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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유물을 항일유물로 전시는 잘못"

독립기념관 이사회, 조선일보 윤전기 철거키로

말 많던 독립기념관의 조선일보 윤전기가 마침내 철거된다.

***이사회 "친일관련 유물, 항일유물인 것처럼 전시는 잘못"**

독립기념관 이사회(이사장 윤경빈 전 광복회장)는 17일 서울 여의도관광호텔에서 제53회 정기이사회를 열어 천안 독립기념관 제6전시관 항일사회문화전시관에 전시중인 1930년대 조선일보 윤전기를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독립기념관 관계자는 18일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이사회 결정이 난 만큼 자문이사회 등의 절차를 거쳐 구체적인 철거시기와 계획을 세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립기념관 이사회는 철거 결정 이유로 "이 윤전기는 일제 강점기인 1936년부터 조선일보가 강제폐간된 1940년까지 일왕 찬양과 내선 일체, 일본 육군 지원병 찬양 등 친일 기사 인쇄에 사용된 것으로, 항일 문화운동과는 거리가 멀다"며 "민족의 성지인 독립기념관에서 친일 관련 유물을 항일 유물인 것처럼 전시한 것은 잘못"이라고 밝혔다.

이사회는 철거되는 조선일보 윤전기 대신 미국 하와이 대한인국민회가 1910년께부터 항일운동에 사용한 타블로이드판 윤전기를 전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독립기념관 이사 15명중 이날 이사회에 참석한 이사는 윤경빈 이사장(전 광복회장), 이문원 독립기념관장, 김우전 광복회장, 강신성일 한나라당 의원, 함석재 한나라당 의원, 심재권 민주당 의원, 김삼웅 성균관대 겸임교수, 서영훈 한국적십자사 총재, 김성곤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장, 유흥수 한국독립동지회장, 박경렬 서울시립대 강사 등 11명이었으며, 이승규 문화관광부 문화정책국장과 성무용 천안시장, 최창규 성균관장, 심규철 국회의원 등 이사 4명은 불참했다.

철거가 결정된 조선일보 윤전기는 1987년 독립기념관 개관 때부터 조선일보사의 기증을 받아 전시돼왔다. 이에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시민모임(조아세, 대표 명계남ㆍ임현구)'과 '생활정치 네트워크 국민의 힘' 등 시민단체들은 그동안 독립기념관에 전시돼 있는 1940년 8월11일 조선일보 폐간 당시 윤전기가 "조선일보사가 당시 항일운동을 하다가 강제폐간된 것 같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며 "일제말기 친일논조를 전파했던 조선일보 윤전기를 기념관에서 철거하라"고 요구해 왔다.

이들은 법원에 전시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으며 지난 1일에는 '독립기념관인가 친일기념관인가'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독립기념관에 전시중인 조선일보 윤전기 철거를 위해 대형기중기를 동원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조선일보 "시민단체 주장만 수용한 정치적 철거"**

독립기념관 이사회 결정에 대해 조선일보는 강력반발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18일 1면 '일제말 강제폐간 당시의 조선일보 윤전기-독립기념관, 돌연 철거결정'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이 윤전기는 조선일보가 강제 폐간될 때까지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의 연재 소설 등 한민족에게 민족의식과 독립의식을 일깨워주던 신문을 인쇄하다가 마지막에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 매각됐던 역사적인 연고를 가진 윤전기"라며 "이번 철거는 독립기념관이 일부 시민운동단체가 새 정치세력의 등장을 계기로 주장한 일방적인 내용만을 수용한 정치적인 철거"라고 반박했다.

이에 앞서 조선일보는 지난 1일 사외보인 '독자와의 대화'에 이문원 독립기념관장과의 인터뷰 기사를 싣고 조선일보 윤전기 철거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들의 논리를 공격했다가 독립기념관 노조측으로부터 반격을 받기도 했다.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관장은 "(시민단체가) 시정을 요청할 수는 있으나 전시물을 철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다"며 "우리 기념관은 안티조선 단체의 행사나 윤전기 철거 요구 등도 관람객들에게 알릴 것이고 독립기념관 20년사(史)를 쓸 때 기록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독립기념관 노조는 이와 관련, 지난 6일 '관장의 오만'이란 성명을 통해 이 관장이 지난 4일 월례조회에서 조선일보 인터뷰에 대해 해명하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분들 가운데 일제시대 때 창씨개명 안한 집안 있으면 나와 봐라. 그렇지만 우리 집안은 안했다"고 말했다며 이는 그릇된 역사관의 표출이라고 신랄히 비판했었다.

다음은 지난 6일 독립기념관 노조의 성명 전문.

***"관장의 오만"**

지난 3월 월례조회 시(03. 3. 4) 관장은 최근 시민단체가 친일을 이유로 모 신문사가 기증한 윤전기를 전시하지 말 것을 요구한 데 대하여 관장이 조선일보에 입장을 표명(`03. 3.1)한 것이 큰 이슈로 떠오르자 직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분들 일제시대 때 창씨개명 안한 집안 있으면 나와 봐라", "그렇지만 우리 집안은 안했다", 그리고 윤전기를 철거해야 한다면 일제시대 때 지은 건물을 공기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도 모두 철거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였다.

물론 우리는 관장의 주장이 당시 시대상황을 말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듣기에 따라서는 직원 전체를 확실한 물증도 없이 친일의 후손으로 매도하는 듯 하여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일제시대 사회의 친일행각은 시대적 상황으로 보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문제 제기의 본질(친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동문서답하였다.

이와 같은 관장의 해명은 역사교육을 목적으로 건립된 독립기념관의 관장으로서, 3대가 독립운동을 한 집안의 후손으로서, 평생을 대학에서 교육자로 재직한 교육학자로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역사관이 아니고 무엇이랴!

물론 관장의 선대는 국가가 인정한 독립운동가이다. 그러나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아니면 친일과 무관하지 않다는 식의 논리는 궤변이자 모욕이며, 독립운동을 하지 않은 집안의 자손은 역사의 옳고 그름을 논할 자격도 없다는 식의 발언은 오만한 사고의 극치가 아니고 무엇인가?

우리는 윤전기 철거를 주장하는 시민단체의 방법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친일문제는 특정 신문사의 문제만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아니라 하여 민족 문제를 논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특히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아니면서도 이 땅의 수많은 교육자와 평범한 부모들은 자라나는 청소년들과 자녀들에게 이 나라의 올바른 정의와 애국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관장은 자신의 입장을 해명하려다 직원은 물론 그 조상까지 모욕하였고, 그릇된 역사관만 노출시키고 말았다. 또한 이 사회의 다양성을 외면하고 자신의 주관적 사고를 무리하게 대중화하려다 역사관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며, 급기야는 독립기념관이 친일기념관이라는 충격적인 소리까지 나오게 만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장의 궤변과 오만한 사고는 그간 직원들에게 대하여온 태도로 보아 새삼스러울 것은 없으나 현 관장이 있는 한 내부적 혼란과 갈등의 연속은 물론이요 그릇된 역사관으로 기관의 존립마저 위태로울 수 있어 크게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2003. 3. 6.
독립기념관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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