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모임에서 도급 순위 30~40위 사이에 있는 중견 건설업체 오너를 만났다. 이공계 출신으로 가업을 키워 오늘에 이른 그는, 갈 데 없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 보수 우익 기득층(establishment).
한데, 그는 그날 거품을 물며 정부를 성토했다. 심지어 "대통령 잘못 뽑으면 정말 나라 거덜 난다"고 분기탱천하다가 기함(氣陷) 일보 직전까지 갔다.
노무현 정권 시절, 당연히 노무현을 욕하는 대표 선수였던 그였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좌파가 대통령이 되니 나라가 어지럽네" 한 게 고작.
근데 그날 이 양반의 성토 강도(强度)는 상상을 절(絶)했다. 특히 다음 대선에선 절대 한나라당 찍으면 안 된다며 "안보엔 보수고 경제엔 진보인 안철수가 맘에 든다"는 속내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래 내가 "이제 진보신당 가입하셔도 되겠네요" 했더니, 씁쓸하게 웃으며 벤츠600 승용차를 타고 휘익 떠났다.
그로 하여금 입에 거품을 물게 한 요인은 어디 있을까? 간단하다. 바로 '4대강 죽이기 사업'에서 신사임당 한 장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장사꾼이니까.
그 회사, 얼마 전 1차 부도 직전까지 갔었다. 비상 상황에 닥치자 아파트 건설 면허를 반납하고, 토건에만 전념하기로 한 후에야 겨우 진정이 됐다. 그렇다고 형편이 나아진 건 아무 것도 없다. 언제 또 홍역을 치를지 모른다.
재벌(財閥) 건설사 그들만의 잔치
잘 알려져 있다시피 3년 채 안 되는 기간에 22조원을 때려 부은 4대강 죽이기는 10대재벌 계열 건설사, 그들만의 잔치로 진행된 강토 거덜내기다. 절반인 11조원 이상을 이 카르텔이 가져갔다. 이 과정에 중견 건설사와 지방 건설사가 제외된 건 자명한 이치.
가뜩이나 부동산 경기 추락으로 아파트나 주상복합 짓는 것마저 한물간 상태다. 이른바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연명한다는 건 정신 나간 짓. 자금 흐름(cash flow)이 엉망이니 돌아오는 어음 못 막으면 바로 부도다.
그렇게 해서 부도난 건설사,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있을까. 중견 건설사 부도는 신문에 나기나 하지. 무명의 지방 건설사 자빠지는 건 뉴스도 아니다.
장하다! 싹쓸이 잔치에 숟가락 찌른 同志상고
예외가 있다. 포항 동지(同志)상고(現 동지고) 출신 CEO가 있는 건설사들은 건재하다.
2009년 11월 8일, 정부의 4대강 죽이기가 한창 가속 페달을 밟고 있을 즈음, 민주당 국회의원 이석현이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감사에서 폭탄 발언을 한다. "동지상고 출신이 운영하는 중소건설사가 낙동강 공구를 싹쓸이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4대강 1차 턴키 사업 공모 결과 낙동강 10개 공구 중 8개 공구를 동지상고 출신이 먹었다.
다음은 낙동강 공구 건설사 낙찰 결과.
1. 낙동강 제24공구 및 30공구 : 진영종합건설 사장(동지고 28회)
2. 낙동강 30공구 : 동대건설 사장(동지고 19회)
3. 낙동강 22공구 : 삼진건설 사장(동지고 21회)
4. 낙동강 32공구 : 노경종합건설 사장(동지고 30회)
5. 낙동강 22, 30, 33 공구 : (주)미성 사장(동지고 25회)
포항소재 6개 건설사 중 동지상고 출신이 사장으로 있는 5개사가 낙동강 공구를 집어먹은 것이다.
이석현은 "(사업자 선정 과정에) 권력 실세가 개입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영남지역 중소기업들의 원성이 고막을 찢을 정도"라며 담합 의혹에 대한 정부의 조사를 촉구했다.
입찰 결과에 대한 성토는 한나라당에서도 제기됐다.
국회의원 이한구는 이석현 폭로 나흘 뒤인 11월 12일 불교방송에 출연해 "4대강 사업을 지금처럼 준비도 제대로 안하고 각종 법 절차를 무시해서 무리하게 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며 "집행 단계에서도 여러가지 불공정한 입찰 문제, 여러가지 권력형 비리 등이 튀어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 4대강 사업 현장 ⓒ이상엽 프레시안 기획위원 |
동지상(同志商) 출신은 지옥서도 동지(同志)?
이한구는 "담합 문제도 제기됐다"며 "턴키 방식으로 사업 주체가 된 게 대형 건설사다 보니 하청을 줄 때 특정 고등학교 출신들이 다 휩쓸었다는 증거도 나와 있다"고 강조했다.
경상남북도엔 기초지방단체가 43 개 있다. 경상남북도엔 고등학교가 374 개 있다. 그런데 그 중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고장은 경북 포항, 무소의 뿔처럼 4대강 싹쓸이를 하는 우수한 학교는 동지상고다.
그래서 인가 MB정권에서 그의 형 이상득 지역구인 포항이 받은 국비지원 사업비가 10조원을 웃도는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엔 포항지역 용수 공급을 위한 4,000억 원 규모의 달산 댐 건설이 추진 강행되고 있다. 하천관리법 위반, 환경 파괴 우려가 있다. 아, 제발 달산 댐, MB가 현대건설 사장 시절 만들었다 재앙을 낸 연천 댐 같이 되지는 말아야 할 텐데.
알다시피 MB는 이 학교 9회, 그의 형 이상득은 4회 졸업생이다. 이 학교 한자 이름이 재밌다. 同志다. 항용(恒用) 지옥 가서도 모임을 가질 조직으로 고대 교우회, 호남 향우회, 해병대 전우회를 꼽는다. 하나 더 추가한다. 동지상고 동창회.
현장 재앙 상황 목불인견(目不忍見)
거창한 준공식을 한 지 열흘. 지금 4대강은 어떨까?
지난달 28~29일 정책자문위원으로 있는 한 공공기관의 연찬회 참석차 강원도 영월엘 갔다. 첫날 일정을 마치고 29일 단종(端宗) 유배지인 청령포(淸泠浦)를 구경했다. 근데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근심 속에서도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宋)씨를 생각하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막돌을 주워 쌓아 올렸다는 망향탑에 올라 아래를 내려보다가 망연자실.
그 골짝 남한강 상류가 휘돌아 나오는 곳에도 어김없이 4대강 죽이기가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4대강 아름다운 강으로 되돌리겠다'는 투의 펼침막까지 거대하게 펼쳐놓고 벌이는 동강 천변(川邊)엔 공사와 관계없이 상당량의 모래톱이 퇴적되고 있었다.
그건 아주 미세한 부분에 불과하다.
실제로 4대강 전역에선 지금 엄청난 재앙이 진행되고 있다. 일단의 토목학자들이 현장 관계자들의 엄청난 태클을 무릅쓰고 측정한 4대강의 오늘을 수치로 살펴보자.
서둘러 본류부터 공사를 하는 바람에 발생한 지천의 역행침식과, 마구잡이식 본류 준설 이후 진행되고 있는 모래 재퇴적 현상은 심각한 상황을 넘어 급기야 재앙으로 치닫고 있다.
일례로 낙동강 하구 합천 율지교 아래에선 무려 67%의 재퇴적이 이뤄졌다. 앞으로 얼마나 더 재퇴적이 이뤄질지 토목학자들도 모른다. 4대강 전체 평균 모래 재퇴적은 평균 30% 수준이다. 이 역시 앞으로 얼마나 올라갈지 며느리도 모른다.
정부의 "준설 중지!" 명령은 대국민 사기 증거
원래 낙동강 전체 준설 예정 물량은 4억4천만 ㎥다. 1㎥당 낮게 잡아도 1만 원선. 정부는 낙동강 준설비용에만 4조4천억 원을 책정했다. 그런데 돌연 1억 ㎥에 대한 준설을 취소했다.
최근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이 해당 낙동강 하구 담당 건설사에 대해 "준설 그만하라"고 지시했다는 것.
여기서 생기는 의문. 도대체 집행한 1조 원은 어디 갔을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4대강 사업이 대국민 사기극이었음을 이 사안이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준설 포기로 물 확보량이 1억 ㎥(1억 t) 줄어버렸다. 당초 정부가 4대강 사업을 강행하면서 줄기차게 주장해온 수량확보, 홍수조절 용량 얼마라는 당초 청사진이 말도 안 되는 것일 뿐 아니라, 정부 스스로 그나마 헌신짝 내버리듯 팽개친 것이다.
"모래 팔아 8조원의 이득을 보겠다"는 MB의 공언도 헛 것. 모래로 돈은 땡전 한 푼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강변에 흉물스럽게 쌓여 있을 뿐이다. 준설 비용을 포함하면 총 13조 원의 손해를 본 셈이다.
검찰(檢察), 지금부터 예습 단단히 하라!
검찰에 주문한다. 당신들 4대강 파일 단단히 챙겨라!
어차피 대선에서 권력 이동이 이뤄지면, 아니 한나라당의 아무개가 정권을 잡더라도 이 비린내에 대한 조사는 피해야 피해갈 수 없을 터이니 지금부터 미리미리 예습해 두라는 얘기다. 괜히 허둥대다가 공소유지도 못하는 멍청이같은 꼴 당하지 말고.
미리 힌트 하나 주겠다.
자동차나 벽걸이 TV, 스마트폰 등의 제품 원가는 빤히 나온다. 아파트까지 만해도 원가 계산이 그리 어렵지 않다(그런데도 아파트 원가 아직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근데 토목 공사 원가 계산은 펜대 굴리는 대로(아니 자판 두드리는 대로)다.
예를 들어 도로 공사를 보자.
11m를 파서 땅을 고르고 포장해야 하는 구간 공사를 맡은 업체가 있다고 치자. 대충 9m 정도만 파서 성토하고 아스팔트도 규격보다 1㎝만 얇게 포장해도 수억 남는다. 한 1㎡ 쯤 제대로 공사한다. 용케도 검수관은 그곳을 콕 집어 검수한다. 절묘한 콤비네이션. 토건 비리의 ABC다.
"국립호텔 놔두고 웬 사저?"
최근 한 고위 인사가 서울 강남 한 켠에 사저를 짓는다 해서 논란이 됐다. 일전 그곳엘 갔다. 당해 지역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구문이 된 이 건(件)에 대해 지역 주민 중 한 사람이 말했다.
"국립호텔 좋은데 있는데 웬 사저?"
* 이번 칼럼부터 <윤재석의 '갑론을박'>이 <윤재석의 '쾌도난마'>로 거듭났습니다. 우리사회의 부조리한 구석구석을 명쾌하게 짚어내겠습니다. 필자의 이메일 주소는 blest01@daum.net 입니다. 기사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분은 주저말고 메일 보내주세요.
MB정권 3대 비리 시리즈는 <제2탄> '롯데 제2월드 비리' 의혹, <제3탄> '종편 무더기 허가 비리' 의혹으로 이어집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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