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실시된 한겨레신문 편집위원장(편집국장) 선거에서 기호 1번 김효순 논설위원(50)이 고광헌 부국장과 이상현 부국장을 누르고 임기 2년의 신임 편집위원장으로 선출됐다.
김 후보는 편집국 기자 2백10명을 대상으로 치러진 1차 투표에서 55%(1백12명)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각각 24%(49표)와 20%(41표) 득표에 그친 고광헌 후보와 이상현 후보를 물리쳤다. 기권과 무효표는 각각 5표와 3표에 그쳤다. 한겨레신문은 오는 3월 22일 주총에서 지난 21일 신임 사장후보로 당선된 고희범 당선자와 김효순 편집위원장 당선자를 공식 선임할 예정이다. 김 후보은 편집위원장 선거 삼수만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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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당선자는 선거에 앞서 밝힌 출마의 변을 통해 "한겨레신문은 진보진영의 성채로 우뚝 서야 한다"며 "당당한 신문, 권력에 강하고 사회적 약자에 따뜻한 신문, 공정하고 독립된 신문을 만들겠다" "더 이상 여당지 혹은 기관지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하겠으며 그 자리에 진보적 정론지라는 평가가 들어서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효순 정책 공약 요약**
김 편집위원장 당선자는 선거공약을 통해 첫째 한국을 대표하는 진보신문을 만들겠다며 "일관된 시각으로 권력을 감시하고 여당지 논란을 불식시키겠다" "시민네트워크의 중심으로 서겠다" "동북아 평화운동의 거점이 되겠다" "진보적 가치의 기수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둘째 독자와 함께 하는 참여신문을 만들겠다며 지역면 분권화와 주말판 신설을 이용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반영, 자문위원단 구성을 통한 독자 참여 확대를 약속했다.
셋째 '품질로 승부하는 일류신문'을 내걸고 당선 즉시 전면적인 지면혁신을 위한 실무팀 구성, 의제설정기능 강화, 지면제작의 품질관리 강화를 공약했다.
넷째 '조직이 살아있는 청년신문'이란 모토를 내세우고 부장단 경쟁력 강화를 위한 부장공모제 단계적 실시, 사안별 태스크포스 구성 등 팀제 활성화, 엄격한 인사관리와 재교육을 통한 기자사기 고양, 여성에게 기회보장, 편집국내 의사소통 원활화 등을 강조했다.
김 당선자는 또 취임 1년 뒤 사내와 평가단으로부터 공약이행에 대한 평가를 받겠다며 "평가 결과에 따라 더욱 분발하고 스스로 채찍질하겠고 공약 이행 평가를 받기 전에라도 우리사주조합의 소환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김효순 편집위원장 선출은 현 한겨레 경영진에 대한 심판"**
김 편집위원장의 당선은 지난 21일 실시된 대표이사 선거에서 고희범 후보가 당선된 것과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3명의 후보가 출마한 선거에서 예상보다 쉽게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득표하며 당선된 것은 한겨레신문 기자들이 지금과는 다른 한겨레신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바람이 집중적으로 반영된 결과라는 게 내부의 평가다.
한겨레신문의 한 기자는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구성원들의 의사가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며 "고희범 사장 후보 선출과 김효순 편집위원장의 선출은 지난 4년간 한겨레신문을 이끌었던 현 경영진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강하다"고 밝혔다.
다른 기자는 "한겨레 내부에서조차 김대중 정부 기간동안 한겨레신문이 여당지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자성이 있는 상태라 여당지 논란에 대해 편집위원장 선거에 나선 세 후보중 가장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한 김효순 후보가 많은 지지를 받은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김 편집위원장 당선자는 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 생활을 시작한 후 경향신문 기자와 한겨레신문 도쿄특파원, 국제부장, 민권사회부장, 정치부장, 편집국 부국장 등을 역임했다.
다음은 김효순 당선자가 지난 24일 사내토론에서 밝힌 편집위원장 출마의 변.
***"지난 2년간 우리 신문이 자랑하는 모든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에서는 많은 혼선이 있었다"**
"문건에서도 밝혔듯이 난 삼수생이다. 남들은 3번씩 하니 토론에 부담이 없을 거라지만 훨씬 더 하다. 기자생활은 어줍잖게 시작했다. 학생 때 징역 살고, 전과로 기자가 된다는 게 어려웠다. 거의 불가능했다. 박정희 독재자가 암살당하고 정치적 격변기에 우여곡절 끝에 기자가 돼 여기까지 왔다. 나의 강점은 다양한 취재와 경험을 많이 쌓아왔다는 것이다. 정치부, 외무부, 국제분야에서 시각을 키워왔다. 특파원하며 제한된 주제에서 벗어나 세계시민, 재외동포의 민족적 정체성 생각해볼 기회를 많이 가졌다.
97년 정치부장으로 대선 치렀다. 나름대로 하자없이 치렀다고 본다. 대선 끝난 뒤 정치부에서 북풍사건 관련 특종 있었다. 다른 신문들 한겨레 베끼기 바빴다. 사회부장 할 때는 한총련 연대 집회 때 경찰이 잔인할 정도로 진압한 것에 맞서 독자적 목소리로 싸웠다. 한 여중학교 교장이 학생을 성추행한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이런 소재를 기사화하는 게 드물었다. 취재기자에게 몇가지 확인한 뒤 사회면 톱으로 써서 명예훼손 걸려 검사에게 취조를 받기도 했다. 내가 다시 출마한 이유는 이렇다. 창간 때 정당팀장으로 합류했는데, 당시 여러 정파들의 압력이 많았지만 나름대로 잘 견뎌냈다고 자부한다.
지난 2년간 편집국을 지휘하는 분들에게 여러 가지 고충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신문이 자랑하는 모든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에서는 많은 혼선이 있었다. 많은 기자들이 울분하고 좌절한다고 알고 있다. 다시 나오면서 고민이 많았지만 우리 신문의 창간정신, 원점을 되찾는 일을 해야 하는 현 상황에서는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 창간정신 되살리는 일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한겨레신문은 세계사상 유례 없는 과정을 거쳐 국민주로 탄생했다. 일본에서 돌아온 뒤에도 일본의 여러 언론들이 찾아와 한겨레의 선례를 따라 하고 싶다고 하는 얘기를 누차 들었다. 논설위원실에 있으면서도 일본에서 원고청탁을 받는 등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었다. 한겨레가 국내만이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 희구세력, 진보세력을 묶는 구심체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지금 사내 갈등을 푸는 방법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일 중심의 조직으로 탄생해야 이 갈등을 풀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인간적 친소관계를 떠나 새로운 각오, 조직에의 헌신성을 중심으로 편집국을 재편해야 한다.
선거를 거치며 여러 후배들과 얘기 나눠봤는데, 선배들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다. 내가 해소할 수 있다. 우리 신문의 전문성, 고급성을 회복 못하고 아마추어리즘에 빠진 흔적도 많이 있다. 기자들도 회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에 실망한다. 2류에 만족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나는 솔선수범해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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