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12.19 한국대선을 보도하며 "한국이 올해 세계를 세 번 깜짝 놀라게 했다"고 말했다.
첫번째, 지난 6월 월드컵에서의 4강신화와 '붉은 악마' 현상.
두번째, 전세계적 경기침체 속에서 한국이 보인 중국 다음 가는 경제 고성장.
세번째는, 바로 이번 대선에서의 노무현 후보의 극적 당선이었다.
FT는 "한국이 올해 전세계로부터 가장 관심을 끈 국가였다"며 한국의 경이로운 에너지를 높게 평가했다.
'한국의 2002년'은 이처럼 대단한 한 해였다.
***10개월간 펼쳐진 장대한 '민의'의 드라마**
지난 3월 민주당의 국민경선으로 본격화된 10개월간의 2002 대선은 한편의 장대한 파노라마였다.
국민경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이인제 고문을 깨고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됐다. 이른바 '노풍'의 출현이었다. 노풍의 위력은 대단했다. 한때 지지율이 46%대에 이를 정도였다. 노풍의 원동력은 유권자들의 '변화 욕구'였다.
하지만 얼마 뒤 노풍은 수그러들었다. 노 후보가 김영삼 전 대통령을 찾아가고, 김대중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에 소극적 대응을 하는 '반(反)변화'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변화를 기대했던 지지자들은 싸늘히 등을 돌렸고, 4월 총선과 6월 지방선거에서 노 후보가 이끈 민주당은 참패했다.
6월의 월드컵 성공을 계기로 정몽준 의원이 대선가도에 등장하며 '정몽준 바람'이 불었다. 정풍도 한때 대단했었다. 그러나 곧 수그러들었다.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들의 뜻과는 달리 구정치세력들과 연대를 꾀하려는 반변화의 행태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큰 지지율 차이로 독주하고, 노무현-정몽준 후보가 도토리 싸움을 하는 '1강2중' 국면이 전개됐다. 이대로 가면 이 후보의 당선은 불을 보듯 훤했다.
이때 또한차례 강한 변화 압력이 출현했다. '후보단일화' 압력이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는 게 아니냐는 강한 민의의 표출이었다. 두 사람은 진통 끝에 단일후보를 탄생시켰다. 국민들은 후보단일화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종전에 10%대에 머무르던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단숨에 40%대로 뛰어올랐다.
그후 노 후보는 계속 이 후보를 앞질렀다. 그 사이에 미국이 미사일을 실은 북한선박을 나포하고 이에 반발해 북한이 핵합의 파기를 선언하는 등 거센 북풍이 불었고, 한나라당의 행정수도 이전 공방 등 각종 변수가 출현했으나 한번도 추월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선거일을 불과 1시간반 앞두고 상당히 음모적 냄새가 나는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의 '노무현 후보지지' 철회로 판이 뒤엎어지는 게 아니냐는 초긴장 상황이 초래됐다.
하지만 12월 19일 저녁 투표함을 열어본 결과, 노무현 후보가 최종승자로 나타났다. 역대 어느 대선보다도 굴곡이 심했던 대격동의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 승리의 주인공은 '변화'를 바라는 국민이었다.
***변화와 반변화의 대결, 그후 할 일은**
블룸버그 통신은 이번 대선을 '과거와 미래의 대결'로 규정했다.
뉴스위크는 '전전(戰前)세대와 전후(戰後)세대의 대결'로 규정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 등은 남북관계, 한미관계에 대한 국민투표로 규정했다.
본지는 그동안 수 차례 이번 대선을 '변화와 반변화의 대결'로 정의했다.
이렇듯 이번 대선은 그 대립구도의 의미가 지대했고, 그만큼 치열했다.
거의 모든 부문, 분야에서 치열한 대립이 있었다. 아마도 상당 기간 치유가 쉽지 않을 정도의 심각한 대결양상이었다. 그리고 그 여파는 앞으로 과거 어느 정권교체기보다 지대할 전망이다.
이번 선거결과, 각 부문에서 거대한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변화의 방향은 낡은 패러다임의 타파다. 정치, 경제,사회, 문화, 언론 모든 부문에서 낡은 패러다임은 엄청난 변화를 요구받을 것이다. 이 과정에 숱한 낡은 세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프로페셔널리즘'이다. 앞으로의 전개과정이 감성적 적개감이 표출하고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는 아마츄어리즘의 무대가 되어서는 안된다.
치열하면서도 숱한 지뢰밭이 도사리고 있는 국제경쟁환경에서 한국경제가 건강한 약진을 계속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최고의 경제정책,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노선 속에서 한반도의 생존과 평화를 담보할 수 있는 당당하면서도 현명한 외교정책, 야합과 훼절과 부패을 거듭해온 낡은 정치풍토를 일소할 수 있는 확실한 정치개혁을 단행할 수 있는, 양심적이고 실력 있는 프로페셔널(전문가)들이 노무현 정권에 두텁게 포진돼야 한다.
한 번의 시행착오도 허용되지 않을 만큼 지금 우리나라를 둘러싼 상황은 엄중하다. 한국이 갖고 있는 모든 역량을 집결해 역사의 바퀴를 계속 앞으로 굴려나가야 할 때이고,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에게 부과된 막중한 역사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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