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원로작가 노만 메일러(Norman Mailer)가 또다시 부시의 이라크전쟁에 대해 비판의 언성을 높였다. 미국이 이라크를 빌미로 전세계를 군사적으로 지배하는 세계제국 건설을 꿈꾸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에 앞서 그는 지난 1월초 한 독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인들은 전쟁에 식욕을 느끼고" 있으며 "이라크전쟁은 시작일 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메일러는 지난 22일 '로스앤젤레스 인문학연구소'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내 보수파들은 '현재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미국이 세계지배를 계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군사력을 이용한 세계제국 건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이라크전쟁은 이를 위한 첫번째 징검다리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미국의 세계제국 건설에 유일한 장애물은 중국이라는 게 부시 일파의 정세판단이라면서, 부시 일파는 중국의 기술 및 경제력이 미국을 능가하게 되는 20년후를 겨냥해 군사력을 더욱 키워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의 군사력으로 중국의 경제력이 미국의 이익에 봉사토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20여년간의 세계정세가 미국의 군사력과 중국의 경제력간의 한판 대결로 결정될 것이라는 분석이기도 하다.
그는 이어 이라크전쟁에 대한 전세계의 저항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거센 것으로 드러나면서 부시가 전쟁에 나설 가능성이 다소 낮아지긴 했으나, 그럴 경우 부시의 정치적 입지가 극히 좁아질 것이며 무엇보다도 부시 일파가 알고 있는 해결책은 전쟁밖에 없다는 점에서 결국 부시는 전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메일러는 부시가 전쟁에 돌입할 경우 미국은 군대문화가 판을 치는 파시즘적 체제로 변모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압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나서야 할 것이나 대기업과 군부, 그리고 대중스포츠가 이미 미국내에 만들어 놓은 파시즘적 분위기 때문에 이러한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메일러 연설의 주요 내용은 인터내서널헤럴드트리뷴(IHT) 25일자에 "제국을 얻고 민주주의를 잃다?(Gaining an empire, losing democracy?)"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다음은 주요 내용.
***"제국을 얻고 민주주의를 잃다?"/IHT 25일자**
이라크와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부시 일파(the Bushites)가 추진하고 있는 것의 배후에는 원대한 계획(subtext)이 숨어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많은 보수파들은 거대한 군사력으로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체제(regime)를 건설하는 것만이 미국을 살리고 현재의 내리막길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미국은 민주주의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내가 말하는 내리막길이란 기업(부정회계)스캔들이나 교회스캔들(성추문), 또는 FBI스캔들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보수파들이 보기에 지금 미국은 미쳐 돌아가고 있다. 게다가 어린아이들은 책도 제대로 읽지 못한다. 특히 보수주의자들이 보기에 미국의 문화는 너무도 성적(性的)이다.
이라크는 제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빌미일 뿐이다. 이라크와의 전쟁은, 부시 일파가 당초 구상했던 것처럼, 신속하고도 극적으로 마무리돼 이들로 하여금 근동 지역을 통제하고-이 지역의 석유자원은 물론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의 수자원을 장악함으로써-나아가 세계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강력한 기반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부시 일파는 또한 이 지역에 민주주의를 이식할 수 있으며 이는 테러 감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와는 반대의 일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테러리스트들은 민주주의에 감명받지 않는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형오한다. 그들은 가장 근본적 종류의 원리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근동 지역에 민주주의가 정착하면 할수록-내 생각에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테러는 더 많이 발생할 것이다.
부시 일파가 보기에 세계제국을 향한 자신들의 계획에 대한 유일한 장애물은 중국이다. 사실 미국의 내리막과 관련해 부시 행정부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과학, 기술, 공학 등 이른바 "근간연구분야(stem studies)"에서 미국 대학들의 실적이 형편없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의 박사학위 취득은 갈수록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반면 이들 근간연구분야에서 아시아인들의 박사학위 취득은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20년쯤 후에는 중국의 기술수준이 미국을 앞서게 될지도 모른다고 부시 행정부는 생각하고 있다. 그때가 되면 미국은 중국에게 "우리 함께 일해 봅시다."라고 제안할지도 모른다. 미국이 로마 역할을 할 테니 중국은 그리스가 돼 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이 미국을 위해 비상한, 교양있는 노예의 역할을 해주되 미국을 지배하려 들지는 말라는 얘기다. 중국이 미국을 지배한다면 그것은 재앙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신보수주의자 가운데 최정예분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시나리오다(나는 로마를 은유적 용법으로 사용했는데, 대체로 사실보다는 은유가 보다 더 진실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다른 나라들과 미 국민의 저항이 부시 일파의 당초 예상보다 훨씬 거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이번에는 전쟁까지 가지 않는 대신, 이라크를 봉쇄하고 후세인을 탈진시키는 새로운 전략이 채택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부시는 매우 심각한 곤경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또는 원하든 원치 않든, 미국은 전쟁에 돌입할 것이다. 전쟁은 부시와 그 일당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그때부터의 암울한 전망은, 미국이 거대한 바나나공화국(독재와 부정부패가 판치는 중남미 등 후진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모멸적 호칭: 역자)으로 변모해 갈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인들의 생활에서 군대가 갖는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결국에는 미국의 시스템 전체에 군대문화가 들씌워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과정이 끝나기도 전에 민주주의는, 그 고상하고도 섬세한 제도는,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다. 인간 본성에 관한 나의 오랜 경험으로 보아-나는 올해 여든이다-민주주의보다는 파시즘이 인간의 자연스런 상태일지도 모른다.
사실 민주주의는 특별한 상태(special condition)이며 다가올 수년동안 우리는 이 특별한 상태를 수호하라는 부름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업은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대기업과 군부, 그리고 대중스포츠의 3자결합이 이미 미국에 파시즘 전(前)단계적(pre-fascistic) 분위기를 형성해 놓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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