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지 지층(地層)과 괴리되어온 노무현 정권의 퇴행현상**
노무현 정권의 등장과 현재는 그 과정 과정이 매우 극적이다. 그만큼 곡절과 파란도 많았고, 충격과 감동도 풍부했으며 기대의 수준 또한 전례 없을 정도로 현격히 높았다. 이는 그 관철되는 내용의 성격에 따라, 식민주의 정치의 봉건성/종속성/배타성/특권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기존 질서와 인식론적/기능적/구조적/계층적 단절을 의미하며, 새로운 정치양식의 탄생을 기약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정권의 출현은 현대 한국정치사에서 “21세기형 정치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뜻했다.
그런데, 그 극적 요소에 내포된 의미가 노무현 정권의 진로에 명료하게 반영되고, 심도 깊게 학습되지 못한 결과 우리는 오늘날 노무현 정권의 거듭되는 파행과 지지 세력 내부의 분열, 그리고 이에 따른 대안의 새로운 모색이라는, 애초에 최소한의 가정으로도 설정하지 않았던 혼란스러운 정세에까지 이르고 있다. 개혁, 자주, 평화, 통합 등을 정치적 명분의 틀로 삼은 노무현 정권으로 가능해진 새로운 조건과 환경을 통해서, 그 다음 수순의 정치적 절차가 당연히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사태는 그렇게 가지 못하고 보다 <본원적인 질문>으로 귀착되고 있다.
즉, 이는 정권 등장 초기 강력한 돌파력을 가진 정치변혁의 상징으로 확고하게 받아들여졌던 <노무현 패러다임>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제기되고 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현상이 단지 전환기적 혼선과 이행과정상의 여러 문제가 노출된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한계와 위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좀더 압축해서 보자면, 노무현 대통령의 지도력이 발휘하고 있는 효율성과 그에 대한 신뢰도의 문제를 심각하게 야기하고 있으며, 이러한 정세가 계속 전개되면 “개혁정권의 몰락”이라는 위기까지 발생시킴으로써 냉전수구세력의 집중적 결속과 개혁세력의 패퇴라는 <총체적 반동상태>를 결과할 수 있다. 이는, 자칫 비판과 저항 앞에서 노무현 정권의 논리적 퇴로가 차단되고 다른 해법의 모색 없이 무리한 밀어붙이기로 일관하면서 자신의 권력적 지위를 방어하는데 급급한 행태의 반복이나 심화를 낳게 된다는 점에서 우려가 된다. 이상을 현실화시키는 정치가, 오직 권력투쟁에만 몰두하는 정략(政略)으로 그 본질이 변모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통령 직이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거대주제를, 정치적 파행으로 인한 여러 비판과 도전 앞에서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권력 구조상 가장 부담이 약하고 편리한 관료적 기능주의에 빠질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정치의 소멸이며 그 결과는 수습하기 어려운 정국의 전개이다.
상론(詳論)에 앞서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노무현은 그 자신을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정점에 올려놓은 지층(地層)의 힘과 충실하게 결합하기보다는 도리어 그로부터 벗어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권력 기반을 스스로 유실(流失)해왔으며 적지 않은 부분에서 퇴행(退行)의 양상까지 드러내는 상태가 되고 있다. 이는 이 나라 역사를 위해 불행한 일이다.
이러한 현실은 무엇보다도 한반도에서 가장 중대한 현안인 자주적 평화 외교의 위기, 선거에 승리한 여당임에도 불구하고 자당 후보 출신의 대통령과 감정적, 구조적 대립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민주당의 극심한 분열과 난조(亂調), 절차적 논의의 대중적 확산이라는 약속으로 내세웠던 참여정치의 실종, 영남 패권의 지속이라는 지역주의적 갈등의 새로운 심화, 정치자금과 관련된 도덕성 실추, 최고 권력자로서의 품위를 갖추지 못한 발언 방식과 책임전가로 일관하는 대응 등에 따른 비난 점증과 “궁극적인 권위 파탄”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마디로, 대선 후보 노무현에게 요구되었던 궤도를 급격할 정도로 이탈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의 존속과 미래상에 대한 실망이 가중되고 있으며 이에 대해 노무현 정권은 해법을 찾지 못한 채, 동심원이 협소한 자파세력의 배타적/종파적 결속에만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는, 특히 인터넷 정치의 무대를 펼쳐 노무현 정권의 등장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던, 시대적 변혁의 새로운 주체로 나선 대중들에 대한 포용력/친화력 있는 접근이 포기되어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날이 갈수록 스스로 존립기반을 약화시켜 위태롭게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는 셈이다.
***2. 노무현의 등장 과정과 그 정치사적 평가**
구체적인 정황과 관련해서는 모두 다 잘 알고 있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그 기본적인 흐름 속에 담겨져 있는 문제와 의미를 짚어내기 위해서 우선 그간의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정리를 해보기로 한다.
정치인 노무현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이미 청문회 스타라는 유명세를 누리고 있긴 했으나, 대선 후보로서는 무명에 가까운 신인이었다. 하지만, “노사모”라는 이름으로 뭉친 매우 새로운 유형의 결집력을 과시한 지지자들의 뜨거운 성원과 헌신적 활동에 힘입어 무서운 속도와 기세로 이내 후보 경선의 대세를 장악하게 된다.
인기 연예인에 대한 십대 청소년들의 열광적 에너지에 버금가는 결속력과 거의 무조건적이다시피 한 놀라운 동지애를 부각시킨 “노사모”의 움직임은 기존의 한국 정치 행동 유형에 색다른 경험을 하게 했다. 위로부터의 총괄적 동원이 아닌, 밑에서부터의 자발적 참여라는 대중적 기반의 자생적 확대였기 때문이었다. 지도자가 구심력을 가지고 지지 세력을 끌어 모으는 방식이 아니라, 지지 세력이 지도자를 옹립하여 최전선에 세우는 <민주혁명>의 모범을 보였던 것이다.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역량결집의 모범적 선례로 평가될 만한 것이었다.
이와 함께, 광주를 중심으로 한 호남의, 영남 후보 노무현에 대한 압도적 지지는 그의 정치적 진운(進運)과 관련하여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정치적 승리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지역주의를 넘어서는 국민적 통합력을 가질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던 셈이다.
또한, 선거 후반에 가서 보다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었던 그의 괄목할만한 대미 자주적 자세가 한반도의 평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세력의 심도 깊은 호응을 이끌어 내었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체제를 완만하게 이탈하려 노력한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의 성과를 토대로, 보다 급격하고 본질적인 이탈과 독자성 확립의 가능성이 그에게서 전망되었던 결과였다. 물론 그 당시에도 노무현의 집권을 통해서 대외관계를 외교정책상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갈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았으나 진전된 양상을 보이게 될 것이라는 느낌만큼은 분명히 주는데 일단 성공했다.
이렇게 보자면, (1) 대중의 자율적 참여 의지가 확고한 민주적 선택, (2) 특권과 지역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통합적이고도 탈 봉건형의 정치개혁, (3) 분단과 냉전형 종속상태를 극복하려는 자주적 평화의지가 일종의 역사적 추진력을 가지고 하나로 만나 노무현을 시대정신이 투영된 <역사적 개인>으로 받아들이고, 그를 정치발전의 동력으로 선택했던 것이다. 이는 그 자신의 개인적 행태에 대한 대중들의 이미지와 당시 정세의 요구가 통일된 결과였으며 집권이후에도 일정한 편차는 있을지언정, 그러한 방향의 지속과 연장이 충분히 기대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사실 후보 시절부터 노출되기 시작했다. 후보로 선출된 이후, 그는 그간 분열되어있던 전통적 개혁 전선의 지역/조직 통합을 목적으로 하기 보다는 봉건형 지역주의 맹주에 대한 구시대적 아부라는 비판과 의구심을 불러일으킨 이른바 “김영삼 시계사건”으로 거의 곤두박질치는 인기 하락을 경험하게 된다. 그에 더하여, 대미 자주적 자세에 일정한 우향우적 수정을 가하고 있는 조짐을 보여주는 발언과 행동을 추가해나간다.
이런 상태에서, 지지세는 날이 갈수록 하락해가는데 “노풍 재점화”라는 “자생적 반환점”을 결국 발견하지 못한 채 짙은 패색으로 대선 후보로서의 정치적 수명을 장담할 수 없던 상황에까지 도달한다. 노무현 진영 내부에서는 이회창을 내세운 냉전수구세력의 정치적 승세의 가능성을 부정하기 어려운 패배주의적 상황이 지배하기 시작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후보 단일화의 요구 앞에서 “야당을 해도 상관없다”는 식의 <이른바 개혁전선의 순수혈통 방어를 위한 “옥쇄론”>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다가 이 지점에서 그는 뒤로 후퇴할 수 있는 길이 막힌 상태에서, 그동안 자신을 제거하기 위한 구도라고 거부해왔던 “후보단일화”라는 틀의 전격 수용과 그 결과로 예상을 초월하여 기사회생(起死回生)하게 된다. “노풍 수호 옥쇄론”과 “냉전수구세력 척결을 위한 통합전략”이 맞선 끝에 후자가 불가피한 정치적 선택이라는 방식으로 결국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당시 후보단일화논쟁은 정파적 입장에 따라서 첨예한 갈등과 대립을 낳았는데, 정파주의를 넘어선 입장에서 이를 주장했던 세력들은 냉전수구세력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한 대중적 통일전선의 결성이라는 관점에서 이에 접근하였다. 즉, 후보 단일화 과정으로 선출된 대선 후보의 책임은 누가 되든(그 개별적 역량과 지지 기반의 차이가 있다 해도), 포괄적 국민 통합형 지지를 기반으로 하여 냉전형 식민주의 정치지형에서 결과 된 대외 종속의 극복, 특권의 개혁, 분단체제의 해체, 지역주의 종식 등으로 압축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후보 단일화론은 정몽준의 정치적 지향과 기반의 보수성으로 인해 논쟁 초기, 가치 있는 선택으로 수용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추구하는 이상으로서는 의미 있었으나, 이러한 조건은 후보 단일화론의 현실적 한계였다. 노풍 재점화의 역설적 계기가 된 김민석 당시 민주당 의원의 정몽준 지지는, 그 의도의 문제와는 별도로 이런 점으로 해서 전통적 민주세력 내부의 비판을 집중적으로 받지 않을 수없었다. 그러나 통합적 역량이 아니고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후보단일화론의 정치적 가치는 후보 단일화가 결정된 이후 노무현의 지지율이 다시 급상승하게 된 것으로 입증되었다.
그렇게 후보 단일화의 결과로 승세를 잡았던 대선 후보 노무현은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고강도의 추격전과 승패를 가늠하기 어려운 접전을 벌여나간다. 그러다가 선거전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파국적 국면에 처하게 된다. 선거일 직전, 후보 단일화의 경쟁자에서 적어도 일단 외형상으로나마 협력자로 위치가 바뀐 정몽준에 대한 종로/명동 유세장에서의 격하(格下)성 자극 발언으로 “노”에 대한 “정”의 지지철회 사태를 초래, 엄중한 기로에 놓이게 된다.
이는 지지 세력 내부의 격론과 고난도의 정치적 협상을 거치면서 어렵게 통합시켜 놓은 지지 기반에 파괴적 분열을 가져와 선거패배의 비극을 예감하게 하는 일이었다. 후보 단일화의 정치적 성과가 졸지에 무산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바로 이때, 위기의식이 최고조로 달한 개혁세력의 인터넷 정치를 통한 여론 점화의 급속한 확산으로 지난 해 선거 과정에서 최대의 드라마라고 하는 일대 역전극을 달성시킨다. 온 라인 상의 격론과 설득, 선택의 유도와 전략의 지침 마련, 특히 민노당 지지 세력에 대한 지지 읍소 등은 정몽준의 지지철회 사건 시점과 선거당일 투표시각까지의 그 길지 않은 시간을 인터넷 정치를 최대의 격전장으로 만든다. 오프라인의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전초전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노무현 후보의 승리로 나타났다. 대중의 자발적 논쟁과 참여, 그리고 집단적 결속의 실현이 사이버 세계로부터 현실로 이어지는 출구를 인터넷 정치가 마련하는데 마침내 성공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정권은 김대중 정권의 IT 강국 전략의 최대 수혜자가 된 셈이며, 그간의 민주화 과정에서 폭넓게 확산된 민주 혁명적 사회의식의 성장 위에 서 있는 권력이 된 것이었다. 바로 이 후자의 차원은 노무현 정권이 무엇과 만나 결합해야 하며, 그로써 어떤 폭발적 돌파력을 현재적으로,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 인터넷 정치의 양상은 정치와 관련한 대중적 담론의 기본틀을 바꾸는데 상당 정도 성과를 보이게 되는데, 조-중-동으로 표현되는 보수언론들이 장악해왔던 의제설정기능과 논쟁의 방향, 내용, 현실 인식의 주도권을 적지 않게 잠식하게 된다. 인터넷 정치토론의 흐름이 하나의 일상적 현실로 자리 잡게 하는데 공헌한 것이었다.
이는 역설적으로 보자면, 노무현 정권의 진로가 보다 일상적이고 광범위하며 즉각적인 논쟁의 구도 속에 위치하고 있음을 뜻한다. 권력의 등장 과정에서는 지지 세력의 위력적인 근거가 되었으나, 이 토대에서 벗어날 경우 비판과 반대의 격렬한 일상의 현실과 직면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러한 현실을 경험하고 있다.
***3. 지지 세력의 분열과 인터넷 정치의 새로운 진로**
총괄해보자면, 소위 “주류”에 속하지 않았던 후보가 시대적 변화의 열망을 반영하면서 단숨에 <노풍>이라는 사회적 돌풍을 일으켰고, 그 과정에서 상당한 수준의 급진적 개혁과 자주적 대외관계를 이루어나갈 것이 기대되었다.
김영삼 정권이 “문민(文民)정권”이라는 이름으로 군사통치체제의 종식을, 김대중 정권이 단순한 민간정권이라는 수준을 넘어서서 그 권한의 민주적 확산을 의미하는 “국민(國民)의 정부”를 각 권력의 기본성격으로 삼았다면 노무현 후보의 등장은 “국민”이라는 통합적 개념 내부에 존재하는 “서민(庶民)”을 축으로 하는 계층적 변혁에 이르는 주류교체를 예상하게 했다.
그간 이 사회를 지배해왔던 주류 엘리트의 모습과는 차별성을 보인 노무현 후보의 서민 이미지, 당찬 자주적 발언과 지역주의적 한계에 대한 도전 등은 인터넷 정치토론에 집결한 개혁세력, 특히 IT 세대에 속하는 젊은 층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현실로 하나하나 검증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러한 지지는 차츰 식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앞서 언급한 바 있는 <노풍> 성립의 세 가지 요소, 즉 “(1) 대중의 자율적 참여 의지가 확고한 민주적 선택, (2) 특권과 지역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통합적이고도 탈 봉건형의 정치개혁, (3) 분단과 냉전형 종속상태를 극복하려는 자주적 평화의지”의 정치적 관철이 현실적 장애와 도전으로 인해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노무현 대통령 자신의 자세와 견해, 관점과 선택 등으로 무망해지고 있다는 인식이 형성, 확산되어갔기 때문이다. 이는 지지 세력 내부에서 <노무현의 배신/국민 사기극>이라는 극단적 규정과 평가에까지 이르는 사태를 만들었고, 노무형 정권의 정치력에 말할 수 없는 타격을 주기 시작했다.
냉전수구세력의 공세로부터 자신을 가장 헌신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세력과의 틈을 스스로 조성한 결과였으며, 이들의 문제 제기에 대하여 성실한 논쟁과 설득력 있는 접근, 논리적 근거가 확실한 선택이 아닌 대응으로 일관, 개혁평화전선의 내부에 분화현상을 낳게 되고 말았다.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에 대한 특검 수용, 이라크 침략전쟁 파병결정, 소위 신주류 주도에 의한 민주당 분란 조장 내지 방치, 영남지역주의에 대한 구시대적 접근, 정치자금 문제 등을 거치면서 노무현 정권의 개혁적 정체성은 매우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애초 노무현 개인에 대한 정치적 매력을 넘어서서, 국가적, 민족적 진로에 대한 관심이 우세했던 세력들은 노무현 정권의 비판적 지지 세력의 좌표를 일단 설정하면서도 <대안 세력의 모색>이라는 지점까지 사고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는, 노무현 정권의 진로가 현재와 같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개혁전선과 평화세력의 결집이 안으로부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자체 평가의 결론이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는 인터넷 정치논쟁의 현장에 분화현상을 결과했고, 마침내 인터넷 정치논쟁 주도세대들의 <시대소리> 등장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노무현 지지 세력 내부의 분열은 부정적 차원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운동이 전개되는 매우 중요한 계기가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정치의 선두주자인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가 종합적 기사제보와 정치적 논쟁의 대중화를 이끌어내는데 공헌했다면, 시간적으로 뒤이은 <프레시안(www.pressian.com)>은 심층보도와 수준 높은 해설로 정치적 견해의 좌표설정에 중대한 역할을 성취했다. <오마이뉴스>의 경우, 일반 시민기자의 대중적 참여가 동력이었다면, <프레시안>은 중견 직업 언론인들의 전문성이 주도한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최근 논조의 일정한 방향을 강화하기 위해 논설부문과 칼럼 부문을 보완했으며, <프레시안>의 경우, 이른바 “비판적 객관성”, 즉 기본적으로 개혁성향이지만 정치적 우호관계에 묶이지 않는 비판의 자율적 범위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이 두 인터넷 매체의 대중적 인지도 확대는 기술적으로는 IT 체제의 발전과 맞물리지만, 특히 정치적 전환기의 폭발성을 가진 현안과 만나면서 비약적인 변화를 보이게 되었다. 그 발전경로의 특징을 주목해보자면, 일반 네티즌들의 열광적 참여와 전문적 논쟁의 결합이 이루어지게 될 경우, 조회수의 증가는 물론이고 정치사회적 영향력도 급진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온과 오프의 결합구조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창출해나가는가가 최대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소리(www.sidaesori.com)>의 경우, 노사모의 중심매체로 현재까지도 기능하고 있는 <서프라이즈(www.seoprise.com)>의 노무현 일변도의 경향과 분화되어, <동프라이즈(www.dongprise.com)>와 함께 분화의 과정에서 탄생한다. 그런데, <시대소리>의 경우, 기성의 전문 언론인 일부의 참여와 함께 30-40대 신진 전문가 세대가 주도하면서 그 방향설정과 추진이 관심을 받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노무현 정권 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집단으로 이후 비판, 내지는 대안모색이라는 입장선회와 정치논쟁의 대중화에 최대의 관심을 갖는 세대이다.
이와 함께, <대자보(www.daezabo.com)>,와 진보누리<www.jinbonuri.com)>도 정치토론의 광장으로 주시되고 있다. 전자는 자유주의적 개혁성을, 후자는 좌파적 논쟁의 현장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은 인터넷 정치의 각축전과 논쟁의 주도권 장악과 관련한 선의의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들 세대의 등장은, 우리의 정치사 전체 경로에서 뚜렷하게 하나의 흐름으로 형성되고 있는 <민주혁명>의 한 성과이자, 노무현 정권의 파행이 낳은 역설적인 산물이다. 이와 같은 인터넷 정치논쟁, 전문 정치토론이라는 새로운 시도가 단지 노무현 정권 지지 세력의 분화로 인한 결과라는 수동적 차원을 넘어서서 새로운 정치세력의 주력 부대 형성에까지 이르게 된다면 상황은 매우 달라지게 될 것이다.
다실 말해서, 개혁과 평화적 외교의 궤도에서 일정하게 이탈현상을 보이고 있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일정한 견인, 비판, 또는 대안 모색의 현장으로 기능하는데 성공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 시대의 진정한 주류교체라는 혁명적 변화의 기초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노무현 정권의 존립과 운명 이상의 역사적 과제이며,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각종 중대현안을 극복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역량의 결집과 위력의 발휘를 의미한다. 긴 안목과 든든한 이론적 무장, 그리고 현실적 힘의 결합 등이 이를 통해서 자라날 것이다.
혁명을 팜플렛으로 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인터넷 공간의 격론이라는 방식으로 시대변화를 추구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오늘날, 누구도 외면하기 어려운 대세적 조류이다. 이 흐름의 주도적 역할을 누가 어떻게 감당하는가에 따라,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대중적 폭발력과 역사적 추진력을 가질 수 있는가에 따라 우리 민족의 진로와 그것이 이루어내는 인류사회적 변화가 결정되어갈 것이다.
이러한 현실의 중심에 서는 자, 행복할 것이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감격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감격, 우리 시대 모두의 특권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해마지 않는다.
*이 글은 프레시안과 시대소리에 공동 게재됩니다. 이 글은 7월 25일(오후 3시-5시, 프레스센타 11층) <시대소리>/<대자보> 주최 정치토론, “노무현 정부와 인터넷 참여정치”의 발제문입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