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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식량자주권, 한미 FTA 판도라의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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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식량자주권, 한미 FTA 판도라의 상자

[김성훈 칼럼] MB, "차라리 가만히 계셔라"

"한미 FTA로 미국보다 넓은 경제영토를 가지게 됐다"고 광개토대왕처럼 호언하시는 이명박 대통령이 11월 29일 마침내 한나라당의 단독 비준안에 서명했다. 이로써 장차 국내 농업영토와 식량자주권이 크게 줄어들고, 대한민국의 경제 사법 의료 서비스산업 복지체계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송두리째 헌정하게 되었다. 얼마쯤 생길 이익은 재벌기업, 수출입업자 등 특정산업 특정계층에 한정되는 대신, 피해는 엉뚱하게도 농축산업, 중소상공업 등 취약산업, 취약계층에 재기불능의 멍에를 덧씌울 형세이다. 자영업자와 노동자, 일반서민들도 직간접으로 된서리를 맞게 될 운명이다. 다행인 것은 대통령이나 김황식 총리, 한나라당 의원들도 농업분야가 가장 피해가 클 것이라는 사실만은 어렴풋이 느끼는 모양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29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위원들이 배석한 가운데 한미FTA 부수법안 서명식을 하고 있다. ⓒ뉴시스

미국 농무부 경제연구소 분석에 의하면, 미국산 농축산물의 대 한국 수출액이 연평균 19억3000만 달러, 즉 2조876억 원씩 증가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15년 동안 대략 31조3140억 원이 넘는 미국산 농축산물이 관세 없이 수입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연간 총 단순 농업생산액이 약 42조 원임에 비추어 가히 치명적인 타격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성실한 연구원으로 알려진 정부산하 농촌경제연구원은 미국의 예측치에 훨씬 미달하는 연평균 약 4000억 원, 15년 동안에 합계 약 6조 원 정도의 미국산 농축산물이 수입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미국 측의 예상 수치와 비교하여 무려 5배나 낮게 전망하고 있다. 그러하니 동연구원이 FTA 결과 우리나라 농수산업부문의 생산 감소액이 15년간 합계 12조7470억 원이라고 예측한 것 또한 적당히 할인된 전망치가 아닐지 의심이 되고 있다. 생산비가 평균 2∼4배나 값이 싼 미국산 농축산물의 국내수입액수보다도 우리 농수축산업의 피해 즉, 생산감소액이 3배 가까이 적다는 예측은 아무래도 너무 순진한 것 같다. 아무리 상공업과는 특성이 다른 농수산업 분야라 하더라도, 값이 훨씬 싼 농산물이 관세 한 푼 물지 않고 쏟아져 들어오는데 국내 농축산업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고 믿을 이가 얼마나 될까.

그리하여 151명의 농촌출신을 포함한 여당의 결사대 의원들이 최루가스를 무릅쓰고 눈물을 훔치며 통과시킨 한미 FTA 비준안이 내년 초 발효되면, 그 즉시 38%의 농축수산물이 관세 없이 수입개방 된다. 5년 이내엔 60%가 무관세로 들어온다. 그 후 10년 내에 나머지 모든 농축산물이 마찬가지로 관세 없이 개방된다. 우리 국민의 주식인 쌀과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 및 그 위험물질(SRM)도 무관세 수입의 언질을 받았는지 미국 정부와 국회는 협상성과를 아주 만족해하고 자축한다.

돌이켜보면, 한미 FTA 보다 더 일찍 비준된 FTA들에서는 그런대로 관세폐지 예외품목을 꽤 확보했었다. 한-칠레 FTA에서는 협상중단 등 줄다리기 끝에 쌀, 사과, 배, 쇠고기 등 29%를 예외품목으로 합의하였다. 그리고 포도의 경우 국내산의 생산출하기에는 수출하지 않기로 되었다. 그래서 농업분야의 피해를 당초 예상보다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그런데도 <조선일보>와 이명박 대통령은 이와 같은 협상배경을 잘 몰랐는지 지난 24일 포도농업이 망하지 않고 있다고 사실을 비틀어 해석하였다. 그 외에도 한-싱가포르 FTA에서는 33.3%, 한-EFTA(유럽자유무역연합)하고는 65.8%, 한-아세안 FTA는 30.9%의 품목을 관세철폐의 예외로 인정받았다. 심지어 한-EU FTA에서도 2% 이상의 예외품목을 두고 있다. 오로지 한-미 FTA에선 그나마 지킬 것 같았던 쌀과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마저 무관세로 몽땅 내어줄 신세이다. 박근혜 씨는 FTA가 소비자물가를 인하할 것이라 좋다고 말하면서 ISD도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지역구 농민유권자들을 외면하고 한나라당의 의회 폭거에 용감히 가담한 모양이다. 그런데, 소비자시민 모임은 무관세로 수입된 칠레산 와인 값을 비롯한 삼겹살 등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비싸거나 아주 높게 팔리고 있는 사실을 조사, 발표했다. 무관세로 수입 개방된 다른 품목들도 대동소이하다. 우리나라의 외국산 수입유통구조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말만 듣고 있는 모양이다. 참 안됐다.

한미 FTA 협정은 그에만 그치지 않는다. 미국 농축산물이 홍수처럼 수입되어 국내 농축산물 가격이 폭락할 경우 WTO(세계무역기구)가 허용하는 긴급수입제한조치(SSG/ASG)가 있는데, 한미 FTA에서는 그 발동요건을 아주 까다롭게 했다. 또 품목당 1회에 한해서만 허용하거나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경우는 발동요건을 아예 비현실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수입량이 폭주하여 국내산가격이 똥값으로 떨어져도, 문자 그대로 속수무책인 사태가 다반사일지 모른다. 그뿐만이 아니다. 앞으로 한미 FTA가 발효되면 상당 부분의 현행 각종 농업 및 식품관련 지원정책이 자칫 투자자의 소송대상이 된다. 일부는 아예 폐지 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친환경(우리 농산물) 학교 무상급식조례, 농축산협동조합 지원조치, 각 지방자치단체의 농업 지원조치 또는 구매행위, GMO 표시제도 등 안 걸릴 데가 없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그 무서운 투자자-국가분쟁 중재제도(ISD)이다.

대통령도, 박근혜 의원도 모르고 있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것 중에 세계의 모든 선진국들이 즐겨 의존하는, 농업의 다원적인 공익기능(multifunctionality)이란 것이 있다. 한미 FTA가 시행되면 농업의 이 다면적인 공익기능이 크게 훼손되어 결국엔 국가의 존립과 삶의 질을 위태롭게 할지 모른다. 우루과이 라운드 때 WTO가 먼저 성안했고 OECD가 채택하고 있는 이른바 농업의 비교역적 관심사항(non-trade concerns), 다시 말하여 농업의 다면적인 공익기능은 '농림업이 비단 식량과 목재, 섬유원료의 생산기능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생태계와 기후변화 보전기능, 홍수 가뭄 등 자연재해 완충기능, 수자원 함양기능, 식량주권과 안전성 확보기능, 아름다운 경관유지기능, 지역사회공동체 유지기능, 전통문화보전기능 등등 화폐로 거래할 수 없는 다양한 공익기능'을 포괄하여 말한다. 그런데 이 공익기능들 역시 농림축산업의 몰락과 동시에 크게 훼손된다. 그래서 동서고금에 농업을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라 일컬은 것이다. 우리나라 농림업의 다원적인 공익기능은 화폐가치로 평가할 경우 대략 연간 70조 원 이상의 값어치로 계측된다.

일본의 노다 총리가 지난 11일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참여하겠다고 했을 때, 일본의 조야(朝野)가 농업생산액 절반이 감소(약 8조 엔)하고, 식량자급률이 14% 떨어지며, 그리고 화폐로 평가한 농업의 다원적 가치, 즉, 연간 기준 3조7000억 엔이 상실할 것이라고 추계하며 반대를 공론화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샛별 같은 관변 연구기관들과 경제학자들 어느 누구도 이 같은 연구 분석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현재 식량(양곡)자급률이 25%(쌀을 제외할 경우, 단지 4.5%)밖에 되지 않아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농지의 용도변경 등 토지제도를 대폭 풀어놓고, 농업정책은 예산 배려마저 4대강사업에 밀려 계속 홀대해 왔는데 이 추세가 계속될 경우, FTA 무관세의 완전 개방이 끝나는 15년쯤 후엔 식량자급률이 한 14∼15%나 되면 다행일 것 같다. 아마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세계 최하위국가로 기록될지 모른다.

차라리 이명박 대통령은 당분간 가만히 계셨으면 싶다. 죽지도 않은 강을 살리겠다고 삼천리강산을 불도자로 뒤집어 놓으시더니, 이제는 자빠져 있지도 않은 우리 농업을 이번 기회에 지도를 잘하여 바로 세우시겠다고 하신다. 덴마크처럼 농업수출국가로 키우시겠다 하신다. 턱도 없는 말씀이시다. 우리나라의 대미 농축산물 수출액은 2010년 현재 단 5억1900만 달러이다. 그것도 라면, 초코파이, 커피, 음료수, 담배 등을 빼고 나면, 순수 국내산 우리 농축산물과 그 가공식품의 수출액은 몇 푼일지 따지기조차 부끄럽다. 같은 해 한국은 59억6000만 달러의 미국 농축산물을 수입하였다. 농업부문 대미무역적자가 한해 54억4100만 달러다. 이 수치는 FTA가 발효되기 전 40% 내외의 관세를 물고 수출·입 된 금액들이다. 장차 관세마저 철폐되어 완전 개방되면 어떤 규모의 적자일지는 물어보나 마나이다.

말씀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최소한 총리가 향후 수년간 22조 원을 농업피해보전 대책을 내놓았을 때 그 내역이라도 좀 챙겼어야 할 것이 아닌가. 눈을 씻고 보아도 수출농업육성 항목은 보이지 않는다.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해마다 국가 전체예산이 4∼5%씩 늘어나도, 농림축수산 예산은 실질적으로 줄어들고 있어 22조 원은 대부분이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윗돌 빼어 아랫돌 괴거나, 이름표를 바꿔 단 이번 22조 원 계획에는 지난 정권 때의 42조 원, 119조 원 농업투자 허풍선처럼 생돈은 1조 원 남짓 조금 집어넣고 세련된 노하우로 짐짓 생색만 크게 내는 수치이다. 그래서 이 대통령이 농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말은 대부분의 농업인들에겐 아주 공허하게 들린다. 짐짓 <조선일보>만 모르고, 또다시 기회를 잡으면 언젠가 다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침소봉대식 과거의 보도 관행을 되풀이할 것이다.

▲ 지난 24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한미 FTA 날치기 국회비준 무효화 및 이명박-한나라당 심판 범국민대회'에는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 7000여 명이 참석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자, 그러면 1년밖에 임기가 남지 않은 이명박 정권하에서 무엇을 기대할까. 첫째도 둘째도, 한미 FTA 발효를 늦추거나, 폐기하고, 진솔하게 그 피해를 미리부터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과의 FTA 협상을 내년 1월 개시하겠다는 것은 농업종결 완결판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이 정권 출범 초기 강만수 경제총수가 첫 경제장관회의에서 '이제 농업이라는 말은 하지 말라'고 한 뜻이 우리나라 농업을 이제 끝내자는 것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시간을 버는 기간 이명박 정부는 현 단계 우리나라 농업이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명실공히 농정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 높은 땅값과 소농구조 때문에 가격과 비용 면에서는 경쟁력 증대에 한계를 보이고 있는 우리 농축산업을 '품질과 안전성'으로 승부하는 생태공동체 생명농업으로 탈바꿈하여야 살아날 수 있다. 환경도 살리고 기후도 살리고 국민소비자의 건강도 살리며, 농어민의 생존을 보전하는 생명 유기농업의 전국화와 1촌 1가공 식음료품의 발굴 지원 등 적극적인 대안농정의 추진 말고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세방화(世方化, glocalization)의 전략으로 우리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여 나갈 때에야 비로소 차별화가 가능하다.

그리고 제발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정책과 기반을 재점검하기 바란다. 세계 최하위권인 우리나라의 식량자주권을 지켜나가기 위한 비상대책이 필요하다. 만약, 한미 FTA로 식량주권이 무너질 경우 99%의 국민과 우리 후손들이 두고두고 큰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오죽했으면 미국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마저 '식량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공급하지 못한 나라가 어떻게 국가의 자주를 지킬 수 있느냐'고 호언했을까. 제발 한미 FTA로 착하디착한 우리 농어민들을 '투사'가 아니면 '거지'로 몰아넣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서는 아니 된다.

신이시여, 우리 정부로 하여금 식량주권을 지키고 키워나가도록 굽어살피사 우리 대통령께 그 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전국의 농어민들은 부탁컨대 제발 이 고비를 잘 참고, 땅 팔지 않고, 농촌을 떠나지 않고, 버텨만 주면, 장차 10∼20년 내에 전 세계적으로 농업이 대접받고 농민이 존중받는 그러한 세상이 돌아올 것이라 굳게 믿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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