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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한반도 군사력 증강 요청 배경은?

이라크전 대비한 순환배치인가, 94년 위기의 재연인가

북한이 영변에 보관된 핵 연료봉의 이동을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온 데 이어 미태평양 군사령부가 한반도 주변의 군사력 증강을 국방부에 요청했다는 미 언론들의 보도가 잇따라 그 배경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 태평양사령부, 한반도에 군사력 증강 요청**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BS, CNN 등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1일(현지시간) 태평양 군사령부가 최근 북한의 핵 관련 움직임에 대비한 억지 차원에서 한반도 주변의 해·공군력 증강을 국방부에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부시 행정부는 일관되게 북한 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번 병력 증강 요청은 위기가 높아질 경우 군사력을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는 신호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토머스 파고 태평양 군사령관이 북한에 대한 억지력 차원에서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에게 최소한 1개 전투기 대대의 한반도 주변 증강을 요청했다"며 "이번 군사력 증강조치는 북한 핵 위기가 불거진 이후 미국의 첫 군사적 대응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밝혔다.

CBS는 "파고 사령관이 공군 중심으로 병력 2천명을 증강하고, B-52와 B-1 폭격기 24대를 태평양상의 괌 공군기지로 이동시키며, F-15 전투기 8대와 U-2 등 첩보기를 한국과 일본에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와 관련 "미 국방부의 관계자들은 이라크 전쟁시 걸프지역으로 배치될 항공모함 키티호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통상적' 요청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북한 핵문제에 대한 군사적 대안이 여전히 열려 있음을 북한에 알리려는 부시 행정부의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CNN은 "태평양군사령부 요청에는 F-15 전투기 8대를 일본에 증파하는 것 등이 포함돼 있다"며 "요코스카항을 모항으로 기동하는 항공모함 키티호크호가 자리를 비울 때 주일미군의 공군력을 증강시키는 것은 통상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방송은 또 "미국이 이라크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기 위해 전력 증강이 검토돼 왔고, 또 하와이에서 훈련중인 항모 칼 빈슨으로 키티호크의 임무를 대체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태평양사 전력 증강 요청은 이라크전에 동원되는 키티호크 전력 공백 메우기 위한 것"**

이같은 미국 언론들의 보도를 종합해보면 파고 태평양군사령관의 전력 증강 요청은 이라크전에 동원될 것으로 알려진 항모 키티호크호의 전력공백을 메우기 위한 것인 동시에 유사시 한반도 돌발상황에 대한 억지차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직까지 북핵 문제에 대한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차원에서 전력증강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은 코소보 사태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 키티호크호를 동원하면서 대체전력을 배치한 전례가 있다"며 "태평양사의 이번 전력 증강 계획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럼스펠드 장관이 파고 태평양군 사령관의 요청에 대해 항공모함 칼빈슨호를 한반도 근해에 파견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칼빈슨호 파견은 일본에 기지를 둔 항공모함 키티호크호가 대 이라크 전쟁을 위해 걸프지역에 파견될 경우 한반도 주변의 군사력 공백을 메우게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번에 전력증강을 요청한 것으로 보도된 미 태평양군 사령부는 '작전구역이 세계에서 가장 넓은 사령부'라는 별칭을 갖고 있을 만큼 최대 전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의 9개 통합군사령부중 한국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태평양군 사령부는 주한미군을 예하 사령부로 두고 있고, 한미 양국의 증원 병력 전개계획에 따라 한반도에 긴급사태가 발생할 경우 미군병력 투입 임무를 주도하게 된다.

***북한 플루토늄 이동설도 제기돼**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군사력 증강 요청이 최근 북한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는 분석도 나와 주목된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2일 미국은 최근 정찰위성을 통해 북한 영변의 핵시설에서 트럭들의 활발한 움직임을 포착했으며, 이는 플루토늄 추출을 위해 사용후 핵연료봉을 옮기는 것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LAT는 2일 '북한 위기유발 의도인 듯'이란 기사에서 북한이 핵 조립라인을 설치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나온 위성사진 증거는 부시 미국 행정부가 이라크 공격에 몰두한 때에 맞춰 한반도에서 다른 위기를 촉발하려는 북한의 의도일지도 모른다고 미국내 전문가들이 경고했다고 덧붙였다.

부시 행정부는 공식적으론 이 보도에 대해 답변하지 않고 있으나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이는) 북한을 국제사회로부터 더욱 고립시키는 또다른 도발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 또한 "연료봉을 이동하는 것은 국제사회에 매우 심각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2일 북한이 영변의 저장시설에서 연료봉의 이동을 시작했다는 미국 언론들의 보도에 대해 "그런 정보를 들은 바 없다"며 "구체적인 사실 여부를 확인중"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영변 핵시설 내 5Mw원자로 주변에서 트럭의 이동이 인공위성에 의해 잡혔다고 하더라도 수조 속에 밀봉·보관 중이던 사용후 연료봉을 이동 중인지 확인하기 어렵다"며 "미국 행정부가 사용 후 연료봉 이동에 우려를 표시한 것은 연료봉 이동을 확인했기 때문이 아니라 연료봉 재처리에 대한 원칙적인 우려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과연 미 태평양사령부의 병력 증강 요구가 이라크전 발발에 대비한 단순한 순환배치인지 아니면 북핵 개발 움직임에 따른 대응인지 여부는 아직 알 길 없다. 그러나 한반도 주위에 군사력 증강배치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는 점은 이번 위기가 지난 94년 북핵 당시와 같은 위기국면으로 진입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노무현 새정부에게 가하는 외교적 압박이 증폭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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