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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침대파'와 '관료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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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침대파'와 '관료의 덫'

盧당선자가 인사때 반드시 피해야 할 2개의 함정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집권 구상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아직까지는 그 윤곽만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뭐라 평가하기란 대단히 시기상조다. 하지만 역대 위정자의 실패 사례를 보면, 과연 어떤 대목을 조심해야 하는가는 분명해진다. '야전침대파'와 '관료의 덫'이라는 함정이 그것이다.

***'야전침대파'**

관료사회에 회자되는 말 가운데 '야전침대파'라는 말이 있다. 집무실에 야전침대를 갖다 놓고 불철주야(?) 일하는 스타일의 상사를 가리키는, 비아냥 섞인 말이다.

야전침대파는 역대 정부 그 중에서도 김영삼, 김대중 정부에서 상당수 목격됐다.

김영삼 정부시절 초기의 경제운영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학자 출신의 P수석이 그런 대표적 예였다. 그는 청와대 근무시절에 이어 모 경제부처장이 돼서도 마찬가지로 집무실에 야전침대를 갖다 놓고 저녁에 일을 보고 밤늦게 돌아와 밤을 새우는 스타일을 고집, 아랫사람들의 원성을 샀다.

김대중 정부시절에도 야전침대파는 적잖았다. 김대중정부 초기의 학자 출신 K수석이 그런 대표적 예로, 그는 집무실에 야전침대까지 갖다 놓지는 않았지만 밤 늦게까지 부하직원들을 잡아놓고 놓아주지 않았다.

야전침대파의 공통점은 '개혁'을 목청높여 외치나 정작 그들이 이룩한 '개혁 성과'가 보잘 것 없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는 도리어 개혁을 훼손시키는 정반대 결과를 낳았다. 이른바 '개혁피로증'의 양산이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옛말이 있다. 이 옛말을 응용하면 야전침대파에 대해선 '실무경험이 없으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조어(造語)가 가능할 성 싶다.

더 큰 문제는 대다수 야전침대파가 '윗분의 눈치' 때문에 고달픈(?) 야전침대 생활을 했다는 대목이다. '일 안하고 이권이나 챙기려는 관료들을 단도리하기 위해 불철주야 일한다'고 주장하나, 실제 목적은 이를 지켜보실 '윗분의 환심얻기'였던 것이다.

노무현 당선자가 새 정부 구성때 가장 조심해야 할 대목중 하나가 '야전침대파'의 기용이다.

***'관료의 덫'**

'야전침대파'와 자못 대조되는 표현으로 '관료의 덫'이란 말이 있다.

김대중 후보가 97년말 대통령당선자가 됐을 때 일이다. 당시 김당선자는 곧바로 정권을 인수하다시피 했다. IMF경제위기가 워낙 심각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김당선자는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즐거움을 향유할 시간도 없이 IMF위기를 진화하기 위해 밤낮으로 격무를 치러나가야 했다. 경제각료들과 새벽 1, 2시까지 대책회의를 하기가 일쑤였다.

며칠 뒤 김당선자로부터 "우리나라 관료들의 능력이 생각보다 대단하다"는 칭찬의 소리가 세간에 흘러나왔다. 일을 시켜보니 업무소화 능력이 대단하더라는 것이다.

김당선자가 야당총재 시절 '무엇무엇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하면 피드백 시간이 며칠이나 걸리고 내용도 신문기사들을 스크랩한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했다 한다. 그러나 각료들에게 새벽 1,2시 대책회의때 지시를 내리고 아침에 눈을 뜨니, 이미 두툼한 보고서가 책상에 올라와 있더라는 것이다.

그 결과 김당선자와 함께 일을 했던 L장관이나 J차관은 그후 정권출범후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하지만 이들 인사는 평소 공무원사회나 국내외 금융계 등지에서 '관치(官治)적 인물'의 대명사격인 인물들이었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사방에서 "김대통령이 윗사람의 눈을 흐리게 하는 '관료의 덫'에 걸린 게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들중 L장관은 훗날 수뢰혐의로 구속되는 등 김대통령에게 상당한 타격을 가했다.

'관료의 덫'이란 이처럼 무서운 법이다.

***한국 관료의 강점과 약점**

23일 만난 한 경제연구소의 고위 관계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그는 김대중정부 초기에 청와대, 재경부 수장의 자문관을 지내며 DJ정부의 초기 금융.기업개혁에 깊숙이 관여한 바 있는 베터랑 경제전문가다.

"내 경험으로 보건대 일반의 통념과는 달리 한국의 경제관료는 대단히 유능하다. 실무능력이 빼어나고 업무추진력도 대단하다. '큰 일'들을 다뤄본 경험들이 많기 때문인듯 싶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나 대다수 경제관료들에게는 결정적 약점이 있다. 눈앞에 닥친 일들은 신속히 처리할 줄 아나, '거시적 시각'은 부족하다는 점이다. 당장 눈앞의 현안은 기동력 있게 잘 처리하나, 당장은 괴롭더라도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하는 문제에 이르러선 약하다는 점이다."

"이같은 약점은 속성상 관료들이 일단 자신의 책임인 눈앞의 현안 해결에 집중하게 마련이라는 점외에, 어려움이 닥치면 당장 가시적인 해결책을 내놓기를 요구하는 통치자들의 조급성에서 기인하는 바 커 보인다."

실제로 역대 위정자는 재임기간중 '주가'에 더없이 예민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어서, 워낙 주가를 챙기는 바람에 재경부 등이 받는 스트레스는 대단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석 만능약'을 원하는 위정자의 압박이 결국 관료의 '미봉책'을 낳는 한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이 관계자는 "노무현 당선자가 외부 민간인사들을 일부 기용해 사용할 수도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공무원들과 함께 임기내내 일해야 할 것"이라며 "공무원들의 강점을 잘 활용하면서 대통령이 큰 원칙을 제시함으로써 공무원들의 약점을 커버할 수 있는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각료경험이 있는 대통령 당선자**

노무현 당선자는 비록 오랜 기간은 아니나, 역대 위정자 가운데 드문 '각료 경험'이 있는 대통령 당선자다. 이는 남다른 강점이라 할 수 있다.

지난 3월 노 당선자 등과 함께 민주당 경선에 나섰던 김근태 최고위원이 노 당선자에게 가장 부러워했던 것이 다름아닌 '각료 경험'이었을 정도로 각료생활을 했다는 대목은 어떤 형태로든 앞으로 노당선자의 국정운영에 큰 작용을 할 전망이다.

실제로 노 당선자는 23일 앞으로 청와대 비서진은 자신을 도왔던 학자 중심의 자문그룹을 활용하고, 각료는 실물경험이 많은 공무원과 현장전문가들을 중용하겠다는 '개각 원칙'을 시사했다. 노 당선자의 각료 경험 때문인지 "잘 잡은 방향"이라는 게 대체적 평가다.

하지만 이같은 원칙에 따라 비서진과 각료들을 구성할 때 각별히 조심해야 하는 게 다름아닌 '야전침대파'와 '관료의 덫'의 존재다.

각료 경험이 있는 노 당선자가 과연 이같은 지뢰밭을 어떻게 잘 헤쳐나갈 수 있을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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