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노무현 정부가 구상하는 한국의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 방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나라중 하나다. 러시아 언론은 노무현 정부의 출범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으며 러시아의 한국 문제 전문가들은 노 대통령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글을 러시아 유력일간지 코메르산트 데일리(Kommersant Daily)가 26일 보도해 눈길을 끌고 있다.
코메르산트 데일리는 26일 한국전문가인 알렉산드르 보론초프(Alexandr Vorontsov) 동방학 연구소 한몽학부 학장이 기고한 '노무현 대통령, 무엇을 해야 하는가?'란 칼럼을 통해 노무현 정부가 최우선과제인 남북관계와 한미관계 정립과정에서 꾸준한 인내심을 갖고 전임자인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 철학을 계승할 것을 조언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아직까지는 반 정도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별다른 요구와 대가없는 원조를 지향하면서 김 위원장과의 대화의 고삐를 부여잡고 있는 기술의 묘, 만일 노무현 대통령이 그러한 묘를 인내와 함께 지속시킬 수만 있다면 김대중 대통령이 행한 공적에 버금가는 남북한 관계 개선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충고다.
보론초프 학장은 노 정부의 대미관계 정립에 대해 "서울 당국은 남북한 관계가 미국과의 전략적 동맹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을 워싱턴측에 각인시켜야 한다"며 "평양에 대한 압력으로 인해 미국의 혈맹, 한국이 화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백악관이 인지토록 해야 한다. 동시에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정도는 군사적 대응이 아니라 정치적 대화라는 점을, 그리고 그러한 대화만이 생존을 위해 북한이 택한 호전적 태도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점을 이해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정립과 관련, 노무현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50대의 젊은 지도자이며 개혁을 지향하고 있는 점 등 유사점이 많지만 "더 중요한 공통점은 푸틴 대통령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세대로서 독일에 대해 특별한 사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노무현 대통령 또한 한국전쟁 당시 유년으로서 북한 지도자인 김정일 위원장에게 원초적인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보론초프 학장은 "한국 새 정부의 대표단은 러시아 당국자들과의 회담 과정에서 북한의 안전보장과 한반도 안정을 전제로 북한 핵문제가 일괄 타결돼야 한다는 이른바 패키지형 처리 방안에 시각을 같이 했다"며 "푸틴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과의 회동이 성사되는 데 일정한 기여를 하고자 하는 듯하다"고 밝혔다.
보론초프 학장은 결론적으로 시베리아/한반도 철도연결 등의 사업에서 한국과 북한, 러시아 3국간 경제협력체제가 더 강화되기를 바란다며 노무현 정부가 지향하는 개혁과 참여민주주의의 연장선상에서 "한러간 관계 발전과 교류협력의 확대가 대한민국 신 정부내에서 더 진지하게 논의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보론초프 학장이 26일자 코메르산트데일리에 기고한 칼럼의 주요내용.
***노무현 대통령, 무엇을 해야 하는가?/러시아 Kommersant Daily, Alexandr Vorontsov**
대한민국의 신임 노무현 대통령은 절대적으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현안 과제들을 숙제로 안게 됐다.
***평양과 워싱턴 사이에서**
전임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 당시 봉착한 최대 현안은 심각한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일이었다. 이미 알려진 바대로 김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경제 현안뿐만 아니라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라는 민족사적 성과를 거두었다. 이와 비교하여 신임 노무현 대통령은 대외정책 영역에서 중대한 과제를 안고 새로운 정부를 출범시키게 됐다.
노 대통령이 봉착한 대외정책상의 최우선적 과제는 물론 대북관계 정립이다. 사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아직까지는 반 정도의 성공을 거두고 있는 듯하다. 햇볕정책의 최종 목표는 상식적이지 못한 북한 체제를 정상적인 성질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사실상 평양 당국의 만족을 얻기에는 다소간의 한계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 북한 체제가 비상식적이라는 규정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특유의 민족적 인도주의에 기초한 대북 경제원조 등으로 햇볕정책에 대한 북한의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결론적으로 현 북한 체제의 변화를 목적으로 하지 않으면서 북한과의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에서 햇볕정책은 현실적이면서도 논리적으로는 약간의 불완전성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여하튼 햇볕정책이 가지고 있는 애매한 패러독스, 즉 북한의 변화를 보다 덜 요구할수록 북한 사회와 체제의 개방과 개혁이 더 빠르게 진행된다는 바로 그 역설적 요소가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을 정착시키고 남북한 모두가 만족하는 통일의 실현이 가능케 하는 유일한 방안인지도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은 바로 그러한 전임자의 철학으로 김정일 위원장에게 다가가야 한다. 별다른 요구와 대가없는 원조를 지향하면서 김 위원장과의 대화의 고삐를 부여잡고 있는 기술의 묘, 만일 노무현 대통령이 그러한 묘를 인내와 함께 지속시킬 수만 있다면 김대중 대통령이 행한 공적에 버금가는 남북한 관계 개선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한민국의 새 정부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햇볕정책을 지속시켜야 한다. 그것은 말 그대로 불공정한 상황에서의 주관적이고 맹목적인 애정을 전제로 한다. 사랑하는 불우 이웃에게 행하듯이, 형이 동생을 대하듯이 마음가짐을 다지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현 한반도의 현실은 이미 한국이 두 개의 상이한 체제가 엮어낸 현대사에서의 승자임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승리가 적대적인 타민족이 아닌 형제이자 동포와의 경쟁을 통해 얻어낸 것이기 때문에 더 대국적인 견지에서의 전술 구사가 요구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두 번째 과제는 미국과의 관계 정립이다. 서울 당국은 남북한 관계가 미국과의 전략적 동맹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을 워싱턴측에 각인시켜야 한다. 평양에 대한 압력으로 인해 미국의 혈맹 한국이 화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백악관이 인지토록 해야 한다. 동시에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정도가 군사적 대응이 아니라 정치적 대화라는 점을, 그리고 그러한 대화만이 생존을 위해 북한이 택한 호전적 태도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점을 이해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그 결과의 하나로서 한국은 북한과의 경제 공조와 수렴의 과정을 통해 통합적인 한민족 경제공동체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 모스크바까지**
노무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유사한 점이 많다. 두 대통령 모두 50대의 젊은 지도자이며 개혁을 지향하고 있고 국민 통합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공통점은 푸틴 대통령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세대로서 독일에 대해 특별한 사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노무현 대통령 또한 한국전쟁 당시 유년으로서 북한 지도자인 김정일 위원장에게 원초적인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한때 대한민국의 적성국가였던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에 대해서 노 대통령은 특별한 이데올로기상의 문제점을 감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특히 대선 기간 중 노 대통령은 한반도 안보와 관련해 러시아가 취한 입장과 동일한 태도를 견지했었다. 이는 북한 핵 문제는 북미간의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하며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는 반대한다는 입장 천명에서도 드러난다. 한국 새 정부의 대표단은 러시아 당국자들과의 회담 과정에서 북한의 안전보장과 한반도 안정을 전제로 북한 핵문제가 일괄 타결돼야 한다는 이른바 패키지형 처리 방안에 시각을 같이 했다.
이와 관련 러시아 외교부는 한국의 신정부가 대외정책의 많은 부분에서 러시아와 동일한 입장을 견지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또한 푸틴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과의 회동이 성사되는 데 일정한 기여를 하고자 하는 듯하다.
더구나 현재 모스크바측은 경제협력사업을 비롯한 3자간의 다각적인 협력사업구상이 실현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TSR/TKR(시베리아/한반도 철도) 연계 사업, 한국의 자본과 러시아의 기술 및 북한의 노동력이 참여하는 북한내 에너지 시설 복구사업, 군사기술 분야에서의 한러간 교류협력 사업 등이며 특히 러시아측은 올해 안으로 이루어질 양국 정상간의 회담을 통해 더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인터넷과 젊은 유권자의 지지에 힘입어 대선에서 승리한 것처럼 노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했던 조순형 의원이 '러시아고려인연합회'라는 민간 단체를 공식 방문한 점이나 동 연합회의 대표인 조 바실리 회장이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된 점은 참여 민주주의의 단초로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본다. 그러한 개혁과 개방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한러간 관계 발전과 교류협력의 확대가 대한민국 신정부 내에서 더 진지하게 논의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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