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좋은 미국' '나쁜 미국' 가려 실리적 대응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좋은 미국' '나쁜 미국' 가려 실리적 대응

<긴급제언-남재희의 체험적 정치개혁론> <2> 對美관계

오늘날의 한국정치 또는 한국상황에서 전쟁방지가 가장 중요하고도 화급한 문제다. 정전(停戰)상태로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형편에서 남북은 항상 서로를 위협적인 존재로 간주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는 6.25를 경험했으니 그 경계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 많은 국민들의 느낌이나 판단으로는 미국 부시행정부의 초강경 일방주의가 문제다. 미국의 어느 학자는 '매파 대응정책'(hawk engagement)이라면서 강경한 으름장의 효과를 생각하는 것 같은데, 연못 안 개구리 신세인 우리에게 어린이가 돌을 던지는 것도 무섭기만 하다.

가령 지금 한 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판타지 소설 '서유기'를 보자. 시대를 직감한다는 소설가 이인화씨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미국은 디지털 전쟁기술이 더 전파되기 전에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소위 '악의 축'들을 제거해야 했다. 이것이 국제여론의 반대와 한국의 지속적인 평화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전쟁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이유이다.

나는 '르 몽드'의 창을 닫고 지구의 대표적 우파잡지 '포린 어페어즈'를 열었다.

"이번 전쟁에서 한국은 직접적인 교전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발언권을 얻지 못했다. 한국은 그동안 북조선과의 평화공존을 추구해왔다. (…) 이같은 중재자의 자리는 2003년 미국의 북한 핵사찰 방침이 강경해지면서 사라졌다. 한국에서 반미주의가 고조되었지만 어떤 정치적 항의도 테러국가의 핵무기를 제거해야 한다는 자유진영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국제사회의 정책결정에서 소외되었다. 미국이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지를 폭격하자 한국이 제공한 달러는 시간당 60만 발을 발사할 수 있는 휴전선 북한군의 포격으로 돌아왔다"
###

전쟁이 난다면 그 참상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아프간의 경우는 차라리 선사시대의 일 같을 것이다. 남북한이 이빨까지 중무장한 한반도가 아닌가. 거기에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듯한 미국의 신무기가 아닌가. 고대 그리스에서 전쟁에 이기고도 너무 희생이 커서 무의미해진 승리를 '피루스의 승리'(Pyrrhic Victory)라고 했다. 한반도의 경우는 아마도 "옛날 세상엔 이렇게 우매한 민족도 있었다"라는 팻말이 폐허 위에 남아 있을 것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전쟁방지에 나섰다. 우선 부시행정부의 자제를 호소하는 일이다. 강원용 목사와 김수환(金壽煥) 추기경 등 많은 인사들은 「한반도 보고서─평화와 협력 그리고 통일을 위한 체계적 접근」이라는 짜임새있는 건의서를 미국측에 전달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나도 여러 사람들과 함께 생애에 드물게 서명을 했다. 강 목사는 정말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있다. 기독교 백인 유일 초강국인 미국이 이슬람인 아프간과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한반도에서 희석용으로 불질을 할 가능성이 너무나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미국이 거대한 '에비'로 새삼 떠올랐다.

1982년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의 문부식(文富軾)씨는 최근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20여년 동안 그만큼 몸으로 치열하게 미국을 생각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
"미국 자체에 대한 생각은 달라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냉전 붕괴 후 유일 패권국가로서 미국이 보여주는 오만에 대해서는 더욱 비판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을 이해하는 방식은 많이 달라졌다고 봅니다. 모든 책임을 미국에 전가하는 방식은 좀 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 정상적인 국가체제라면 외국기지가 이 땅에 있을 필요가 없죠. 동북아에서 주한미군의 역할이 뭔가 그 성격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한가, 철수를 주장하는 것이 중요한가. 원론적으로는 철수를 주장하는 것이 맞지만 과정적으로 그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죠. 그것보다 일방적 방식의 주둔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공존할 것인가, 그 형식을 고민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월간 중앙> 2002년 9월호)
###

남로당의 경북도당 부장급으로 활동하다 미군 정보기관의 도움으로 한국전쟁의 와중에 평양에 가서 이승엽(李承燁)을 만나 휴전을 호소했던 기구한 운명의 박진목(朴進穆)씨는 몇년 전에 해방 후의 일을 이런 요지로 말했다.

"박헌영이 어리석었어.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제국주의와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싸워 승리하여 한국을 점령한 미군인데, 그 미군을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쫓아내려고 적대시만 해서 됐겠어. 미국을 적대시하지 말고 대화했어야지."

당랑거철(螳螂拒轍). 사마귀가 수레를 막으려 한다는 어리석음을 말하는 옛 글귀를 그는 떠올렸을 것이다.

이호재(李昊宰) 교수는 아주 오래 전부터 미국을 논할 적에 '좋은 미국'과 '나쁜 미국'을 나누어 이야기했다. 미국 독립선언서의 정신을 따르는 미국은 얼마나 좋은 미국이며, 우리가 본받아야 할 나라인가. 그런데 람보식이고 카우보이식인 부시행정부의 초강경 일방주의는, 유럽의 대다수 사람들도 그렇게 말하듯, 굴욕감과 분노를 느끼게 한다.

최근에 읽으니 박명림(朴明林) 교수는 '미국의 범위'라는 개념을 쓰고 있다. 한국의 행동범위가 미국이 정한 범위 안이라는 뜻으로, 쉽게 이야기하면 '손오공이 뛰어보았자 부처님 손바닥 위'라는 것을 학술용어화한 것 같다.

얼마 전 TV드라마 '명성황후'를 보며 그때 살아서 한 역을 했더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하고 내내 우울하게 고민했었다. 어느 자리에서 구한말 시대 연구로 학위를 받은 김영작(金榮作) 교수에게 물으니 "김옥균의 거사가 성공했더라면" 하면서도 자신없어한다.

너무도 진부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결코 돈키호떼가 될 수는 없는 것이고 '좋은 미국' '나쁜 미국'을 가려서 실리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은 미국'은 협조하고 '나쁜 미국'은 거부하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개인의 도덕적 또는 양심적 판단과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는 국익판단이 같았으면 참 좋겠으나, 대개의 경우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