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일본 언론의 인질이 된 피랍자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일본 언론의 인질이 된 피랍자들'

독일 FAZ "품위 상실한 일본 언론의 피랍자보도"

일본 언론들의 최근 주요 이슈는 9.17 북일정상회담 이후 지난 15일 북한으로부터 일시 귀국한 일본 납치피해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이다. 그들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 거친 피부까지 모두가 일본 언론들의 관심대상이며 이를 통해 일본의 신우익주의가 발호하고 있다.

수십년간의 식민지배를 통해 한반도를 만신창이로 만들고 수십만명의 한국인을 전쟁터로 내몬 일본이 과거에 대한 반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은 채 북한의 악랄함만을 강조하고 있는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납치피해자가 소수라 하더라도 개개인의 인권이 소중함은 부연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일본 언론들이 납치문제에 대해 써대는 기사들 속에는 한민족에 대한 멸시의식까지 내포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상중 도쿄대 교수는 29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북핵 다자주의 접근을'이란 칼럼에서 납치문제에 대한 일본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들의 정서적 반응은 "70년대 초 한국의 반북ㆍ반공정서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강 교수는 일본이 북한으로부터 어떤 실질적 피해가 받았는지 따져보자며 "10만명에 가까운 재일한국인이 북한으로 건너간 '귀환운동'은 일본 국내에서 '제3국인'의 사실상 퇴거로서 환영받았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이외에도 한일조약을 통한 유무상 5억달러 지원에 힘입어 일본이 거둬들인 한국으로부터의 무역흑자는 막대하다고 강조하고 김대중 정권 이후 교류관계를 심화시키려던 노력 또한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로 암초에 부닥치게 됐다고 분석했다.

강 교수는 "주목해야 할 것은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등 신우익적 역사수정주의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는 일본의 일부 정치가와 학자, 저널리스트, 평론가들은 납치 피해자 가족모임을 에워싸고 매스컴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점"이라며 "그러나 납치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과 일본간의 자유로운 왕래가 무엇보다도 바람직한 일이다. 즉 양국의 국교수립이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북일정상간 공동서명한 "평양공동선언에 담긴 다자주의적 접근법이야말로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와 안정의 틀을 구축하기 위한 기본방침이어야 한다"는 강 교수는 "이를 위해서도 일본 외교당국은 단지 북한에 대한 적개심만 부채질하는 캠페인에 발목잡히지 말고 냉정한 다자간 외교를 진행해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일본의 안전 보장을 위해 필요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충고다.

일본 언론의 납치피해자 문제 보도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것은 한국뿐만이 아니다. 이미 2차세계대전 중 유태인 학살문제에 대해 이스라엘에게 과거의 잘못을 충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독일 언론들도 일본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스스로의 과거를 돌이켜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와 관련,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은 29일 '일본 언론의 인질이 된 피랍자들'이란 논평을 통해 "일본에 일시 귀국한 5명의 납치 생존자들은 항상 많은 카메라맨들의 추적을 당하는 등 관찰의 대상이 되고 있으나, 아무도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며 "원폭 투하를 경험했던 유일한 나라 일본에서는 피랍자들의 비극이 갑자기 확실해진 북한의 핵위협을 덮어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FAZ는 일례로 "일본 민영방송 후지TV는 방송매체로서 지켜야 할 모든 품위를 잃어버렸다"며 "DNA 검사를 통해 자신의 손녀인 것으로 확인된 소녀가 평양의 호텔에서 동향인인 일본인들로부터 캐물음을 당하는 것을 멀리서 지켜본 일본의 할아버지는 '인터뷰가 마치 경찰의 심문 같았다'고 말했다. 일본인 피랍자들은 독재체제의 북한에서는 납치자들의 통제에서 살아야 했는데, 지금은 마치 일본 언론의 인질이 되어버린 인상을 준다"고 꼬집었다.

FAZ는 낙후한 북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북한 입장에서 "(핵개발 포기 등) 안보정책상의 요구들에 비하면 납치 생존자들의 자녀를 일본으로 출국시키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보다 쉬운 양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이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는 충고다.

다음은 FAZ 29일자 기사의 주요 내용.

***일본 언론의 인질이 된 피랍자들**

그들은 어느 나라의 국민인가? 24년 전에 북한에 납치됐다가 처음으로 고향을 방문한 5명의 일본인 납치 생존자들은 자신들에게 낯설어진 세계를 돌아보고 있다. 그들은 인생의 절반을 일본에서 청소년으로 보냈고, 다른 절반은 폐쇄된 나라 북한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묵묵히 감수하면서 보냈다. 그리고 북한은 그들 자녀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자녀들은 북한에서 태어나 공산주의 정권의 교육을 받고 자라났으며 대부분은 아직 자신들의 부모가 일본에서 납치돼온 사실을 모르고 있다. 북한은 납치 생존자들의 자녀들이 부모들의 일본 방문에 동행하지 않고 일종의 인질로 북한에 남아있도록 했는데, 공식적인 이유로는 학업을 들었다.

일본에 일시 귀국한 5명의 납치 생존자들은 항상 수 많은 카메라맨들의 추적을 당하는 등 관찰의 대상이 되고 있으나, 아무도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들은 공식적으로 옛 학교친구를 찾고 가족묘를 방문하며 고향의 관청에 혼인신고를 하고 일본 여권을 발급 받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들의 웃음과 눈물, 복장, 식습관 등 모든 것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들과 잠시라도 접촉한 사람은 자신이 받은 느낌을 전해줘야 한다. 만약에 손이 거칠었다고 한다면 시청자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즉 북한에서의 힘들고 궁핍한 생활이 흔적을 남겼다고 보는 것이다. 5명의 납치 생존자는 지나간 세월에 대해 문제가 되지 않도록 간단하게 답변한다.

지무라 야스시는 “가정을 이루었고 편안하게 지내고 있으며, 생활에 만족해서 집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1978년 어느 여름날 여자 친구와 함께 밤하늘의 별을 보러 나갔다가 몇 명의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납치돼 자루에 씌워져 끌려갔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진술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들 부부는 또한 아직 자녀들이 북한 통치자 김정일의 수중에 있으며 자녀들을 생각해서라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그들은 불안감과 세뇌로 인해 자유롭게 말을 못하고 있다.

납치 생존자들은 영구 귀국문제와 관련해 일단 돌아가서 자녀들과 상의해 보아야 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반면, 일본은 마치 미숙한 사람들에게 길을 제시하듯이 이들을 대신해 결정을 내렸다. 즉 이들을 북한으로 되돌려보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납치 생존자들과 가족들의 이해를 고려해 행동하겠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는데 희생자 친척들과 언론의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다. 납치 생존자중 한 사람인 하스이케 가오루는 자신에게 고통을 가한 사람들에 대해 아주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했는데, 그의 형 도루는 “필요하다면 동생을 강제로 억류시키겠다”고 말했다.

고이케 유리코 중의원은 “납치 생존자들을 전체주의 체제로 되돌려보내는 것은 범죄이며 여기에 남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의무”라며 “이제 자녀들도 일본으로 오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북한이 가능한 조속히 이러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북한이 29일까지 이에 동의하는 입장을 밝히지 않을 경우 납치 생존자 자녀들의 처리 문제는 같은 날 말레이시아에서 시작되는 북일국교정상화 교섭에서 논의될 것으로 관측된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북일 국교정상화교섭에서는 물론 이미 거의 망각에 빠져든 일본 피랍자들의 문제보다 더 중대한 현안이 있다. 즉 북한은 얼마 전에 수 년 전부터 핵개발 계획을 가동시켜 왔음을 시인했던 것이다. 도쿄를 포함한 일본의 대도시들이 북한 미사일의 사정권 안에 있다.

일본은 한국 미국과 공동으로 최근 멕시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북한 핵무기 계획의 즉각적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런데 원폭 투하를 경험했던 유일한 나라 일본에서는 피랍자들의 비극이 갑자기 확실해진 북한의 핵위협을 덮어버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전략적 차원에서 생각을 하고 있는 반면 언론과 여론은 거의 전적으로 납치 희생자들의 문제에 잡혀 있다. 납치 생존자들이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한 이후 회 전문식당과 온천을 방문한 것에서부터 일본의 쌀과 무우에 대해 언급한 이야기까지 모두 토크쇼와 저녁 뉴스의 소재가 되고 있는데, 일본을 겨냥하고 있는 북한 미사일에 대한 보도 수준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

일본 민영방송 후지TV는 방송매체로서 지켜야 할 모든 품위를 잃어버렸다. 후지TV는 1977년 납치된 후 북한의 병원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다가 자살한 요코다 메구미의 딸(김혜경)과 인터뷰를 가졌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기 어머니가 일본에서 살았던 것을 알지 못했던 15살의 소녀는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DNA 검사를 통해 자신의 손녀인 것으로 확인된 소녀가 평양의 호텔에서 동향인인 일본인들로부터 캐물음을 당하는 것을 멀리서 지켜본 일본의 할아버지는 “인터뷰가 마치 경찰의 심문 같았다”고 말했다. 일본인 피랍자들은 독재체제의 북한에서는 납치자들의 통제에서 살아야 했는데, 지금은 마치 일본 언론의 인질이 되어버린 인상을 준다.

일본 정부는 쿠알라룸푸르에서 가지는 수교협상에서 피랍자 문제를 제쳐놓을 수 없게 됐으며, 무엇보다 북한에게 자연스럽지 못한 상황에서 사망한 8명의 사망자들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할 것이다.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의 대표로서 자국의 협상 입지가 좋다고 보고 있다.

김정일은 낙후한 북한 경제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김정일로서는 현재 미국으로부터는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인 반면, 잠재적 자금원인 일본과의 대화 채널은 열려 있다. 가와구치 일본 외상은 지난 28일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일본은 국교를 정상화하거나 경제 지원을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물론 안보정책상의 요구들에 비하면 북한으로서는 납치 생존자들의 자녀를 일본으로 출국시키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보다 쉬운 양보일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