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을 보는 국내 언론들의 시각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보수를 대변하는 이른바 '조중동'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질서를 강조하며 한국은 그 질서에 순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진보적인 목소리를 대변하려는 '한경대'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국제사회의 질서와 합의를 무시한 명분없는 전쟁이라며 부시 행정부는 이성을 되찾고 국제사회는 평화적 해결을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조중동의 합창 "미국의 국익이 한국의 국익"**
<사진 조선일보 사설>
먼저 조선일보 사설을 보자. 조선일보는 21일 '이라크 전쟁의 砲聲을 들으며'란 사설에서 "전쟁은 그 이유와 명분이 어찌됐든 피할 수만 있었다면 피해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이제 전쟁이 시작된 이상, 국제사회는 전쟁의 옳고 그름에 대한 논쟁 못지않게 '전쟁 이후(以後)'의 상황에 관심을 돌릴 때가 됐다"고 주장한다.
"결론부터 먼저 말한다면 전쟁 이전과 이후의 상황을 비교할 때 전쟁 자체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이를 통해 세계가 더욱 평화롭고 안정됐다는 손익 계산이 나올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미국이 자신들의 전후(戰後) 중동 구상과 비전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국제적 동의와 지지를 얻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에는 명분없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대한 비판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 전쟁에 반대하는 다수 국제사회의 목소리는 무시한 채 유일한 강자임을 자처하는 '주류' 미국이 이끄는 일방주의 세계가 다원주의 사회보다 "더욱 평화롭고 안정됐다는 손익 계산이 나올 수 있어야 한다"며 조선일보 특유의 '주류주의'와 처세술을 강조한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한국 내에선 야당지를 자처하는 조선일보가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반대하는 전쟁을 일으킨 부시 행정부에 대해서는 그저 순종할 뿐이다.
미국에는 한 마디하기 힘든 조선일보가 만만한 것은 역시 한국 정부다. 즉 "(한국 정부는) 한ㆍ미 사이에 맺히고 쌓인 오해와 불신을 털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무엇보다 중요한 게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북한의 도발을 막는 것"이므로 "정부는 북한이 지금처럼 민감한 시점에 국제사회를 자극하지 말도록 미리 경고해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혹시 자신들이 그리 만만하게 여기는 힘 없는 한국 정부가 가만히 있으라고 하기만 하면 북한도, 힘 센 미국도 가만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사진 중앙일보 사설>
'미국을 따라야 한다'는 조선일보식 논조는 중앙일보 사설에서도 나타난다. 중앙일보는 21일자 사설 '국익 위해 파병 결정 잘했다'에서 "한때 양극체제에서 다극체제로 이행해 갈 것 같던 국제질서는 명실공히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을 정점으로 한 재편이 불가피해졌다"며 "이런 질서의 변화에서 우리가 어느 쪽에 서 있어야 하느냐의 문제는 민족의 명운과 직결돼 있다. 국제질서가 개별적 주권국가로 구성돼 있는 한 분쟁해결의 최종 방식은 힘의 외교에 의한다는 사실이 이번 전쟁으로도 증명됐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 사설의 핵심은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지지를 선언하고 공병대대와 의무부대 파병 지원 원칙을 밝힌 것은 올바른 상황판단이며 국익차원에서도 잘한 일"이고 "그래야만 향후 대북 문제 처리과정에서 한.미간 상호 신뢰감을 증진시킬 수 있고 우리의 목소리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명분없는 전쟁을 일으킨 책임이 있는 미국에 대한 이성적 비판보다는 실리적 계산을 앞세웠다. 현실주의가 언론의 비판기능을 잠재운 것이다. 중앙일보가 비판해도 부시가 들을 리 없으니 비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일까.
<사진 동아일보 사설>
동아일보 21일자 '사설: 이라크戰 악영향을 우려하며'는 전쟁의 공포와 우려를 강조하면서도 "(미국의) 테러저지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에 우선하는 논리를 찾기 어려운 시대"라고 규정했다. 즉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번 전쟁을 “이라크 국민을 해방하고 세계를 심각한 위협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했다"며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가 세계안보를 위협한다는 주장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17일 동아일보는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계획을 입증하는 자료로 내세운 문건이 위조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가운데 미 상원 정보위원회의 제이 록펠러 의원(민주)이 14일 연방수사국(FBI)에 수사를 촉구하고 나서 증거 조작설 파문이 커지고 있다"며 "파장의 근원은 7일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보고에서 미국과 영국이 지난해 말 이라크의 대량살상 무기 개발 증거로 IAEA에 제출한 자료가 조작됐거나 부정확하다고 폭로하면서부터"라고 보도한 바 있다.
동아일보 스스로 보도한 기사의 내용을 확인도 해보지 않았던 것일까.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가 세계안보를 위협한다는 부시 대통령의 주장은 무시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미 곳곳에서 거짓으로 드러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주목할 점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밀월기간도 없이 비판의 칼날을 세워온 조중동이 모처럼 현 정부의 이라크전 비전투병 파병 결정을 국익을 고려한 결정이었다며 지지하고 칭찬했다는 점이다. 한국의 국익은 미국의 국익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같은 논리가 남북관계에도 똑같이 적용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부분이다.
***'한경대'의 반론 "부시의 이라크 전쟁은 야만의 시대를 알리는 전주곡"**
조중동에 비해 한경대의 사설은 부시 행정부의 명분없는 이라크 전쟁을 비판하고 국제사회가 미국의 야만과 폭력을 막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신문 사설>
가장 눈에 띄는 신문은 모처럼 사설을 1면에 내세운 한겨레신문이다. 한겨레는 '야만의 시대'라는 사설에서 "세계 평화를 위해 진정으로 ‘무장해제’해야 할 당사자는 바로 미국이 아닌가"라며 "국제법을 제멋대로 어기고 유엔의 권위도 내동댕이치는 미국은 ‘이라크 국민의 해방’을 외칠 도덕적 정당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라크 침략행위는 미국이 힘을 마구 휘두르는 깡패 국가임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한겨레는 "제정신을 잃은 조지 부시 대통령과 미국은 이성을 되찾아야 한다"며 "미국의 이런 야만적 행태에 한국이 가담할 이유는 도대체 없다. 그런데도 미국의 무력 사용과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면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외칠 근거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촛불시위에서 보인 그 평화의 힘으로 야만의 세력을 물리치자는 주장이다.
<사진 경향신문 사설>
경향은 '사설: 기어이 시작된 ‘부시의 전쟁’'을 통해 "2003년 3월 20일"을 "세계는 이 날을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이라며 "가장 문명화됐다고 하는 국가의 가장 야만적인 행위를 통해 자기파괴적 인간문명의 모습이 드러난 수치스런 날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은 "그런데 유엔 안보리 승인을 얻지 못해 미국 단독으로 일으킨 이 전쟁에 수많은 나라가 지지자로 거론되고 있다"며 "유감스럽게 한국도 이 명단에 올라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것이 ‘불가피한 조치’라면서 “우리 국익에 가장 부합한다”고 밝혔다. 미국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의 안보현실이 초래한 불행한 결정"이라고 개탄했다.
경향신문은 결론에서 "국제사회가 미국에 굴복한 채 전쟁을 바라보고만 있어서는 안된다"며 "이 전쟁이 더 많은 파괴를 초래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피해를 조사하고 그 책임을 따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국제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또다른 곳에서 벌어질 수 있는 힘에 의한 해법에의 유혹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사진 대한매일 사설>
끝으로 대한매일은 '美 이라크 공격은 인류의 슬픔'이란 사설에서 "이라크 공격을 정당화하는 것은 오로지 미국의 오만한 힘과 논리뿐"이라며 "미국의 일방적인 힘의 논리에 의한 이라크 전쟁은 참혹한 인명피해를 가져오고 국제 평화를 무너뜨리는 인류의 슬픔"이라고 밝혔다.
대한매일은 전쟁이 이미 벌어진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앞으로 해야 할 일로 전쟁으로 고통받을 이라크인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과 쿠르드족에 대한 보호대책, 그리고 이라크의 문화유산 보호를 지적했다. 대한매일은 또 미국에게는 민간인들의 희생을 최소화할 것을 주문하고 생화학무기를 사용하지 말 것과 이번 전쟁이 중동전으로 확대되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라크 전쟁을 보는 국내 언론들의 시각이 이렇듯 다르다.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은 미국의 야만과 폭력을 비판하는 한경대의 목소리가 국내 신문시장(구독률과 열독률) 전체로 볼 때 10% 내외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반대로 미국 중심의 국제사회 질서에 한국이 순응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조중동의 신문시장 지분은 70%가 넘는다.
현실을 강조하는 보수의 목소리도 있고 이상을 지향하는 진보를 대변하는 목소리도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우며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한쪽 날개는 너무 크고 무거운 반면 다른 날개는 너무 작고 가볍다는 게 문제다. 왜 신문시장의 여론독과점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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