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ㆍ정몽준 후보의 후보단일화 합의로 대선 판도가 긴박감을 더해가고 있다. 한마디로 재미있어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들의 관심이 권력의 향배에 온통 쏠려 있는 동안 정작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로 정치개혁이다. 우리 정치가 민의를 보다 충실히 담아낼 수 있도록 하는 정치개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마침 국회의원 4선과 노동부장관을 역임한 전 언론인 남재희씨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정치개혁에 관한 제언을 내놓았다. 원고지 1백매 분량의 이 제언에는 권력구조에서부터 남북한 및 대외관계, 분배와 사회복지 등 사회정의, 진보정당의 활성화, 언론과 정치 등 우리나라 정치 전반에 관한 필자 나름의 처방이 들어 있다.
이 원고는 본래 '대선과 정치개혁의 큰 틀'이란 제목으로 계간지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실린 것이다. 필자와 창비측의 양해를 얻어 5회에 걸쳐 연재한다. 단 지면제약상 창비에서 일부 삭제된 부분도 모두 되살렸음을 밝혀둔다. 전재를 허락해 준 필자와 창비측에 감사드린다. 편집자
강원용(姜元龍) 목사를 중심으로 한 작은 모임에서 최근 이홍구(李洪九) 박사가 ‘21세기를 여는 한국정치’라는 제목으로 짧은 연설을 했다. 그가 서울대 교수를 지낸 우리나라의 대표적 정치학자 중의 한사람이고 통일원 장관, 국무총리, 여당 대표, 주미 대사 등 실제정치의 경험도 많고 보니 그의 견해가 크게 참고가 될 것 같아 우선 소개해본다.
이 박사는 그동안의 우리 정치가 그렇게 형편없는 것은 아니어서 외국에서 본다면 그런대로 성공한 사례라고 말하면서, 인물보다는 제도를 바꾸어야 하는데 우선 제왕적 대통령이 문제라고 보았다. 그는 ‘책임총리제’를 단기적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현행 헌법은 내각책임제도 얼마간 절충한 것이어서 헌법대로라면 총리의 권한이 대단한 것인데 한번 헌법 그대로 총리 노릇을 해보게 하자는 것이다. 무엇보다 각료제청권의 행사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게 ‘책임총리제’이다. 그러고서 국가대표의 상징성과 국가 실질운영을 분리하자는 것인데, 예를 들어 독일과 같은 유럽의 제도가 좋겠다는 것이다. 내각책임제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내각제에 거부감을 갖는 쪽은, 장면(張勉) 정권의 실패를 내세우기도 하고 미국에서 대통령제가 잘되고 있다는 점을 말하기도 하는데, 이 박사는 미국에서는 권력분산, 견제와 균형이 잘되어 있어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박사는 또한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어느 후보도 다수표를 얻기 어려워 결국 연립ㆍ연대ㆍ타협의 정치를 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대통령중심제냐 내각책임제냐 하는 것은 대한민국 수립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참 끈질긴 쟁점이다. 전세계적으로 보면 내각책임제의 나라에서 민주정치가 성공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통계가 있다. 대통령중심제는 미국 정도가 성공사례인데 그것은 예외에 속한다고 흔히 말한다. “미국의 대통령제가 국경을 넘어서면 죽음의 키스를 만난다”란 말을 남긴 학자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통령제를 이미 50여년간 실시해서 익숙해져 있고, 또한 1987년 여야 만장일치로 개정한 지금의 헌법을 다시 손질한 필요가 있겠느냐는 현행유지론도 강력하다.
이 박사가 연설을 마친 다음 내가 첫 질문자로 나섰다. 다른 문제는 제쳐두고 우선 선거비용 문제만 보면, 대선후보자간의 TV토론이 활발해진 지난번 대선 때부터 선거비용이 대폭 줄어들었다. 그에 앞서 김영삼 대통령이 탄생될 때에는 TV토론을 기피하여 선거운동조직들이 일일이 유권자를 상대하여 설득해야만 했고 거기에 유세동원비ㆍ회식비 등 엄청난 돈이 들었다. 그러나 지난번 선거에서는 후보들이 TV에 과잉 노출되다시피 하여 선거조직이 유권자를 상대로 새삼 후보를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그 결과 선거비용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아마 10분의 1 정도라고도 할 수 있겠다).
금년 대선에서 TV토론은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선거비용도 5년 전보다도 덜 들 것이 거의 확실하다. 홍보비와 선거조직 유지비 정도지 유권자를 직접 상대로 한 비용은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돈 안 드는 선거라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인데 내각책임제로 바꿔놓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국회의원 선거가 정권을 결정짓게 되니까 필사적이 될 수밖에 없다. 또 국회의원 선거는 TV선거가 될 수 없다. 그러니 이제까지 국회의원 선거에 10억을 썼다 하면, 정권을 결정하는 선거니까 20-30억씩을 뿌리는 타락선거가 될 것이고(국회의원의 선거비용은 법정선거운동 기간만이 아니고 준비기간까지 넣어 계산하여야 한다), 후보들은 더욱더 대기업에 손을 벌리게 되어 정치부패ㆍ정경유착은 심화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사회가 더욱 합리화ㆍ투명화되기까지는 이왕에 돈이 덜 들게 된 대통령중심제ㆍ직선제를 버리는 것이 아깝지 않느냐는 이야기이다. 훗날에는 내각책임제가 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내가 말을 마치고 나니 대통령 비서실장과 주미 대사를 지낸 김경원(金瓊元) 박사가 옆에서 “재벌당이 될까봐서 그러느냐”고 묻는다. “일본에서도 내각책임제를 한 초기에는, 그러니까 2차대전 전에는, 정당이 미쯔이(三井)계와 미쯔비시(三菱)계의 재벌계로 양분되어 있었다”고 답변했다.
두번째 질문에는 강원용 목사가 직접 나서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앞날은 낙관적이 못된다고 전제하고 그렇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역시 사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자학의 영향으로 가부장제적 문화가 아직도 의연하여 역시 대통령중심제여야 하겠다는 것이다. 또 우리의 풍토에는 신바람 문화라는 것이 있어 지도자가 국민들의 신바람을 살려주어야만 하겠다는 것이다.
이 박사와 강 목사가 우리 정치의 점수를 매기는 것은 상반되어 있다. 간단히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통쾌하게 비판해댄 것으로 끝내자. 우리의 정치 모습은 소극(笑劇)이니까. 강목사가 말한 가부장제적 전통(현실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것이 옳다는 것은 아니니 여성들의 오해 없기를)과 지도자가 이끌어낼 신바람을 나름대로 확대해석해보면, 대통령제에서는 약간의 표 차이로 당선되기도 하는 것이기에(5.16 후의 대선에서 박정희씨는 불과 15만여표 차이로 윤보선씨에 이겼고, 미국의 부시는 지난번 고어를 이긴 건지 진 건지 모를 정도의 간발의 차이로 대통령이 되었다) 유권자의 뜻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또 그들을 존중하는 정책을 취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포퓰리즘 운운하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큰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유권자의 뜻을 받아들인다면 민주적이라 할지언정 포퓰리즘 운운하고 비난할 것은 아니다. 반면 내각제의 경우 국회의원선거에서, 대통령선거에 비해 중심이 분산되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유권자의 뜻에 덜 예민하게 반응한다.
좀 과장한다면 대통령제는 개혁적이고, 내각제는 현상유지적일 수가 있는 것이다. 다만 요즘 내각제도 총선거를 총리후보 중심으로 치르고 있어 대통령선거와 비슷해지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역시 정보혁명의 영향이 가장 클 것이다. 최근의 독일 총선거는 총리후보인 사민당의 슈뢰더(G. Schröder)와 기민당-기사당의 슈토이버(E. Stoiber) 간의 경쟁처럼 되었었다.
현행 헌법에 손댈 곳은 있다. 대통령중심제를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제 나라에서 일반적으로 그러하듯 4년ㆍ중임허용제로 하자는 이야기는 수긍이 간다. 그러나 그것도 요주의. 일단 개헌절차가 시작되면 마치 물이 그득 찬 댐을 무너뜨린 듯 일제히 홍수가 져서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질 것이다. ‘병 속을 나온 지니’라고 서양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현상 말이다. 그것이 개헌절차 개시 후의 역학이다.
이회창ㆍ노무현ㆍ정몽준 등 대통령후보들이 모두 ‘책임총리제’를 약속하고 있다. 노 후보가 가장 분명하여 그는 국회다수당과 합의하여 국무총리를 임명하고, 총리의 각료제청권을 실질화하며, 총리가 국무회의를 주재토록 하겠다고 말한다. 2원집정부제 운운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될까? 대통령은 전국민의 여망을 모아 뽑는다. 그리고 총리는 비록 국회의 동의를 받는다고 하나 대통령이 임명하고 해임한다. 비록 선거에 앞서 이러쿵저러쿵하나 공허하게 들린다. 실제로 김영삼 대통령 때 이회창 총리는 헌법 규정대로 총리권한을 행사하려 하였다. 각료제청권도 어느 정도 행사하여 자기 몫으로 3명쯤의 각료를 임명한 것 같다. 그러다가 북핵(北核)문제 정책결정 과정에 청와대 비서실장이 주도하고 총리가 배제되자 강하게 항의, 오히려 대통령의 해임권을 발동하게 해버렸다. 대통령이 보기에 총리란 그런 제도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임명하나 장관보다 약간 위로 인정할 뿐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야당이 원내 과반수를 장악하고 있을 때는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면 야당 출신 총리를 탄생시킬 수도 있다. 정치 분위기와 상황이 관련되겠지만 경우에 따라 프랑스에 자주 등장하는 동거정부 비슷한 것을 탄생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인기가 급강하한 지금 한나라당이 고집을 부린다면 가능한 일이다. 다만 다가온 대선에서 득표에 어느 쪽이 유리한가 하는 계산이 작용하여 몇달을 기다리기로 한 것은 아닌가 한다.
앞으로 우리 정치가 양당제가 될지 다당제가 될지는 지역주의 문제가 걸려 있어 자신있게 예측하기 어렵다. 지금은 한나라당이 과반수를 넘겼지만 대부분의 선거에서 한 정당이 과반수를 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진보정당이 급성장할 것도 아니고 당분간 보수 양대정당에 더하여 보수 군소정당, 진보 군소정당의 구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홍구 박사 이야기대로 연립정치에 우리도 익숙해져야만 한다. 그러한 상황이 된다면 책임총리제가 되었든, 연립정권이 되었든, 준 동거정부가 되었든 내각책임제 쪽으로 점점 접근하게 될 것이다. 연립의 기술을 잘 발휘하고 헌정관행을 현명하게 축적해간다면 개헌이란 대작업 없이도 바람직한 권력분산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헌정관행을 이끌어간다면 강 목사가 말하는 가부장적 권위가 있는 지도자인 대통령을 가짐과 동시에 권력분산형 내각책임제의 장점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