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실태보고서 제출로 이라크사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가느다란 희망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라크의 협조적 자세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침공을 위한 미국의 군사ㆍ외교적 준비는 쉬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뉴욕타임스 등 미국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라크 공격을 위한 미군 병력과 중화기의 걸프만 집결이 가속화되고 있어 오는 1월에는 이라크 공격 준비가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또 이달 초부터 폴 월포비츠 국방 부장관과 아미티지 국무 부장관을 각각 유럽과 아시아 우방국에 보내 이라크 공격에 대비한 동맹국들의 지지를 규합하고 있으며 이라크의 망명 반체제체력들을 모아 후세인 축출 이후 이라크 경영을 위한 계획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실태보고서 제출로 제2 걸프전을 피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일각의 희망과는 달리 이라크 정벌을 위한 미국의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군사적 준비-병력 6만명 집결, 컴퓨터 모의 훈련 시작**
뉴욕타임스 8일자 보도에 따르면 현재 걸프지역에 집결한 미군 병력은 6만여명의 육해공군과, 2백기의 전투기에 달한다. 육군 보유 병력만도 보병이 9천명에 24기의 아파치 헬리콥터, 중무장한 2개 여단이 있다. 제3 여단을 위한 장비는 현재 인도양 기지에 속속 집결중이다.
이번 주말까지는 4대의 항공모함이 명령이 내려지는 즉시 이라크 공격에 나설 수 있는 태세를 완료할 예정이며 다섯 번째 항공모함은 이미 동남아시아에서 걸프지역을 향하고 있다. 이들중 '조지 워싱턴'과 '아브라함 링컨' 항공모함은 현재 미국으로 돌아가고 있으나 미 해군은 이 항공모함 승무원들이 걸프 지역으로 돌아올 경우 통상 체류기간인 30일보다 2주 정도 더 체류시킬 방침이다. 한편 병력 8천명을 보유한 미국 버지니아주 항구에 정박해있던 '해리 S. 트루먼' 항공모함은 지난 주 초 걸프 지역을 향해 출발했다.
걸프 지역에 배치된 미군 특수부대는 또 이라크의 스커드미사일과 비밀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는 훈련을 거듭하고 있다. 토미 R. 프랭크스 장군이 이끄는 미 중부군 사령부의 미군 전쟁 기획요원 1천여명은 9일부터 카타르의 미군기지에서 이라크 공격을 위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연습중이다. 프랭크스 장군은 8일 세밀한 최종연습을 위해 2백명의 고위급 참모들을 만나 자문을 구했다.
로스앤젤레스티임스 8일자 보도에 따르면 '내부 주시(Internal Look)'로 명명된 이 가상군사훈련은 중동 및 서남아시아 25개국을 관할하는 미 중부군이 미 본토 이외의 지역에서 처음으로 실시하는 모의 군사훈련이다. 이 훈련에는 실제 군대가 움직이지는 않지만 이라크와의 전쟁 발발시 중동 및 서남아 지역에 배치된 미군들을 지휘, 통제하고 이들과 통신 등을 점검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이번 훈련이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이 훈련과 동시에 쿠웨이트 북부 이라크와의 접경지역에서 미 육군이 모의 실전훈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LA타임스는 이 두 훈련은 다가올 이라크전쟁에 대비하는 것과 함께 이라크 후세인정권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킨다는 의미도 있다고 분석했다.
미군 고위관계자는 이 같은 모든 징후는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무장해제시키고 사담 후세인을 축출하려는 분명한 증거들이라고 말했다.
다음 달 미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게 될 존 W. 워너(공화당, 버지니아) 상원의원은 “여러 곳의 병력들이 한 곳에 집결하는 것은 군사작전을 실시하기 위한 기지구축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다른 국방위 소속 상원의원은 “우리는 필요한 경우에 대비해 신속하게 집결할 것이며 이라크 작전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사찰보고서를 검토중이며 전쟁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고 있는 상태다. 미국 관리들은 외교적 논쟁을 불러올 수 있는 사찰 계속과 유엔의 새로운 결의안 등 후속 외교적 조치들은 이라크 공격을 수주, 혹은 몇 달간 지연시킬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미 국방부 관리들은 필요하다면 미군은 지금이라도 이라크를 공격할 수 있으나, 미국이 원래 계획대로 전쟁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여러 외교적, 군사적 단계를 거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 국방부는 이라크전쟁 발발시 미국내 주요 시설을 보호하고 테러를 막기 위해 주방위군과 예비군 등 예비병력을 소집할 계획이다. 일반적으로 대규모 병력을 동원할 경우 이에 필요한 군사기지와 지원병력, 물자보급 수송시설 마련 등을 위해 30일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번 이라크 공격의 경우엔 이 과정에 걸리는 시간을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방부는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공격 명령이 떨어질 경우 동원되는 예비병력은 지난 91년 제1차 걸프전과 같은 대략 26만5천명의 병력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군 고위관계자들은 대규모의 병력집결이 1월 이전에는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이 또한 정치적 충격을 감소시키려는 고려하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외교적 준비-월포비츠는 유럽, 아미티지는 아시아 순방**
지난 2일 부시 미 대통령은 폴 월포비츠 국방 부장관과 마크 그로스만 국무부 정무담당 차관을 터키에 파견했다. 이라크전이 시작될 경우 이라크 침공의 교두보가 될 터키의 협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북쪽 쿠르드 지역으로부터의 공격을 위해 터키의 군사기지를 이용하는 방안을 희망하고 있다. 월포비츠 부장관은 이와 관련, “우리는 이라크 공격을 위해 남쪽에서 필요한 모든 준비를 완료했다”며 “분명한 것은 만일 우리가 북쪽에 중요한 거점을 확보하게 된다면 이라크는 남북으로 협공당하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은 남북으로부터의 이라크 협공을 위해 20만 내지 25만의 병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또 터키 방문 도중 “이번 기회가 이라크에게는 평화적인 해결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그들은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든지 아니면 우리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터키는 '이라크 공격을 위해선 새로운 유엔결의안이 필요하다’며 이같은 미국의 요구에 난색을 표명했다. 이에 따라 부시 대통령은 현 터키 집권 연정내 최대 정당의 지도자인 레체프 타이프 에르도건(Erdogan)을 워싱턴으로 초청, 10일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월포비츠의 터키 방문이 끝난 후 그로스만 국무 차관은 그리스. 키프로스,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포르투갈 등을 순방하며 제2 이라크전에 우방국들의 지지를 촉구했다.
한편 리차드 아미티지 국무 부장관은 9일 일본을 시작으로 한국과 중국, 호주 등을 차례로 방문할 예정이다. 아미티지 부장관의 아시아 순방 역시 미국의 이라크전에 대한 아시아 동맹국들의 지월을 규합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은 이미 세계 50개국에 이라크전에 대한 지지를 촉구한 바 있다.
***포스트 후세인 대비-반후세인 세력 규합 및 후세인 축출 후 이라크 관리 방안**
미 공영방송 NPR의 지난 5일 보도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지난 주 이틀동안 이라크의 해외 반후세인 세력을 워싱턴에 모아 후세인 축출 이후 이라크 재건 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와 함께 백악관은 아프간 출신의 미 국가안보회의 간부인 잘마이 할리자드를 '자유 이라크 특별 대사'로 임명했다. 할리자드는 후세인 제거 이후 미 정부와 반후세인 세력간의 다리 역할을 맡는다.
한편 아메드 찰라비가 이끄는 이라크평의회(INC) 등 해외 반후세인 세력들은 이번 주 런던에 총집결, 후세인 축출 이후 이라크 관리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당초 해외 반체제세력들의 총회는 지난 달 벨기에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이라크 무장해제를 위한 유엔 무기사찰이 진행되는 마당에 후세인 축출 이후를 논의하는 회의를 연다는 데 대해 벨기에 당국이 불쾌감을 표시하는 바람에 대회 개최가 연기됐다.
어쨌거나 미 정부와 해외 반후세인 세력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후세인 제거를 전제로 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후세인 축출 이후 이라크를 접수하겠다는 해외 망명세력의 소망은 현실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 LA타임스 8일자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후세인 제거 이후 이라크의 새 지도자로 해외 망명인사보다는 이라크 내 인사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 이 신문 보도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는 후세인 축출 이후 이라크에 대한 미 군정 실시라는 당초 계획을 바꿔 '코소보' 스타일의 유엔 또는 다국적 민정 연립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타임스는 미 행정부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 이같이 전하면서 그 모델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혹은 독일에 적용됐던 군정통치보다는 지난 1999년 코소보내전 이후 수립된 다국적 민정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엔은 미국 주도의 공습 이후 유고군이 코소보에서 철수한 뒤 과도정부를 수립했으며 코소보 과도정부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보안군과 유럽연합(EU)의 재건계획,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인도적 노력 등의 지원을 받았다.
이 신문은 미 행정부의 이같은 방향선회에 대해 사우디 아라비아 다음으로 석유 매장량이 풍부한 이라크내 복잡하고 민감한 정권이양라는 부담 뿐 아니라 잠재적 이익들까지도 다른 국가, 국제기구들과 공유하길 원하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다시 말해 이라크전 승리의 전리품을 동맹국들과 함께 나눌 계획이니 미국의 이라크전을 도와달라는 얘기다.
미 국무부의 한 관리는 "관계 부처간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군사통치 혹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과 같은 인물이 이라크를 통치하는 것은 실제 더 이상 실현가능한 해법으로 고려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미 행정부의 또 다른 관리도 "코소보를 모델로 하고 있다. 우리는 군정이 아닌 민간 행정부를 원하며 유럽 외교관과 같은 비미국인을 선호한다"고 덧붙여 코소보 유엔사무소가 프랑스, 덴마크, 독일 행정관들에 의해 가동되고 있음을 예로 들었다.
LA 타임스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축출을 위한 잠재적인 대이라크 군사공격에 약 50개국의 협력을 구하고 있으나 전후 이라크 통치는 10여개국의 참여가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미 관리들은 전후 이라크 계획은 최종 결정하기에 아직 긴 여정이 남아있다고 말하면서 미군은 이라크 정권이양 초기단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목표는 수십년간 후세인 전제통치 이후 무질서를 최소화, 다국적 행정부에 길을 터주는 것이라고 행정부 관리들은 덧붙였다.
한편 국무부의 또 다른 고위관리는 후세인 축출이후 이라크 통치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 "차기 이라크 지도자는 이라크 내부 인물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과거 35년동안 나라 밖에서 있었던 인물이 이라크 차기 지도자가 될 가능성은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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