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우리 군의 이라크 추가 파병에 대한 미국의 압력이 점점 집요하고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파병 압력을 우리 정부가 덜컥 수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마저 들고 있는데요.
A) 그렇습니다.
지난 27일 이라크 추가파병에 대한 미국측의 ‘확정적’ 요구사항이 공개되면서 더욱 그런 느낌이 듭니다. 미국은 우리에게 5천여명 규모의 사단급 경보병 전투부대를 추가 파병해 줄 것을 우리측에 요구했다고 합니다. 거기에 다른 나라 병력 일부를 포함해 특정 지역을 지휘하는 다국적군 사령부까지 맡길 모양입니다.
Q) 우리측 관계자는 아직까지 아무 것도 확정되지 않았다고 애써 부인하고 있지만, 모양새를 보면 파병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는 것 같던데요.
A) 3천~4천명→1만~1만5천명→5천명. 특전사→해병대→경보병.
이는 미국이 정부 관료와 언론을 통해 연일 흘려보낸 숫자와 부대 성격입니다. 결국 추가 파병의 기정사실화를 전제로 한 것이죠.
즉, 처음엔 적은 인원의 특전사 병력을 요구하다 갑자기 3배가 넘는 인력(미 국방장관이 예상하는 전체 추가파병 인력규모)을 요구하면서 부대 성격도 해병대 등 특수부대쪽으로 폭을 넓힌 후, 양보하는 것처럼 다시 숫자를 3분의 1로 줄이고 경보병으로 완화하는 형태가 마치 무슨 흥정을 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측의 엇갈린 요구와 언론보도에 대해 우리로가 “아니, 그렇게 많으냐?”고 반문하면 저쪽에선 “그러면 한번 줄여 줄까?” 양보하는 척 하면서 파병 자체를 기정사실화한다는 것이죠.
특히 9월 중순 미국을 방문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에게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 등이 잇따라 만난 것도 그렇고, 리처드 롤리스 국방부 부차관보가 최 대표에게 밀착해 제시한 조건들이 가장 최근의 미국측 요구 조건과 일치한다는 점이 이러한 심증을 갖게 합니다.
롤리스 부차관보는 23일 한미 재계 회의에 참석해서도 같은 톤으로 우리 기자들을 설득하려 했습니다.
Q) 문제는 국내에서도 파병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인데요. 이들은 한미 동맹관계와 국익을 생각해서라도 파병에 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과연 그들 주장대로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생각하고 또한 우리 국익을 생각해서 우리는 파병을 해야하는 것일까요?
A) 우선 미국과의 동맹관계 부분을 보죠.
흔히들 한미간의 관계를 혈맹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 측에서 이렇게 부르고 미국 측에서는 요즘처럼 ‘필요할 때만’ 그렇게 부릅니다.
그러나 한미 동맹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882년 조미 수호조약으로 공식 관계에 들어간 한미 관계는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과거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1세기전 미국과 일본은 태프츠-가쓰라 밀약(1905년)과 루트-다카히라 협약(1908년)을 통해 각각 필리핀과 대한제국을 갈라먹습니다. 나라 힘없는 것이 죄라고 하지만, 근대 우리민족의 불행은 거기서 시작되었죠. 그것은 우리와 미국과의 악연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실책은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3년 11월 미국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 중국의 장개석 총통과 이집트 카이로에서 회담을 갖고, ‘적절한 절차를 거쳐서(in due course)’ 한반도를 일제로부터 독립시켜주기로 합니다. 하지만 카이로선언은 끝내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연합국은 독일처럼 일본을 분단 관리해야 함에도 엉뚱하게 한반도를 분단시켰으며 1950년엔 남한을 방위선으로부터 제외한 이른바 애치슨 라인을 획정하는 바람에 김일성을 자극시켜 남침을 유발하게 됩니다.
미국이 한국전 발발 직후 참전하여 지금껏 한반도에 주둔시킬 수 밖에 없는 단초를 제공한 것도 역시 미국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혈맹이라고 부르는 미국과 우리의 근대사입니다.
Q) 하지만 국익 부분에선 유익한 면도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데요.
A) 국익의 가장 큰 부분은 한반도 정세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그것도 미국이 주도하는 한반도 정세 말이죠.
그에 앞서 미국의 현 상황을 점검해보죠. 지금 이라크의 늪에 빠져 고전하고 있는 세력은 엄밀히 말해 ‘미국’이 아니라 지구촌과 국제사회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런 일방주의로 침공을 저지른 ‘부시 행정부’입니다.
특히 부시의 최대 과제인 내년 대선에서의 재선이 이라크라는 늪 때문에 난망인 상황입니다. 부시는 최근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든 웨슬리 클라크 전 나토군 최고사령관과의 가상대결에서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 이대로 가다가는 아버지 부시에 이어 현직 대통령으로 재선에 실패하는 불명예를 감수해야 할 판입니다.
미국과 국내 일부 세력은, 이처럼 어려울 때 부시를 도와주면 북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현안에 있어 미국의 협조를 받기 쉬울 것이라는 예단을 내놓고 있습니다.
Q) 우리가 전투부대를 파병함으로써 곤경에 처한 부시를 구하고 그가 재선에 성공했다 칩시다. 부시 진영이 한국의 정성을 갸륵하게 생각해 한반도 정책을 유화책으로 반전시킬까요?
A) 부시 행정부는 선거가 실시되는 내년 11월까지는 대북, 대 한반도 정책을 소강국면으로 가져가겠지만, 만약 재선에 성공할 경우 더욱 강경한 정책을 펼칠 공산이 큽니다.
따라서 부시 진영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차기 미국 대선에서 차라리 민주당쪽으로 정권 교체가 되는 것이 우리 국익에 훨씬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들은 적어도 한반도를 파국으로 몰고 가려하지는 않기 때문이죠.
도대체 국익이라는 용어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Q) 추가 파병으로 중동지역에서의 입지 확보 등의 이득을 얻으리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A) 우선 이라크가 아랍권의 지지를 받는 이슬람 국가군(群)에 속해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미국이 대량살상무기(WMD) 보유와 알카에다 지원혐의로 사담 후세인을 축출했지만, 두 가지 모두 입증하지 못한 채 이라크 국민들에게 절망과 피폐만을 안겨준 이라크전에 한국군 전투부대가 진주한다는 것은 섶을 지고 불에 들어가는 것과 진배없는 짓이죠.
이미 파병된 서희부대(공병)와 제마부대(의무)와 달리 한국군 전투부대가 미군과 같은 점령군으로 이라크을 지배하게 될 경우,한국군은 테러의 표적이 되고 한국제품은 아랍국가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수모를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라크 원유나 재건 사업에서의 유리한 입지 확보도 모두 막연한 낙관에서 비롯된 애매한 기대일 뿐입니다. 결국은 순진한 발상이라는 거죠.
Q) 하지만 미국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방한하는 10월 24일까지 파병 결정을 해달라고 주문하고 있지 않습니까.
A) 앞서 살펴 본대로 요모조모 따져봐도 모두 ‘파병 불가’에 해당하는 전제조건들만 즐비할 뿐입니다.
따라서 미국이 아무리 파병 압력을 행사하더라도 우리는 결정을 최대한 미뤄 놓고 장고(長考)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가장 민감하게 관측해야 할 것은 바로 미국대선 구도의 향배입니다.
Q)그래도 부득이 파병을 해야 한다면요.
A) 지난번처럼 공병과 의무 등 비전투부대를 파병하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전투부대는 이라크쪽에 반감을 주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는 것이 현지 소식이거든요. 물론 이것은 마지노선입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