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미국 방문에 대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과 미국 일본 3국 정상의 연쇄회담 결과에 따라 세계 안보의 주요 쟁점으로 등장한 북한 핵문제를 어떻게 처리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방향이 설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은 없는 것일까. 도대체 우리나라를 포함해 북한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각각 북핵문제에 대해 갖고 있는 안보상의 우려는 무엇이며 이떠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것일까.
한반도 위기를 집중 연구해온 독일 헤센평화갈등재단의 한스-요아힘 슈미트 연구원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 아직 유효한 94년 제네바핵합의를 기초로 북미 양국의 실용주의자들이 대외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슈미트는 22일 독일 전국지 프랑크푸르터룬트샤우(FR)에 기고한 '의구심과 안보정책상의 우려들(Misstrauen und sicherheitspolitische Aengste)'란 심층분석을 통해 북미 양국이 한반도 위기해소를 위한 다자간 대화틀 확대에 합의하고 94년 제네바합의의 대안으로 경수로 2기중 1기 건설과 러시아의 가스 파이프라인을 북한으로 연결시키는 방안, 그리고 미국의 전시지휘권을 한국에 이양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슈미트는 "중국측과 러시아측은 미국의 주도권을 우려하고 있지만, 미국내 실용주의자들의 다자 회담 방안은 많은 장점을 가져다줄 것"이라며 "우선 다자 회담은 이 지역의 안보정책적 회담의 틀을 형성할 것이다. 이를 통해 협상에서 과격한 정치 세력의 영향력이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슈미트는 또 "중국-러시아, 중국-일본, 한국-일본, 중국-미국간 등 상호간 의구심과 안보정책상의 우려들은 직ㆍ간접적으로 다자회담의 일부가 될 수 있다"며 "이는 다른 나라 안보에 대한 이해심을 촉진시켜줄 것이다. 아울러 이는 군사적 발전이 경제적 협력에 장애가 되는 것을 줄이고 기존의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비통제 원칙들을 강화시켜주며, 이 지역에서 점증하는 핵무기 보유 야욕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동시에 미국은 단독으로 비용을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과 일본이 상당 부분을 부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슈미트는 "물론 이러한 다자대화의 틀이 미국내 매파들을 충분히 자제시킬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의문부호를 남겼다.
슈미트는 동시에 "북한 지도부는 자국이 향후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지역 모든 국가들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강력히 지지하기 때문"이라며 또 "주변국들은 북한 정부가 경제개혁을 실시할 용의가 있다는 전제하에서 북한 정부의 존속을 바라고 있다. 왜냐하면 북한은 안보정책 면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개방을 하지 않을 경우 경제적 협력을 발전시키는데도 장애가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즉 "북한은 2000년 이후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이러한 과정에 착수했다. 이러한 과정은 김정일이 위험하게 만들어서는 안될 진전들을 가져다주었다. 북한의 생존은 '선군(先軍)정책'이 아니라 '선(先)경제정책'을 통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슈미트 연구원이 FR 22일자에 기고한 한반도 위기 분석 보고서의 전문이다.
***의구심과 안보정책상의 우려들/FR, Hans-Joachim Schmidt**
오늘(22일)과 내일(23일)에 걸친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미국 방문에서는 국제사회에서의 북한의 일탈적 행동과 한반도에서의 갈등 봉쇄 가능성을 포함한 북한 문제가 주요한 의제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은 한스-요아힘 슈미트 헤센평화갈등연구재단(Die Hessische Stiftung Friedens- und Konfliktforschung) 연구원이 이 지역의 복잡한 정세와 다양한 주역들이 품고 있는 동기를 분석한 보고서다. 헤센평화갈등연구재단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정책과 동북아 및 세계정세에 대한 영향 분석**
이라크에 이어 2002년 1월 29일 부시 대통령에 의해 '악의 축'의 하나로 지목됐던 또 다른 국가 북한이 이제 세계여론의 주목을 끌고 있다. 평양이 바그다드와 같은 운명을 맞게 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일까? 미국 국방부와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는 벌써 북한 핵 시설을 '정밀폭격'으로 파괴하든지 아니면 스탈린주의적 김정일 정권을 제거해야 한다는 심상치 않은 목소리가 흘러나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이라크에서 신속한 군사적 성공을 이루어냄으로써 벌써 전후 정치적 질서재편의 역할도 가로챘는데, 이제 국방부의 보수적 강경파들이 (북한 문제에서도) 또 다시 콜린 파월 국무장관에 대해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할 것인가? 럼즈펠드, 월포비츠, 볼톤, 펄 등이 마련한 선제공격 독트린이 다시 북한 독재정권의 종말을 위한 시나리오를 제공할 것인가?
이라크의 경우 부시 행정부내 매파들이 강력한 목소리를 냈다고는 하나, 북한의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북한에 대해서는 단순히 북한의 핵무장 저지가 문제될 뿐만 아니라, 기존의 세계질서가 마침내 파괴되는가 아니면 서서히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는가의 문제, 그리고 미국과 중국이 협력적 관계에서 대결적 관계로 변화할 것인가 여부가 관건이다.
또 전 세계적 효력을 지닌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장래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북한이 핵무장을 시도할 경우 일본 한국 대만 그리고 호주도 핵무기 보유를 위해 노력을 기울일 것이기 때문이다.
**1. 회고**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1994년과 95년 북한과 합의를 도출했다. 미국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통해 2기의 경수로를 제공할 경우, 북한은 흑연감속로의 가동과 8천여개의 폐연료봉 재처리를 동결하기로 약속하고 핵확산금지조약에 머물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북한은 첫 경수로 완공시까지 미국으로부터 매년 50만톤의 중유를 무상 지원 받기로 했다. 대신 북한은 경수로 핵심부품 제공 이전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포괄적 사찰을 허용하고 경수로 완공시 흑연감속로를 완전 폐기하기로 했다.
북한과 미국은 또한 정치적 관계를 정상화하고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도 해제하기로 했다. 이러한 합의는 미국 국내에서 논란이 됐으며, 미 의회에서는 보수적인 공화당 진영의 저항에 부딪혔다. 클린턴 대통령은 상당히 힘든 노력을 통해 대북 중유지원을 보장할 수 있었다.
부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미국은 "군축에 대한 경제지원"이라는 원칙을 포기했는데, 보수 진영의 시각에서 보면 이러한 원칙으로 인해 미국이 협박에 굴복할 수도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자국 국민을 탄압하면서 제대로 먹여 살리지도 못하는 스탈린주의적 북한 정권은 신뢰할 수 없는 정권으로 규정됐다. 따라서 포괄적인 지원에 앞서 먼저 사찰과 군축이 실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반년 정도가 지나 미국 국무부내 온건파들은 한국 일본 유럽연합의 지원을 받는 가운데 부시 대통령으로 하여금 1994년 핵합의를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정치적 정상화의 측면은 무시함으로써 북한측을 화나게 만들었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1월말 북한을 '악의 축'의 하나로 지목함으로써 이를 공식 선언했다. 북한측의 시각에서 보면 이것은 제네바 핵 합의가 명시한 정상화 제안(제4조)을 위반한 것이다. 김정일의 불안감은 미국이 2002년 1월에 마련된 비밀 핵 계획에서 북한을 핵공격의 대상에 포함시키고 2002년 9월 선제공격 독트린을 수립하면서 더욱 가중됐다.
경수로 공사의 지연, 중유지원상의 문제들, 그리고 미국에서의 정치적 사태 발전에 대한 의구심이 늘어나는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가 더욱 서방 지향적인 경향을 보이자, 북한 지도부는 물자 부족에 시달리면서 병력 규모면에서 세계 5번째인 자국군 현대화를 위해 1996년부터 우라늄 농축 핵 계획을 비밀리에 가동할만한 이유를 가졌을 법하다. 부시 행정부는 2002년 여름 마침내 이와 관련한 보다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자, 10월초 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동아태담당차관보를 평양에 특사로 파견해 북한 지도부에 미국측의 정보를 제시하고, 조속한 검증 가능한 형태로 핵 계획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도록 했다.
당시 켈리 특사의 방문은 미국의 이라크 정책에 완전히 종속돼 있었다. 미국은 북한측이 이러한 계획을 부인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며, 그럴 경우 증거자료를 갖고 유엔 안보리에서 중국과 러시아에 보다 압력을 가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농락당하지 않겠다는 모습을 보이면서 10월 4일 핵 계획의 존재를 시인했는데, 이는 북미간 핵 합의는 물론 1992년 1월 20일 체결된 한반도비핵화선언을 위반하는 것이었다.
북한측의 핵 계획 시인은 바로 공개됐을 경우, 미국 주도의 이라크 전쟁에 대한 2002년 10월 16일로 예정됐던 미국 의회에서의 결의가 문제됐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위협은 이라크의 위협보다 훨씬 구체적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10월 17일까지 이러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미국내 온건 세력은 유엔 안보리에서의 이라크 결의안에 대해 필수적인 러시아와 중국의 동의를 고려해 북한 핵문제는 외교적 해결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사태를 전개시켰다.
부시 대통령과 국방부 및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포진한 매파들은 이렇게 해서 일단은 북한 문제의 정치적 해결이라는 입장에 고정됐다. 파월 국무장관은 이러한 원칙을 한미일 3국간 협의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의 선언을 통해 강화하고 미국내 매파들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고자 시도했다. 우선은 한반도의 비핵화가 중요했으므로 파월 장관의 이러한 시도는 성공을 거두었다.
동시에 미국은 제2의 위기를 원치 않았으므로 북한 문제를 별로 쟁점화하지 않고자 했다. 부시 대통령이 여러 차례 북한을 침공할 계획이 없다고 공언한 것은 이러한 목적에 기여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우선 북한으로 하여금 핵확산금지조약상의 의무들을 상기시켰다. 물론 미국의 매파들은 11월초 북한에 대한 무상 중유지원을 2002년 12월분부터 중단시켰다. 아울러 북한산 미사일의 예멘 수출을 중단시키는 상징적 조치가 취해졌고, 이후 일본 및 호주와 공동으로 북한의 마약거래를 제한시키는 시도가 진행됐다.
북한은 10월초에 있었던 핵 계획 가동 시인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10월 24일부터는 미국측에 핵 문제에 대한 논의를 하기에 앞서 양자간 직접 대화, 불가침조약의 체결, 그리고 경제제재의 해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북한은 동시에 북미간 핵합의 파기경고로 위협을 가하고 추가 긴장고조 단계를 이용해 미국을 대화로 유도하고자 시도했다.
2002년 12월에는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이 중단돼야 했다. 북한은 2003년 1월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했으며, 이어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의 포기까지 거론했다. 하지만 미국은 당시로서는 이라크 정책을 더욱 의문스럽게 만들 수 있는 북한과의 대화에 응할 수 없었다.
긴장고조를 막기 위해 우선은 러시아가 북한과 미국을 중재하고자 시도했다. 북미 양측에서 제기된 상충하는 요구들로 인해서 '일괄 타결안'이 마련됐다. 하지만 북한은 다자 대화를 거부하는 입장이어서 지난 1월 20일 러시아측 관리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이러한 타협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미국은 북한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겠다고 위협을 가했다.
이와 더불어 미국 국방부는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억제하는 차원에서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 병력을 강화하는 조처를 취했다. 주한미군 병력은 평소보다 10% 많은 4만명 이상으로 확충됐고, 6대의 F-117 전투기가 이동 배치됐다. 아울러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항모가 부산 해역으로 출동했고, 괌에는 24대의 전략용 폭격기가 추가 배치됐다.
미국은 이러한 위협 과시와 더불어 다른 한편으로 중국을 향해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 중국이 파월 장관이 2003년 2월말 중국을 방문하면서 제시한 다자대화를 적극 지지하지 않을 경우 워싱턴에서는 매파들이 북한정책을 주도할 위험이 있었다. 중국은 마침내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북한이 추가적인 사태 발전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석유공급 중단의 위협을 가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북한측에 압력을 가했다. 김정일이 4월 23-25일 베이징에서 열린 3자 회담에 동의한 것은 아마도 중국측의 적극적 역할과 이라크 전쟁의 결과 덕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 배경**
미국에서는 유엔의 역할과 북미간 관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향후 중국정책에 있어서도 의견이 크게 분열돼 있다. 특히 보수적 일방주의자들은 중국을 미국의 세계패권에 대한 근본적 위협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이들은 미국이 질적인 군비 증강을 통해 모든 도전에 대한 억제력을 사전에 갖추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물론 중국은 소수의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미국의 영토를 위협할 수 있고, 대만을 군사력을 동원해 정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긴 하나 국방예산의 증액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군사력에서 미국의 진정한 경쟁국이 될 수 없다.
미국내 매파들은 북한과의 갈등을 특히 미사일방어망(MD) 분야에서의 군비 증강을 정당화하는 명목으로 능숙하게 활용하며, 중국과의 공공연한 갈등을 빚지 않으면서 자주성을 추구하는 한국과 일본을 통제하는데도 활용하고 있다.
중국은 성공적인 경제정책을 통해 전 세계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한중간의 무역규모는 지난해 처음으로 한미간 무역규모를 능가했는데, 미국은 이를 우려의 시각을 갖고 바라보고 있다. 따라서 신임 노무현 대통령의 최근 미국 방문에서는 양국간의 통상ㆍ경제문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이외에도 미국은 부시 행정부의 비타협적 패권 정책과 두명의 한국 여중생을 장갑차로 치어 사망케 했던 미군 병사들에 대한 의심스런 무죄판결 사건으로 한국 사회에서 모범국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러시아 중국 북한은 한미일간의 동맹에 균열을 가하고자 이러한 기회를 활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 행정부 내에서는 경제제재와 군사조치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이 지역의 모든 주역들이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역점을 두고 있는 상황은 이들 국가들에게는 좋은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내 강경파가 이 지역에서 너무 대담한 정책을 취할 경우 균열이 심각해질 수 있다. 한국은 특히 북한과의 전쟁시 휴전선에서 불과 40Km 떨어진 수도 서울이 북한 화포들의 공격에 노출돼 서울의 안보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수도권에는 한국 전체 인구의 1/4이 살고 있으며, 한국 GNP의 절반이 이곳에서 산출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의 지원으로 전쟁에서 승리하겠지만, 이 경우에도 전쟁의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며 북한과의 통일 비용과 전쟁 후유증으로 인한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할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 독일 통일보다도 몇배나 더 커다란 문제들을 안겨줄 것이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가진 언론과의 회견에서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선제공격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북한도 전쟁은 스탈린주의적 통치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감당할 수 없는 입장이다. 중국과 러시아도 결과적으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의 상실과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가져다 줄 이러한 해결책에 반대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과의 대결 상황도 고조될 것이다. 물론 미국의 매파들은 북한 핵 시설에 대한 선별적 공격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는데, 왜냐하면 북한은 선별 공격에 군사적 대응을 보일 경우 종말을 각오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중국은 근본적으로 자유 서방세계에 대한 수출을 기조로 하는 경제성장 때문에, 그리고 해외 에너지 시장에 대한 의존으로 인해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가들과 협력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내 사회적 대립의 심화와 수익성이 없는 국영기업들을 민영화하는 과제는 새로운 중국 지도부에게 거대한 국내 정치적ㆍ경제적 도전이 되고 있다.
따라서 미국 국무부내 실용주의자들은 중국의 점증하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다자 기구의 틀(ASEAN, WTO, 세계은행)과 양자간 협력에 편입시킨다는 목적하에 이러한 의존도를 활용하고자 한다. 이 경우 양측에 유리한 경제관계를 유지하고 대만과의 공개적 갈등을 피할 수 있으며, 중국내 개혁작업을 신중히 지원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대결 상황을 감당할 수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중국내에서도 실용주의적 세력은 미국과의 대결에는 관심이 없다. 결국 워싱턴과 베이징의 온건 세력들은 양국간의 공공연한 대결은 절대적으로 피하려는 공통된 의지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3. 회담 전망**
중국이 중재한 3자회담에서 북한은 파월 장관에 따르면 "양면성을 보이는데 있어서 대가"임을 입증했다. 북한은 한편으로는 지위가 낮은 대표단을 베이징 회담에 파견했는데, 이들은 유화적인 톤을 보이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미국에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베이징 회담에서 북한측 회담 대표는 미국측 대표에게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수출할 수도 있다는 것과 8천개의 폐연료봉 재처리 작업이 거의 완료됐음을 시사했다. 8천개의 폐연료봉 재처리는 아직 미국 정보기관에 의해 공식 확인되지는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 외무성은 3자회담에 앞서 특정한 측면(다자회담 형태, 관계 정상화)에서는 보다 유연성을 시사해주는 성명들을 발표했으며, 베이징에서는 미국측의 "대담한 원칙"에 대해 "대담한 제안"으로 응수하는 태도를 보였다.
미국은 경제적ㆍ재정적 지원 용의를 보이기에 앞서 모든 핵무기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포괄적인 검증부터 시작하려는 반면, 북한측은 군축과 검증 조치에 앞서 먼저 불가침조약의 체결과 관계 정상화(무상 중유지원 제공, 한국 및 일본과의 경제적 협력을 방해하지 말 것)를 요구하고 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양측 제안이 완전히 동떨어진 것들은 아니다. 양측은 모두 상당히 일치된 주장을 내세우고 있으나 그 순서가 다르다. 모든 핵무기를 폐기하고 이의 검증을 허용하겠으며 중장거리 미사일의 실험, 제작, 수출을 중단하겠다는 북한측의 제의는 의미심장한 것이다. 한편 초기에 핵계획을 동결시키겠다고 한 제의는 술수에 능함을 보이는 제안인데, 미국으로서는 이 경우 플루토늄 핵계획의 폐기 뿐 아니라 우라늄 농축 핵 계획의 폐기에 대해서도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러한 보상을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켈리 미국측 대표는 일단계 군축조치로 북한이 모든 핵계획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고 한다. 이는 중요한 미국측의 양보로도 볼 수 있다.
부시 행정부의 고위 인사들은 지난해 말부터 불가침조약이 미국 의회에서는 통과하기 어려운 제안이지만 다른 해결책을 생각해볼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북한은 최근 처음부터 불가침조약 체결을 고집하지는 않겠다는 점을 시사했다. 여기에 다자대화의 틀이 확대되는데 있어 중요한 의견 접근이 있다.
아마도 다자 회담은 일단은 한국 미국 일본과 북한 중국 러시아가 참여하고 나중에는 경우에 따라 유럽연합(EU)과 호주가 가세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미일 3국은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간의 정상회담 결과가 보여주듯이 5월말-6월초에 이와 관련한 제안을 낼 가능성이 높다. 한편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5월 22-23일 미국을 방문하면서 국무부내 실용주의적 인사들의 입장을 강화하고 일본인 납치 문제를 협상 대상으로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일본으로서는 납치 문제에 대한 해결이 없을 경우 국내 정치적으로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을 관철시키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다자 회담 과정이 성사될 경우 북한은 모든 추가적 도발을 자제해야 할 것이며 한미일 3국은 추가 제재조치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 효력을 갖고 있는 제네바 핵합의는 양측에게 암묵적인 협상의 기초를 제공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매파들의 저항이 너무 심해 기존 합의를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나의 타협안으로는 경수로를 1대만 건설해주는 방안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의 가스 파이프라인을 북한으로 연결하면서 러시아를 참여시키는 대안이 논의되고 있다. 동시에 미국은 회담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한국 정부와의 협의하에 주한 미군을 휴전선에서 후방 배치하거나 감축하려고 할 것이다. 이는 북한에 대한 위협을 줄여주는 것이다. 아울러 미국이 전시 지휘권을 한국군에 이양하는 것은 한국을 군축 회담에서 완전한 자격을 갖춘 일원으로 만들 것이다.
중국측과 러시아측은 미국의 주도권을 우려하고 있지만, 미국내 실용주의자들의 다자 회담 방안은 많은 장점을 가져다줄 것이다. 우선 다자 회담은 이 지역의 안보정책적 회담의 틀을 형성할 것이다. 이를 통해 협상에서 과격한 정치 세력의 영향력이 감소할 것이다.
중국-러시아, 중국-일본, 한국-일본, 중국-미국간 등 상호간 의구심과 안보정책상의 우려들은 직ㆍ간접적으로 다자회담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이는 다른 나라 안보에 대한 이해심을 촉진시켜줄 것이다. 아울러 이는 군사적 발전이 경제적 협력에 장애가 되는 것을 줄이고 기존의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비통제 원칙들을 강화시켜주며, 이 지역에서 점증하는 핵무기 보유 야욕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동시에 미국은 단독으로 비용을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과 일본이 상당 부분을 부담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다자대화의 틀이 미국내 매파들을 충분히 자제시킬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북한 지도부는 자국이 향후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지역 모든 국가들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강력히 지지하기 때문이다. 주변국들은 북한 정부가 경제개혁을 실시할 용의가 있다는 전제하에서 북한 정부의 존속을 바라고 있다. 왜냐하면 북한은 안보정책 면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개방을 하지 않을 경우 경제적 협력을 발전시키는데도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2000년 이후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이러한 과정에 착수했다. 이러한 과정은 김정일이 위험하게 만들어서는 안될 진전들을 가져다주었다. 북한의 생존은 '선군(先軍)정책'이 아니라 '선(先)경제정책'을 통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이 성공한다면 이는 비핵화의 문제를 정치적 수단을 동원해 해결할 수 있다는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이는 미국의 대외정책에 있어 다자주의, 핵확산금지조약, 그리고 유엔의 역할을 다시 강화시켜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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