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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태 형님, 언제나 '청년 김근태'로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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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태 형님, 언제나 '청년 김근태'로 기억하겠습니다"

[추모글] '돌파'와 '결단'의 비주류 정치인, 김근태

한 달 전 형님이 안 좋아지셔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오랜 친구가 전화가 왔습니다.
"근태 형님은 우리 분신인데......."
그 친구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몇 년 전 한 선배가 정말 진지하고도 순수한 웃음을 띠면서 내게 말했습니다.
"근태 형이 집권을 하면 정말 얼마나 좋을까......"
마음이 아팠습니다.

형님은 평생, 이 세상 무거운 짐을 지고 아프게 사셨습니다.
자기의 '분신'을 바라보면서 우리 민주화 진영 사람들은 사실 할 말이 많았고 불만도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저는 "김근태 나쁜 놈이다"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김근태가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천성이 착하시고 거짓을 몰랐던 형님.

저는 압니다. 형님이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고 사셨는가를, 그러면서도 얼마나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시고 사람들이 당신에게 '기대'하고 '부여'한 당신의 임무를 삶의 그 마지막 순간까지 수행하려 노력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리고 우리를 안타깝게 만든 형님의 그 '어눌함'과 '우유부단함'이 사실은 고문의 후유증이었다는 것도 압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서울의 봄' 때 수배되었던 저는 전두환 군사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1981년부터 형님이 두꺼비 민청련 조직을 만드셨던 83년까지 거의 3년을 형님 집에 숨어 살았습니다. 당시 수배에 장결핵으로 아파트 계단조차 잘 오를 수 없었던 저를 먹여주고 다시 일으켜 주었습니다. 그때 저의 나이 겨우 스물셋이었지요. 그곳에서 살던 3년 동안 자세 한번 흐트러진 형님의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니 그 후에도 쭉 그러셨지요.

그러나 점잖으셨던 형님도 군사독재에 대해서는 표정이 달라지며 단호하고 과격했습니다. 항상 준비론을 경계하고, 무제한의 투쟁론을 주장하셨고, 독재정권을 지원하는 미국에 대해서도 대단히 강경했습니다. 결단과 승부처에서의 결단력도 대단했습니다. 형님이 당시 가장 즐겨 쓰시던 용어는 '돌파'였다고 기억합니다.

그러던 형님이 달라진 것을 알게 된 때는 형님이 (지금은 그 당사자가 '예술'이라고 표현하는) 무자비한 고문을 받고 감옥에서 나온 뒤였습니다. 집에 찾아가서 만나 뵈었을 때, 전부터 신중하고 진지하셨던 형님이었지만 더 신중하고 진지했습니다. 그 뒤로도 형님의 모습에서 어딘지 모를 불안감과 두려움이 깃들어 있음을 느꼈습니다.

실제로 그 뒤 형님은 대부분의 경우에서 이전의 형님과는 달리 상황을 적극적으로 '돌파'하고 치고 나가시지 못했습니다. 저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런 형님의 모습이 세상 끝을 맛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불안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뒤 형님의 적극적인 '결단'과 '돌파'는 한 번도 없었고, 다만 당신이 스스로 반성하고 성찰하는 '결단'만이 있었습니다. 비록 그것은 관전자들을 안타깝게 만들고, 탄식을 하게 만들었지만, 그것은 어쩌면 시대의 무거운 짐을 짊어진 수도자로서의 길이었습니다.

형님은 저들을 용서하셨지만 살아남은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형님은 항상 '비주류'였지만 살아남은 우리는 더 이상 비주류일 수 없습니다.
너무나 무거운 짐을 혼자 힘겹게 짊어지시고 젊은 청년의 나이에 떠나신 형님을 우리는 언제나 청년 김근태로 기억하겠습니다.
형님이 꿈꿨던 원칙이 지켜지고 억압이 없으며 평등이 넘치고 패자 부활전이 있는 우리 사회, 분단이 해소되어 통일된 조국을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함께 올랐던 눈 덮인 오대산 적멸보궁과 설악산 오색약수터에서의 형님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이제 무거운 짐 벗으시고 편히 쉬세요.

2011년 12월 30일

운동권 동생 소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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