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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 “시간 끌며 인구지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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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 “시간 끌며 인구지도 바꾼다“

김재명의 뉴욕통신 <17> 유대인 정착촌 건설의 노골적 전략

33개월 동안 사망자 3천2백20명. 지난 2000년 9월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티파다(봉기)가 벌어진 뒤 올해 6월말까지의 중동 유혈투쟁 희생자 숫자다. 한달에 줄잡아 1백명이 숨졌다. 사망자 비율은 대체로 3대 1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희생이 훨씬 크다(팔레스타인 2,414명, 이스라엘 806명).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팔레스타인 희생자 가운데 상당수는 유대인 정착민들 손에 죽었다. 팔레스타인 농민들의 눈에 비친 유대인 정착민들은 '폭력적인 무장집단'이다. 팔레스타인을 불법적으로 점령한 이스라엘 병사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가하는 공격은 '국가폭력'이란 비판을 받아왔다. 현 이스라엘 법에 따르면, 유대인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휘두르는 폭력은 (이 글 뒤에서 살펴보듯) '합법적'이다.

***"4백명 정착민 탓에 10만명이 고생"**

<사진 1> 전형적인 유대인 정착촌 풍경. 보안을 위해 산등성이에 주로 세워진다. (김재명)

현재 20만명으로 추산되는 유대인 정착민들은 주변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끝없는 갈등의 씨앗을 뿌려왔다. 중동 유혈사태 과정에서 헤브론은 유혈지역의 하나로 꼽힌다. 걸핏하면 유대인 정착민들과 현지 팔레스타인 주민들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지곤 한다. 겨우 4백명의 유대인 정착민들과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주둔한 이스라엘 군과 팔레스타인 민중들과의 끝없는 유혈투쟁이다. 이 지역의 팔레스타인 행정책임자 무스타파 나체 시장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불과 4백명의 유대인 정착민 때문에 10만 우리 시민들이 정상적인 생업활동을 못하고 고통을 겪고 있다"고 강한 불만을 터트렸다.

이렇듯 중동(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유혈사태의 한 변수는 유대인 정착민들이다. 이들은 '하느님이 유대인에게 약속한 땅'을 되찾는다는 구실로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해왔다. 그곳에 오랫동안 터를 잡고 농사를 지어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들 유대인 정착민들에게 밀려나 고향을 등진 채 농토를 잃은 절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마치 일제시대에 일본인 정착민들이 한반도와 만주의 원주민들을 밀어내고 땅을 차지했던 것과 같다.

1948년 독립을 선포하고 이 지역 원주민들인 아랍 사람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면서 이스라엘은 전세계 유대인들의 이민을 적극 받아들여왔다. 특히 1967년 6일 전쟁으로 훨씬 넓어진 점령지들을 이스라엘화(化)하기 위해 해외 유대인들의 영구입국을 두손들어 환영했다. 이 가운데 많은 이들이 가난한 동구 공산권과 러시아 이민자들이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정착촌 주변 원주민들인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으면서 경작지를 넓혀 나갔다.

사진 2. 이스라엘 정착민 가족. 외출할 때도 총을 메고 다닌다. (김재명)

정착민들은 주변 팔레스타인 농민들의 농작물들을 불태우거나 올리브 나무 뿌리를 뽑는 등 농사를 망가뜨리기 일쑤다. 부상당했거나 위급한 팔레스타인 환자를 실어나르는 앰뷸런스의 통행조차 훼방을 놓기도 한다. 문제는 이들이 대단히 폭력적이란 점이다.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농민들이 총을 갖고 있지 못한 반면, 이들 정착민들은 '자위'(自衛)를 구실로 합법적으로 총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00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티파다(봉기)가 일어난 뒤 마구잡이로 폭력을 행사해왔다.

***유대인 정착민들의 합법화된 무한폭력**

사진 3. 유대인 정착민들에게 폭행을 당해 라말라 병원에 입원한 팔레스타인 소년. (김재명)

중동 현지 취재과정에서 필자는 서안지구(West Bank)의 정치 중심지 라말라와 남부도시 헤브론 두 곳의 병원을 가보았다. 그곳에는 시위과정에서 이스라엘 군이 쏜 총에 다친 젊은이들도 많았지만, 일부 유대인들의 테러행위로 다쳐 입원한 환자들도 많았다. 이 가운데는 이제 겨우 10살, 12살 된 어린이들도 있었다. 라말라 병원에서 만난 한 어린이 피해자. 이름은 이슬람 알리 아말라. 나이는 12살. 팔에 심한 상처를 입고 붕대를 두르고 있었다. 라말라 외곽 마을에 사는 이 소년은 할아버지 집에 놀러갔다가 돌아오다 변을 당했다. 갑자기 4륜구동 승용차가 나타나더니, 유대인 특유의 둥근 모자를 쓴 젊은이들 두세명이 소년에게 돌을 던졌다. 그들은 근처 유대인 정착촌 주민들임이 틀림없었다. 아무 무장도 없는 소년에게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병원에서 필자를 안내했던 한 의사는 "그 이유는 바로 테러이고 협박이다. 이런 꼴 당하고 싶지 않으면 정착촌 주변마을에서 떠나라는 메시지다"라고 풀이했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도로에서 차를 모는 팔레스타인 운전자들은 느닷없이 날아드는 돌맹이와 총알에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 도로 곳곳에서 일부 과격한 유대인 정착민들이 길가는 차량을 향해 돌을 던지고 총을 쏴대기 때문이다. 필자의 체험담. 라말라에서 북쪽으로 30km 떨어져 있는 서안 지구 중부도시 나블러스에서 벌어지는 장례식 취재를 위해 택시를 전세 내려 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 운전기사는 "돈도 좋지만..."하며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팔레스타인인 운전기사의 걱정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는 길 곳곳에 돌맹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라말라-나블러스를 잇는 간선도로 주변 정착촌 주민들이 던진 것들이었다. 나블러스에 가까이 왔건만, 운전기사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포장도로를 벗어나 먼짓길을 달렸다. 이스라엘군 검문과 유대인정착민들로부터 공격 당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팔레스타인 마을들을 거쳐 빙 둘러갔다.

사진 4. 4백명의 정착민들로 유혈투쟁이 끊이지 않는 헤브론의 한 병원 풍경. (김재명)

현재 유대인 정착민은 이스라엘 군제(軍制) 속에 사실상 편입돼 있다. 전부터 무장을 해왔던 유대인 정착민들에게 법적으로 무장을 합법화한 시점은 1973년. 이스라엘 지역방위법에 따라 유대인 정착민들은 우리 한국으로 치면 '향토예비군'으로 편입돼 지역 방위를 맞아왔다. 1981년엔 '이스라엘 군사명령 898'에 따라 유대인정착민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할 수 있게 됐고, 영장 없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게 됐다. 1992년 당시 경찰장관(Police Minister) 로니 밀로는 유대인 정착민들이 정착촌 외곽을 순찰할 수 있도록 규정을 새로 만들었다. 그때부터 정착민들은 주변 팔레스타인 마을 중심지를 순찰하면서, 지나는 행인들을 불러세워 몸을 뒤지거나 구타를 일삼아왔다. (일제 식민지 시절 우리의 선조들에게 휘둘렀던 일본깡패들의 횡포를 떠올린다면, 일상적으로 이런 고통과 억압을 겪어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유대인 정착민들에게 느낄 반감과 증오심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2000년 9월말 인티파다가 일어나자, 유대인 정착민들의 권한은 법적으로 더 강화됐다. 당시 이스라엘 국방장관 라빈은 유대인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쏠 수 있도록 했다. "급박한 위험에 처했을 경우"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그 "급박한 위험"이란 참으로 주관적이고 애매한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유대인 정착민 A가 "언젠가는 손 봐주겠다"고 별러오던 팔레스타인 주민 B를 죽이려고 마음먹는다면, 언제라도 죽일 수도 있는 상황이다. 현실은 우리가 뉴스에서 전해듣듯, 곳곳에서 그렇게 무한폭력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동예루살렘 삥 둘러싼 주택단지 건설**

사진 5. 나블러스에서 치러진 한 팔레스타인 장례식.(김재명)

중동평화협상의 이정표(이른바 road map)에 따르면, 1단계로 이스라엘 쪽에서는 불법적인 일부 유대인 정착촌을 철거한다고 돼있다. 문제는 ▷팔레스타인 곳곳에 고작 1-2백명 단위의 소규모 정착촌 150개 가량을 포함해 수많은 정착촌들이 이미 들어서 있는 데다, ▷당사자들인 정착민들이 스스로 철거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고 ▷타고난 강골(强骨) 우파 정치인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수상 자신이 유대인 정착촌 철거를 시늉만 하면서 시간벌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 '시간벌기'란 팔레스타인 지역내 유대인 주거비율을 높이는 쪽으로 인구지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동예루살렘이 극단적인 보기다. 이미 동예루살렘 주변은 삥 돌아가며 유대인 주거용 고층 아파트 단지를 비롯한 20만 규모의 밀집 주거지역들로 채워졌다. 현재도 곳곳에서 공사가 진행중이다. 이스라엘 정권들이 금융지원(건설사에겐 건설비 융자, 입주자에겐 낮은 이자율의 주택자금 대부)으로 밀어부친 결과다. 중동평화협상의 이정표에 따라 2005년으로 예정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이 극적인 현실로 다가온다 하더라도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기는 이미 어려워졌다. 이들 동예루살렘 주변 대규모 주거단지는 유대인 정착촌 논의에서 아예 빠져있는 상태다.

사진 6. 동예루살렘 외곽에 건설중인 대규모 유대인 주택단지. (김재명)

야세르 아라파트의 정치조직인 파타(Fatah)의 서안지구 사무총장이자 인티파다의 한 주역으로 꼽혀온 마르완 바구티(44)도 유대인 정착촌 문제가 팔레스타인 평화에 심각한 걸림돌임을 지적한 바 있다. 2002년 4월 이스라엘군에 체포되기 10개월 앞서 라말라에서 만났을 때, 바구티는 "오슬로 평화회담이 성사된 뒤로도 줄곧 이스라엘정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거주지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유태인정착촌을 넓혀 왔다"며 이스라엘 정권을 통렬히 비판했었다. 중동평화의 큰 분수령이었던 1993년 오슬로 평화협상 당시 10만명에 지나지 않던 유대인 정착민들은 오늘날 20만명에 이른다.

***시간 더 벌려고 평화협상 깰 가능성**

지금껏 중동평화협상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해온 데는 유대인 정착촌과 관련한 이스라엘 우파들의 계산이 깔려 있다. 어떻게든 구실을 만들어 중동평화협상을 좌초시켜 그동안 정착촌을 늘려가려는 시간을 벌겠다는 계산이다. 샌프란시스코 대학 스티븐 주니스 교수(중동정치학)는 월간지 <외교정책>(Foreign Policy)에 발표한 "부시행정부와 이-팔 교착"이란 글에서 이스라엘이 평화협상에서 팔레스타인 쪽이 시행하기 어려운 조건들을 제시해온 것은 정착촌 건설확대를 위한 시간 벌기(buying time)로 분석한 바 있다.

7. 가자지구의 한 장례식에 참석한 팔레스타인 소년의 분노 어린 얼굴.(김재명)

유대인 정착촌은 사실상 팔레스타인 영토 안에 파고든 이스라엘 식민지다.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수상은 유대인 정착촌 건설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온 인물이다. 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에 걸친 리쿠드 당 집권(1977-1992년) 15년 사이에 정착민 숫자는 2천% 늘어난 11만명에 이르렀다. 이처럼 유대인 정착촌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데는 샤론의 역할이 크다. 특히 1990-92년 사이에 건설주택부장관(Minister of Construction and Housing)을 지내면서 옛소련 붕괴 뒤의 러시아로부터 많은 유대인 이민자들이 밀려들어오자, 샤론은 14만4천 채의 아파트를 새로 지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팔레스타인 땅을 징발해 정착민들을 위해 지은 정착촌이었다. 1996년 리쿠드당이 다시 집권하면서 샤론은 국가기반시설장관(Minister of National Infrastructure)으로서 다시금 이스라엘 정부의 유대인 정착촌 확장정책 추진에 앞장섰다(1996-98년). 10년 전에 비해 오늘의 유대인 정착민 인구가 2배로 늘어난 것은 이스라엘 강경우파들 가운데 특히 샤론이 앞장선 결과라고 분석된다.

정착민들은 샤론의 정치적 지지기반이다. 샤론으로선 유대인 정착민들을 1967년 6일전쟁 이전의 이스라엘 영토 안으로 불러들일 뜻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어떤 이유로든(이를테면 하마스의 자살폭탄공격 등을 빌미로) 중동평화협상을 깨뜨리고 시간을 끌면서 점령지인 팔레스타인 지역에 정착촌을 건설을 늘이려 들 것이다. 말하자면 현상고착 전략이다. 이즈음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말하는, 중동 땅에 평화가 깃들 것이란 낙관론은 바로 이런 전망에서 섣부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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