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후보의 자격에 대한 검증이 시작됐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이를 둘러싼 공방이 여러 차례 있었으나, 정치적 중립성을 지향하는 시민단체 관계자가 정식으로 이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처음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정몽준 후보는 이같은 검증과정에 일차적으로 감정적 대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반응은 앞으로 정후보가 거쳐야 할 '검증의 터널'이 이제 막 시작됐다는 점에서 볼 때 그가 넘어야 할 고비가 결코 간단치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하겠다.
***장하성 교수가 던진 '세가지 질문'**
참여연대의 간판격인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겸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운영위원은 24일 한국일보에 기고한 '鄭후보가 밝혀야 할 것들'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정후보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장교수가 던진 첫번째 질문은 "정후보가 선거자금은 후원회비와 당비로 조달하고 필요하면 개인돈을 쓸 것이라고 공언했는데, 아직 당이 없으니 당비가 없을 것이고 후원회비를 얼마나 모금했는지도 밝힌 적이 없다"며 "신고한 재산내역에 의하면 당장 현금으로 동원할 수 있는 개인 돈은 20억원이 안 돼 이는 선거자금은커녕 창당자금으로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인데, 현재 창당자금을 어떻게 마련하고 있는지를 밝히라"는 것이었다.
두번째 질문은 "정당하게 재산축적을 했는가와, 현대중공업이 1,882억원의 자금을 동원하여 주가조작에 참여했던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의 연관성을 밝히라"는 것이었다.
세번째 질문은 "기업지배구조의 개선, 재벌의 은행소유, 부실기업에 대한 정리방안, 그리고 자신과도 관련된 재벌 2세, 3세의 편법적인 상속, 증여세 회피를 막을 세제 등과 같은 구체적 재벌정책을 제시하라"는 것이었다.
***국민통합21, "장하성 교수에 답한다"**
이같은 장하성 교수의 공개질의에 대해 정몽준 후보가 창당중인 국민통합21(주)의 박진원 대선기획단장은 25일 한국일보에 '장하성교수에 답한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실었다. 박단장은 정후보의 미국 콜럼비아대 후배이자 뉴욕 변호사 출신으로 얼마 전 캠프에 합류한 정후보의 '싱크탱크'다.
박단장은 정교수의 첫번째 질문과 관련, "정 의원은 가장 적은 선거자금과 가장 작은 규모의 선거조직을 활용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수백억에서 수천억원이 들 선거자금은 그만 두고라도’라고 장하성 교수는 언급했는데, 이것은 350억원의 법정선거자금 한도를 정몽준 의원과 국민통합21이 초과 사용할 것이라고 가정 또는 예단한 것으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불만을 표시한 뒤 "창당자금에 대하여는 앞으로 중앙당 후원회를 설립 가동하여 일부 충당할 것이며, 필요한 경우 정몽준 의원의 개인 자금도 소요될 것임을 이미 언명한 바 있다"고 밝혔다.
정 교수의 두번째 질문과 관련해선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에 관하여도 이미 금융당국과 사법당국에 의하여 철저히 조사된 바 있으며 그 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음이 분명하게 밝혀진 바 있다"며 "이 점에 있어서도 장 교수가 주가조작 참여 등을 기정사실화 하여 논의한 것은 유감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박단장은 정후보의 재벌정책을 묻는 세번째 질문과 관련해 가장 분명하게 입장을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21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사외이사제도와 감사제도의 선진화를 찬성하고, 나아가 집단소송제도의 도입을 적극 지지한다. 변칙 상속 및 증여는 현행 법체계 아래서 방지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또 산업자본의 은행주식 소유한도 확대와 관련해선 "이미 외국인 투자자가 일부 은행의 대주주인 현실을 감안할 때, 산업 자본의 은행주식 소유한도의 확대는 긍정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밝혔고 이밖에 "출자총액제한제도와 대기업집단지정제도는 현행대로 유지해야 함으로써 그 동안 누적되었던, 대기업 위주의 경제력 집중 현상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몽준, "장교수 글은 질시와 지시, 증오"**
신문지상을 통해 전개된 장하성 교수의 공개질의와 박진원 단장의 이같은 반론은 논쟁의 충실성 여부를 떠나, 일단 이해관계에 기초한 정치권내 공방과 비교할 때 '생산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권자들로 하여금 어떤 선입견에 사로잡힘 없이 한 대통령후보에 대한 객관적 검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러나 엉뚱한 데서 불거졌다. 엉뚱하게도 장하성 교수의 칼럼을 본 정몽준 후보가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정몽준 후보는 24일 오후 춘천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장교수 칼럼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대해 "(그 칼럼은) 질시와 시기이며, 남을 증오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발표)한다는 것은 문제"라고 감정을 폭발시켰다. 정 후보는 또 "증오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지만, 대학교수가 대선후보가 되려는 사람에게 증오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며 "나는 대선후보로 공인인데 공인에 대해 얘기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장교수도 글을 쓸 때 좀 절제하는 게 좋겠다"고 덧붙였다.
아무리 장교수 칼럼이 정후보의 신경을 건드렸다 할지라도, 정후보의 말마따나 그는 '공인'이다. 따라서 장교수의 문제제기를 '질시와 시기', '증오'로 규정한 정후보의 사고방식은 여러 모로 '공인'답지 못하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정몽준 후보는 이제 막 '검증'의 터널에 들어선 상태다.
그동안 정치권에선 '현대상선 4억달러 대북송금설' 등 각종 공세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지도에는 거의 변함이 없었다. 정치권의 네가티브 공세를 '객관적 검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유권자의 성숙된 의식의 결과다.
하지만 장하성 교수의 문제제기는 정치권의 네가티브 공세와는 성격을 달리한다. '객관적 검증'의 한 과정이다. 정후보는 이같은 객관적 검증을 마치 특정목적을 깐 정치권의 네가티브 공세와 동일한 것으로 매도하는 우를 범했다.
정후보의 생명선이었던 포지티브 이미지가 최근 원칙없는 4자 연대 추진, 오락가락하는 대북정책 등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다가 '객관적 검증'조차 외면하고 매도하는 구정치적이며 제왕적인 태도를 계속 보인다면, 단언컨대 정후보의 앞날은 없을 것이다. 정몽준 후보의 맹성(猛省)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다음은 한국일보에 실린 장하성 교수의 글과, 이에 반론을 제기한 박진원 국민통합21 대선기획단장의 글, 전문이다.
***鄭 후보가 밝혀야 할 것들**
장하성(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정몽준 후보는 그가 재벌기업의 총수라는 점에서 다른 후보들과는 다르게 검증 받아야 할 사안들이 있다. 첫째는 창당자금을 포함한 정치자금의 실체와 자신이 총수로 있는 회사들의 선거동원에 대한 검증이다. 둘째는 재산축적과 기업을 경영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행태가 대통령으로서 적합한가에 대한 검증이다. 셋째는 그의 재벌정책에 대한 검증이다.
첫째로 정 후보는 자신이 총수로 있는 기업들을 선거에 동원하지 않을 것이며, 선거자금은 “후원회비과 당비로 조달할 것이고, 필요하면 개인 돈을 쓸 것이다”고 공언했다. 아직 당이 없으니 당비는 없을 것이고, 후원회비를 얼마나 모금했는지도 밝힌 적이 없다. 더구나 신고한 재산내역에 의하면 당장 현금으로 동원할 수 있는 개인 돈은 20억원이 안 된다. 이는 선거자금은커녕 창당자금으로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그가 신고한 순재산은 1,710억원이지만 재산의 대부분인 현대중공업의 주식은 이미 신탁을 맡겨서 팔 생각이 없음을 분명하게 했다. 은행부채 500억원도 현대중공업 지분을 늘리기 위해 사용했다. 따라서 숨김없이 재산신고를 했다면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이 들 선거자금은 그만두고라도 당장 창당자금을 어떻게 마련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중공업이 그를 지원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그리고 정 후보뿐 아니라 모든 후보가 선거자금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그러나 정 후보는 현대중공업이 정주영씨가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에 509억원의 비자금을 지원한 전과가 있으며, 재산상태로 볼 때에 그가 공언한 개인 돈도 여유가 없다. 따라서 정 후보가 창당자금을 포함한 정치자금을 투명하게 밝히지 않으면 현대계열사의 지원에 대한 우려는 의혹으로 발전될 것이고, 정경유착의 청산에 대한 그의 의지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둘째로 정당하게 재산축적을 했는가에 대해서 분명하게 밝힐 의무가 있다. 그는 “아버지께서 도와 주셔서 재산을 장만했다”고 하면서도 구체적 내용과 세금납부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 “수학공부를 못해서 정확한 숫자가 기억나지 않는다”며 답을 피했다. 수천억원 재산을 가진 재벌총수로서 대통령 후보에 나선 사람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답변이다.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에 대한 자신의 책임에 대해서도 밝혀야 한다. 현대중공업이 1,882억원의 자금을 동원하여 주가조작에 참여했고, 자신이 소유한 현대전자 주식을 주가조작을 주도한 현대증권을 통해서 주가조작이 진행된 기간에 매도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조직적인 허위진술을 권고한 고문변호사가 징계를 받았고, 주가조작을 주도하여 실형을 받은 임원이 현대중공업에서 아직도 일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비행기 안에서 뉴스를 보고 처음 알았다”느니 주가조작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인 책임은 없다는 식의 책임회피를 국민들은 납득할 수 없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자신이 직접 결정한 정책이 아니니 실패해도 법적 책임이 없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할 것인가. 청문회를 연다면 대통령은 그만두고 총리인준도 안될 일이다. 대통령후보로서 재산축적과정이 정당했는지를 스스로 입증하고, 주가조작 등의 과거 경영과 관련된 문제에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재벌정책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정 후보는 총수들이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악용하는 순환출자를 억제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유지와 소액주주보호를 위한 증권집단소송제의 도입에 찬성했다. 재벌옹호만 하지 않을 것임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입장은 토론과정에 제기된 질문에 답하는 수준이었을 뿐이지 아직 재벌정책을 포함한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경제정책을 밝힌 바가 없다. 기업지배구조의 개선, 재벌의 은행소유, 부실기업에 대한 정리방안, 그리고 자신과도 관련된 재벌 2세, 3세의 편법적인 상속, 증여세 회피를 막을 세제 등에 대한 정책을 제시해 재벌을 옹호하는 재벌대통령이 되지 않을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장하성교수에 답한다**
박진원(변호사·국민통합21 대선기획단장)
고려대 장하성 교수는 2002년 10월 24일자 한국일보 6면 ‘한국시론’을 통해 국민통합21의 정몽준 의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을 해 왔다. 첫째, 창당자금을 포함한 정치자금의 실체, 둘째, 재산형성과정, 셋째, 재벌정책에 대한 입장 등이다.
선거자금과 관련하여 정몽준 의원과 국민통합21은 선거법을 준수하여 선거자금을 사용할 것을 수 차례 밝힌 바 있다. 국내 굴지 기업인 현대중공업의 대주주로서의 정몽준 의원의 재산에 대한 일부 국민의 부정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정 의원은 가장 적은 선거자금과 가장 작은 규모의 선거조직을 활용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수백억에서 수천억원이 들 선거자금은 그만 두고라도’라고 장하성 교수는 언급했는데, 이것은 350억원의 법정선거자금 한도를 정몽준 의원과 국민통합21이 초과 사용할 것이라고 가정 또는 예단한 것으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창당자금에 대하여는 앞으로 중앙당 후원회를 설립 가동하여 일부 충당할 것이며, 필요한 경우 정몽준 의원의 개인 자금도 소요될 것임을 이미 언명한 바 있다.
재산형성과 기업경영에서 보여준 정몽준 의원의 행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우선 현대중공업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소액주주 및 외국인 주주를 가지고 있는 우량기업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 그룹은 조선 분야에 특화한 그룹으로서 한번도 관련 산업 이외에 대규모 투자를 한 적이 없다. 또한 사외이사제도의 적극적 도입 및 시행, 그리고 참여연대와의 솔직한 대화 등을 통하여 기업경영의 투명성 측면에서 어느 기업보다도 앞서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이미 여러 토론회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정몽준 의원은 현대중공업의 유무상 증자 과정에 참여하여 재산형성을 해왔다.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에 관하여도 이미 금융당국과 사법당국에 의하여 철저히 조사된 바 있으며 그 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음이 분명하게 밝혀진 바 있다. 이 점에 있어서도 장 교수가 주가조작 참여 등을 기정사실화 하여 논의한 것은 유감이라고 생각한다.
국민통합21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사외이사제도와 감사제도의 선진화를 찬성하고, 나아가 집단소송제도의 도입을 적극 지지한다. 변칙 상속 및 증여는 현행 법체계 아래서 방지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법률 체계에서는 유형별 포괄주의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며, 편법 상속 및 증여의 방지는 현행법을 엄격히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고 본다.
이미 외국인 투자자가 일부 은행의 대주주인 현실을 감안할 때, 산업 자본의 은행주식 소유한도의 확대는 긍정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은행 경영에 대한 철저한 감독체계의 수립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와 대기업집단지정제도는 현행대로 유지해야 함으로써 그 동안 누적되었던, 대기업 위주의 경제력 집중 현상을 해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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