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우화에 늑대가 어린 양을 잡아먹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이런 저런 트집을 잡는 이야기가 있다. 처음에 늑대는 자기가 마시는 냇물을 새끼 양이 흐린다고 트집을 잡았다. 이에 새끼 양은 자신이 늑대보다 하류에서 물을 마셨기 때문에 늑대가 마신 물을 흐릴 수 없었다고 반박한다. 그러자 늑대는 다시 새끼 양이 작년 이맘 때 자기 험담을 했다고 트집을 잡는다. 이에 새끼 양은 자기는 그 때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늑대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네 에비가 그랬을지도 모른다"며 어린 양을 잡아 먹어버렸다. 독재자는 어떻게 하든 독재의 구실을 만들어낸다는 교훈의 우화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이 이솝 우화에 나오는 늑대의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이라크의 석유라는 커다란 이권을 확보하고, 좁게는 중동에서 그리고 넓게는 세계에서 미국의 패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미국은 자신에게 고분고분하지 않는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라크 침략을 결정해 놓고 이런 저런 구실을 만들어서 결국 이라크를 침공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테러 조직인 알카에다와 연계되어 있다면서 증거는 대지 못했고,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다고 했으나 유엔 무기 사찰단에 의해 그렇지 않음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미국은 어쨌거나 후세인은 제거되어야 할 악이라며 마침내 침공을 하고 말았다. 심지어 유엔에서 이라크와의 전쟁 결의안이 통과될 가망성이 없게 되자 유엔 결의안 따위는 필요 없다고 했다. 전형적인 제국주의적 행태다.
미국은 국제법이나 협약 가운데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준수하지 않는 대신 자신에게 유리한 것은 다른 국가들에 강요한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제재를 가하거나 할 때 항시 국제법이나 협약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구실로 내세운다. 미국의 이런 제국주의적 모습은 소련의 붕괴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된 후부터, 특히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로는 더욱더 노골화하고 있다. 많은 국가와 국민들의 반감을 사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국제관계에서의 일방주의는 오만한 제국주의 모습의 전형일 것이다. 미국의 행위는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라는, 플라톤의 <공화국>에서의 쓰라시마쿠스의 주장을 실증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제재를 가할 때 맹수가 사냥감을 공격할 때와는 달리 반드시 무언가 그럴듯한 구실과 명분을 대야 한다. 야수의 세계에서와는 달리 인간의 세계에서는 남을 공격할 때 그럴듯한 구실이나 명분이 없으면 저항과 비난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할 때도, 일제가 중국을 침략할 때도, 미국이 월맹을 폭격할 때도 다 구실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그 구실이나 명분이 시원찮은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그 구실이 만들어낸 허구의 것으로 드러나거나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과 실제 속마음이 다를 때에도 비난을 받게 된다.
그런데 지금 대다수의 국가나 사람들에 의해 이라크 침공과 관련하여 미국이 내세우는 구실은 억지고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과 진짜 속셈은 다르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번 이라크 침공에서의 미국의 진짜 속셈은 이라크의 석유 장악과 미국의 패권 강화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나 미국이 이런 속셈을 숨긴 채 겉으로 내세우는 이라크 침공 이유는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 조직과 연계되어 있고, 대량살상 무기를 개발하고 소유하고 있고, 국민을 억압하는 사악한 독재정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후세인이 사악한 독재정권이라는 주장은 맞지만 후세인 정권이 알카에다와 연계되어 있다거나 대량살상 무기를 소유하고 있다는 주장은 이미 허구임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러한 점들을 미국의 지배적인 언론들은 잘 다루지 않는다. 대신 부시 행정부가 말하는 그럴싸한 구실과 명분만 주로 제시한다. 반대로 이라크를 위시해 미국의 적대국이나 경쟁국의 언행은 그 속셈을 주로 지적하고 그 정부의 주장은 제대로 보도조차 하지 않는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이르는 과정에서 미국의 지배적인 방송과 신문에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는 명분에 관한 보도나 논평은 많아도 그 속셈에 대한 지적은 거의 없었다. 반대로 이라크의 언행에 관한 보도에는 반드시 그 저의에 대한 지적이 따랐다.
미국의 언론들은 국제문제에 관한 보도에서 이처럼 이중적인 잣대를 적용한다. 이는 미국 언론이 국제문제에 관해서는 미국의 국가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보도한다는 뜻이다. 미국 언론들이 객관주의와 공정성을 강조하지만 그것들은 실은 미국의 국내정치에나 적용되는 원칙들일 뿐이다. 그런 원칙들이 국제정치 보도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언론들은 국제정치에 있어서 행정부의 충실한 대변자에 불과하다.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애국주의적이며 국익에 충실한 보도태도를 견지한다. 미 언론의 그런 자세는 국제정치에 있어서 미 행정부의 주장은 사실처럼 충실히 전달하는 반면에 적국의 주장은 저의가 있는,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보도하는 이중적인 자세로 나타난다.
그러나 다른 나라 언론조차 미국 행정부의 말, 특히 그럴싸한 명분으로 포장된 말을 진실인양 그대로 전달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 언론이라면 미국 행정부의 언행을 보도하면서 그 속셈도 함께 지적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나라의 언론들은 자국의 이해관계라는 관점에서 미 행정부의 언행을 보도하고 따라서 그 속셈을 포함해서 겉 다르고 속 다른 모습도 지적한다. 다른 나라 언론들도 다 자국의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자기 정부의 주장은 진실처럼 전하는 반면에 미국을 포함하여 다른 나라 정부의 주장은 그 진실성이나 진정성을 폄하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의 일부 언론만은 그렇지 않다. 우리 언론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몇몇 대신문과 일부 지상파 방송은 미국 행정부의 언행을 보도하면서 그런 겉 다르고 속 다른 모습을 지적하지 않은 채 그럴싸하게 포장된 명분만을 곧이곧대로 전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언론들은 미국 정부의 발표는 마치 검증된 사실처럼 보도하고, 이라크의 발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주장"으로 보도한다. 이들 언론은 미 정부의 충실한 대변자인 미 언론보다 더 충실한 미 정부의 대변자 역할을 한다. 그러니 이들 언론만을 접하는 사람들은 점점 미국은 선한 나라로, 이라크를 비롯한 그 적대국과 경쟁국은 나쁜 나라로 보게 된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지배적인 오프라인 언론을 통해서는 미국 정부의 속셈을 지적하는 등의 대안적인 논조에 접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미 정부에 비판적인 주장을 접하기 위해서 과거에는 대안적인 오프라인 매체에 접근해야 했다. 그러나 흔히 오프라인의 대안적인 매체는 그 접근은 고사하고 그 존재조차 알기 어렵다. 따라서 지배적인 오프라인 언론들의 논조가 지배적인 인식과 여론이 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보는 신문이나 방송의 논조가 유일하고 옳은 것으로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 언론의 논조대로 미국은 언제나 국제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훌륭한 국가이고, 미국의 적국은 사악한 나라라는 그릇된 인식을 갖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은 인터넷 매체에 의해 얼마든지 대안적인 논조를 접할 수 있다. 이제는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미국의 이중성과 제국주의적 행태에 대한 지적을 비롯해서 겉 다르고 속 다른 모습에 대한 비판적 분석까지 미국의 지배적인 오프라인 언론의 논조와 대비되는 대안적인 논조를 얼마든지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인터넷 매체의 이용자는 미국에 대해서도 더 비판적인 안목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친미적인 신문들이 신문시장의 7할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우리 나라에서 최근 반미 반전 운동이 맹렬하게 펼쳐질 수 있는 것은 대안적인 목소리를 전하는 인터넷 매체들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많은 우리 네티즌들은 온라인 언론에 의해 계몽되어 있다. 그러나 일부 오프라인 매체들은 편향된 정보만을 전달하는 등으로 여전히 반계몽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 예컨데, 이들 언론의 미국에 관한 기사는 거의가 무비판적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인터넷 매체를 통해 미국에 비판적인 대안적 논조의 글을 접하고서 미국의 진면목을 보게 된 계몽되고 자주적 성향이 강한 네티즌들은 이들 언론에서 친미적 편파성을 더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점점 더 이들 오프라인 언론을 거부하게 된다. 이들 오프라인 언론에 대한 커져 가는 네티즌의 불신은 이들 언론의 자업자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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