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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매점 '먹이사슬', 수익은 죄다…

[현장] 기초생활수급자들이 물품업체와 '매점 운영권' 거래하는 까닭

10년 넘게 지하철 내에서 신문과 복권을 팔아온 김수임(가명·53) 씨. 김 씨는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장애등급 3급 판정을 받았다. 그의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는 6cm 차이가 난다. 그렇다보니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걷기 불편한 몸이라 앉아서 하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지금은 이혼했지만, 결혼생활 당시 남편은 알콜중독자였어요. 폭력만 휘둘렀지 생활비는 한 푼도 가져다주지 않았어요. 집안 살림에 어떤 보탬도 되지 못했어요. 결국 돈은 제가 벌어야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지요. 온종일 앉아서 손이 부르트도록 마늘 10kg을 다듬으면 3000원 정도를 벌어서 겨우 생활했죠."

그나마 김 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라서 적지만 한 달에 꼬박꼬박 돈을 받았다. 그것과 집에서 소일거리를 한 돈으로 아들과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지하철공사에서 기초수급자를 대상으로 매점을 운영할 사람을 지원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운 좋게 자신의 명의로 매점 운영권에 당첨됐다. 임차인 신분으로 3년간 운영했다. 종일 좁은 곳에 앉아 신문 등을 파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매달 들어오니 그나마 힘들던 살림살이가 나아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3년이던 매점 운영 기간이 만료됐다. 그 사이 김 씨는 기초수급자 신분에서 벗어났다. 들어오는 수입대로 꼬박꼬박 신고하니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서 탈락한 것이다. 물론 매점 운영을 못 하게 되자 수입은 다시 없어졌다. 김 씨는 다시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때서야 매점에 신문, 과자 등을 납품해주는 물품업자에게 명의만 빌려주고 매점 운영을 대리할 경우, 물품업체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서 탈락하지 않을 정도로 수입을 신고해주며 관리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 씨는 "수입을 온전히 갖겠다는 마음에서 물품업체를 사이에 두지 않은 게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불편한 다리로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 매점 운영이었던 김 씨는, 본인 명의의 매점 운영 기간이 만료된 뒤 이번에는 다른 사람 명의의 매점에 대리인으로 일하게 되었다.

다시 매점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물품업체가 매점 물품들을 비싸게 공급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업체를 통해 물품을 공급받는 방법도 있겠지만 김 씨는 임차인이 아니라 이 물품업체를 통해 고용된 대리인 신분이라 불가능하다. 김 씨는 "물품업자들이 물품을 비싸게 공급해 남는 게 없다"고 말했다.

"과자값이 올라도 남는 건 없다"

지하철 2호선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이원배(가명·60) 씨도 김 씨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아무리 과자 가격이 올라도 내가 더 쥘 수 있는 돈은 없다. 손님들은 가격이 오른다고 불평을 하지만 업체에서 그만큼 비싸게 넘겨주기 때문에 나는 더 손해다. 예전에는 800원에 과자를 납품받아 1000원에 팔았다면, 이제는 950원에 납품받아 1100원에 파는 식이다. 실제 가격은 100원 올랐지만 물건을 파는 처지에서는 예전보다 50원 적게 이득을 보는 셈이다."

이 씨는 한 달 수입이 110만 원 정도 되지만, 오전에는 종업원을 고용해 40만 원씩 월급을 주고 있다고 했다. 한 달 순수입은 70만 원이 된다. 이 씨는 "사람들은 이 일이 편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매일 휴일도 없이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 일을 하다 보니 몸이 너무 힘들어서 종업원을 고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악덕 물품업체로 꼽히는 몇 곳은 대리인에게 한 달 수입의 15%까지 자릿세를 요구한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역의 통합판매대라 하더라도 사정이 크게 나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울며 겨자 먹기'로 물품업체와 매점 운영권을 거래할 수밖에 없다. 이 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자격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는 '소득 관리'를 해야한다는 점이 물품업체를 통한 매점 운영권 거래를 부추기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프레시안(이진경)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자리?…물품업체 '명의 모집'

김 씨 등이 운영하는 지하철 매점, 즉 통합판매대는 기존의 신문판매대와 복권판매대가 매출 감소로 운영이 어려워지자, 이에 매점 기능을 더해 만든 점포다. 서울시는 장애인,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중 65세 이상인 사람, 한부모가족의 모 또는 부, 독립유공자 및 유가족에게만 통합판매대 운영권을 주도록 조례로 규정했다.

한마디로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공공기관이 비교적 편한 일자리를 주는 셈이다. 하지만 지금의 통합판매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기존 조례 취지와는 다르다. 물품업체가 지하철공사와 통합판매대 운영 대상자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이다.

서울 지하철역의 통합판매대 운영권 모집기간이 되면 물품업체들은 1인당 10만 원가량을 주고 해당 대상자의 명의를 빌려 모집에 응모한다. 당첨 1순위에 해당하는 1~2급 장애인과 65세 이상 노인이 중심이 된다. 명의를 빌려준 사람이 임대시설 운영권에 당첨되면 그 대가로 한 달에 일정 금액을 지급한다.

또한 본인 명의의 매점 운영 기간이 만료했을 경우, 물품업체에 취업을 시켜준다. 업체 측에서도 일해본 사람이 편하기 때문이다. 김 씨의 경우가 그렇다. 그렇다 보니 취직이 된 신분으로 물품업체의 명령에 모두 따라야 하는 구조다.

대부분 통합판매대 운영에 물품업체가 개입

주목할 부분은 이런 구조가 지하철 내 대부분 통합판매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메트로가 운영하는 1~4호선 통합판매대 약 120개 중 90% 이상이 대리인이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었고,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운영하는 5~8호선 통합판매대는 64개 중 64개 모두가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었다.

물론 이들 중에는 직접 일하기가 어려운 중증장애인이 고용한 종업원, 대리인이 있을 수도 있다. 서류상에는 '임차인-종업원'이나 '임차인-대리인'과의 관계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물품업체의 개입 현황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서울 지하철 측에서도 "물품업체를 거쳐 고용된 인원 및 물품업체의 현황을 파악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프레시안>이 만난 20여 곳의 통합판매대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거의 모든 통합판매대 운영에 물품업체가 개입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지하철공사에서 통합판매대 운영자를 위해 실시하는 혜택 등이 고스란히 물품업체에 돌아가는 묘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통합매점을 운영하는 경우, 서울도시철도공사 기준 월평균 약 13만 원의 임대료를 내야 한다. 서울도시철도공사 측은 "조례대상 임차인의 실질적인 소득 증가를 위하여 2007년부터 2010년까지 2차례에 걸쳐 통합매점의 임대료를 대폭 인하(67%)함으로써 조례대상 임차인의 생계보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부분 통합판매대 운영을 물품업체가 하는 셈이라면, 결국 이 정책은 물품업체의 배만 불린 꼴이 된다. 하지만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는 "불법이 아니고, 수사권이 없다"는 이유로 단속하지 않고 있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물품업체 현황을 알 수 없고, 모두 파악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통합판매대 운영에 물품업체가 개입하는 것은 불법은 아니지만 인정하지도 않고 있다"고 답변했다.

서울 지하철이 편법 운영 부추겼다?

물론 서울시도 이 문제를 모르고 있던 건 아니다. 2년 전부터 이같이 대리인 규정을 편법 운영하는 사례를 파악하고 관련 조례를 개정하려 시도했다.

장애등급 2급 이상 중증장애인의 경우 종전에는 대리인에게 그 운영을 위탁할 수 있었으나 주민등록상 세대를 같이하는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으로 한정하는 내용으로 조례 개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부부가 중증장애일 때 직계존비속이 동거하고 있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조건이라는 등의 이유로 무산됐다.

그러나 문제는 '종업원' 규정이다. 조례와 조례개정안 모두 '대리인'에 관한 규정만 있을 뿐 '종업원'에 관한 내용은 없다.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 측은 임차인과 계약을 맺을 때 '종업원' 규정을 따로 두고 있다. '대리인'은 통합판매대의 운영을 위탁할 수 있는 자이고 '종업원'은 단순히 임차인의 영업을 보조하는 자다.

주목할 부분은 대리인은 장애등급 2급 이상만 둘 수 있으나 '종업원'에 관한 규정은 따로 없다는 점이다. 결국, 통합판매대 임차인이라면 누구나 종업원을 둘 수 있는 셈이다. 만약 2년 전 관련 조례가 개정되었다 하더라도 편법 운영을 피할 수 없었던 셈이다.

"'사회적 기업'을 통한 대안을 마련해야"

박원순 서울특별시 시장은 지난 취임식에서 "지하철과 관련해서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며 "앞으로 서울의 지하철을 세계 최고의 지하철로 만들겠다"고 말한 바 있다.

박 시장은 지하철 노조 활동으로 해고된 노조원 전원을 복직할 뜻을 밝혔으며, 오는 2016년까지 시내 145개 지하철 역사에 단계적으로 스프링쿨러 시설을 모두 갖추기로 했다. 그러나 지하철 통합판매대 운영과 관련해서는 아직 해법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조규영 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위원장은 "서울시도 이 같은 실태를 모두 파악하고 있다"면서 "통합판매대 운영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릴 때 소득누락, 물품업체 개입 문제와 관련한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지금의 제도로는 아무리 조례를 개정해도 편법 운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사회적 기업을 통한 새로운 방향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단지 통합판매대를 임대해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약자의 자활을 돕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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