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는 현대 산업사회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혈액과 같은 것이다. 석유가 잠시라도 흐르지 않으면 산업사회는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석유는 온갖 갈등과 분쟁의 근원으로 작용한다. 지금까지 일어난 많은 전쟁들이 석유로 인한 것이었다. 이란-이라크 전쟁,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미국-이라크 전쟁은 물론이고 체첸 전쟁, 미국-탈레반 전쟁의 이면에는 모두 석유가 도사리고 있다.”
<사진 녹색평론사가 펴낸 이필렬 방송대 교수의 ‘석유위기 언제까지 갈 것인가’.>
우리는 흔히 에너지위기를 말하지만 피상적일 뿐이다. 원자력발전의 위험을 이야기하면서도 핵폐기물 처분시설 건설계획에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을 ‘지역이기주의’(NIMBY)라며 비판하기도 한다. 한국 국민의 일인당 에너지소비량은 이미 지난 해 일본과 독일을 앞질렀으며 매년 에너지소비 세계1위를 향해 비약하고 있는데,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근본적인 대안마련은 고사하고 한정된 석유와 원자력을 이용해 갈 때까지 가보자는 근시안적 대책에 머물고 있다.
‘반핵을 넘어 에너지 대안운동’을 주창해온 이필렬 방송통신대 교수는 새 저서 <석유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펴낸곳 녹색평론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이 교수는 “우리가 석유에 의존하기를 그치지 않으면, 석유로 인한 분쟁도 그치지 않는다”며 “이 분쟁은 우리가 석유와 그 친척인 화석연료로부터 벗어나서 재생가능 에너지에 기반한 에너지 시스템을 확립할 때에 종식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교수는 필요한 에너지를 전부 거의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은 “세계 에너지 위기가 일어나면 어떤 대책도 소용없는 에너지 수급구조를 가지고 있는 셈”이라며 “우리가 조금 안다고 하는 미국이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데도, 우리에게 에너지 문제의 본질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생태환경과의 조화를 위해 재생가능 에너지의 사용을 주장하는 저자의 관심은 석유 등 화석에너지에만 머물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정부가 핵폐기물 처리장을 여의도에 짓겠다고 할 때 서울 시민들이 반대한다면 이를 ‘님비주의’라고 비판할 것인가.
정부는 전력산업 민영화만이 경제발전을 위한 유일한 길이며 대안이 없다고 하는 반면, 노동계는 전력산업 민영화는 공공서비스산업의 공공성을 훼손하고 국부를 유출시킨다며 반대하고 있는데 다른 대안은 없는가. 공기업이든 민영화든 지구환경의 파탄은 막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전력산업 민영화를 주장하는 정부가 원자력발전소 매각을 검토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전 세계에서 가동중인 4백30기의 원자로 운영에 필요한 경제성 있는 우라늄 매장량은 50년 정도밖에 사용할 수 없는 분량인데 에너지 위기를 원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을 믿을 것인가. 원자력에너지가 안전하다는 주장을 믿을 수 있는가. 가정용 전기요금 인상과 자동차 10부제나 5부제 등 근시안적 위기타개책이 에너지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원자력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인위적 핵분열은 인간이 물질적인 자연에 가하는 최악의 폭력이라고 생각한다”는 이 교수는 재생가능 에너지 확대에 커다란 관심을 가진 국가들(독일 덴마크 스웨덴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 대부분은 핵발전을 하지 않거나 핵발전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정한 나라들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석유 원자력 등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한국의 재생가능 에너지원은 충분한가. 이 교수는 먼저 태양광발전 풍력발전 수력발전 전기 잠재량과 태양열 지표열 지하온수 바이오매스 등의 열 잠재량을 모두 합산했다.
그는 여기에 에너지 소비 감소를 위한 장기적 계획을 수립해 추진해나갈 경우 2050년엔 재생가능 전기비율과 열에너지 공급비율이 각각 66%와 69.5%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지속가능한 에너지 시스템으로의 완전한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제조건은 현재와 같은 에너지소비 증가추세가 감소세로 돌아선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에너지 위기의 본질과 대안을 다루고 있는 책을 통해 앞서 한 질문들의 해답을 하나하나 제시하며, 시급한 것은 단기적인 핵반대운동과 장기적인 에너지 대안운동, 생태주의 운동의 병행을 통한 협력과 긴장의 관계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자신과 우리 후손들도 기후변화와 같은 재앙으로부터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 때문에 “전 지구적인 에너지 위기와 에너지 대안에 대해서도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석유위기 언제까지 갈 것인가’ 가운데 제1부 4장 ‘9.11 테러, 세계화, 에너지 시스템’은 특히 9.11 사태의 원인을 ‘테러와 세계화’의 연관성 속에서 찾으며 재생가능 에너지에 기반한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전 세계의 테러위협을 방지하는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와 출판사의 양해를 얻어 제1부 4장 전문을 소개한다.
***'9.11 테러, 세계화, 에너지 시스템-9.11 테러와 석유로부터의 해방'**
2001년 9월 미국에서 일어난 테러를 두고 원인 제공자는 미국 자신이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나왔다. 빈 라덴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키운 것도 미국이고, 아랍인들에게 심한 굴욕감을 심어줌으로써 이슬람 사회를 테러리스트의 온상으로 만든 것도 미국이니 이번 테러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미국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당연히 미국이 먼저 반성해야만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라는 ‘정답’을 빠뜨리지 않는다.
테러의 원인을 찾는 것은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궁극의 잘못은 미국에 있으니 미국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진단과 해법은 테러로 극심한 정신적, 물질적 타격을 입은 사람들에게 쉽사리 꺼내놓을 수 있는 말이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사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극을 당한 당사자들 사이에서 그러한 반성의 말이 나온다면 그런대로 용인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텔레비전 화면에 나온 테러 장면을 보면서 방관자적인 시각에서 ‘네 탓’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의 감정만 건드릴 가능성이 크다.
테러도 세계를 파국으로 몰고갈 수 있는 것이고, 미국의 패권주의도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정책을 바꾼다고 해서, 그리고 미국 테러를 조종한 자들이 ‘회개’한다고 해서 테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과 같은 테러는 몇몇 국가의 정치인이나 지식인이 노력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것도 결코 아니다. 전세계의 정치인과 지식인은 물론이고 대다수의 일반 시민들이 오랜 기간을 두고 노력해야만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슬람 국가나 미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우리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은 테러를 근절하고 그럼으로써 세계에 평화를 가져오는 노력은 정치적, 외교적인 차원의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이 문제를 에너지 시스템의 전환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에너지 시스템의 전환은 화석연료와 원자력에 기반한 기존의 중앙집중적이고 거대한 에너지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나 풍력이나 태양에너지 같은 재생가능 에너지를 바탕으로 하는 소규모.분산적인 에너지 시스템으로 넘어가는 것을 말하는데, 그 성공은 전세계 대다수의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이 노력해야만 얻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 전환은 궁극적으로 전세계를 석유로부터 해방시키고 지역중심의 경제 시스템을 가능하게 할 것이기 때문에, 중동 국가를 평범한 나라로 되돌려놓을 것이고 이는 세계를 좀더 평화로운 쪽으로 바꾸어놓을 것이다.
나는 9.11 테러가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생각거리를 던져 주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이 테러가 세계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현대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기술 시스템이 손상되면 엄청난 비극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일어난 테러는 세계화의 강한 압력에 대한 반동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또한 세계화의 성과를 철저히 이용한 측면도 있다. 세계화는 이슬람 세계에 대규모 테러의 불씨를 던짐과 동시에 그러한 테러를 그 전에 비해 아주 쉽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20세기의 기술시스템은 대부분 효율적이고 통제가 용이한 중앙집중적 방식의 거대규모로 구축되었다. 이 시스템은 손상될 경우 그 여파가 대단히 크기 때문에, 기술자들은 그것의 안정적인 작동을 위해서 많은 안전장치를 덧붙여 놓았고, 따라서 거대 기술시스템은 웬만해선 손상되기 어려운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번 테러는 그러한 시스템도 우리가 상상조차 못했던 방식으로 손상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세계의 어떤 원자력발전소도 연료를 가득 실은 여객기와의 충돌로부터 안전할 수는 없다. 원자력발전소의 아무리 단단한 콘크리트 방호막이라도 연료탱크의 폭발로 생성되는 열을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을 것이고, 이는 또다른 체르노빌 사고를 초래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거대한 화학공장이나 정유공장도 새로운 방식의 테러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방공망이 몇몇 테러리스트의 소행에 의해서 간단히 뚫렸다는 것도 아무리 첨단의 기술에 의존하는 기술 시스템이라 하더라도 손상받을 수 있고, 그 규모가 엄청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나는 이번 사태로 우리가 해야 할 일 몇 가지가 분명해졌다고 생각한다. 강력한 테러를 막고 그 피해의 정도를 줄이기 위해서 우리는 세계화를 완화해야 하고, 엄청난 규모의 파괴를 낳을 수 있는 거대 기술 시스템을 좀더 작고 안전한 것으로 대치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과연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던지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매뉴앨 월러스틴은 미국에서 일어난 테러를 앞으로 전개될 더욱 암울한 미래를 암시하는 에피소드로 규정했고, 슬로보예 지젝은 약간은 냉소적인 시각에서 미국만이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들보다 좀더 건설적인 제안을 하고 있는데, 그는 현재와 같이 국민국가를 무력화하고 자본을 모든 통제로부터 벗어나게 만드는 형태의 세계화가 테러를 조장하기 때문에 세계화를 좀더 인간적인 형태의 것으로 변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재생가능 에너지에 기반한 에너지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테러를 막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세계화는 현대 산업기술문명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화석 에너지의 국지성, 희소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에너지를 비롯한 국지적이고 희소한 자원은 근대 산업사회의 확장에 따라 경제의 세계화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경제적 세계화의 최종 단계로 여겨지는 세계 자본시장의 형성도 궁극적으로는 이들 자원을 용이하게 확보함으로써 자본의 활동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만드는 도구로 볼 수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세계화의 결과로 전세계가 상호의존 관계로 들어간 현재 세계화를 거꾸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세계화로 일국 내에서, 그리고 국가 사이에서 부의 편중이 심화되고 이로 인해 불만의 폭약이 쌓여가고 있는 것은 속히 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완화할 것인가이다.
세계화를 낳은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는 현대 사회의 지나친 석유 의존성이다. 그러므로 석유로부터의 해방은 세계화의 부정적인 결과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물론 이때 해방은 석유를 원자력이나 다른 화석연료로 대치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원자력과 가스, 석탄 같은 연료들은 모두 국지적이고 희소한 자원으로 이것들도 거대한 세계 시장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석유로부터의 해방은 국지성, 희소성이 없는 재생가능 에너지원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재생가능 에너지원은 지구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사람들이 사는 곳은 어디에나 햇빛이 비치고 바람이 불고 식물이 자란다. 땅 속은 어느 곳이나 항상 열기를 품고 있고, 많은 지역에서는 물이 풍부하게 흐른다. 어떤 곳에서는 바닷물이 세차게 움직이고, 뜨거운 물과 증기가 땅 위로 솟구친다. 인류가 이러한 것들의 일부만이라도 에너지로 변환해서 사용하면 석유로부터의 해방은 가능해진다. 사하라 사막 4만 제곱킬로미터에 비치는 햇빛 속의 에너지만 이용해도 현재 인류 전체의 에너지 소비가 충족될 수 있다는 사실은 석유로부터의 해방이 구체성과 현실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1979년 이란 혁명 후 초대 대통령을 지낸 바니 사드르는 이란에서 석유가 더 많이 생산될수록 이란 사회가 경제적, 정치적인 면에서 독립적으로 되기가 어렵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는 장기적으로 이란이 석유로부터 서서히 해방되어야만 국제정세에 따라 동요되지 않고 건전한 국민경제를 지닌 국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당시 바니 사드르의 경고는 옳은 것이었고, 모든 중동 산유국들에 해당하는 것이었지만, 그후 이들 국가의 산유량은 크게 늘어났다. 현재와 같은 추세로 산유량이 늘어나면 중동 국가들의 석유 의존도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석유가 중동 산유국들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었고, 그들의 경제적 번영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석유가 가져다준 부는 이들 나라 내부의 긴장과 갈등의 원천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 나라가 국제적인 분쟁에 쉽게 빠져들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었다. 현재 전세계의 산업국가는 물론 산유국과 제삼세계의 석유 소비국 모두 석유 중심의 화석경제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이 추세는 세계화로 더욱 강화되고 있다. 중동 산유국들의 석유의존으로 인한 불안정성은 석유가 만들어내는 부의 편중과 석유경제를 주도하는 서구와의 불가피한 접촉의 결과이다. 이들 나라에서의 석유로 인한 상대적 빈부격차의 심화와 이슬람 문화의 서구문화에 의한 침윤은 이슬람 근본주의가 발호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화석경제의 지속을 고집하면 이슬람 국가의 불안정성과 이로 인한 전세계에의 테러 위협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석유를 증산할 수 있는 나라는 중동과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국가들밖에 없고, 따라서 인류의 이 지역에 대한 석유의존이 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지역 이외의 산유국에 매장된 석유는 이미 상당히 고갈된 상태이고 이들 국가에서의 산유량은 점차 줄어가고 있다.
미국은 이미 1970년에 석유 생산이 정점에 달했고, 그후 생산량은 감소하고 있다. 러시아, 인도네시아, 중국도 90년대에 정점을 넘었고, 북해 유전도 2000년에 정점을 넘어섰다. 이슬람 국가들은 지금도 전세계 석유의 60% 가까운 양을 공급하고 있는데, 중동과 중앙아시아에 매장된 석유의 양은 전세계 매장량의 90%에 이르기 때문에 에너지 시스템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앞으로 인류는 점점 더 많은 석유를 이들 지역으로부터 공급받아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말할 것도 없이 세계의 이목은 지금보다 더 중동과 이슬람 국가로 집중될 것이고, 석유를 둘러싼 분쟁이 더 심해질 것이고, 테러의 근절과 세계 평화는 그만큼 더 멀어질 것이다.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은 수십년 이상의 장기적인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중동 바깥의 석유 소비국들이 에너지 시스템의 전환 노력을 통해서 석유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고 이것이 되돌릴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이 중동 국가들에게도 분명하게 드러나면, 중동 국가들도 석유의존으로부터 벗어나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이들 국가도 에너지 전환을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중동을 포함한 전세계에서 화석 경제가 약화되고 재생가능 에너지에 기반한 지속가능한 경제 시스템이 형성되면, 중동으로 집중된 세계의 이목이 거두어질 것이고, 세계화가 완화될 것이고, 이슬람 국가와 서구의 접촉이 줄어들 것이고, 결국 테러도 사라질 것이다.
재생가능 에너지는 현대세계의 에너지 공급을 위해 필수적인 거대한 에너지 기술시스템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든다. 이 시스템은 거대 유전과 가스전, 장대한 송유관과 가스관, 엄청난 규모의 유조선, 대형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 대형 정유공장과 화학공장, 수많은 주유소를 포함하는 것으로 테러리스트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고 테러가 가해졌을 때는 막대한 손상이 발생한다.
그러나 재생가능 에너지는 그것이 사용되는 바로 그 지역에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전세계를 연결하는 거대한 기술 시스템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소규모 기술을 통해서, 그리고 대단히 많은 행위자들에 의해 분산적인 방식으로 얻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재생가능 에너지 기술은 손상이 일어난다 해도 소규모에 국한되고, 복구도 쉽게 이루어진다. 재생가능 전기를 생산하는 풍력발전기는 그 규모가 원자력발전소의 1000분의 1도 안되고, 태양광발전기는 10만분의 1에도 못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소규모 발전시설은 테러의 표적도 될 수 없고, 설사 테러가 가해진다 해도 손상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은 중동을 비롯한 전세계 국가를 석유로부터 해방시킴과 동시에 원자력발전소나 정유공장 같은 거대 기술을 불필요하게 만들고 엄청난 에너지를 집어삼키는 초대형 건물의 건축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또한 에너지의 지역적 자급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세계화의 소용돌이를 크게 완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테러의 근절과 세계평화를 원한다면 구경꾼의 입장에서 벗어나 재생가능 에너지를 이용하고 이를 통해 에너지 시스템을 전환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저자인 이필렬 교수는 베를린 공대에서 화학을 전공해 디플롬(석사학위)을 받은 후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방송통신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는 '교양환경론'(공저) '에너지 대안을 찾아서' '에너지 전환의 현장을 찾아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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