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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의 '동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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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의 '동침'

한나라당 논평 구도 답습한 조선일보 사설

연말 대선이 23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노무현 후보가 단일후보로 확정되자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의 공조관계가 더욱 굳건해지고 있다. 소위 '양강구도'에서 치러지는 대선을 앞두고 '단풍(單風)'이 불자 이를 사전에 차단해보려는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의 조급함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사진 한나라당의 '부패정권 교체 대 연장' 논리를 그대로 답습한 조선일보 26일자 사설 '保·革과 世代가 가르는 大選'.>

조선일보 26일자 사설 '保·革과 世代가 가르는 大選'은 그 조바심의 상징이다. 사설은 "이(李)·노(盧) 대결은 이번 선거가 무엇보다도 김대중 정권의 단절·교체를 주장하는 세력과 그 승계·연장을 표방하는 세력 간의 경쟁이라는 측면을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다"며 "따라서 유권자의 선택은 현 정권의 업적을 인정할 것이냐, 아니면 그 실정(失政)을 비판할 것이냐에 따라 방향을 달리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번 선거의 쟁점이 '계승이냐, 단절이냐?'가 될 것임을 시사한 것"이라는 말이다.

조선일보는 또 "이번 선거는 또한 우리 정치 사상 유례가 드물게 이념적인 대결 양상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느 선거와 적잖이 다르다"며 "현 정권이 지난 5년간 보여온 이념 성향의 방향, 속도, 내용에 이의(異議)를 제기하는 이 후보와 그 같은 성향의 심화와 계속을 시사하는 노 후보의 대결"이라고 강조했다.

사설은 '보혁과 세대가 가르는 대선'이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인지 "'김대중 성향'의 핵심적 '키 워드'는 일종의 '평등 지향'으로 모아진다는 게 전문가의 평가이고, 따라서 이번 선거는 보수와 혁신, 즉 보·혁(保·革)의 대결이라는 주장이다"며 정권의 계승과 단절이란 테두리안에 보혁대결을 편입시킨다. 바꾸어 말하자면 '혁신세력은 김대중 정권의 계승자이고 보수세력은 반DJ'라는 것이다. 집요한 '반DJ정서' 부추기기다.

사설을 읽다보니 어디선가 많이 듣던 소리같다. 아니나 다를까, 조선일보 1면을 보니 머릿기사 제목이 '李 "부패정권 연장 저지" 盧 "낡은 정치 청산돼야"'다. 이회창 후보가 25일 인천방송 TV토론에서 "(단일후보로) 누가 됐든 부패정권의 연장을 위한 것이며, 우리는 정권 교체가 이뤄질 것이란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한 것을 부패와 교체란 단어만 빼고 그대로 사설에 접목시킨 것이 아닌가.

아니라고. 그렇다면 한나라당이 25일 발표한 논평 '부패정권 교체 對 부패정권 연장'을 보자. 한나라당은 "마침내 '정권 교체' 對 '정권 연장'의 맞대결 구도가 짜여졌다. 즉 '부패정권 심판' 對 '부패정권 계승'의 대결이다"며 "부패정권 교체는 시대적·국민적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주장한 김대중 정권에 대한 "단절ㆍ계승" "인정ㆍ비판"과 한나라당의 "'정권 교체' 對 '정권 연장'" 구도는 한치도 틀리지 않고 딱 들어맞는다. 하지만 한국 발행부수 1위를 자랑하는 조선일보가 한나라당 논평 구도를 모방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그런데 베끼지 않았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표절은 문제의식이 없는 가운데서 소재가 궁하다보니 차용하는 실수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조선일보 스스로가 한나라당과 똑같은 시각과 관점으로 대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한국을 대표하는 언론권력의 본래 철학이 어떠한 것인가를 만 천하에 공개한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과거의 어떤 선거보다도 이번 선거는 세대 간의 단절과 대결을 더 한층 두드러지게 드러낼 것이라는 점"이라는 언급도 했다. 왜 이 말이 나왔을까.

다시 조선일보 1면 기사를 보자. 노무현 후보는 25일 당 선대위에 참석해 "한나라당은 진보대 보수의 대결로 끌고 나가려 하나 민주당은 진보도 아니며 국민이 바라는 것은 이념의 대결이 아니라 낡은 정치의 청산"이라고 말했다.

노 후보가 말한 "낡은 정치의 청산"과 조선일보 사설의 "세대간 단절과 대결"은 전혀 어감이 다르다. 하나는 세대교체를 의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대간 대립구도에 의한 경쟁을 뜻한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세대간 단절과 대결'이란 단어를 차용하며 묘한 균형감각을 살리려 하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던지려는 메시지는 결론에 있다. "개발의 연대와 3김시대가 물려준 부정적 유산이라 할 지역 간 대결의 틀 또한 이번 선거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결국 앞으로 남은 선거기간에 두 후보가 이번 선거의 그런 정치적 성격을 어떻게 발전적으로 승화시키느냐에 따라 한국 정치의 내일이 판가름날 것이다."

이미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을 전제하고 '발전적 승화'를 덧붙였다. 과거 3김시대의 부정적 유산인 지역대결로 이번 대선이 치러질 것이라며 여기에 세대간 단절까지도 거론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도대체 한국 사회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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