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길 위의 신부', 광대 데뷔하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길 위의 신부', 광대 데뷔하다

[윤재석의 '쾌도난마'] 강정(江汀) 파괴 맞선 문정현 하루방

지난 21일 저녁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 전철역 인근 가톨릭청소년센터 지하, CY씨어터에서는 색다른 공연이 펼쳐졌다.
이름 하여 <문정현 신부와 함께 하는 강정평화 유랑공연> '구럼비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출판기념회를 겸한 공연은, 설렘으로 시작해 시종 비감함과 숙연함으로 이어지다가 끝내 관객들의 훌쩍임으로 끝났다.
도대체 어떤 공연이었기에?

'깡패 하루방'의 낮은 속삭임

배우 겸 감독 여균동의 길놀이로 막을 올린 공연은 인디밴드 루나틱의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으로 시작한다.
이어 '강정 마을 4년 투쟁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강정블루스'가 스크린에 깔리는 가운데, 허연 수염 길게 늘어트린 문정현, 강정마을 소녀와 함께 객석 뒤에서 등장한다. 평생 수도자의 길을 걸어온 성자(聖者)의 발걸음, 그 자체다.

'빨갱이' '깡패'로 호(號)가 난 문정현. 하지만 무대에 나와 나지막이 속삭이는 그의 일성(一聲)은 의외.

"이실직고하자면 나는 기도 많이 하는 신부여."

그의 독백은 점층법(漸層法)으로 이어진다.

"난 구럼비에 나가 이렇게 기도혀.
하느님! 저 돌고래와 저 연산호를 보호하소서
붉은발말똥게도 보호하소서
무엇보다 강정 주민을 보호하소서
내가 저 경찰의 방패와 곤봉 앞에서 하는 절규 역시 기도여."


▲ <강정 평화 유랑공연> 문정현 신부 ⓒ<오마이뉴스> 제공

구럼비 哀歌 부르는 광대 신부

희수(喜壽)를 바라보는 연륜도 잊은 듯 사자후(獅子吼)를 토하는 그의 목에선, 금방이라도 피가 치솟을 것 같다. 객석은 적막.

"천만년동안 같이한 통바위 구럼비.
우리의 침대바위, 의자바위, 무릎바위, 제사바위를
군대 마귀가 꽝꽝 친다, 꽝꽝 깬다.
평화바위 까서 죽음의 군항 만들어 뭘 어쩌려고?"


화성 매향리~평택 대추리~군산 울프팩에 이어 서귀포 강정에 둥지를 튼 이 하루방은 끝내 객석을 울리고 처연한 표정으로 저는 다리를 지팡이에 의지한 채 무대를 내려온다.

▲ <강정 평화 유랑공연> 문정현 신부 ⓒ<오마이뉴스> 제공

'第一 江汀'이 속 빈 강정으로

강정(江汀)!
아마도 성남 비행장과 함께 MB 실정 최고의 안보 화두가 될 이곳은 지금 '대양 해군'을 내세운 군의 무지막지한 군홧발에 짓밟혀 신음 중이다.

지난 9월 8일 현장을 방문했을 때, 구럼비 바위는 해군이 발주한 건설사에 의해 분해되고 있었다. 강정주민의 수호신이 군홧발에 의해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 되어버리는 모습을 보며 '육지인'의 마음이 아렸으니, 그곳 사람들 심정이야 오죽했으랴.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강정. 그 강정은 제주인에게 어떤 존재인가!
'제일 강정, 제이 번내, 제삼 도원'이란 말이 있다.
제주에서도 살기 좋은 곳으로 번내, 도원이 꼽히는데, 맨 위에 강정이 자리하고 있다는 얘기.
실제로 강정천을 끼고 있는 강정은 제주에서 유일하게 쌀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고장이다. 그래서 예전엔 강정 마을 사람들만 이팝(쌀밥)을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2000명 채 못 되는 주민이 오순도순 아기자기하게 살아가던 샹그릴라, 강정은 이제 대립과 반목, 폭력과 쟁투로 날이 지내는 아수라(阿修羅)가 돼버렸다.

▲ 한 아이가 구럼비 해안가에 서 있다. 강정 마을 앞바다에 펼쳐진 구럼비는 독특한 용암지대로 올레꾼들에게 인기가 많다. ⓒ프레시안(최형락)

강정기지 건설계획, 절차·국회 무시한 범법

강정 사태를 두고 흔히 말한다. 마을 내 일부 반대자에 외부 불순세력이 끼어들어 순진한 주민들을 '의식화'하는 바람에 국가안보상 중요한 해군기지 건설이 막대한 차질을 빚고 있다고.

정말 그런지 따져볼까?
먼저 절차의 적법성 여부. 제주특별자치도가 강정기지 안(案)을 통과시킨 논리적 근거는 주민의 동의를 받았다는 거다. 근데, 그건 1900여 명의 강정 주민 중 60여 명만을 모아 받은 날치기 찬동이었다. 실제론 1000여 명, 그러니까 강정 주민의 과반이 애초부터 강정 기지를 반대했다.
그것도 일단 넘어가자.

국회가 '강정기지' 건설을 승인하면서 부전(附箋)한 조건은 민항(民港) 위주의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은 '해군기지' 건설을 고집해왔다.

더욱 고약한 건 2009년 국방부와 국토해양부, 제주도가 맺은 기본협약서가 이중으로 작성됐다는 점이다. 즉, 제주도 측 협약서엔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으로 돼 있는데, 해군 측이 보관 중인 협약서엔 '군사기지'로 명시돼 있다. 국회를 무시한 범법 행위.

그럼에도 국방부와 국토부, 그리고 제주도는 공권력, 그것도 '육지 경찰'을 동원해 주민과 시민운동가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였다.

中·日 견제 위해 전략기지를?

중국과 일본을 전략적으로 견제하기 위해선 강정기지가 불가피하다는 주장 역시 논리가 빈약하다. 군은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미 태평양사령부 카드를 빼들곤 한다.

이 역시 소설급 논리 비약이다. 하와이 오하우 섬에 있는 태평양사령부는 작전책임지역(Area of operational responsibility)이 동쪽의 샌디에이고로부터 서쪽의 마다가스카르까지 총 44개국에 이른다. 문제는 태평양사령부가 가장 안전한 후방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강정기지가 들어서면 제주는 중국과 일본의 타깃이 될 뿐, 전략기지 역할은 기대할 수 없다. 평화의 섬 제주가 공격 대상 최전방이 되어버리는 거다.

우리의 제일 교역대상국인 중국,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한 때 혈맹이었던 제4교역국 미국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balancer role)을 해야 하는 대한민국으로선 더더욱 제주 강정기지가 사리에 맞지 않는다.

▲ 강정마을 주민들은 해군기지가 '평화의 섬' 제주도에 들어올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프레시안(최형락)

왜 하필 天下 第一之景에

백 보 양보해서 전략기지가 제주에 필요하다고 하자. 왜 하필 강정인가.
강정 앞바다는 멸종위기종인 연산호를 비롯해 붉은발말똥게, 층층고랭이 등 희귀해양생물 수백 종이 서식하고 있는 '절대보전지역'(2004년 지정)이다. 그런데 2009년 김태환 당시 제주도지사가 느닷없이 보전지역을 해제해버렸다. 이중 협약서가 작성되던 시점과 묘하게 일치한다.

강정을 안고 있는 제주는 자연환경 측면에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세계 유일의 청정지역이다. 2002년 유네스코로부터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데 이어, 2007년 세계자연유산(World Natural Heritage)에 등재됐고, 작년 세계지질공원(Global Geoparks) 인증을 받았다.
지난 빼빼로 데이, 뉴세븐원더스재단이라는 정체불명의 단체로부터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되기도 했을 정도로 자연경관의 수월성을 자랑하는 지자체다.
더욱이 내년 9월 6일~15일 '환경 올림픽'으로 불리는 제5차 세계자연보전총회(World Conservation Congress)가 열릴 예정이다.

제주도가 해군과 야합해 제주도 죽이기에 발 벗고 나선 황당 시추에이션,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강정을 지키는 이들에게 주문한다. 지금부터 WCC 주최기관인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앞으로 편지와 이메일을 보내자. 제주는 제5차 WCC를 치를 자격이 없는 곳이라고.
전 세계 환경인과 관광객들에게도 전파하자. 제주는 더 이상 천혜 환경을 지닌 자연의 낙원이 아니라고.

제일 강정을 속빈 강정으로 만드는 제주특별자치도는 WCC 대회를 반납하라!

▲ 문정현 신부와 필자

* 필자의 이메일 주소는 blest01@daum.net 입니다. 기사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분은 주저말고 메일 보내주세요.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