁)적 용단을 함부로 폄훼하는 여러 소리들이 있으나 대체로 그것은 권력 장악에만 몰두한 정략적 사고에 길들여진 습성의 발로라는 느낌이 짙습니다.
그런데, 그 진실성에 대한 신뢰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정국 형편이 이에 이르게 된 과정과 요인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에는 우려할 바가 적지 않게 있다는 것이 솔직한 심사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찌 보면 치명적이기까지 합니다.
정세인식에 치명적 오류가 있게 되면, 대통령의 인간적 진실성은 가려지고, 현실에서 정작 목표로 하는 한국정치의 발전적 변화에 필요한 동력은 사라지고 맙니다. 그에 더하여, 노무현 대통령은 자칫, 역사의 희극에 잠시 등장했다가 관객의 우레와 같은 갈채 대신 난무하는 비난 속에서 퇴장당하는 초라한 존재가 되고 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대통령 개인의 불행이자 개혁세력 전체의 감당하기 어려운 수치입니다.
오늘의 정국이 이토록 곤경에 처하게 된 가장 중요한 까닭은 도대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킨 역사의 힘에 대통령 자신이 충실하게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대통령의 고립과 고투를 소모적으로 자초하게 했으며 우군을 찾기 어려운 비극적 현실에 봉착하게 했던 것입니다. 애초의 출발은 분명 이러하지 않았음을 우리 모두 기억합니다.
***정세인식의 치명적 오류**
그와 함께, 대통령께서는 정국을 포괄적으로 이끌고 가기 위한 대화의 장을 저버린 채 폐쇄적이다시피 한 오만의 늪에 너무 일찍 빠지고 말았습니다. 거기에서 <정국 인식의 맹점(盲點)>이 커지기 시작했으며, 올바른 해결책을 선택하는 능력이 제한되어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에 더하여 충분히 연대할 수 있는 세력들에게조차 정서적 적대감을 심화시키는 매우 불필요한 발언들이 쌓여가면서 대통령이 의지할 수 있는 힘의 기반은 날로 좁아져 왔습니다. 이러한 점들은 이미 여러 논자들에 의해 뼈아프게 지적되어왔던 대목이었으나, 대통령께서는 이러한 고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셨던 것만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정치현실은, 대통령의 개혁성을 외면하는 세상의 몰지각이나, 정치권의 음모적 정략 그리고 보수언론의 난동에 가까운 행태로 인한 파국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은 대통령 자신의 실패에 기생하는 공허한 여론과 권력투쟁의 음모입니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그 출발은 대통령의 실패에 있습니다.
지난 7개월의 대통령 직 수행이 이르게 된 정국의 면모가 이러하다면, 이제까지 해왔던 방식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우선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대통령께서 밝히셨던 <한국 정치 바로 잡기> 이전에 <자신을 바로 잡는 일이 우선>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바로 잡는 것은 국정 쇄신의 결단과 의지를 굳건히 하는 것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잘못 된 것을 바로 잡는 것에서 온전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바로 잡는 일이 우선**
이번 재신임 정국 발언은 대통령이 지난 7개월을 돌아보면서 실패로 귀결되고 있는 자신의 정치행태를 진실로 반성하고 그에 기초한 출발점으로 삼는다면 그야말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그래, 어디 한번 해볼래?"하는 식의 마음이 혹 숨겨진 동기가 되어 있다면 그 결과는 당연히 파국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민심을 진실로 사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적 지위를 과시하고 국민을 협박하는 방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도 실로 안타까웠던 것은, "자신은 잘 하려 했는데 주변 여건과 환경이 따라주지 않아서"라는 식의 책임전가가 측근의 비리혐의에 대한 책임 통감이라는 발언 속에서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혁파의 우선적 실천은 기대하기 어렵게 될 수 있습니다. 발언의 진실성에 대한 신뢰도 약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시하고 있는 대목은, 대통령 노무현이 다시 우리가 그토록 열광하던 역사의 대안으로 거듭 나는가, 아니면 그 외의 대안이 있는가의 문제로 압축됩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현재 우리가 가져야 할 관심은 재신임 자체가 아니라, 이번 결단이 정국의 방향을 바로 잡아나가는 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 없는가, 입니다. 그것에 성공하면 재신임 문제는 매우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국정의 혼란을 가속화시키고 권력의 누수를 심화시킬 수 있는 재신임의 방식에 대한 성급한 논란과 공론에 쏟을 역량을. 재신임 논란이 아예 일어나지 않을 상황을 만드는 일에 쏟겠다는 미래지향적 각오와 구상을 내놓는 일, 그를 실천하는 진실한 노력, 이러한 것이 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그런 것이 있다면, 재신임 방식이 어떠하든 그것이 무어 그리 큰 상관이 있겠습니까?
***대통령 스스로 대안이 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대안이 있는가가 핵심**
대통령께서는 지난 7개월 동안 자신이 해왔던 여러 정치행태와 결정들의 많은 대목을 역전(逆轉)시키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가령, 햇볕정책과 관련한 특검 수용 등으로 민족 문제에 대한 정파적 고려와 선택을 우선했던 점을 솔직하게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정면돌파의 민족적 의지를 발휘해야 합니다. 6.15 남북 공동성명을 능멸하는 인상을 주었던 우중(雨中) 골프 같은 사건들은 사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일들이 겹치면서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힘의 포괄적 지지 기반을 상실하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민주당의 분당에 이르기까지 사태를 악화시켜왔던 바를 돌이켜, <정치적 치유의 과정>을 밟아나가는 겸손함과 진지함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노력하면, 대통령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자주적, 개혁적 지향점을 바로 세워, 열정적 국민통합의 계기를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일 수 있다면, 재신임 정국은 나라를 살려내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역주의는 이러한 과정에서 극복되는 것입니다.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노무현 후보에 대한 광주의 선택은 바로 그러한 대의에 기초한 역사적 실천이 아니었습니까? 그런 점에서 볼 때에도, 개혁과 평화의 대의를 놓고 민주당이 쪼개진 것은 분명 아니지 않습니까?
또한, 무엇보다도 외교부, 재경부 등 주요 장관과 이와 관련된 청와대 참모를 전격 교체하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못하면, 노무현 정권의 장래에 부담과 피해만 주고 말 것입니다. 민족적 결단이 결여되어 있고, 지배층의 정치경제적 이해에 묶여 있는 이들이 국정의 중요결정을 맡고 있는 한 노무현 정권은 자신의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수구냉전세력과의 일대 승부 위한, 포괄적 지도력의 탄생 절실**
그리고 기만적 전술이라는 혐의를 받고 있는 당정분리의 원칙에 더 이상 묶이지 말고, 민주당과 통합신당의 지도자들을 만나 화합의 노력을 진심으로 기울이기 바랍니다. 자신에게 섭섭하게 했다고 여긴, 이전에는 우군이었으나 지금은 돌아선 이들, 이전부터 자신에게 불편하게 굴었던 이들에게도 모두 손을 내밀어 다시 하나가 되려는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현 정국에서 가장 중요한 당장의 긴급한 고리는, 민주당과 통합신당의 평화 개혁적, 국민 통합적 요소의 강화와 결합을 실현시키는 일입니다. 지루하고 자해적인 분당(分黨)의 과정에서 발생한 비본질적 적대감이 양자간에 존재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역사의 대의에 우선할 수 없다는 점에서 노력하면 그 극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갈라진 두 세력 모두, 내면에 평화 개혁적 요소와 수구 보수적 요소가 혼재하고 있습니다. 당이 서로 갈라진 이유가 정략적 발상에 기인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혼재는 평화 개혁적 역량의 분열이라는 현실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요소가 보다 지배적이 되게 할 것인가는 대통령의 선택에도 중요한 영향을 받게 됩니다. 쓸데없이 갈라진 것을 하나로 다시 묶어 내십시오. 그 일에 발 벗고 나서십시오.
이에 성공하면, 대통령께서는 그릇이 큰 지도자로 성숙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기회를 결코 놓치지 마십시오.
세속의 이해타산을 따지는 마음을 접고 머리를 깊이 숙여 그간의 오산과 정서적 미숙에 대한 사과와 함께, 최근 전선을 확대하여 정권탈환을 노리는 수구냉전세력들과의 일대 승부에 새로운 역량을 결집하는 각오를 다지는,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환호할 것입니다. 그리고 뭉칠 것입니다. 수구냉전세력의 발호에 대하여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역사적 승리를 마감할 일대 약진의 투쟁력이 집결될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의 염원과 역사의 요구에 초심으로 돌아가 이를 성실히 따라주는 모습을 보인다면 재신임 정국은 진실로 개혁정국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 노무현은 성공할 것입니다. 그 성공을 위해 역사의 진전을 바라는 모든 이들이 다시 힘을 합칠 것입니다. 그 뜨거움은 그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며, 그 물결은 누구도 저지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겸허히 돌아보는 대통령에게 하늘의 도우심이**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렇게 하지 못하신다면, 우리는 정국의 불확실성에 신속히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미래를 우리의 손으로 건설하기 위해서 노무현의 퇴장을 적극 요구하고, 파시스트의 본색을 날로 노골화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집권을 저지할 정치적 연대를 줄기차게 강화해나갈 것입니다. 그 연대에 대통령께서 도리어 방해가 된다면, 아마도 가차 없는 역사적 선택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고 말 것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스스로 자인하셨다시피, <노풍>에 실려 대통령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자신의 주도적 역량이 차지한 비중은 따라서 상대적으로 작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대통령께서 지난 12월의 대선에서 응집되었던 역사의 요구를 실천해나가는 전선의 선봉에 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에 실패하게 되면 오게 될 파국의 현실을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아직 어려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러한 역사의 요구에 응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본질적인 무능력을 드러내고 만다면 우리에게 달리 선택이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입니다. 평화개혁 세력의 집결 과정에서 모아진 힘을 가지고 우리는 새로운 대안을 속히 찾아내어 그 대안에 우리의 힘을 모두 모아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어렵게 일구어낸 민주-통일의 역사적 광장을, 민족의 절실한 이해와 민주주의의 대의를 언제나 야만적으로 파괴해왔던 수구냉전세력에게 결코 넘겨주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 아직 대통령에 대한 애정을 그나마 간직하고 있고 싶은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저 자신, 그간의 때로 격정에 넘치는 비판은 노무현 대통령과 정권을 이쯤에서 끝장내자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기를 바라는 절절한 진심에서였습니다. 그 이상이 되어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디, 실패하지 마십시오. 자신을 정직하게 돌아보면 길은 반드시 보일 것입니다.
참으로 고민이 많은 세월입니다. 자신을 겸허히 돌아보는 노무현 대통령, 당신을 하늘이 도우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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