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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웨이와 꼼 다비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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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웨이와 꼼 다비뛰드

최연구의 '생활속 프랑스어로 문화읽기' <5>

And now, the end is near. (자, 이제 마지막이 가까워졌군)
And so I face the final curtain. (내 생의 마지막 순간을 대하고 있어)
My friend, I'll say it clear. (친구, 분명히 말해두고 싶네)
I'll state my case of which I'm certain. (내가 확신하는 바대로 살았던 삶의 방식을 얘기해 줄께)
I've lived a life that's full. (난 충만한 삶을 살았고)
I've traveled each and every highway, (정말 많은 곳을 돌아 다녔지만)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그보다 훨씬 더 대단했던 것은)
I did it my way. (내가 항상 내 방식대로 살았다는 거야)

노래방에서 트로트나 최신가요 레파토리가 떨어질 때쯤 되면 누군가가 분위기를 잡으며 부르는 불후의 팝송. 그렇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My way)”이다. 원래 이 노래는 캐나다 가수 폴 앙카가 불렀으나 크게 인기를 얻지 못했는데, 그 뒤 미국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르면서 공전의 힛트를 치면서 명곡의 반열에 오른 팝송이다. 마이웨이는 아마도 팝송 중에서 전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애창되는 노래일 게다. 팝송을 대표하는 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프랑스 샹송 하나를 살펴보자.

Je me lève je te bouscule (나는 일어나 당신을 흔들어 깨웁니다)
Tu ne te réveilles pas comme d'habitude (당신은 여느 때처럼 일어나지 않는군요)
Sur toi je remonte le drap (나는 당신에게 이불을 덮어줍니다)
J'ai peur que tu aies froid comme d'habitude (여느 때처럼 당신이 추울까 걱정하면서)
Ma main caresse tes cheveux (내손으로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면)
Presque malgré moi comme d'habitude (거의 이런 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느 때처럼)
Mais toi tu me tournes le dos (하지만 당신은 등을 돌리는군요)
Comme d'habitude(여느 때처럼)

위의 노래는 70년대를 주름잡던 프랑스 가수 끌로드 프랑수아의 샹송, “꼼 다비뛰드(Comme d'habitude : 여느때처럼)”이다. 이 노래를 아는 사람이라면 가히 샹송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고 할 만하다. 사실은 ‘마이 웨이’와 같은 노래이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이 노래가 ‘마이웨이의 프랑스판’이라고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완전한 착각이요, 어이없는 역사의 왜곡이다. 우리가 팝송의 대명사로 알고 있고 그토록 많이 불러 왔던 ‘마이 웨이’는 프랑스 샹송 ‘꼼 다비뛰드’의 영어판이다.

장충동에 가면 그 많은 족발집이 저마다 원조족발이라고 간판을 붙여놓아 어느 집이 진짜 원조인지 구별하기 힘들다. 저마다가 원조라고 하니 원조논쟁이 식상하더라도 그래도 진실은 밝혀져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 많은 한국의 팝송 해설가들도 아마 이 곡의 원조가 클로드 프랑수아의 샹송이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있을 것이다.

90년대 초반, 내가 청운의 꿈을 안고 동경하던 문화예술의 나라 프랑스에 유학간 지 얼마 안 되었을때, 나는 프랑스 사람들이 클로드 프랑수아의 이 샹송을 부르는 것을 자주 보았다. 그때 나는 “자기 문화를 사랑한다는 프랑스인도 팝송이나 번역해 부르는 것을 보니 별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건 무지의 소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마이 웨이'가 샹송의 번역판이었던 것이다. 캐나다 가수 폴 앙카가 빠리에 왔을때 끌로드 프랑수아의 노래 “꼼 다비뛰드”를 듣고 감명을 받아 영어로 번역해 부른 것이 바로 “마이 웨이”이다. ‘마이 웨이’가 샹송이라니 참으로 놀라운 발견이지 않은가. 이런 사실을 프랑스에까지 와서 무슨 콜럼부스의 신대륙 발견처럼 새롭게 발견해야 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가령 김건모의 노래 '잘못된 만남'을 마이클 잭슨이 영어로 번역해 불러 세계적으로 히트를 쳤다고 가정해보자. 외국인들이 이 노래를 마이클 잭슨의 노래라고만 알고 있고, 정작 김건모가 누군지도 모른다면 우리 입장에서 기분이 좋겠는가. ‘마이 웨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은 한편으로는 앵글로색슨의 영어 문화권에만 길들여 있고 그 외의 여타 문화에 대해서는 한없이 무지한 우리 사회의 잘못이기도 하다.

또 다른 예도 있다. 팝송의 명곡으로 알려진 '렛 잇 비 미(Let it be me)' 역시 질베르 베코의 샹송 '나는 너의 것(Je t'appartiens)'의 재탕이지만 원곡보다 더 크게 세계 시장에서 히트쳤던 점에서 비슷한 경우이다. '마이 웨이'의 경우는 팝송의 대표곡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샹송을 번역한 곡이 팝송을 대표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게다가 이 노래를 애창하는 대중들이 그 내막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웃지 못 할 상황이다. 그렇다면 남의 나라 노래를 번역해 불러 성공한 ‘마이 웨이’는 과연 ‘나의 길’이고 ‘바른 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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