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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시라크는 상한가ㆍ英 블레어는 하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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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시라크는 상한가ㆍ英 블레어는 하한가

<심층분석> 유럽 패권 놓고 벌이는 두 정상의 샅바싸움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벌이는 영국과 프랑스의 샅바싸움이 미래 유럽의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전초전 양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양국은 지난 17일 브뤼셀에서 발표한 유럽연합의 공동성명 발표에도 불구하고 계속 미국의 이라크 정책에 대한 첨예한 입장차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현재 기선을 잡은 쪽은 프랑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분열됐던 유럽연합의 통합을 과시한 '전쟁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브뤼셀 공동성명을 주도한 공로로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상태이며 프랑스내에서도 반전여론에 적극 호응한 덕택에 지난해 5월 극우파 장-마리 르펜과의 대선 결선투표 때 못지 않은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

반대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자국내의 반전여론을 무릅쓰고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고 있는 정치적 도박(?)으로 자신의 정치생명은 물론 여당인 노동당의 입지마저 위축시키며 궁지에 몰리고 있다. 애초 영국인들에게 제3의 길을 제시하며 큰 인기를 누렸던 블레어 총리가 미국 주도의 이라크 전쟁 계획을 거의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부시의 푸들'이라는 오명까지 듣고 있어 자존심 강한 영국인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이다.

***시라크는 상한가, 블레어는 하한가**

일단 현 상태를 증시로 비유할 경우 시라크 대통령은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는 반면 블레어 총리는 연일 바닥 모를 하한가로 치닫고 있는 셈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칼럼니스트이자 블레어 총리의 절친한 여자친구인 폴리 토인비(Toynbee)는 블레어에게 "부시와의 혈맹관계"는 매우 위험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만일 블레어가 유엔 결의 없이 부시와 함께 전쟁을 강행할 경우 그는 추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같은 경고는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 지도부에서도 나온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따르면 노동당 지도부는 만일 영국이 유엔 결의와 관계없이 미국과 함께 이라크 전쟁을 추진할 경우 오는 5월 1일로 예정된 지방선거에서 대략 5백석 정도의 의석을 잃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노동당 지지자중 1/3은 등을 돌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접전지역 선거에서 반전여론을 극복하지 않고는 승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슈피겔은 19일 블레어의 인기추락과 관련 런던 시내에 모인 사상 최대 규모의 반전시위대가 외치는 목소리를 인용했다. "블레어는 간단히 말해 우리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다. 그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독일 전국지 쥐드도이체차이퉁(SZ)은 20일 '유럽을 놓고 벌이는 결투(Duell um Europa)'란 논평기사를 통해 "브뤼셀 공동성명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시라크와 블레어의 갈등은 여전히 상존한다"며 현재 상태는 일시적인 봉합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개인적 갈등: 시라크 대통령은 블레어 총리 어린아이 취급**

사실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이미 지난해 열린 유럽연합 정상회담에서 시라크 대통령이 블레어 총리에게 "내게 당신처럼 말한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다"며 어린아이 취급을 한데서도 잘 표출된 바 있다. 두 사람 사이의 갈등에는 인간적인 불신까지 내포돼 있는 것이다.

SZ는 그러나 시라크와 블레어의 갈등은 인간적인 것만이 아니라 유럽의 패권을 놓고 벌이는 전통적인 영국과 프랑스의 경쟁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프랑스가 유럽대륙을 대표하는 국가임을 자임하는 반면 영국은 미국과의 연합을 통해 프랑스와 독일 등의 대륙세를 견제함으로써 자국의 유럽내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전략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현재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벌어지는 시라크와 블레어의 경쟁은 그 결과가 불을 보듯 뻔한 상태다. 시라크 대통령은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국내 지지를 받고 있는 반면 블레어 총리는 반대의 처지이기 때문이다.

***블레어, 동유럽 국가들과의 새로운 파트너십 통해 난국 타개 모색**

블레어 총리가 현 난국을 타개하려고 찾는 파트너는 영국내도 아니고 유럽연합 회원국들도 아닌, 새로 유럽연합에 가입하려는 동유럽 국가들이다. 블레어가 이들을 찾는 배경에는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등 유럽연합 가입후보국들이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는 점도 있으나 시라크가 이들 국가들의 미국 지지표명을 강하게 비판하며 인심을 잃은 상황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시라크 대통령은 불가리아와 루마니아가 지난 6일 다른 동유럽 국가들과 함께 미국의 이라크 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데 대해 "당신들은 입을 다물고 있을 좋은 기회를 놓쳤다"며 이로 인해 유럽연합 가입이 위태로워졌다고 경고함으로써 루마니아 불가리아 양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기도 했다. 반면 블레어 총리는 이들 국가의 입장을 옹호하며 영국의 장래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다.

***프랑스ㆍ영국 정상의 싸움은 미래 유럽 주도권 둘러싼 전초전**

프랑스가 서유럽 중심의 유럽연합을 꿈꾸며 패권을 노린다면 영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확장과 더불어 동유럽 국가들을 파트너로 삼음으로써 실추된 권위와 세력재편을 시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아직은 입을 다물고 있는 두 사람이 언제 다시 치열한 설전을 벌일지 지켜볼 일이지만 분쟁의 핵심은 전통적인 영국과 프랑스의 유럽 주도권 싸움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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