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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준비 위해 '서울 난민'이 된 지방대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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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준비 위해 '서울 난민'이 된 지방대학생들

"취업 경쟁? '스펙' 쌓을 기회도 없어요"

수도권과 비수도권 학생들이 '취업 경쟁'에서 겪는 격차는 단지 '학교 간판', 이른바 '학벌' 차이 만이 아니다. 토익, 자격증, 인턴 등 이른바 '스펙 쌓기'에서도 지방대학생들은 수도권 학생들보다 훨씬 불리한 환경에 놓여있다. 취업 준비를 위해 서울로 올라온 지방대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서울공화국'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우수한 자료와 시험 정보가 서울에 집중"

전남대에 다니는 김형찬(가명·25) 씨는 '서울 유학생'이다. 그가 광주에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까지 온 이유는 단 하나. '토익' 때문이었다. 그는 여름방학 두 달 동안 신림의 고시원에서 지내며 강남의 유명 어학원 수업을 들었다.

김 씨가 서울에서 살며 쓴 집세, 생활비, 학원비를 합치면 한 달에 약 100만 원 가량이다. 그는 "서울은 물가가 너무 비싸고 혼자 따로 나와서 사느라 돈이 더 들었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같은 공부를 할 때보다 몇 배의 가욋돈이 더 드는 셈이다.

그는 "원하는 성적은 얻었지만, 외로운 고시원 생활과 서울까지 올라와서 실패할 수 없다는 절박감, 힘들게 생활비를 지원해주시는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무척 힘들었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김 씨가 굳이 서울까지 올라와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선배와 친구들이 강남 어학원에 가면 강사진도 우수하고 자료도 많이 제공해서 쉽게 목표 점수를 얻을 수 있다고 추천했다"면서 "실제로 다녀본 광주의 모 어학원과 비교했을 때 강의의 질이나 자료에서 확연히 차이가 났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한 번도 서울에 가본 적이 없었다는 김 씨는 "강남의 토익 학원에서 만난 스터디 멤버 10명 중 4명이 비수도권대 학생들이었다"며 "내 주위에도 공부나 취업 준비를 위해 서울로 간 대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나마 토익처럼 대중화된 시험은 나은 편에 속한다. 정보 격차는 존재하지만 비수도권에서 준비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비수도권에서 전문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사정이 더욱 어렵다.

국제재무설계사(CFP) 자격증 공부를 하는 박민경(가명·25) 씨는 "지역에서 공부하고 싶어도 학원이 서울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씨는 "국제재무설계사 자격증은 재무설계업무에 관한 전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국제 전문 자격증"이라며 "최소 6개월 이상의 준비 기간이 들고 합격률도 20% 정도로 낮다"고 설명했다.

박 씨는 휴학하고 김 씨와 마찬가지로 서울 신림동의 한 고시원에 지내며 학원에 다닌 지 석 달 째다. 경북에서 대학을 다니는 박 씨는 "비슷한 공부를 하는 지역의 대학생들은 학원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서울 유학을 택하거나 인터넷 강의로 수업을 듣는다"고 말했다.

한 금융자격증 학원의 관계자는 "현재는 서울에서만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히며 "학원생의 약 15% 정도가 수업을 듣기 위해 비수도권에서 온 대학생들"이라고 설명했다.

▲2011년 상반기 취업시즌을 앞두고 서울시 종로구 관철동 한 토익학원에서 수강생들이 휴일도 반납한 체 취업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방에는 인턴, 각종 대외활동의 기회조차 없어"

비수도권대 학생들은 학원뿐만 아니라 '인턴' 자리를 위해서도 서울에 올라온다. 비수도권에는 인턴 자리가 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달째 서울의 한 홍보대행사에서 인턴을 하는 대학생 최소연(가명·23) 씨는 "지난 8월 무작정 서울로 왔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학교에 다니는 최 씨는 "홍보 일을 배우고 싶었지만 지역에는 모집 공고도 나지 않을뿐더러 회사 자체가 거의 없다"며 "서울에 오면 어디든 일할 곳이 있으리란 마음으로 일단 서울에 왔다"고 말했다.

최 씨는 서울에 온 지 한 달 만에 인턴 자리를 구했다. 최 씨는 "어차피 대구에 그대로 있었으면 한 달이 걸리든, 두 달이 걸리든 인턴 자리를 구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결국 원하던 일을 배우고 있으니 한 달간의 시간은 전혀 아깝지 않다"고 설명했다.

최 씨는 "주말에도 쉴 틈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한 커피전문점 홍보대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중에는 시간이 없어 주말 동안 커피전문점 매장을 돌면서 사진을 찍고 신제품을 홍보한다.

그는 "인턴뿐만 아니라 취업을 위해 필요한 대부분의 활동이 서울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은 취업 카페의 모집 게시판을 조금만 둘러보면 알 수 있다"고 씁쓸해했다. 최 씨는 "취업에는 스펙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정작 그 '스펙'을 쌓을 기회조차 부여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서럽겠냐"며 "(서울에 있는 동안) 다양한 경험을 쌓을 기회가 있을 때, 최대한 많은 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스펙' 중 하나로 꼽히는 마케터, 서포터즈 및 홍보대사, 기자단 등 대학생 대외활동 대부분이 수도권 지역에서 이루어지거나 수도권 거주자로 대상을 한정한다. 지역에서 가능한 활동이라 할지라도 면접을 서울에서 보는 경우가 많아 지원하는 비수도권 학생들은 합격할 기회를 잡기 위해서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서울행을 택한다.

"수도권 집중화가 비수도권 대학생들을 '난민'으로 만들어"

수도권과 비수도권간의 격차는 취업설명회에서도 나타난다. 실제로 <프레시안>이 11월 한 달 동안 개최되는 취업설명회를 조사해본 결과, 서울에만 13개 대학에서 71번의 취업설명회가 열리는 데 반해 부산·경남 1개 대학에서 7번, 대구·경북 2개 대학에서 7번, 전북과 충남, 충북에서는 각각 1개 대학에서 5번 미만으로 열릴 예정이다. 광주·전남, 강원, 제주에서는 취업설명회가 한 곳도 잡혀있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서 수도권 대학생과 비수도권 대학생의 취업 활동 차이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조사가 있다. 2009년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전국의 대학 4학년생을 대상으로 현재 취업준비를 위해 하는 활동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비수도권 대학 학생들이 수도권 대학 학생들보다 취업 준비를 위해 더 많은 활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비수도권 학생들은 수도권 학생들보다 '전공공부와 학점관리', '교수, 선배 등 인맥관리'를 더 많이 하는 반면 수도권 학생들은 '해외연수', '직무능력 관련 학습' 등을 더 많이 하고 있었다.

비수도권 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지역 내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의 폭 자체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수도권 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에 반해 비수도권 학생들은 지역에서 경험할 수 있는 활동에 한계가 있어, 그나마 서울과의 차이를 좁히려는 방법으로 학점과 인맥을 선택한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철호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사무처장은 "비수도권대 학생들은 모두 자기 고장을 버리고 서울로 이주하는 상황"이라며 "수도권 집중화가 이들을 '난민'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비수도권대 학생들이 지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는 한 이들의 '엑소더스'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용성 영동대 기획처장은 "정부는 모든 경제 정책을 수도권에 집중시키면서 비수도권대 학생이 겪는 어려움을 대학 탓으로만 돌린다"며 "정부가 비수도권 지역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비수도권대의 취업률을 높이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대학생들이 취업에만 목매지 않도록 벤처 투자를 활성화 등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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