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격하 운동"이 여러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 등을 비롯한 정당한 논쟁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단히 계략적으로 의도된 정치적, 국제적 목적 속에서 <김대중>이라는 민족사적 자산이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전쟁 통제력)을 차단하고 고사(枯死)시키려는 움직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하여, "김대중 격하 운동"은 김대중 개인에 대한 폄하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생명을 지켜내기 위한 진로에 중대한 위협이 발생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김대중 격하 운동, 민족사의 명운과 관련되어 있어**
6.15 남북 정상회담과 민족문제의 주체적 해결을 지향한 공동성명 3주년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이에 대한 진지한 언급과 평가는 노무현 정권에게서 완전히 실종되었다. 6.15 공동성명의 실현을 위한 노력은 철저하게 방기(放棄)되고 있으며, 도리어 한미관계의 균열을 일으킨 "실패의 원인"으로 폄하되고 있다.
그로써, 내부적으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애초부터 그리고 종국적으로 겨냥한 특검 정국과, 외부적으로는 동북아시아 제국주의 패권체제인 한-미-일 3각 편대의 공세적 대북 포위 압박망 강화가 거침없이 전개되고 있다. 남북관계의 진전된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고, 미국의 대북 압박 붕괴전략은 하나하나 관철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 역사적 기여에 대한 인류적 공인(公認)의 실증(實證)이라고 할 수 있는 노벨 평화상을 받은 <김대중>으로 압축되는 "<역 봉쇄전략>을 기반으로 한 한반도 평화정책의 근간"에 대한 총공세가 노골화되고 있는 것이다. 민족의 자주와 평화의 활로를 열 <역 봉쇄전략>의 철학적, 기능적, 정치적 틀이 모조리 파괴되고 있는 중이다.
그 공세의 매개 고리 내지는 최대의 협력자 또는 주도세력의 일부는 다름 아닌 노무현 정권이다. 아니라면, 노무현 정권은 특검의 즉각적인 중단과 구속 기소된 관련자의 석방, 그리고 6.15 남북 정상회담 및 공동성명의 역사적, 현실적 의의를 적극적으로 강조하는 동시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역할과 그 공적에 대한 발전적 계승의 의지를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아무런 공론의 과정 없는 대북 봉쇄전략 추진**
지금 우리 눈앞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김대중 정권 시기에 그토록 버텨오던 반(反) 미사일 방어망(MD) 정책이 단숨에 허물어지고,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압박 봉쇄전략에 끌려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남북간 민족공조의 공간을 최대한 지켜왔던 노력이 일거에 붕괴되는 사태에 이르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미국 국방부의 부장관이 명령에 가까운 방식으로 주권국가의 국방비 증액 요구를 하는 식민정치의 현실 앞에서 노 정권은 입 한번 벙긋하지 않고 있다. 국방력 강화라는 명분 아래 무기강매의 전초작업이자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증폭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아무런 공론의 형성 과정 없이 일사천리로 국책(國策)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절차적 논의의 중요성을 그토록 앞세운 이른바 참여정부는 자신의 정치적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전임 김대중 정권이 힘겹게 구축해놓은 "평화의 방파제"가 무차별적으로 해체되고 있다. 이와 같은 오늘의 현실은 이미 다른 글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내외의 3자 동맹이 만든 결과이다.
즉, 미국의 부시 정권으로서는 <김대중>으로 대변되는 남북간의 민족적 연대를 완전히 끊어놓는 것이 대북 고립을 통한 자신의 패권정책 관철에 일차적 조건이 되며, 노무현 정권으로서는 김대중의 정치적 유산을 "털고 가는 것"이 자파세력의 지역기반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소위 민주당 신주류 강경파에 의한 노무현 정당 형성을 위한 신당논의의 축은 여기에 근거하고 있다. 또, 그 성원의 극히 일부를 제외한 한나라당 중심의 수구냉전세력은 특검 정국 장악을 통해 정세관리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이해가 서로 3박자로 맞아떨어진 것이다.
"탈냉전 남북 평화시대"의 정치적 상징 <김대중>에 대한 새로운 정조준으로 이득을 얻겠다는 세력의 반동적 동맹이 가져올 현실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우리 민족의 운명이 지극히 위험한 지경에 몰리는 것이다. 그러한 맥락 속에서 노무현 정권은 "매우 위험한 정권"이 되어가고 있다. "강한 정부"를 내세워 내부의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친재벌 반노동의 파쇼적 대응의 기미"가 보이고 있으며 국제적 패권체제의 군사주의 노선 또는 전쟁계획에 자진 협력함으로써 <전쟁국가 체제>로 나가는 조건들을 축적하고 있는 것이다.
***<역 봉쇄전략>의 철학적ㆍ기능적 보루 허물어지고 있다**
이번 방일 과정을 통해서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망을 깨끗이 청산하도록 하는 과거사의 올바른 정리에 대한 언급은 물론이고, 동북아시아의 미래와 관련된 일본의 평화헌법 체제 파괴 움직임에 관해 외교적 제동의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는 미국과 일본의 전쟁체제 구축에 가급적 협력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김대중 노선의 역전(逆轉)>을 뜻한다.
지난해 말, 미국은 소위 "맞춤형 봉쇄정책(tailored containment)"를 흘리기 시작했다. 골자는 주변 국가들의 대북 봉쇄동맹을 형성하고 군사적 공격의 전 단계 조처로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와 해상봉쇄 등의 강경책을 구사하겠다는 것이었다. 미국 내에서 <북폭론>이 한참 고조되고 한반도 문제의 군사적 처리가 미 언론에 연일 부각되었던 매우 긴장된 시기였다. 그 순간, 김대중은 이러한 미국의 냉전형 대결주의와 대북 고립정책에 강력한 반기를 들었다.
노무현 당시 당선자가 이에 대하여 공감을 표시했던 것은 물론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러한 공감대는 사라지고 없다. 노무현 정권은 미국의 "맞춤형 봉쇄전략"의 적극적 실천자로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기 오마이 뉴스(2002년 12월 31일)에 필자가 쓴 글의 일부를 인용한다.
"임기 말의 마지막 순간에 처해 있는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 부시정권의 대북 봉쇄전략에 쉽게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을 표명했다. 이것은 한반도의 절대적 명운이 걸린 문제를 놓고 미 부시정권의 패권전략이 더 이상 이 지역에서 관철되기 어려울 것임을 밝힌 것으로서, 역대 한미관계의 굴종적 관계의 근본을 뒤집는, 그래서 내면적으로는 전쟁을 막기 위한 남북 민족공조의 가능성을 기대하게 만드는 중대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김대중 대통령의 이러한 상황 인식과 대응발언은 최근 미국 부시정권의 대북 정책이 가지고 있는 <파괴적 성격>을 직시하고, 이에 맞서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남북을 합친 '7천만 민족성원'이 회복, 장악함으로써 다시는 전쟁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을 방도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그간의 안타까웠던 일부 정치적 파행과 오류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김대중 대통령의 결단은 이 민족의 활로를 위해 절체절명의 힘을 다해 엄호하고 함께 껴안고 나가야 할 우리들 모두의 선택이기도 하다.
***김대중, 부시의 대북 정책이 갖는 파괴적 성격 직시**
미국 부시정권은 최근, 이른바 '맞춤형 봉쇄정책(tailored containment)'이라는 신조어를 통해서 냉전시대의 봉쇄정책과는 다른 개념과 접근으로 대북 정책을 펼치는 듯 말하고 있으나 그 <본질에 있어서는 고립과 압박을 통한 붕괴전략>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방식과 차이가 없다. 이러한 전략이 내세워지는 것은 군사적 선택에 대한 우려가 한편에서 제기되자 마치 이를 비군사적 또는 외교적 방식인 듯 포장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며, 결국 북한의 굴복을 노리고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군사적 행동을 시도하겠다는 의사에 다름이 아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의 봉쇄전략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한 것은, 그것이 과거 진영 대결의 과정에서도 갈등의 평화적 해결에 하등 도움을 주지 못했으며 이에 덧붙여 부시정권의 냉전회귀라는 반동적 정책으로 남북간의 대결양상을 극단화시킴으로써 민족의 생명이 경각에 처하게 될 가능성을 막아내겠다는, <역 봉쇄전략>의 길을 택하겠다는 것이라고 하겠다.
<역 봉쇄전략>은 그렇다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남북간 대화채널을 닫지 않을 것이며, 북한과의 관계 단절 요구를 거부할 것이고 주변국들을 망라한 진영 대립형 포위 전략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것을 뜻한다."
오늘의 현실을 보면, 이러한 김대중의 <역 봉쇄전략>이 얼마나 심대한 타격을 입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양한 방향으로부터 가해지고 있는 김대중 격하운동이 봉쇄전략 추진에 필요한 전제가 되는 까닭을 또한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그의 노벨상 수상을 비롯하여, 6.15 남북 정상회담과 공동성명의 역사적 가치를 외면 내지는 평가절하 하는 일들이 결국 노리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직시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다만 인간 김대중을 겨냥하는 것으로 머물지 않고, 사실은 우리 민족의 생명을 조준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김대중>을 다시 역사의 무대에 오르게 하라, 더 이상 잘못 갈 수 없다**
<김대중>, 그 이름은 한때 은밀하게 가슴에 묻어두어야 하는 불온의 암호였고 그와 동시에 역사를 뜨겁게 달군 민주주의의 횃불이었다. 영남 패권주의에 희생당한 지역차별의 실체였고 저 징그럽고 추악한 한국형 매카시즘의 재판대에 섰던 무고한 죄수의 가슴에 달린 수인(囚人)번호였다. 그런데 이제 그 이름이 다시, 저 어두운 시대에 김지하의 시가 절규했듯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민주주의여"하는 식이 되어가고 있다. 권력의 눈치를 보는 이들은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물론 그에게도 적지 않은 과오가 있고 실패와 한계 역시 없지 않았지만, 그런 과오와 한계, 실패를 모두 덮고도 남을 위대한 족적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것은 외세에 의해 강요되었던 지난 분단의 세월을 통해 핍박받고 시들어 병든 민족의 생명을 어떻게든 구하려 했던 그의 구도자적 헌신이다. 그리고 그 헌신의 결과로 우리는 지난 5년간 유례없는 한반도의 평화적 시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김대중>은 이제 더 이상 권력자가 아니다. 따라서 그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 권력에 대한 아부나 입맞춤이 될 수 없다. 무절제한 개인숭배가 아니다. 그는 우리에게 그야말로 소중한 민족사적 자산이다.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도 결코 훼손시켜서는 아니 될 존재이자, 국제사회에 자신 있게 내어놓을 수 있는 외교적 역량이 부족한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지구촌 그 어디에서도 빛나는 우리 모두의 힘이다.
이 어려운 위기의 시절, 평생 위기의 고비를 목숨을 걸고 헤쳐 온 민족사의 원로(元老)를 능멸하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있는 민족에게서 희망은 기대할 수 없다. 우리 민족의 자주와 평화, 그리고 통일에 관심도 없고 또 원하지도 않는 세력들이 <김대중>, 그리고 그 이름으로 상징되는 가치와 현실을 사방팔방에서 찢어내고 있는데도 침묵하는 민족에게서 역사의 내일은 흑암(黑暗)일 뿐이다.
***김대중, 역사의 새로운 동력으로 재조명되어야**
<김대중>은 역사의 무대에 다시 올라야 한다. 그의 역사적 헌신은 오늘날의 현실에 더더욱 그 가치가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전쟁을 막고 한반도의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북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난 6.15 남북정상회담의 의의와, 민족사의 주도적 추진을 확정했던 공동성명의 기본원칙은 어떤 상황에서도 폄하되거나 좌절될 수 없다.
방향타를 잃은 노무현 정권의 "민족 자해적" 남북 및 외교 정책이 가져올 재앙을 막기 위해서라도 <김대중>, 그리고 그 이름 속에 담긴 민족사적 결단은 오늘의 현실에서 뜨겁게 재조명되어야 한다. 전쟁을 막고 평화를 이룩하려는 우리의 절박한 민족사적 요구를 실현시켜나가는 일에 그의 역할은 여전히 남아 있다. 역사의 자리에 선 <김대중>은 우리에게 평화의 방파제를 다시 구축하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할 <의지와 감동의 육성(肉聲)>이 될 것이다.
*이 글의 크레딧은 프레시안에 있으며 본격적 정치토론의 장인 "시대소리"(www.sidaesori.com)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려는 "djroad"(www.djroad.com)에서도 24시간 이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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