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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세대에 권력 넘겨줘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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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전후세대에 권력 넘겨줘도 될까"

"세대간 차이, 대선 최대 이슈"-뉴스위크 분석

이번 한국 대선에서는 전통적 지역정서보다는 세대간 차이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의해 제기돼 눈길을 끌고 있다.

뉴스위크 최신호(12월 23일자)는 '두 개의 한국(The Two Koreas)'이란 기사를 통해 한국 대선을 집중 조명하며 이번 대선은 무엇보다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전전세대와 전후세대간의 대결이라며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의 상이한 대북관과 대미관, 지지층 등을 분석했다.

이 잡지는 지난 97년 대선은 금융위기에 의해 좌우됐으나 굳건한 경제성장과 번영 속에서 이뤄지는 이번 대선은 한국인들에게 한가지 냉정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즉 전후(戰後)세대에게 권력을 넘길 시점이 과연 됐는가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뉴스위크는 고려대 함성득 교수의 말을 빌어 한국의 대선 후보들이 이번처럼 세대별 차이를 비롯해 극단적으로 대비된 적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뉴스위크는 "유권자들도 세대별로 분열돼 있다. 지난 달 실시된 중앙일보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노 후보는 20대 유권자들에게 두배 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으면서 50세 이상에서는 이 후보에게 뒤졌다"며 변화를 갈망하는 40세 이하 유권자 세대와 검소한 시절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는 50세 이상 세대간의 견해차가 크다고 지적했다.

뉴스위크는 광주사태를 보고 자란 전후 신세대는 군사정부를 혐오할 뿐아니라 한국이 강대국에 의해 너무 많이 흔들리고 있다고 비판하고 이번이 자주성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이른바 386세대가 중심으로 노동개혁과 여성운동을 주도하고 이른바 IT혁명을 이끌었다는 게 뉴스위크의 분석이다.

이에 비해 전쟁세대는 권위주의 사회에서 빠른 산업화를 경험했으며 은연중에 이런 사회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뉴스위크는 지적했다. 이들은 "젊은 세대가 훌륭하지만 그들은 사회를 너무 불안정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 기사는 "대립하고 있는 한국의 세대는 생활양식과 돈에 관련되는 거의 모든 것에서 견해를 달리한다"며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어른들은 절약하고 신중했다. 이들의 주된 생활 목표는 충분한 돈을 모아 집을 구입하고 자식을 교육시키는 것이었다. (반면) 40세 이하의 한국 국민 약 절반은 대학을 나와 더욱 영리하고, 고용에 적합해졌지만 훨씬 비유교적인 사람이 돼 버렸다"고 분석했다.

한편 뉴스위크는 신세대의 정치적 무관심을 어떻게 극복할지 여부도 관심거리이며, 세대별 양극화가 전통적 지역감정을 완전하게 몰아낸 것은 아니어서 여전히 이번 대선에서도 지역정서가 강력한 변수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 기사의 주요 내용.

***두 개의 한국(The Two Koreas)/미 뉴스위크, 23일자**

말다툼은 저녁 뉴스 시간에 시작됐다. 39세의 은행원인 이승재씨가 아버지와 TV를 보고 있는데 중도 좌파 대선 후보 노무현의 모습이 잠시 화면에 비쳤다. 이씨는 "아버지는 노 후보를 보고 '저런 사람들은 불안하다. 이런 사람에게 어떻게 나라를 넘길 수 있나?'고 외쳤다"고 말하고 "아버지는 자신의 후보를 지지할 것을 넌지시 나에게 요구하신 것"이라 했다. 자신의 후보란 노 후보의 보수파 라이벌인 이회창을 말한다.

전통대로라면 이승재씨는 자기 가족의 정치를 물려받았어야 하는데 그는 대신 다음 날 사촌 결혼식에서 선거 애기를 하지 말라고 아버지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는 "'손님들이 아버지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라고 말씀드렸다"고 그는 말했다. 아버지는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이들의 논쟁이 끝났다는 뜻은 아니다. 수많은 다른 가족들처럼 이씨 가족도 한국의 짧은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이견을 충분한 대화를 통해 해소하고 있다.

12월 19일 대선 막바지에 한국 국민들은 식사하며 논쟁하고, TV를 향해 소리치기도 하고 마음을 정하지 못한 가족들을 설득하고 있다. 금융위기 때 있었던 97년 대선과는 달리, 이번 선거철은 경제가 튼튼히 성장하고 부(富)가 확산돼 있는 가운데 다가왔다.

시련으로 다져진 나라인지라 호시절로 인해 한국 국민의 선택은 '역사책을 통해 한국전쟁을 알았고 신용카드를 한 장만 갖고 있는 것이 가난이라 생각하는 세대에게 권력을 넘길 때가 됐는가? 아니면 어른들이 5년 더 갖고 있어야 하나?'하는 냉정한 물음으로 바뀌었다.

함상득 고려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 후보 사람들은 논리적, 현실적이고 노 후보측은 감성적, 이상주의적"이라며 "전세계 선거사상 후보가 이렇게 판이하게 차이가 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어쨌든 한국에서는 그랬다. 국내 활동 경험도 별로 없는 좌파 인권 변호사 출신 노 후보는 지역주의에 종지부를 찍고 선심 정치를 타파하여 "낡은 정치 패러다임을 깨겠다"고 약속한다. 그는 주로 인터넷을 통해 젊은 지지층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와는 현저히 다르게 이 후보는 참전용사, 부유한 도시 전문직, 완고한 반공주의자들로 이루어져 있는 핵심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그는 90년대 중반부터 보수 한나라당을 이끌어온 딱딱한 정치 거물이다. 두 후보가 거의 모든 면에서 의견을 달리하고 있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유권자들도 세대별로 분열돼 있다. 지난 달 실시된 중앙일보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노 후보는 20대 유권자들에게 두배 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으면서 50세 이상에서는 이 후보에게 뒤졌다.

물론 연령으로도 한국의 오랜 분열이 완전히 무디어지지는 않고 있다. 빈부간의 싸움도 한창 진행중이고 한나라당의 보수 지지 기반인 경상도와 민주당의 진보 지지 기반인 전라도간의 전통적인 경쟁 관계 때문에 올해도 지역주의가 다시 중요한 무기가 되고 있다.

그렇다 해도 요즘의 논쟁은 가족끼리가 아니라 가족 내에서 가장 거세다. 27세인 노 후보 지지자 김애경씨는 "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가족의 표를 내가 바꾸어 놓았다"고 큰 소리친다. 반면 퇴역한 서울의 한 참전용사는 "약간의 반대가 있었지만 우리 아이들은 모두 이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들 중 한 사람은 개표가 되면 분명 실망할 것이다.

은행원 이씨는 이번 선거가 노 후보에게 유리하게 돌아갈지 모를 세대별 거품의 언저리에 위치해 있다. 외모와 직업으로 보아서는 보수적이지만 이씨는 변화를 갈망하는 40세 이하 유권자 세대를 대표하고 있다. 그의 정치적 자각은 중국 천안문 학살의 한국판인 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목격하면서 시작됐다. 민주화를 지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쿠데타 주모자 전두환의 정예부대와 맞붙은 싸움이었다. 수백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고 이씨는 유혈 참사를 얼마간 목격했다. 이씨는 "그 때부터 군사 정부를 증오했다"고 말한다.

그후 대학 공부 과정를 통해 그가 받았던 반공 선전의 독소가 해소됐다. 그리고 이것이 올해 그의 대선 시각을 형성해 주고 있다. 이씨는 "이회창 후보는 근본적으로 친미ㆍ친재벌주의자고, 노 후보는 나라의 주권과 노동자 권리를 찾는다"며 "역사를 보면 우리는 초강대국들에게 너무 휘둘려 왔다. 우리 자주를 모색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노 후보는 많은 젊은 유권자들이 추구하는 전통과의 단절을 구현한다. 그는 노동운동권 인사들을 변호하면서 유명해졌고 '과격분자' '빨갱이'라는 꼬리표가 붙었으며 지금까지 달고 있다.

과거 노 후보는 주한미군 철수를 촉구한 바 있다. 지금은 주한미군이 주둔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는 아직도 반미 유권자에게 적극적으로 지지를 호소하고 있고 여중생 2명을 장갑차로 사망케 한 미군 2명이 지난 달 무죄 선고받은 것을 이용하고 있다. 그는 또 새로 드러난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과 핵 발전소 재가동 위협에도 불구하고 대북 포용정책에 찬성한다. 지난 주 유세 버스에서 가진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며 "이 문제는 대북 압박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66세의 이강율씨는 노 후보와 은행원인 자기 아들이 포함돼 있는 한국의 젊은 세대를 "고지식하고 때론 맹목적"이라고 부른다. 얼마간 은퇴 상태에 있는 이씨 아버지는 한국전쟁에서 싸웠고 아들처럼 폭력의 와중에 자신의 정치관을 다졌다.

김일성 군대가 1950년 남침했을 때 그는 15세에 불과했다. 그는 "보름동안 산에 숨어살아야 했다. 유일한 식량은 쌀가루였다. 우리 가족이 살아남은 것은 순전히 운이였다"고 말한다. 전쟁이 끝난 후 이씨는 공무원이 됐다. 자기 세대 사람 상당수가 그랬듯 그는 박정희 장군이 61년 무혈 쿠데타로 집권한 후 제시한 사회 계약을 받아들였다. 급속한 산업화를 조건으로 한 독재적인 사회 통제를 수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정치관은 여전히 검소한 시절에 대한 향수를 드러낸다. 그는 "젊은 세대의 용기는 칭찬하지만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회창 후보는 과거를 동경하는 모든 사람에게 위안이 되고 있다. 그는 야당 정치인 김대중씨가 5년 전 청와대를 차지할 때까지 수십년간의 독재 통치기간에 권력을 쥐고 있던 보수 집권층을 대표한다. 이 후보는 당시 선거에 근소한 차로 패했고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반대하는 한나라당을 이끌며 지난 5년을 보냈다. 그는 북한에 대해 매파적 노선을 취하고 있고 주한미군을 평화에 필수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후보는 최근 외신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선거는 안정과 불안, 합리적인 변화와 과격한 변화간의 경쟁"이라고 밝혔다. 실은 이번 경쟁은 정치적인 것 못지 않게 사회ㆍ경제적이다. 대립하고 있는 한국의 세대는 생활양식과 돈에 관련되는 거의 모든 것에서 견해를 달리한다.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어른들은 절약하고 신중했다. 이들의 주된 생활 목표는 충분한 돈을 모아 집을 구입하고 자식을 교육시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40세 이하의 한국 국민 약 절반은 대학을 나와 더욱 영리하고, 고용에 적합해졌지만 훨씬 비유교적인 사람이 돼 버렸다. 이들은 탐욕스런 소비자, 외국 패션의 열렬한 팬, 여행 애호가들이어서 부모의 눈에는 모두 부도덕하게 비친다. 더 나쁜 것은 젊은이들이 신용 대출을 이용한다. 부모들은 종종 젊은 아이들에게 있어 돈을 쓰는 방법이 버는 방법만큼 중요하며 집을 소유하기 전에 승용차를 구입하는 행위가 일상적이라는 점에 대해 충격을 받는다.

이제 이 젊은 세대가 힘을 가졌다고 느끼고 있다. 이들이 80년대 후반 대규모 민주화 시위로 군사 통치를 무너뜨리는 데 일익을 한 것을 자랑스러워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른바 386세대가 사회 변화에 헌신하고 있다. 이들은 노동 개혁을 옹호하고, 여성 운동에 앞장서는가 하면 진행중인 한국의 IT 혁명을 준비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어른들은 의지력보다 운명을 믿는다. 일제 지배와 한국전쟁 당시의 무력감에서 나온 자연스런 결과일지 모른다.

대선 레이스가 사실상 교착상태에 빠져있어 관측통들은 선거가 추잡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벌써 이 후보는 80대년의 재판 기록, 50년 전 아버지의 친일 행각, 90년대 두 아들이 체중 미달로 병역을 기피한 것 등에 대해 공격을 받고 있다(한국에서는 극단적인 체중 감량이 일반적인 병역기피 수단이 돼 있다).

노 후보의 반대 세력들은 그가 친북ㆍ반미의 외교 초보자로서 너무 과격해 권력을 넘길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노 후보의 장인이 북한 동조자로 유죄 선고를 받았음을 지적한다. 노 후보는 민주당의 기수로 김 대통령의 임기를 더럽힌 비리스캔들로 비난을 받고 있다.

노 후보측의 한 참모는 "상대쪽은 우리 당에 대해 반DJ 정서를 이용하려 하고 있고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이는 한 불리하다"며 "장년층이 이를 믿는 것은 유감이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노 후보가 문턱을 넘을 만큼 이들이 투표할 것인가하는 의문이 남는다.

한달 전 아주대 김영래 교수는 '그렇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젊은이들의 동향은 무관심"이라며 "2년 전 (총선 때) 이들은 비리 후보를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폈다. 그러나 아무 변화도 일지 않아 무관심이 심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의외의 일이 발생하지 않으면 이 후보가 승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뜻밖의 사태가 노 후보를 대선 레이스에 다시 올려 놓았다. 우선 노 후보는 지난 달 사퇴한 또 한 사람의 청년 지향 후보 정몽준에게서 지지를 물려받았다. 그후 반미 시위가 벌어졌고 그의 비둘기 이미지에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의외의 사태는 좋게도 나쁘게도 될 수 있다. 예멘행 북한 미사일 선적이 공개된 지 며칠 후에 나온 북한의 핵 위협 때문에 이 후보의 대북 강경 노선이 현명한 것이 돼 막판 지지를 밀어 올릴지도 모른다.

결과야 어떻든 이승재씨 가족이 월말에 가족 휴가를 위해 광주에 모이면 선거가 뜨거운 화제가 될 것이다. 이씨는 "선거 이야기를 할 것이 틀림없다"고 말한다. 한국의 세대차가 얼마나 깊은지를 볼 때 한국의 다른 가족들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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