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파병'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의 젊은이들을 이라크 침략전쟁 보조원으로 파견하는 문제를 놓고 노무현 정권은 더 이상 국민을 기만하지 말라. 역사의 원칙과 인류적 상식의 선을 넘고 있는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의 점령정책에 저항하는 이라크 민중들의 피를 더더욱 흘리게 하는 동시에, 우리 자신을 저 흉악한 제국의 발톱으로 만들겠다는 음모와 다를 바 없다.
외교통상장관을 비롯한 주요 각료들이 "파병 불가피론"을 지피면서 또다시 이 나라 청년들을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침략전사(侵略戰士)로 내보겠다고 하는데도, 대통령인 노무현 자신은 이에 대하여 아무 말이 없다. 그는 이미 식민정권(植民政權) 수장으로서의 자기 보존 말고는 관심이 없는 것인가?
***파병 불가피론은 전범국가 전락의 길**
평화에 대한 최소한의 인류적 양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현실론을 내세워 저버릴 바가 결코 아니다. 민중들의 자주적 의지를 믿지 않고 이 평화의 의지를 저버리는 순간, 이 나라는 아무리 교묘한 포장을 한다 해도 세계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는 전범국가(戰犯國家)이다. 자신의 땅을 강점한 미국의 제국주의 패권에 대항하는 <이라크 민중들의 해방 전쟁>으로 변모하고 있는 전선에서, 우리의 파병은 이들의 자유를 유린하고 토벌하는 범죄일 뿐이다.
그러나 대통령 노무현은 이 무서운 죄악의 수렁에 이 나라가 끌려 들어가게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통찰함이 없이 한반도 평화와의 거래대상으로 파병문제의 가치를 따지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세계를 전쟁의 포화로 위협하고 있는 <죽음의 상인>과 다를 바 없는 계산법이다. 비록 무고한 희생자가 있다 해도 폭력과 무기로 자신의 안전을 사겠다는 잔혹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발상을 받아들이는 권력의 인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잔혹해지게 된다. 인간의 죽음에 대하여 통렬한 아픔을 느끼지 않는 권력이 되어가는 탓이다. 합리적 논의와 양심의 소리에는 점점 귀를 막게 되어갈 것이다.
그의 기대대로 파병에 대한 찬성과 거부가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라면 그것이야 말로 미국이 얼마나 한반도 문제를 가지고 농단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미국을 향해 당당하고도 단호한 자세로 따지고 들어야 할 바이지 제국의 있지도 않은 선의(善意)에 기대어 우리의 민족적 현안을 풀겠다는 것은 제국의 사술(邪術)에 자신을 스스로 희생시키는 어리석음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합리적 논의와 참여를 위한 통로 봉쇄하고 있어**
민족의 생명과 안전에 일차적 책임을 진 대통령인 그는 온갖 이유를 대면서 매우 신중한 움직임을 보이는 듯 하고 있으나 그것은 파병을 가능하게 할 명분 축적과 시기 조절의 방책일 뿐, 이 문제와 관련한 국민적 합의를 위한 일체의 정보와 논쟁의 공간을 제공하려 들지 않는다. 내세우는 것은 <국민참여정부>라면서 참여의 통로를 철저하게 봉쇄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의 올바른 판단과 결론을 내릴 수 있는 환경 마련을 극력 회피하고 있다. 이건 이 나라 국민들을 얕보고 능멸하는 태도이다.
그렇지 않아도 점령정책의 실패로 인해 내외의 도전으로 위기에 몰리고 있는 부시정권은 자신의 대 이라크 침략전쟁 정책에 비판적인 인사들에 대한 공작적 협박전술이 폭로되어 심각한 정치적 공세에 직면해 있다. 중동문제 전문가이자 전 대사인 조세프 윌슨(Joseph Wilson)의 증언으로 이라크 침략 명분에 동원되었던 정보의 허위가 드러나면서, 백악관 내부 인사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만 것이다.
즉, 이들은 그의 부인 발레리 플레임(Valerie Plame)이 오랜 CIA 비밀 요원이라는 점을 언론에 유출시켜 윌슨의 증언이 그녀의 의도된 공작에 의해 교묘하게 조작된 것이라는 식으로 상황을 몰고 간 사실이 법적 조사대상이 되는 상황이 전개되는 등 부시의 형편은 엉망인 상태이다.
아무리 정치적 이해관계가 고려되었다고 해도 CIA 비밀요원의 신분을 이런 식으로 노출시켰다는 것은 국가안보상 중대한 문제가 된다는 점에서 부시진영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거짓, 조작, 음모, 공작, 속임수로 점철된 침략전쟁의 실패가 보이는 상황에서, 예정된 전쟁주의자들의 몰락과정이다.
***기만으로 시작한 전쟁의 끝을 내다봐야**
기만으로 시작한 전쟁의 진상을 은폐하려는 술책이 오래 갈 수 없는 것은 엄연한 사필귀정이다. 그 사필귀정에는 이라크 민중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이 아메리카 제국의 야만적인 점령체제의 유지를 위해, 국민적 논의와 합의의 진지한 과정도 생략한 채 패배주의적이고 반인류적인 파병 불가피론을 이리 저리 유포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의 장래도 포함되어 있다.
신당과 민주당으로 각기 나뉜 "반전평화 정치인"들도 이 문제 앞에서는 결코 정파적 엇갈림이 없어야 한다. 각기의 명분과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이 문제에 대한 일치단결된 반대결의와 행동이 있지 않는다면, 그래서 자신들의 기존 입장을 은밀하게 변조시키는 움직임이 있게 된다면 그것은 그동안 외쳐왔던 평화개혁세력의 대의와 대연대를 스스로 깨는 모순을 입증하는 실증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들이 노무현 정권의 식민정치를 더 이상 비판할 수 없게 하는 족쇄로 나타날 것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노무현 정권은 파병 문제를 둘러싸고 국민들을 기만하면 안 된다. 이토록 정직하지 못하고 이토록 속셈이 분명한 여론조작 작업을 진행하는 한 이는 거센 역풍을 만나 도리어 심대한 자충수의 비운에 처하게 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당시의 민족적, 국제적 대의를 하나하나 버려온 지난 6개월, 우리는 노무현 정권이 아메리카 제국의 침략전선에 이 나라 젊은이들의 목숨을 희생 제물로 바치려고 하는 이 무서운 사태를 저지해야 한다. 이것은 자신의 양심과 영혼을 현실의 권력을 위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파는 파우스트의 비극이다.
일본 작가 우라사와 나오키(浦澤直樹)의 만화 <몬스터>에서처럼, 그 괴물이 우리 안에서 더 이상 자라나기 전에 우리는 결행해야 한다. 전쟁의 신이 가면을 쓰고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우리의 평화를 잡아먹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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