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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대통령, 당신만이 옳단 말입니까"

<주장> 중국 인민일보와의 기자회견을 보고

노무현 정권의 한반도 정책이 그나마 있던 민족적 주도권마저 약화 내지는 상실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노 대통령은 자신의 대북 정책이 지향하는 진로를 중국 인민일보(人民日報)와의 회견에서 밝혔다.

그 논지는 "전임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 추진 방식에 문제가 있고, 결과 또한 바람직하지 못해 그에 대한 조정과 수정을 가했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노무현 정권의 한반도 정책이 어떤 기조를 중심으로 가겠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다음은 프레시안 7월5일자 "노 '원칙 있고 투명한 대북 정책 추진/중국, 평화해결에 앞장설 것 굳게 믿는다'"라는 기사의 앞머리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4일자 중국 인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임 정부는 대북정책에 있어 성과를 얻으려 급히 서두르는 경향이 있었으나 결과는 별로 이상적이지 못했다"면서 "대북정책에 있어 원칙과 투명성을 강조하고 서로 존중해야 하며 이런 토대위에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3일 오후 청와대에서 왕천 인민일보 사장 등 취재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전임 정부의 정책과 기본적으로 일치한다"며 "다만 과거 일부 주장과 방식에 대해 필요한 조정과 수정을 가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또 "전임 정부는 대북정책을 '햇볕정책' 혹은 '포용정책'이라 불렀으나 신정부는 대북정책을 '평화번영정책'이라 명명했다"고 덧붙였다.>

즉 그는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와 관련하여, "방식의 정상 일탈"과 "성급한 과욕"에 의한 "현실적 결과의 문제들"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이 취하려는 교정 방향은 "방식의 정상궤도 전환", "목표의 점진적 조정" 그리고 "현실주의적 결과 지향"으로 압축된다.

***원인과 결과 바뀐 책임 추궁**

이와 같은 주장은 방식의 일정한 수정과 개선을 통해 보다 나은 결과를 얻겠다는 정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리고 전 정권과는 차별성 있는 정책의 선택에 대한 "외교적 공지(公知)"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한반도 해법 인식은 우리를 향해 압도해오고 있는 보다 근본적인 도전에 대한 이해의 결여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초강대국의 한반도 문제 간섭과 개입을 최대한 제어하면서 민족 문제에 대한 주체적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노력은, 분단체제의 산물인 "냉전형 실정법으로 규정되는 <정상>의 한계"를 넘는 문제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존의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민족 전체의 요구를 앞장서서 실현해내야 할 지도자의 비상(非常)한 결단이 요구된다. 이는 이른바 "투명성"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도리어 그렇게 될 경우, 냉전과 분단의 현실 변화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이를 어떻게든 극복하려 한 태도를 "조급한 성과욕"으로 매도해버린 것은 분단극복의 역사적 의지에 대한 부당한 능멸이 된다.

오늘의 한반도 상황에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지적했던 것처럼 김대중 정권이 "급히 서두른" 탓이 아니다. 내부의 냉전수구세력과 외부의 패권주의 세력 간에 형성된 '반동적 동맹체제'가 햇볕정책의 근간을 끊임없이 흔든 것이 햇볕정책의 성과에 계획했던 만큼의 진척을 이루어내기 쉽지 않게 만든 주 요인이다.

그러하기에, 그의 비판의 화살은 바로 그 반동적 동맹 체제를 구성하고 있는 세력들을 향해야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평화의 길을 뚫어낸, 노벨 평화상을 받아 세계적 반열에 오른 지도자와 이를 현실에서 수행한 세력들을 겨냥해서는 아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햇볕정책 인식은 원인과 결과의 본말전도(本末顚倒)된 사고에 따라 그 책임을 햇볕정책과 그 추진세력에게 묻고 있다. 그가 미국의 대북 압박 정책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까닭이 이로써 설명이 된다.

미국의 책임은 거론되지 않은 채, 그 미국의 봉쇄포위 전략을 뚫어내기 위해 애를 썼던 이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논리 구조 속에서는 '질타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특검으로 햇볕정책의 성과인 6.15 공동선언 주도자들이 사법처리 대상으로 되고 있는 현실은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당연한 것이 되고 만다.

***햇볕정책 국제적 폄하와 매도**

이에 더하여 정상회담을 위한 방문 대상국의 주요 언론을 상대로 자국의 전임 정부를 공개 비판했다는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상당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는 지난 일본 방문 과정에서 일본인들 앞에서 항일독립 투사였던 김 구 선생을 "실패한 정치인"으로 규정해버린 우(愚)와 그 궤를 같이 하는 셈이다.

"전임자 김대중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서 과욕을 부리다가 비정상적 방법을 취했고 그 결과도 영 신통치 않게 되고 말았다"는 식의 이야기를 국제적으로 해버린 것은 국가적 체면의 차원에서나 외교 전략의 차원에서나 모두 "자기비하(自己卑下)"라는 점에서 우리의 입지를 저하시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국가최고 지도자로서 대외적으로 결코 해서는 아니 되는 비 외교적 발언이 된다.

그렇게 말한 의도는 자신의 정책방향과 방식이 햇볕정책에 비해 우수함을 과시하려는 것이었겠으나, 결과적으로는 전임 정권이 추진했던 한국의 외교정책을 "성급, 실패" 등의 이미지를 통해 국제사회에 '내놓고' 난도질한 셈이 되었다. 그것은 인간적 도리로서나, 외교정책 수행상의 수사법으로서나 마땅히 대통령의 수준에서 할 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 대목에서도 드러나듯이, 노무현 대통령의 화법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거친 어투나 불안한 말 바꾸기, 또는 궁색한 논리가 아니다.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타자를 깎아내리는 것이 문제다. 이것은 그의 사유방식에 근본적으로 존재하는 '배타적 독선'의 요소라고 보여진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향하고자 하는 이른바 '평화번영정책'은 이러한 사고 속에서 올바르게 태어날 수 없다.

미국에 가서는 북한에 대한 능멸을, 일본에 가서는 민족 지도자를, 중국에 가기에 앞서서는 햇볕정책의 주도자를 격하하는 발언을 차례차례 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을 보면서 그는 자신의 주장과 논지를 포용력 있게, 그리고 긍정적 방식으로 담아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깊이 가지게 된다.

***타자를 격하하는 <배타적 독선>의 편협한 사유방식**

가령, 그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전임 정부의 정책과 기본적으로 일치한다"라는 주장을 전제로 내세우려면, 적어도 이렇게 말할 수 있었어야 한다."햇볕정책의 성과는 매우 소중하다. 우리의 대북 정책은 햇볕정책의 기본관점과 그대로 일치한다. 따라서 그 성과가 오늘날 변화한 현실에서 더욱 큰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라도 여러 가지 발전적으로 보완할 바를 깊이 생각하고 있다." 이러면 햇볕정책의 본질도 살리면서 자신의 새로운 구상도 의미 있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러한 사유방식이 존재하지 않고 있다. 말로는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를 밝히고 있으나 내용적으로는 그것을 좌초시키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까닭이 다른 데 있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의 이러한 사유방식의 문제가 오늘날 그의 대선 승리 이후 벌어지고 있는 정세의 혼란에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에게 평화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정책에 굴종하지 않을 수 있는 민족 내부의 통합력이 그 근간이 되어야 한다. 주변 국가들과의 외교적 연대는 이러한 민족 내부의 기초가 없는 한, 열강정치의 야욕에 희생당할 가능성만 높게 된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사유방식에 통합적 역량을 위한 인식 전환이 없다면, 우리는 계속 적전분열(敵前分裂)하면서 스스로의 힘을 허무하게 소진하고 외세의 지배전략에 무기력하게 휘둘리고 말 것이다.

국가적 운명에 결정적 권한을 가진 대통령의 사유방식, 그 인식의 본질은 이토록 중요하다. 이에 대한 대통령과 노무현 정권 내부의 혁신적 성찰 및 전환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이 나라는 날이 갈수록 어려운 지경에 몰리게 될 것이다. '포용력 있는 국가적 통합력'을 갖지 못한 지도자와 정권에게 '평화적 민족통합의 미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실로 이러한 어지러운 정세가 지속되는 것은 우리 민족 성원 누구에게도 득(得)이 되지 못한다. 민족의 존엄을 세우고, 그에 바탕을 둔 민족적 주도권을 최대한 회복하려는 진중한 노력이 없이는, 노무현 정권의 장래도 낙관할 수 없다. 노무현 정권 성립의 역사적 요구를 더 이상 실현시킬 역량이 없다고 판단되는 지경에 이르면, 우리는 대단히 심각한 정세의 변화와 새로운 역사적 선택의 경계선에 서게 될지도 모를 것이다.

*이 글의 크레딧은 <프레시안>에 있으며 게제 24시간 뒤에 본격적인 정치토론 사이트 <시대소리>www.sidaesori.com)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시대소리>에서의 정치토론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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