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반도전문가이자 원로언론인 셀리그 해리슨은 최근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한국이 주한미군 재배치 및 철수문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요지의 주장을 폈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큰일'이라는 기존의 고정관념에 얽매여 이를 막기에만 급급했지, 이 문제를 한국에 유리하게 활용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 얘기만 꺼내면 한국은 화들짝 놀라는 것이 그동안 한미관계의 실상이었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북한으로부터의 안보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남북 통일 이후에도 동북아시아 세력균형을 위해 계속 주둔해야 한다는 기존 시각에서 이제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국내 학자에 의해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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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미동맹의 주요 쟁점으로 등장한 주한미군의 재편, 혹은 철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주제로 국방대와 경희대가 26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양준희 경희대 교수는 '미국의 세계전략 및 주한미군 재편'이란 주제로 "(주한미군 철수문제에 대한) 발상을 전환하면 주한미군은 철수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는 결론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양 교수는 발상의 전환과 관련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북한이 위협을 덜 느끼고 한국은 완전한 주권 획득에다 자주 국방을 공고히 할 수 있어 좋은 것"이라며 "반면 주한미군이 한국에 계속 주둔한다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적은 국방비로 북한의 위협과 동아시아에서의 군비경쟁을 피할 수 있어 좋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 교수는 "또한 미국도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자국의 비용과 희생을 절감할 수 있어 좋고 철수하지 않으면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어 좋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미군 철수 뒤의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전쟁 가능성을 부각시키지만,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지나친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양 교수는 한국이 자주국방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유사시 미군의 자동개입이 약속되는 우호적 상황에서 미군이 철수한다면 한반도 전쟁 발발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즉 양 교수의 논지는 주한미군을 둘러싼 한국과 미국간의 논란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미군의 재편에 대한 기술적인 논의를 벗어나 한국 국민과 미국 국민들간의 근본적인 인식차이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 방법은 "역지사지의 지혜를 배우는 것"에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은 미국에 대한 분노와 굴욕을 느끼기 전에 미국이 우리를 위해 해준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감사할 줄 알아야 할 것이고 미국 또한 한국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
양 교수는 한국이 미국에 감사해야 할 사례로 "미국이 아니었으면 한국은 이미 공산화되었을지 모르며, 베트남 국민과 같은 생활수준의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고, 또한 북한 일본 중국을 상대로 군비경쟁을 하거나 다른 강대국의 침략을 받아 식민지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반대로 "미국 또한 한국에 감사해야 한다"며 "한국이 아니었으면 미국이 사활적 이익이 걸려 있다고 생각하는 일본이 안정적으로 번영할 수 있었겠는가? 한국이 아니었으면 어디에 그 엄청난 양의 군사무기를 팔 수 있었겠는가? 한국이 아니었으면 동아시아에서 어떻게 미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물론 이같은 주장에 대한 반론과 비판이 존재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강요하기 시작하면 멀어지고 증오하게 될 것이고 스스로 감사하면 서로가 가까워지고 존경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즉 "한국이 냉전시기의 비대칭적 동맹(asymmetric alliance), 또는 후견·피후견 국가관계(Patron-Client Relationship)에서 동등과 존중심에 기초한 대칭적 동맹(symmetric)을 요구하고 있고 미국 행정부 또한 이제까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의지를 존중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미군 철수 문제를 실행했던 것의 문제점을 파악하기 시작했으므로 한국과 미국은 장기적으로 서로의 국가이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과 한국의 대북정책 공통점은 북한 정권 무시"**
북한 문제에 대해 양 교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계의 모든 불량국가에 대해 단호하고 강한 군사적 압박을 가하겠다는 미국의 입장과 대북포용노선에 따라 북한을 더 이상 중대한 위협으로 느끼지 않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한 한국의 대북정책에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두가지 면에서 다르지 않다"고 역설했다.
"하나는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변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점과 둘째는 북한지도자들의 자존심과 지적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 교수는 김정일 정권을 힘으로 변화시키겠다는 미국이나 햇볕정책으로 북한을 자본주의화시키겠다는 김대중 정부의 정책이나 북한의 체제변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양 교수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달마대사의 이야기를 끌어들인다. 양 무제가 중국에 도착한 달마대사를 마중나와 많은 절을 짓는 등 공덕을 쌓았다고 이야기하자 달마대사는 "고타마 붓다의 길에 보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보상을 바라는 그 마음이 탐욕"이라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DJ 정부의 햇볕정책이 북한의 자본주의화를 염두에 둔 것이라면 그것은 이미 탐욕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양 교수는 또 당면한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도 "자신들은 수만개의 핵을 가지고 있고 세계의 모든 국가에 자유롭게 무기를 수출하고 북한이 원하는 북미평화협정을 체결해주지 않으면서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핵무기를 개발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북한을 변화시킬 주인공은 북한 주민"**
즉 북한의 핵과 무기수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북한이 안보의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해주는 방법을 진심으로 고민하고 북한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하지 않으면 된다. 북한의 정권이 아무리 사악하더라도 그것을 무너뜨리고, 변화시켜야 하는 것은 북한 사람들의 몫"이라는 말이다.
양 교수는 "미국이나 한국이 북한 주민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도울 수 있는 것을 조건 없이 돕고 자신들 체제의 우월성을 그냥 보여주면 되는 것"이라며 "이제까지 인류는 자신의 종교 종족 언어 관습 문화 가치 규범 등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전쟁을 벌이는 일을 끊임없이 해왔다. 이제 인류가 광기의 역사에서 빠져나올 때도 됐다고 생각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미국과의 협조관계, 필요조건일 수는 있으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양 교수가 주한미군 논의의 근본적 사고틀에 대한 전환을 요구했다면 역시 1부 발제자로 나선 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장은 '한반도 통일을 대비한 주한미군의 위상'을 주제로 한국은 탈냉전기 시대를 맞아 민족의 숙원인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선 대미 일변도 외교가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전략적 관점에서 주한미군 문제에 접근했다.
홍현익 안보연구실장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과 한미간 대북정책 공조의 성공여부가 한국내 여론을 통해 주한미군의 장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한미동맹은 대북억지력과 동북아 평화유지에 그 정체성이 있고, 이 역할에 국한될 때 우리의 이익에 기여하는 것이지, 전쟁의 또 다른 원인이 된다면 그것의 존재이유 자체가 의심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실장은 한국과 미국의 북한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에는 차이가 있다며 그 예로 미국측이 주장하는 선제공격이나 미사일방어망(MD) 체제 구축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들고 이와 관련한 양국간의 의견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주한미군의 역할이 북한의 남침억지를 통한 전쟁 방지가 아니라 미국의 선제공격에 따른 한반도 전쟁 발발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양국 지도자간 정치적인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시작전통제권 회수하고 한미연합사 해체해야"**
홍 실장은 또 세계적 냉전 대립구도가 사라진 지금 "우리의 실질적인 가상적은 심각한 경제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뿐인 상황에서 미국에 작전통제권을 게속 맡기고 있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며 "이는 한국의 주권에 관련된 문제이므로 한국 정부는 국방력의 향상을 기하면서 우리의 자주적 주권을 회복하는 취지에서 전시작전통제권을 회수하고 한미연합사령부를 해체한 뒤, 미일동맹과 같은 기능적 역할분담에 입각한 병렬형 수평적 전략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한국의 대미안보의존을 줄여나갈 방법으로 "한국은 미국이 원하는 한미동맹의 우의를 굳건히 지켜나가되 우리가 미국에게 신세지고 있는 정보력 등의 자주국방 능력을 확보해 나가는 노력과 동시에 미국의 동참을 호소하면서 상호안보와 협력안보에 입각한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제 구축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를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미국과의 역할분담을 명확히 해 미국에 대량살상무기 문제 개입권은 인정하는 한편, 우리가 북한과의 군사협상의 주역으로 나서고 남북간 군사적 신뢰구축 및 군축협상을 전개하되 협상 타결 시까지는 국방비를 증액하여 정예화한 자주국방력을 갖추는 데 매진해야 한다"는 게 홍 실장의 주장이다.
한국이 너무 일방적으로 미국에 의존할 경우 중국이나 러시아와 적대관계가 발생하며 중러가 한반도의 분단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북한의 체제 존립을 돕겠다고 합의할 경우에는 우리 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이 지연될 수도 있다는 경고로 볼 수 있다.
홍 실장의 결론은 "북핵 위기를 주변 4강이 이를 보증하는 가운데 남북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협정 이행실태를 관리하는 6자간 대화체를 결성함으로써 해결하여 사실상의 평화통일 체제를 창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는 아직 시기상조" 반론도 치열**
이날 학술회의에서는 물론 "미군 병력과 장비의 대체를 위한 기회비용은 최소 3백억달러, 병력과 장비 운용비용도 연간 10억 달러로 추산되고, 그 외에도 미군은 한국인 고용, 외국 자본의 안정적 투자유도 등의 역할을 한다"(이주선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조정실장)는 등의 주한미군 주둔 필요성에 대한 주장도 제기됐다.
김열수 국방대 교수 또한 "주한미군 3만7천명은 비록 숫자가 적다 해도 강력한 공군력, 전략정보, 증원역량 등을 보유한 주요 대북 억제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한국군은 전략정보의 100%, 전술정보의 60%를 주한미군으로부터 제공받고, 대북신호정보의 대미 의존율은 90%, 영상정보 의존율은 98%"라며 주한미군의 주둔이 계속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미 대사관 공보원장 "동맹재조정 작업중" 확인"**
한편 스티븐 R. 라운즈 주한 미국공보원장은 기조연설을 통해 "일반적인 한미관계와 마찬가지로 군사동맹도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어 미국 정부는 새로운 여건에 맞게 동맹재조정 작업을 벌이고 있다"며 미국 정부의 주한미군 재편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날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학술회의에는 전문가와 군 관계자, 미대사관 직원 등 3백여명의 많은 청중들이 모여 최근 쟁점으로 부상한 주한미군 재편논의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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