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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독가스 사용하고 현장까지 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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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러시아, 독가스 사용하고 현장까지 조작?

체첸 인질사태 과잉진압, 미국정부등은 모른채 외면

모스크바의 한 뮤지컬 극장에서 지난 23일부터 3일간 지속됐던 러시아 사상 최악의 인질극은 알파특수부대와 정체불명의 독가스를 투입한 진압작전 끝에 인질범 50여명의 사망과 8백50여명의 인질중 사망자만 1백18명(28일 정오 현재)이라는 참혹한 결말을 맞았다.

8년간 지속된 러시아·체첸 분쟁과 관련해 이번 사태가 양국간 전쟁을 종식시키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던 일각의 기대는 피로 물든 '톰 쿨투리'(문화의 집) 극장의 피바다속에 함께 파묻혔다.

러시아가 진압작전을 위해 사용한 가스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정확한 보고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러시아 당국은 빗발치는 부상자 가족들의 항의와 각국 언론들의 집요한 취재를 외면한 채 가스의 정체에 대해 함구하고 있어 이번 작전이 과잉진압 아니었느냐는 부정적인 여론확산을 부채질하고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 당국은 애초 무장하고 있는 인질범들을 무력화하기 위해 특수부대가 뮤지컬 극장 환기구를 통해 주입시킨 가스는 '수면가스'라고 설명했었다. 그러나 가스로 인해 인질범은 물론 인질들마저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것으로 드러나자 '특수가스'라고 말을 바꿨으며, 이에 가스의 정체를 둘러싼 논란과 함께 가스사용이 정당했는지에 대한 비판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LAT "러시아 특수부대 사용가스, 신경가스일 가능성 높다"**

인질극 진압이 끝난 후 병원에 후송된 인질들의 치료를 맡고 있는 모스크바 시립병원 수석의사 안드레이 셀촙스키는 기자회견을 통해 "현재 6백46명이 병원에 입원해 있으며 진압과정 도중 숨진 인질 1백17명이 거의 모두가 가스중독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고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이 보도했다. 셀촙스키는 진압작전에 사용된 가스가 심장과 폐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반면 이번 인질극 사태에서 총격으로 사망한 인질은 단 한명에 불과했고, 방독면을 차고 극장에 진입한 러시아 특수부대의 희생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희생자들의 사인이 정체불명의 '가스'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예브게니 예브도키모프 모스크바 시립병원 수석 마취의는 "이 가스는 일종의 향정신성 물질이며 '고농도'로 분사될 경우 의식불명이나 호흡과 혈액순환 장애 등 신체의 기본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라며 "사용된 가스는 일반적인 마취제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단순한 '마취가스'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다른 전문가들은 최소한 상당한 고농도의 마취제이거나 발륨같은 강력한 진정제, 또는 BZ가스 같은 환각제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의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27일(현지시간) 이와 관련, "인질사건 진압 당시 러시아 특수부대가 사용한 가스는 수면 혹은 마취가스가 아니라 사린, VX 신경가스나 소만(soman)가스와 같은 신경제재일 가능성이 있다"는 미국 정부 관계자들의 분석을 인용했다. 신문은 모스크바 극장에 주입된 가스가 어떤 종류인지 자세한 내용이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병원에 입원한 이들의 증세로 볼 때 신경가스 혹은 '신경마비' 화학제재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이다.

한 전문의는 "VX 등 신경가스는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생존자들을 입원케 할 수도 있다"며 "사린이나 소만, VX 신경가스, 관련 혼합제재는 소위 '유기산화합물'로 알려진 신경제재군에 속하는 것으로 폐와 기관지 등 호흡기나 방광, 기타 인체의 다른 기관을 통제하는 근육을 위축, 경련을 일으키게 하며 뇌에도 침투, 발작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미 정부의 한 관계자는 "과거 구 소련은 미국보다 신경·화학가스 분야 연구에서 앞서 있었다"고 밝혔으며, 이스라엘 하사다 대학병원의 요엘 돈친 교수도 26일 러시아 보안군이 극장안에 주입한 가스는 "마취제와는 관련이 없고 신경가스를 사용했다는 게 유일하게 그럴 듯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 함구배경, 화학무기금지협약 위반 때문(?)**

러시아 당국이 가스의 정체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이유는 지난 97년 러시아가 가입한 화학무기금지협약(CWC)이 사린, VX 등 신경가스나 소만가스와 같은 신경제재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린 가스의 경우 몇해전 '옴'교 광신도들이 도쿄 지하철 등 일본 주요도시에 무차별 살포, 여러명이 사망함으로써 일본열도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문제의 독가스다.

따라서 만일 러시아가 협약에 위배되는 가스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과잉진압 논란과 더불어 새로운 정치적·외교적 부담을 안게 될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현재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들은 사용된 가스의 정체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으며 체첸 분쟁과 관련해서만 조속한 평화적 해결을 희망한다는 의례적 메시지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다.

체첸 반군에 의한 인질극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겠지만 이를 알 카에다와 같은 테러조직과 동일시하고 테러소탕을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도 용인될 수 있다는 미국식 부시 독트린이 또 다른 초강대국 러시아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진압시점 논란: 인질들 "체첸 반군 가스 주입 전까지 인질 살해 안해" 증언**

한편 러시아의 진압작전이 시작된 시점에 대한 논란도 증폭되고 있다. 뮤지컬 관람객 8백50명을 인질로 잡고 있던 체첸 인질범들이 인질 2명을 살해하기 시작해 어쩔 수 없이 무력진압에 나섰다는 러시아 당국의 발표를 뒤엎는 증언들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뮤지컬 극장 관계자인 게오르기 바실리예프는 가스 질식 증세에서 깨어나 퇴원하면서 "인질극 진압작전은 26일 오전 5시께 극장 환풍구를 통해 가스가 주입되며 시작됐다"며 "그 전까지 극장은 평온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내가 알기로 인질범들은 극장에 가스가 주입되기 전까지 단 한명의 인질도 살해하지 않았다"고 말해 러시아 당국의 발표내용을 정면 부인했다.

다른 인질들도 가스가 주입되면서 인질범들이 동요하기 시작하는 등 상황이 악화됐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총격으로 인한 인질사망자가 단 한명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이같은 증언을 뒷받침한다. 결국 평화적으로 협상을 통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었는데 특수부대가 먼저 유독성 가스를 살포하며 공격을 시작했다는 것으로 독가스 사용과 진압시점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도 한동한 계속될 전망이다.

이에 앞서 블라디미르 바실리예프 러시아 내무차관은 "테러리스트들이 극장에 폭발물과 지뢰를 설치했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인질 전원과 작전에 투입된 병력 등 1천여명이 사망할 수도 있었다"며 "1시간여만에 끝난 이번 진압작전을 성공작"이라고 주장했었다.

***현장조작의혹: "러시아 TV 방영한 현장에 술병 누가 갖다 놓았나"**

이외에도 상태가 호전돼 퇴원한 인질들로부터 진압작전이 종료된 직후 러시아 TV에 방영된 현장장면에서 죽은 인질범들 사이에 술병과 주사기들이 발견된 것에 대해 "그들(인질범들)은 술을 마시지 않았고 담배를 피우지도 않았으며 함부로 욕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매우 잘 훈련받은 사람들이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어 러시아에 의한 '현장조작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톰 쿨투리'의 바실리예프 또한 "인질범들은 각각 맡은 임무가 따로 있는 듯 했다"며 "대부분 이성적으로 행동했다"고 말해 과연 체첸 반군들이 인질극을 벌이는 과정에서 술을 마시는 등 비이성적인 행동을 했을지에 대한 의문이 일고 있는 것이다. 만일 러시아 군에 의해 현장이 조작된 것이라면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의 도덕성에 대한 논란마저 증폭될 상황이다.

독일 쥐드도이체차이퉁(SZ)은 이와 관련 28일 '폭력의 환호(Der Triumph der Gewalt)'란 논평을 통해 "1백18명의 인질사망자와 진압과정에서 나타난 비인간적인 관료주의적 충돌을 볼 때 성공적 진압이라는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분명한 것은 7백50여명 이상의 인질 전원은 아니더라도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수 있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SZ는 현 시점에서 러시아와 체첸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분쟁의 해결방법을 폭력이 아닌 대화를 통해 찾아야 한다는 점이라며 하지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대화를 거부하고 군사적 해결방법을 추종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SZ는 체첸 반군에 의한 인질극으로 인해 대부분의 러시아인과 많은 국제 정치인들은 체첸과의 전쟁이 테러와의 전쟁의 일환임을 재확인시켜 주었다고 보겠지만, 체첸 분쟁을 유발시킨 공동의 책임이 푸틴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모스크바 인질극이 체첸의 독립을 지향하는 반군들의 마지막 테러(?)는 아님이 분명하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체첸의 독립을 위해 순교자가 되려는 반군들은 끝이 없을 것이며, 이번에 인질극을 벌인 반군들 가운데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사망한 군인들의 미망인들이 상당 수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모스크바 인질극의 과잉진압은 또 다른 비극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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