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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창업주 욕보이다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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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창업주 욕보이다 <上>

[윤재석의 '쾌도난마']<35> '이병철의 종교적 질문'에 답한다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는 담론(談論)이 있다. 바로 사랑과 종교다. 사랑과 종교는 다르면서도 같다. 사랑이 지고(至高)에 이르면 종교가 되고, 모든 종교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랑을 논할 땐 아기자기하지만(사랑스럽지만), 종교를 논할 땐 곧잘 분란이 일어난다. 다르면서도 같은, 둘이면서 하나인 사랑과 종교는, 이처럼 어렵다.

여기 한국 경제의 거목 고(故) 호암(湖巖) 이병철(李秉喆) 회장이 '종교란 무엇인가?'란 화두를 던졌다. 소세포폐암(small cell lung cancer)으로 투병하다 죽기 한달 전인 1987년 10월, 정의채 신부(당시 가톨릭대 교수)에게.
▲이병철 회장이 정의채 신부에게 보낸 질문 ⓒ중앙일보 캡쳐

무려 24개항이나 되는 질문은, 비록 대한민국 최고 부자일지언정 사형선고를 받고 저승 문턱에 다다른 한 늙은이가, 돈 외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지난날을 후회하며, 미구(未久)에 자신을 심판할 절대자(神)의 존재를 희미하게 자각하고 있음을 웅변하고 있다.

이병철 사후 4반세기 만에 밝혀진, 그의 종교에 대한 호기심, 그 전말을 <중앙일보>가 17일자에 공개했다. 본지 1면 톱('천국 가기 힘들다는 부자, 악인인가')과 j섹션 1~5면을 털어 <중앙일보> 창업주 이병철의 종교관을 낱낱이 열거한 거다.

어제 아침 배달된 그 중앙일보를 펼쳐보다가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 신문이 과연 내가 청춘을 바쳐 충성했던(물론 나중에 쫓겨나긴 했지만) 그 신문이란 말인가! 내가 나오면서 "제발 1등 신문이 되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바로 그 신문이란 말인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나름으로 결론지었다. "저택(신사옥) 늦둥이 막내(JTBC)에게 내주고 옛날 살던 하꼬방(구사옥)으로 내밀리고, 출중한 자원(기자)까지 막내한테 다 뺏기더니, 갑자기 집단최면에 걸린 거다."

문제의 기사를 토대로 <중앙일보>가 어떤 망발을 했는지 살펴보겠다.

'종교란 무엇인가'하는 이병철의 화두를 다룬 기사는 창업주인 고인의 오만과 영적 무지, 그리고 죽음을 앞둔 병약한 늙은이의 초라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우선 고(故) 박희봉(1924~88) 신부를 통해 전달했다는 24개 항의 질문서. 모두 명령조다. 건방지다. 적어도 성직자에게 종교적 화두를 던진다면, 지극히 정중해야 한다. 그게 질문자로서 최소한의 범절(凡節). 게다가 모두 반말로 끝난다. '~는가?'(10 항목)', '~인가(9 항목), '~아닌가?(2 항목), '~있나?'(2 항목), '~하나?' 등 모든 질문이 반말이다.

종교를 배우려는 자세가 아니다. 성직자를 테스트 대상으로 보는 심사위원의 태도. "어디 한 번 말해봐라! 내가 알아듣게, 나를 설득해 보란 말이다."

게다가 질문 항목이 너무 많다. 중언부언이다. 과로로 나중에 식물인간이 되어버린(아마 그후 별세했을 거다) 삼성 필경사(筆耕士)가 쓴 '회장님 존안(尊顔) 보고서'는 A4 용지 두 장 분량을 넘을 수 없다. 그건 당시 삼성 비서실의 철칙이었다.

중앙일보 노조와 시사저널 노조를 망가트린 금창태(전 중앙일보 사장)가 사회부장 시절, 그에게 올린 일본 서적 '노조분쇄법' 같은 책자의 다이제스트도 A4 용지 두 장이었고, 과학부장이었던 고(故) 최정민이 올린 '산업의 쌀, 반도체'의 요약 역시 두 장 분량이었다. 이병철이 긴 보고서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가 성직자에게 보낸 질문서는 A4 용지 4장 분량이다. 임기춘풍 대인추상(臨己春風 對人秋霜)의 대표적 오만 사례.

본격적인 질문으로 들어가면 설상가상(雪上加霜), 한국 최고 부자라는 자의 의식 수준이 정말 이 정도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치하기 짝이 없다. 초딩(초등학생)의 질문 수준보다 치졸하다.

그리하여, 요새 안철수 인기를 능가하는 '애정남'(애매한 것들을 정해주는 남자) 최효종 버전으로 스물네가지 질문에 대해 간단, 명쾌히 답해주겠다. 그 이유. 이병철의 질문에 4반세기 만에 답을 냈다는 신부 차동엽의 답변이 애매하고 몇몇 답변엔 오류도 있기 때문.
필경사가 쓴 질문을 토대로 답변에 들어간다.

<답> 당신이 존재를 믿으면 신은 있는 거고, 당신이 믿지 않으면 신은 없다.
믿는 이에게 신은 존재를 똑똑히 내보이신다.

그대가 이 질문을 한 이유. 스스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방도를 찾지 못했고, 그래서 신을 똑똑히 보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믿음 있는 이는 유치원생이라도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고, 신도 아이에게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들어 내보이신다.

<답> 그대는 자꾸만 신을 구체적으로 증명하라고 투정하고 있다. 돈이 세상 최고의 가치라고 믿는 자이니 그렇겠지. 하지만 신은 5감으로 느끼는 그런 존재가 아니야. 따라서 구체적으로 증명할 수도, 증명할 필요도 없어. 1번 답변과 비슷하지만, 한 존재가 신을 만나면 신의 존재가 입증되는 거고, 만나지 못하면 입증하지 못하는 거다.

<답>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 맞거든. 진화론을 주장하는 인간조차 신이 창조했어. 진화론 또한 신의 섭리(the providence of God)에 의해 이뤄졌다는 얘기야. 대진화(macroevolution, 예; 영장류의 missing chain 논란)는 물론이고, 소진화(microevolution, 예;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변이) 역시 신의 섭리지. 따라서 창조론이 신의 형이상학적 영역이고, 진화론이 인간의 과학적 영역이라는 주장은 옳지 않아.

<답> 3번 답과 연결되는 답변. 생명 합성, 무병장수의 실현 역시 큰 틀에서 보면 신의 섭리야. 따라서 과학이 끝없이 발달하면 할수록, 신의 위대한 존재 의미는 더욱 부각될 수밖에.

<답> 주어의 토씨가 틀렸네. '신은~'이 아니라 '신이~'라고 해야지. 당신은 돈 버는 덴 천재지만, 종교에 대해선 정말 맹추구만. 그대도 자식이 귀하고 예쁠수록 질타와 편달(鞭撻)을 하지 않는가!

신(神도) 마찬가지.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피조물을 연단(鍊鍛)하기 위해 고통과 불행, 죽음을 선사하는 거야. 이쯤에서 성경 구절 하나 가르쳐 주지.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언 13장 24절, 이하 개혁한글판)

<답> 그대는 자기 휘하에 있는 사람들을 자기의 노비로 생각했을 뿐, 결코 자율을 주지 않았어. 그러니 신께서 인간에게 내리신 '자유의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신께선 히틀러나 스탈린 뿐 아니라, 악덕 기업인, 친일파, 매국노, 불법 경영권승계자 부자(父子)는 물론, 조세포탈범까지 창조하셨어. 그게 모두 우리 사회, 지구촌을 구성하는 다양한 군상(群像)이거든.

<답> 우리의 죄가 무어냐고. 누구보다 많은 죄를 지은 사람이 가장 잘 알 텐데.
그럼 왜 우리를 죄 짓게 내버려 뒀냐구? 6번에서 말했잖아. 신께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허용하셨기 때문이라고. 죄를 짓고 안 짓고는 자유야. 물론 심판은 별개의 문제지만.

<답> 성경은 수다한 기자(記者)에 의해 집필됐지. 하지만 기자들이 무턱대고 집필한 건 아냐. 신의 감동으로 쓴 거야. 쉽게 말해 신이 기자들에게 영적인 감동을 내려 그들로 하여금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든거지.

성경에도 나와 있어. 교회학교 아이들이 성경암송대회에 나와서 줄줄 외는 대목이기도 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디모데후서 3장 16~17절)


<답> 오만하고 강퍅한 자에겐 종교가 필요없지. 신이 다가가려해도 스스로 뿌리치니까. 그런데 갈급(渴急)한 이에겐 신께서 다가가는 은총을 베푸셔.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지 안한지는 순전히 자기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는 거야. 그러고 보니 이거야말로 자유의지네.

<답> 세상만물은 기(氣), 정신, 영혼의 세 가지 혼(魂)을 지니고 있지. 기는 존재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고, 정신은 존재의 의미를 보지(保持)하고 있어. 그런데 인간에겐 혼이 하나 더 있지. 그게 영혼이야.

영혼이 지고지선의 경지에 가까워질 때, 우리는 신을 닮게 돼. 흔히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른다는 말은 여기서 나온 거다. 불교에서 일컫는 니르바나(涅槃, nirvana) 역시 같아.
아! 갑자기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부르는 노래 듣고 싶다.

<답> 그거 중학생도 달달 외우고 있는 건데.

<답> 이것도 우문(愚問) 중 우문. 신은 무한히 넓은 아량과 자비로운 심성을 가진 분. 따라서 누구든 신을 신령(神靈)과 진정(眞情)으로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어.

<답> 천주교는 스스로만 제일이라고 결코 주장하지 않아. 오히려 일부 개신교 대형교회 목사가 그렇게 강변하고 있지. 그런 자의 교설(巧說)은 흘려버려도 돼.

<답>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믿고 안 믿고는' 자유야.
스스로 천국(또는 지옥)에 간다고 확신하면 가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구천(九天)을 떠도는 거고.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고 몇 번 말해야 하나!

<답> 악덕기업인인데 부귀와 안락을 누리는 자,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인데도 폐지를 주워 입에 풀칠하는 이가 많은 게 세상이지.

그런데 이런 생각 해 봤나? 과연 부귀와 안락을 누리는 자가 행복하고, 폐지 줍고 사는 이는 불행한가 하는. 스스로를 돌아보면 잘 알 거야. 믿는 이에겐 내세(來世)가 있다는 것도. 그런 개념 없는 자에겐 백번 얘기해도 몰라.

여기서도 성경구절에서 뽑은 팁 하나 줘야겠네.

'너는 행악자의 득의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잠언 24장 19~20절)

<답> 참 아둔하군. 잘 못알아먹는 자들에게 주는 비유(parable)야. 돈 많다고 강남 룸살롱에서 하고 한날 딸 같은 애들 끼고 살다 죽으면 지옥 가고, 비록 수중에 땡전 한 푼 없어도 이웃에게 긍휼을 베풀려 애쓰는 자는 천국 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신의 아들인 예수가 비유로 말한 걸(마가복음 10장 25절, 누가복음 18장 25절) 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해.

<답> 99%의 천주교도 중 진정한 교인이 몇 %냐가 문제지. 마피아도 대부(代父), 대모(代母) 모시고 세례 받거든. 그런다고 신께서 그 사회에 안녕과 질서를 주실까?

<답> 그대가 유학(儒學)을 좀 했다니까 팁을 준다면, 중용(中庸)이 답이야.
중용을 잃을 때 광신도가 되는 거지. 요즘 한국 개신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 돈 뜯어내기 위해 외치는 지긋지긋한 "예수천국 불신지옥!" 소리.

<답> 앞의 답변과 비슷해. 천주교를 제대로 믿는 자라면 결코 공산주의자가 될 수 없지. 그런데 잘 못 믿으면 끝이 달라져(異端). 천주교에서 이탈한 극소수의 헛똑똑이들이 공산주의를 결성, 민초들을 괴롭히는 재앙을 초래한 거야.

<답> 이신득의(以信得義, justification by faith)라는 말이 있지. 신약성서에 나오는 얘기야.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라디아서 2장 16절)

하지만, 기실 이행득의(以行得義, justification by action)가 정답이야.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야고보서 2장 26절)

<답> 그대가 명부(冥府)로 간 5년 뒤(1992년 10월), 로마 교황청은 1633년 6월 있었던 종교재판에 대해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해. 1663년 사건이란 이탈리아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지동설 주장에 대한 종교재판을 말하는 것으로 교황청은 그 때의 오류에 대해 사과하고 갈릴레이를 360년 만에 완전복권시키지.

2000년엔 더 보편적(catholic) 사과를 단행해. 지난 2000년 동안 기독교가 인류에게 범했던 각종 과오를 공식인정한 거야. 그해 3월 12일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상과 화해: 교회의 과거범죄'라는 제목의 문건을 바티칸 미사에서 공개하지.

40쪽 분량의 이 문건에서 교황청은 7만여 명의 유태인 및 이슬람교도들을 학살한 십자군 원정, 반유대주의(anti-semitism)에 기반을 둔 유태인 탄압, '마녀사냥'으로 불리는 중세의 고문형, 16세기 멕시코에서 자행된 신대륙원주민 대학살(1200만 명) 등의 과오를 털어놓지. 그 정도면 가톨릭 스마트하지 않아?

<답> 그야 아주 간단하지. 신부나 수녀 모두 주님(그대가 말하는 신)이 너무 좋아 그분과 혼인한 거니까. 따라서 그들은 결코 독신이 아냐. 세상에서 가장 멋진 신랑(新郞)을 모시고 사는 행복한 신부(新婦)들이지.

<답> 사실이 그렇잖아. 어떤 악덕 기업주가 대한민국 헌법 제 30조에 명시된 노동3권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노동자를 착취한다고 쳐. 천주교 지도자 중 양심있는 자들이 그냥 지나칠 수 없잖아. 그렇다고 그들이 자본주의 체제와 미덕(사실 미덕도 별로 없지만)을 부인하는 건 아냐.

<답> 그것도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렸지. 지금처럼 화석연료(fossil fuels) 마구 태워서 지구온난화 가속화되고, 원자력발전소 마구 짓다가 노심용융(meltdown)되고, 미 군산복합체(military industrial complex) 배불리려고 전쟁 마구 일으키고 하면, 신께서 노하셔서 지구를 멸망시키실 거고.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부탄 사람들처럼 대기, 물, 바람, 초목을 친구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면 신께서 "아이 착하다" 머리 쓰다듬어 주실 거고.

휴~

*다음은 下편 <주목되는 중앙일보 사태>가 나갑니다. 본문의 성경구절은 필자가 개신교인인 관계로 '한글개역판'을 인용했습니다. 필자의 이메일 주소는 blest01@daum.net 입니다. 기사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분은 주저말고 메일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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