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원자력기구(IAEA)는 12일(현지시간) "북한이 핵안전조치협정을 이행하지 않고 IAEA가 북한이 핵물질을 전용(轉用)하지 않았음을 검증할 수 없게" 됨에 따라 북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은 안보리가 즉각적으로 북한을 제재하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북한 핵문제는 지난 1993년에 이어 2번째로 안보리에 회부됐다. 그러나 유엔이 북핵 문제와 관련, 별다른 해법이나 카드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이번 회부는 북미 양자간 문제를 국제문제로 만들었다는 의미만 있을 뿐, 문제 해결의 특별한 계기가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 94년 위기 때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중재로 미국과 북한이 제네바합의를 도출함으로써 위기가 해결됐었다.
이번 결정을 위해 열린 IAEA 특별이사회에는 35개 이사국 가운데 33개국이 참석, 러시아와 쿠바만이 기권했을 뿐 한국과 중국 등 31개국은 찬성표를 던졌다.
러시아 외무부의 알렉산드로 로슈코프 차관은 이사회 결정에 앞서 가진 이타르-타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할 이유는 없다. 현 한반도 상황상 그것은 건설적이지 못하고, 북한의 부정적 반응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핵 위기를 정치ㆍ외교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우리 입장은 아직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미국의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국내외 북한 전문가들의 말을 빌어 북핵 문제의 안보리 회부는 사태해결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단순히 문제 해결을 지연시키기 위한 전술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IAEA "북한과 이라크는 다르다"**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은 이날 오스트리아 빈에서 IAEA 특별이사회가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모든 이사국들은 (외교적 해결 단계를 무시한 채) 바로 제재조치를 취할 시기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평화적 해결방안을 모색한다는 데 이사국들의 의견이 일치됐다. IAEA도 북핵문제를 안보리에 회부함으로써 손을 터는 것이 아니라 북한으로 하여금 국제규약을 준수토록 여전히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IAEA와 달리 유엔은 많은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장점"이라며 "북핵문제의 안보리 회부는 외교적 해결 기회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같은 기회를 열어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우리는 평화적ㆍ외교적 해결책을 찾기 위해 다자간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며 "그러나 모든 당사자가 만족할 방안을 찾는 첫 단계는 북한이 핵무기비확산 관련 국제적 의무들을 준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은 북한이 이같은 의무를 준수할 경우 북한이 우려해온 안보와 경제문제가 해결되는 방향으로 국제사회의 논의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며 북한과 이라크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냐는 질문에 "두 나라 모두 심각한 위협이지만 북한은 핵물질을 추출하고 핵무기를 제조할 능력이 있으나 다른 나라를 침공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이 핵재처리시설 가동을 시작한다면 가동에 돌입하기까지 1-2개월, 핵물질을 추출하는데 또다시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며 "그러나 북한이 이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 1994년 북한과 미국이 체결한 제네바합의가 북핵 문제의 안보리 회부로 사문화된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IAEA는 당사자가 아니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제네바합의가 폐기된 것 만은 아니며, 앞으로의 북한과 미국간 대화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특별이사회는 이에 앞서 북한의 핵안전조치협정 위반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키로 결의하고 "북한이 핵안전조치협정을 이행하지 않고 IAEA가 북한이 핵물질을 전용하지 않았음을 검증할 수 없게 됐음을 유엔 안보리와 총회에 보고키로 결정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IAEA는 그러나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희망하며 이를 외교적 수단으로 실현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점을 동시에 강조했다.
북핵 문제는 IAEA 결의에 따라 지난 93년에 이어 10년 만에 또다시 유엔 안보리 차원에서 다뤄지게 됐다. 지난해 10월 북핵 문제가 미국에 의해 불거진 이후 여러 제재조치를 실행할 수 있는 유엔의 현안으로 등장하며 북핵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셈이다.
IAEA 특별이사회는 결의문에서 북한의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 선언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IAEA 간에 체결한 기존 안전조치협정이 여전히 구속력이 있고 유효하다고 지적하고 "북한은 IAEA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모든 조치를 취해 안전조치협정의 불이행 상태를 시급히 시정하라"고 촉구했다.
IAEA는 애초 대북 압박효과를 높이기 위해 만장일치로 결의안을 채택하려 했으나 33개 참가이사국(35개 회원국중 파나마는 불참, 수단은 회비미납으로 자격 일시 정지상태임) 가운데 러시아와 쿠바가 기권했다. 러시아 대표인 그리고리 베르니코프 빈 주재 대사는 "이 문제를 안보리에 넘기기에는 시기상조이며 현 단계에선 역효과를 낼 수 있다"면서 외교적 해결 시간을 더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쿠바 대표도 협상을 통한 해결을 촉구하면서 "아직 동원할 외교적 수단들이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기권인데 중국은 찬성?**
한편 북한의 전통적 우방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할 것으로 예상되던 중국은 연설에서는 모든 당사자들이 자제를 하며 긴장을 고조시킬 행동을 삼가야 한다고 촉구했으나 막상 표결에서는 안보리 회부에 찬성표를 던져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변화가 주목된다. 북핵문제에 적극 나서라는 미국측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인지 아니면 북한과의 관계에 내재된 갈등이 표출되기 시작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러시아가 반대의사를 표명하며 기권한 점에 비춰 중국의 태도변화는 심상치 않다.
이에 앞서 한국의 최영진 오스트리아 빈 주재 대사는 이사회 연설을 통해 "우리 정부는 방금 채택된 결의안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면서 이는 북한의 NPT 탈퇴로 인해 빚어진 직접적이고 불가피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최 대사는 "북한의 행동은 한반도뿐 아니라 전체 동아시아의 평화, 국제적인 핵비확산 체제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면서 "그동안의 많은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의가 나오게 된 것이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최 대사는 그러나 안보리 회부가 외교적 노력들의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며 안보리가 외교적 해결을 부추기고 촉진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다루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유엔 안보리는 IAEA 특별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북핵문제와 관련한 첫 회의를 다음주 중 소집해 IAEA로부터 사태의 경과와 북한의 핵안전협정 위반 상황을 보고받은 뒤 구체적인 대응책 논의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핵문제가 유엔 안보리에 회부된 뒤에도 북한이 계속 핵 안전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안보리는 대북 경제제재 등을 포함한 유엔 차원의 제재 방안을 논의하는 절차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일단 국제사회가 북핵 문제에 대한 해결방식을 즉각적인 제재조치보다는 외교적 수단을 추구할 것으로 전망돼 유엔 안보리는 당장 제재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북한에 핵안전조치협정 준수와 NPT 복귀 등을 여러 차례에 걸쳐 촉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각국 반응: 미국 "환영", 일본 "지지 그러나 제재는 신중", 러시아 "반대"**
IAEA의 북핵 문제 안보리 회부결정에 대해 미국 백악관은 12일 성명을 내고 "IAEA 이사회 결의는 국제사회가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표시다. 우리는 중국 프랑스 영국을 포함한 광범위한 국가들이 북한이 국제적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과 이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보고한다는 것에 투표한 사실을 기쁘게 생각한다. 오늘의 투표는 이 문제가 미국과 북한 쌍방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과 세계 사이의 분쟁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백악관은 또 "미국은 이 프로그램에 대해 외교를 통한 다자적인 해결을 추구한다. 우리는 안보리 이사국과 다른 우방 및 동맹국들과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을 규명할 수 있고 취소할 수 없는 방법으로 제거한다는 공동의 목적을 향해 긴밀히 협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은 국제원자력기구의 북핵 문제 유엔 안보리 회부와 안보리 차원의 논의는 지지하지만 대북 제재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은 12일 발표한 외무성 담화를 통해 "북한이 이번 결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조속하고 검증 가능한 형태로 핵무기 개발 계획을 폐기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의 입장은 북핵 문제의 심각성 등을 감안할 때 안보리 회부는 불가피하지만 그렇다고 안보리가 조기 대북 제재조치를 취하려 할 경우 북한이 핵연료 재처리 시설 가동이나 미사일 발사 실험 등 대항조치를 취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은 이와 함께 안보리가 북핵 문제를 논의할 때는 한국과 일본의 입장이 반영돼야 한다며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한일 양국이 참여하는 '5+2' 협의체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IAEA 이사회 투표에서 반대의사를 밝히며 기권한 러시아 외무부의 알렉산드로 로슈코프 차관은 이사회 결정에 앞서 가진 이타르-타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할 이유는 없다. 현 한반도 상황상 그것은 건설적이지 못하고, 북한의 부정적 반응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핵 위기를 정치ㆍ외교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우리 입장은 아직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그동안 북핵 문제는 대화를 통한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며,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이 직접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LAT "북핵 문제 안보리 회부 효력 없을 것"**
한편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12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 핵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키로 했지만 유엔은 IAEA와 한국, 미국 또는 북한에 영향력을 끼치려 노력해 온 다른 국제사회 구성원들보다 더 북한을 변화시킬 행운을 얻기는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유엔, 북핵 위기 완화할까(Will U.N. Cool Down North Korean Crisis?)'라는 서울발 분석기사를 통해 이같이 진단했다. 아시아재단 서울사무소 스콧 스나이더는 "북한 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키로 한 조치는 외교적 전략이 없다면 그리 좋은 방안이 아니다"며 "이 조치가 북핵 문제를 계속 무시하기 위한 방안인지 아니면 실제로 문제를 다룬다는 것인지"에 의구심이 간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이동복 명지대 교수는 "서울시민들은 북핵문제의 안보리 회부를 달가워하지않고 있다"며 "따라서 모든 것이 보류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LAT는 "북한 핵 문제는 10년 전에도 유엔 안보리에 회부된 적이 있었으나 클린턴 행정부가 평양과의 직접 협상에 합의했다"며 최근 상황과 관련, 북한 핵 문제 전문가들은 안보리가 문제를 사실상 덮기에 앞서 형식상의(pro forma) 비난 성명을 채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안보리에서) 아무 것도 없을 경우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 될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