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조선을 입헌군주국으로 만들어 동북아시아에서 균형자 역할(balancer role)을 하려 했던 이상주의자였다. 그가 1897년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고치고 연호를 광무(光武)로 부여하는 칭제건원(稱帝建元)으로 조선의 중흥을 꾀한 것만 봐도 그렇다.
더욱이 그는 조선왕조에 사실상 조종(弔鐘)을 울린 을사늑약(乙巳勒約) 2년 뒤인 1907년, 서울대 법대 전신인 법관양성소 출신의 이준을 비롯해 이상설, 이위종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파(密派),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지구촌에 알리려다 좌절당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외교권을 침탈하고 통감부(統監府) 설치를 명문화함으로써 조선을 사실상 일본 지배하에 들어가게 한 한 을사늑약은, 순전히 조선의 간신배(奸臣輩) 다섯 마리에 의해 저질러진 통한의 역사다. 을사5적(乙巳五賊)을 모르는 요즘 젊은이들을 위해 인물을 살펴본다.
먼저, 박제순(朴齊純) 오늘날 외교통상부 장관에 해당하는 외부대신이었던 경기도 용인 출신의 대표적 친일파. 1910년 한일병탄 땐 내부대신(내무부 장관, 지금의 행정안전부 장관)이었다. 눈에 띄는 이력 하나.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충청도 관찰사였다. 피 속에 매국노의 DNA가 철철 흐른 인물.
다음, 이지용(李址鎔). 내부대신이었던 그도 선말(鮮末) 대표적 친일파로, 1901년과 1903년 두 차례에 걸쳐 주일전권공사를 지냈으며 1904년 외부대신서리 자격으로 주한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와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를 협정, 조인한 자다. 그 때문에 그는 물론, 그의 통역이었던 구완희(具完喜)까지 매국노로 지목돼, 민초들이 그들의 집에 폭탄을 던지기도 했다. 1907년 5월 중추원 고문에 임명됐고, 1910년 일본정부로부터 백작의 작위를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에 임명되었다.
이근택(李根澤). 오늘날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는 군부대신이었던 그는 1882년 민비(閔妃)가 난을 피해 충주에 갔을 때 신선한 생선을 진상, 민비의 총애를 받게 됐다. 흥선대원군의 몰락으로 민비가 득세한 한 해 뒤인, 1884년 무과 급제 후 승승장구, 1896년 오늘날 육군참모총장(사실상 합참의장)인 육군참령에 임명됐다. 아관파천(俄館播遷) 때 이창렬(李彰烈) 등과 고종을 위협,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토록 하는 협가환어(脅駕還御)를 통모하였으나 이용태(李容泰)의 고발로 제주도에 유배됐다. 1897년 민영기(閔泳綺)의 도움으로 석방된 뒤 1898년 독립협회 해산에 몰두, 그 공으로 한성부판윤(서울시장)에 올랐다.
▲ 이완용 |
권중현(權重顯). 그는 주일공사·한성부윤·참찬 등을 거쳐 법부대신·군부대신을 거쳐 늑약 당시 농상공부대신을 맡았다. 한일병탄 한 해 뒤인 1911년 자작 작위를 받았고 총독의 자문기구인 중추원 고문직에 올랐다.
을사오적의 이력에서도 볼 수 있듯, 이들은 5년 뒤 일본이 왜(倭)가 자행한 한일병탄(경술국치) 때도 요직에서 앞장서 나라 팔아먹기를 지휘한다.
어제 우리는 신묘(神妙)한 국회를 봤다. 여당 애들이 예산심의총회를 하다가 갑자기 본회의장으로 몰려가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가결한다. 그것도 버젓이 살아 있는 국회의장을 두고 부의장이란 자가.
야당도 바보다. 게네들 그 짓거리 할 줄 몰랐나!
아무튼 물 건너갔다.
MB가 내민 비준 후 재협상 카드? 웃기는 소리 마라.
양놈들 어떤 놈인데.
이참에 신묘9적(辛卯九賊)이나 체크해볼까?
▲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
MB, 외교통상 장관 김성환, 통상교섭본부장 김종훈.
국회.
의장 박희태. 얘는 항상 졸린 표정. 어제 마신 폭탄주가 아직 덜 깼나?
부의장 정의화. 어제 의사봉 두드리느라 수고했다.
한나라당
대표 홍준표. 말할 때 제발 침 좀 튀지 마.
원내대표 황우여. 우여곡절 끝에 그대가 신봉하는 샘 아저씨 비위 맞추는 데 성공한 거 축하해.
수첩공주 박근혜. 내년에 한나라 대선 후보는커녕 예비경선에서도 떨어지는 게 떼놓은 당상.
자유선진당 이회창. 법대로 하자며?
다시 한 번 신묘구적 카운트한다.
MB, 김성환, 김종훈, 박희태, 정의화, 홍준표, 황우여, 박근혜, 이회창.
기~일이 빛날 이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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