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主之所導制其臣者 二柄而己矣 二柄者刑德也
何謂刑德曰 殺戮之謂刑 慶賞之謂德
爲人臣者畏誅罰而利慶賞 故人主自用其刑德 則群臣畏其威而歸其利
(二柄篇)
“임금이 신하를 제어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의 수단(자루)이 있을 뿐이다. 두 가지 수단이란 형(刑)과 덕(德)이다. 형과 덕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형이라 하고, 상을 주는 것을 덕이라 한다. 신하된 자는 형벌을 두려워하고 상 받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임금이 직접 형과 덕을 행사하게 되면 뭇 신하들은 그 위세를 두려워하고 그 이로움에 귀의한다.”
위의 글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세상의 간신들은 그렇지 아니하다. 자기가 미워하는 자에게는 임금의 마음을 얻어서, 즉 임금을 움직여서 죄를 덮어씌우고, 자기가 좋아하는 자에게는 역시 임금의 마음을 얻어서 상을 준다. 상벌이 임금으로부터 나가지 않고 신하로부터 나가면 임금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하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신하를 따르고 임금을 저버리게 되는 것이다.
임금이 형덕을 잃은 환란이 그와 같다. ··· 호랑이가 개를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은 발톱과 이빨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발톱과 이빨을 개에게 내어주어 그것을 쓰게 한다면 호랑이는 반대로 개에게 굴복 당할 것이다.”
체(體)로서의 법(法)과 그 체의 기반 위에서 용(用)으로서의 술(術)을 활용함으로써 군주가 세(勢)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 한비자의 주장입니다. 법은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이고, 술은 신하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법은 문서로 편찬하여 관청에 비치하고 널리 일반백성에게 공포하는 것이며, 술은 임금의 마음 속에 은밀히 숨겨두고 신하들을 통어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가를 법술지사(法術之士)라고 부릅니다.
한비자를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사람으로 꼽는 것은 법(法)과 술(術)에 세(勢)를 더하여 법가사상을 완성하였기 때문입니다. 상앙(商鞅)의 법(法)과 신불해(申不害)의 술(術)을 종합한 한비자의 법술사상(法術思想)은 이제 신도(愼到)의 세(勢)를 도입함으로써 절대군주제에 필요한 제왕권(帝王權)의 이론을 새롭게 정립하였습니다. 군주에게 위세가 없으면 통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신도의 세치(勢治)입니다.
요(堯)임금도 필부였다면 세 사람도 다스리지 못했을 것이며, 걸왕(桀王)도 군주의 위세를 누렸기 때문에 천하를 어지럽힐 수가 있었다는 것이지요. 군주는 세위(勢位)를 믿을 것이지 현지(賢智)를 믿을 것이 못된다는 것이 신도의 주장입니다. 법과 술로써 반드시 확립해야 하는 것이 군주의 세(勢)입니다.
이러한 한비자의 사상은 그것이 군주철학이란 점에서 비판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비자의 군주철학은 분명한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력이야말로 난세를 평정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논리입니다.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이 주왕실의 권위가 무너짐으로서 시작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 국가의 혼란 역시 임금의 권위가 무너짐으로서 시작된다는 것이 한비자의 인식입니다. 임금을 정점으로 하는 정치권력을 확고히 하지 않는 한 간특한 무리들을 내쫓을 수 없으며, 칼을 차고 다니며 법을 무시하는 법외자(法外者)들을 제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혼란과 혼란으로 말미암은 인민의 고통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강력한 중앙(中央)을 확립하는 것임을 한비자는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강력한 중앙권력을 창출하기 위하여 한비자는 관료제를 주장합니다. 위의 예제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한비자가 상벌(賞罰)이라는 이병(二柄)을 놓지 말 것을 강조하는 까닭은 군주가 신하들을 효과적으로 통어하기 위함입니다. 관료제는 군주의 일인통치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또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에 등장하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관료제란 사사로운 통치방식을 지양하고 제도와 조직을 통한 통치방식이라는 사실입니다. 법가의 법치(法治)부분이 구현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비자는 관료의 임명, 직책과 직권, 승진, 포상, 겸직(兼職) 등에 관한 엄격한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관료제도가 분업화(分業化)와 전문화(專門化)를 통하여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매우 치밀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관료들을 통어함에 있어서 군주 개인의 감정과 편견을 배제하고 오로지 그 명(名)으로서 그 실(實)을 독책(督責)할 것을 주장합니다. 이른바 형명참동(刑名參同)의 이론입니다.
놀라운 것은 ‘한비자’에서 주장하고 있는 여러 개념이 이렇듯 서로 긴밀하게 통일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중심에 시종 일관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력형태가 자리잡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춘추전국시대가 법가에 의하여 통일되고 이 과정에서 형성된 중앙집권적 전제군주국가라는 권력형태는 진(秦)을 거쳐 한(漢)으로 이어지고 다시 역대 왕조를 거쳐 20세기 초 신해혁명 때까지 이어짐으로써 2천년 이상 지속되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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