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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공호가 더 위험하답니다”

김재명의 '뉴욕통신' <2> 이라크에서 온 편지

걸프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90년 8월부터 이라크에 가해져온 유엔 경제제재의 최대 피해자는 이라크 민초(民草)들이다. 경제제재는 절대권력자인 사담 후세인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이라크 사람들의 삶이 황폐해지도록 만들었다. 이라크는 지난 10년 동안 1백50만명이 의약품 부족 등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해왔다. 이 주장이 맞는지는 검증을 거쳐야겠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다시 전쟁이 벌어진다면 이라크 민초들의 고난이 훨씬 더 심해질 것이란 점이다.

아래 편지는 전 대학교수이자 네 아이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로버츠가 이라크 현지에서 보내온 것으로, 미국의 온건좌파 주간지 <네이션>(The Nation)지 최근호(2월 3일자)에 실렸다. 엘리자베스가 실무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광야의 목소리’(Voices in the Wilderness)는 미 시카고에 본부를 둔 의료구호기관. 2002년 9월 이래 이라크전쟁을 반대하는 전세계 비폭력 반전단체 연합인 ‘이라크 평화팀’(Iraqi Peace Team: www.iraqpeaceteam.org)을 조직하는 데 앞장 서온 단체다. 전쟁이 벌어진다면, ‘이라크 평화팀’은 이라크 국민들이 겪게될 고통을 외부세계에 알릴 참이다. 필자


***“미국이여, 전쟁 일으키지마“**

무려 아홉 명의 아이를 둔 파티마는 그녀의 남편, 여동생과 함께 방 3개 짜리 집에서 살고 있는 이라크 여인이다. 나(엘리자베스 로버츠)는 파티마에게 이렇게 물었다. “전쟁이 일어날 것에 대비해, 무슨 준비라도 하고 있나요?" 그녀의 대답은 심드렁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별로 없어요. 난로에 쓸 몇 리터의 등유를 준비했고, 만약 바그다드를 떠나야 될 때 필요한 휘발유 약간을 마당에 묻어놓은 게 전부예요. 우리는 미국이 (부시 미 대통령이 마음을 바꾸어) 전쟁을 일으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지요“

교육을 받은 중산층 여인인 아말은 (바그다드의) 티그리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가까이에서 살고 있다. 그녀의 집은 1991년 미군 공습으로 파괴됐다. 그녀에게 전쟁이 일어나면 방공호로 갈 생각인가 물어봤다. “아니에요. 방공호들은 안전하지 못해요. 우리 가족은 그냥 집안에 함께 들어앉아 있다가, 만일 무슨 일이 생긴다면 (미군 공습을 받게 된다면) 같이 당할 겁니다”

아말의 딸은 바그다드 아마이리야 방공호에서 일어난 일을 내게 일깨워주었다. 1991년 걸프전쟁 당시 그 방공호에서는 미군이 쏜 미사일로 4백15명의 부녀자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이라크에는 지금 미국이 방공호를 의도적으로 공격할 것이란 얘기들이 나돌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방공호를 이용할 생각들을 품지 않는다.

우리 의료진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학교의 선생님들은 전쟁에 대비해 학생들에게 이라크 국기가 게양되면 총을 쏘도록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어린 학생들조차 폭발음에 익숙해 있는 모습이다.

이라크 정부 당국은 11월, 12월 두 달 동안의 식량을 배급하면서 국민들에게 아껴 먹고 남은 몫은 (전쟁이 일어날 것에 대비해) 비축하라고 당부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미 여분의 식량을 다 먹어 버렸거나, 아쉬운 현금을 마련하느라고 팔아 버린 상황이다. 우리가 만났던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한 관계자는 “이라크전쟁이 일어난다면,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식량난과 물 부족으로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바그다드 거리에서 전쟁에 대비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내 사무실 창 밖의 거리는 오가는 자동차와 사람들로 붐빌 뿐이다. 휘발유는 1갤런(3.8리터)에 5센트(한국 돈 60원 남짓)이다. 사람들이 걷는 길은 제대로 포장이 안 돼 둘쑥날쑥하고, 가게들에 진열된 상품들은 보잘 것 없고 먼지투성이다. 이라크는 걸프전쟁이 터지기 전에는 거의 선진국 수준에 가깝게 잘 살았지만, 10년 뒤인 지금은 제3세계 수준에서 (궁핍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중이다.

우리 의료구호팀은 며칠 전 이라크 주재 유엔 구호기관인 OCHA를 방문했다(OCHA는 지난 1995년 인도적 차원에서 이라크 석유를 팔아 식량을 비롯한 민간 생필품을 수입하도록 유엔 안보리가 결의한 이른바 ‘석유식량 프로그램’에 따라 이라크 현지에서 활동하는 기관이다). 그곳 책임자는 우리에게 “유엔 경제제재는 이라크 사회 구석구석을 마비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10년 넘게 이어진 경제제재로 말미암아 이라크는 식량은 물론, 식수, 약품, 응급차 등이 턱없이 모자라는 형편이다. 그런 탓에 환자를 치료할 의사도 모자란다.

***뇌성마비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

이즈음 전쟁이 다가오고 있음을 나도 느낀다. 우리 의료구호팀은 거의 매일 밤마다 모여 앉아 공습, 지상공격, 또는 쿠데타가 벌어질 경우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 논의를 거듭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엄중한 상황 속에서 이라크 국민들에게) 우리가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여기 남아서, 나의 조국(미국)이 가한 공격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겪는 사람들과 더불어 그 고통을 나눌 것이다.

나는 이곳 이라크에 오기 전에 유엔의 경제제재가 이라크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글들을 읽었다. 그렇지만 막상 현지에서 경제제재의 희생자들을 만나보니 충격적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나는 (알바니아 태생으로 1979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마더 데레사가 설립한) 데레사 수녀원의 '사랑의 선교회'가 운영하는 한 고아원으로 가 일을 한다. 그곳에는 아주 심한 뇌성마비 증상을 보이는 꼬마 아이들이 20명쯤 있다. 그들 가운데 단지 두 아이만이 말을 조금 할 뿐이고, 어떤 아이들은 머리조차 바로 들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빛나는 눈동자에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고 있다.

하루 3시간쯤 나는 그 아이들을 안고 어루만져 주면서 함께 놀이하며 노래도 부른다. 아이들의 눈길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꿈틀거리며 마루를 가로질러 기어와 머리를 내 무릎에 눕힌다. 이 순간만은 나는 (미국과 이라크 사이에 낀) 애매한 처지가 아니다. 나는 바로 이곳에 속해 있다. 나는 아이들을 먹이고 목욕 시켜준다. 그들은 나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는다. 나의 미소가 바로 그들이 바라던 것이다. 장난감도 좋지만, 웃음 짓는 어른의 얼굴이 그들에겐 바로 하늘나라다. (이라크전쟁으로 어른들의 얼굴이 어두워진다면, 전쟁이 그 아이들에서 행복을 빼앗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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