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사유방식에서, 대북 송금문제가 특검 대상이 된 기본 논리는 <절차적 투명성과 실정법적 원칙>을 어겼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냉전형 분단체제의 현실적 한계에서, 대북 송금 문제의 "민족적 차원의 비밀주의란 불가피했다"는 식의 주장은 용납되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의 "개혁"은 바로 이렇게 중요한 정책의 투명한 집행과 이와 관련된 사법적 근거를 허물 수 있는 기존의 행태를 정리하는 것에 있다는 논거였다.
그런데 대선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러한 논리는 온데간데없이 실종되고 말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현행 정치자금법은 지킬 수 없는 부분이 많아 위반자를 양산하는 악순환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다"면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자금법 개선에 적용되는 논리가 대북송금 문제에는 왜 적용되지 않나?**
따라서, "정치자금법을 포함한 정치관계법 전반을 개정, 내년 총선부터 적용하는 것을 국민과 정치권에 공개 제안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야가 공히 합의하여 정치자금에 대하여 "고해성사"하자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지킬 수 없는 법의 존속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개선"으로 파악하고 있는 논리이다. 만일 이러한 주장이 옳다면, 민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킬 이유가 없는 냉전형 실정법 또한 바뀌도록 하는 것이 대북 송금 문제 해결의 우선적 절차가 된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주장을 편 적이 없다.
그는 자신과 관련된 사안은 "정황론"을 내세워 이해를 구하고, 민족 문제의 중대한 해법으로 역할을 해온 햇볕정책에 대해서는 "사법의 칼"을 겨누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적한 "위반자를 양산하는 악순환의 문제"는 대북 송금과 관련한 실정법적 영역에서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이는 명백한 논리적 모순이 아닐 수 없으며, 사안에 따라 원칙보다는 자신에게 유ㆍ불리를 먼저 계산하는 정치적 요령을 피우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이른바 국민 앞에 다 깨놓고 밝히는 <고해성사>를 내세우면서도 여야 합의라는 정치적 결탁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고해성사>란 일방적 고백이다. "너도 하겠다면 나도 할께" 하는 식의 상호주의가 아닌 것이다. 상대에게 고리를 건 고백은 사나이답지 못하다. 게다가 누가 봐도 이런 방식에 야당이 응할 리가 없다. "물귀신 작전"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은 의도가 어떠하든 국면돌파용 발언에 불과해지는 것이 된다.
또한 <고해성사>란, 합의에 의한 비밀의 공개제한이 없다. 도저히 밝힐 수 없는 비밀의 고백이며, 절대적 용서가 전제되어 있다. 하여, 그 고백을 받아줄 국민들의 인내와 용서가 결정적이다. 그것을 먼저 물어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진실하게 고해성사 하려는 자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의 자세에서 그런 면모를 발견하기 어렵다.
대북 송금 문제에 적용한 <절차적 투명성과 실정법적 원칙>을 경제현실 운운을 내세워 정치자금에 엄격하게 적용할 수 없다면, 마찬가지로 대북 송금 문제도 민족현실을 명분으로 탄력성 있게 조율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현재의 정치자금 논란이 정치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자신의 대선 관련 자금 문제가 중심이 되는 논의의 확산과 심화를 경계하고 있다. 대북 송금 문제 논란이 민족문제의 해결에 얼마나 중대한 타격을 주고 있는가를 적지 않은 이들이 주장하고 있어도 이에 대해 별반 경청하지 않은 그가, 정치자금 문제가 나오자 정치발전 운운의 논리를 내세운다.
***국면 돌파용으로 그치려는가?**
대북 송금 문제는 본질적으로, 투명한 공간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냉전현실이 전제되어 있다. 따라서 이 사안에 냉전형 실정법 차원에서의 절차적 정당성과 투명성을 적용한다는 것은, 송금 통로를 봉쇄해버리는 쪽으로 가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방식은 잘못된 것이다.
반면에 정치자금 문제는 정경유착과 부패의 원인 제거라는 점에서 끊임없는 감시와 투명성의 제고(提高)가 요구되는 영역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문제는 적용 대상에 따른 원칙의 선택을 혼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자금에서 자유로운 정치인은 없다. 그러므로 선거 공영제의 강화를 위한 실정법적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치가 돈의 위력에서 해방되도록 해주는 것이 개혁의 골자이며, 정치 자금 후원의 목표가 보다 나은 건강한 정치가 되도록 하려는 사회적 양식의 성숙이 또한 요구된다.
그와 같은 차원에서, 야당 한나라 당이 자신의 자금 문제는 감추고 상대의 자금문제만 물고 늘어지는 것도 노무현 대통령의 태도와는 별도로 가당치 않은 정치적 해악이다. 한나라당의 자세는 정치자금 문제를 단지 정략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 초점은 야당의 대선 자금이 아니다. 정치권 전체의 돈 문제 이전에, 투명성과 깨끗함을 내세운 권력의 진실이 우리 모두의 관심사인 것이다.
그 권력의 진실이 분명하게 확인되지 못할 때, 우리는 우리 사회 전체에 걸친 <신뢰의 붕괴>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문제를 방어하는 식으로 사안을 풀어나가는 것은 논의의 불편부당성을 의심받게 한다. 더욱이 투명성의 원칙을 모순되게 적용하는 권력의 모습은 그 권력의 정통성에 부정적 부담을 추가하는 요인이다.
***보다 심각한 노무현 대통령의 과오**
이러한 논리적 자가당착 못지않게 심각한 노무현 대통령과 노무현 정권의 정치적 과오가 있다. 그것은 노무현 정권 등장에 가장 결정적 역할을 했던 서민들의 진심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결과적으로 희화화(戱畵化)해버린 점이다.
이에 대한 보수 언론들의 비아냥대는 논리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으나, 정경유착의 현실은 가리고 다만 희망돼지를 앞세웠던 실체가 드러나면서 희망돼지 속에 담긴 꿈들은 지금 모욕당하고 있다. 희망의 상징이 수치심을 견디지 못한 채 낙루(落淚)하고 있는 것이다.
서민들의 애환과 이들의 역사적 요구를 담은 희망돼지 모금은 우리 정치사에 있어서 매우 귀중한 경험이자 이정표이다. 그런데 실상은 보다 규모가 큰 대자본의 수중에 정치가 장악되는 것을 은폐하는 이른바 <커버 스토리>로 희망돼지 모금이 이용되었음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서민 대통령의 등장"이라는 상징 조작에 봉사해버렸다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게 되었다. 희망돼지의 가치를 노무현 정권 자체가 폄하하려 했던 것은 아니겠으나, 정작 그 정치자금의 중심 골격은 다른 것으로 만들어진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대선 당시 정치자금 규모가 거론되자 "누가 돼지저금통에 모인 돈 만으로 선거했다고 했느냐?"는 식의 권부의 항변은 바로 그 안에 담긴 서민들의 절절한 요구와 기대에 대한 공개적 능멸이다. 이러한 의미를 노무현 정권의 핵심세력은 절절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전체 돈의 액수에 비해 그건 사실 얼마 되지도 않은 돈이었다는 식으로 이후 밝힌 것도 서민들의 힘에 기대어 선거를 치렀다고 자랑했던 것과 대조되면서 노무현 정권이 자신의 지지기반을 배신, 이탈할 수밖에 없던 속 깊은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는 셈이다.
말로는 서민과 중산층을 위해 봉사하겠다면서, 정작은 그 이면에서 돈을 댄 <자본의 정치>에 굴종해버린 정권이 선택하는 정책과 조처는 정치자금법 개선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근본적인 변혁대상이 될 과제이다.
***대통령의 책임 방기, 그 끝은 무엇이 될까?**
노무현 정권은 민족문제와 관련해서는 당연히 비밀로 보호해야할 내력을 온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와 관련된 인사들을 범죄 집단으로 만들어버리는 사태를 조성, 내지는 방치했다. 반면에, 정경유착의 고리를 풀기 위해 마땅히 투명성을 강조해야 할 바에 대해서는 실정법의 현실적 모순을 내세워 "억울한 희생자 발생"이라는 식의 논지를 폈다.
이에 더하여, 노무현 정권 등장에 가장 소중한 기반인 서민들의 정치적 헌신의 상징을 소중하게 처리하지 못한 결과 별것 아닌 것으로 초라하게 격하되는 현실을 초래했다. 정작은 서민을 울린 투기자본을 비롯하여 대자본의 손을 잡고 권력 장악의 구도를 짰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에 대한 국민적 사죄를 하거나 용서를 구하기보다는, 아무개 특정인사가 괜스레 문제를 키웠다느니, 나만 문제냐 너도 문제지, 또는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는데 법이 문제였다는 식으로 그 특유의 <책임전가>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국정의 책임은 최종적으로 대통령의 책상 위에서 정지한다는 이 엄연한 현실 앞에서 그러한 태도를 계속 유지한다면, 그것은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을 질 의사가 결국에는 없다는 논리가 된다는 점에서 자해적 선택이 되고 말 것이다.
***돼지 저금통의 희망**
부디, 국정의 이 같은 혼란이 끊이지 않는다면 민족 문제, 내치 문제, 외교문제 그 어떤 영역에 있어서나 권력의 정통성에 중대한 훼손을 초래하여 조만간 <통치불능의 상태(ungovernability)>에 빠지게 되고 만다는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절체절명의 위기의식과 함께 대오각성의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시간이 누구의 편이 될 것인지 뼈아프게 성찰해야 하는 때가 피할 수없이 왔다. 한반도의 자주적 평화, 개혁적 정치, 공정한 경제를 염원하면서 돼지 저금통에 담았던 서민들의 눈물과 역사의 요구는 모독당할 수 없다. 그것은 누구의 조롱대상이 될 이유가 없다.
돼지 저금통으로 압축된 이 정치적 헌신의 진심을 다시 정면으로 마주하여 새로운 결의를 다지고 순결한 열정을 가지고 행동하려는 이들에게, 역사는 진정한 승리를 안겨다 줄 것이다.
*이 글은 <프레시안>에 크레딧이 있으며, 본격적인 정치토론 사이트인 <시대소리>(www.sidaesori.com)에도 공동게재 합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