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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가가 주는 봉투 앞에서

〈김봉준의 붓그림편지 23〉



▲ ⓒ프레시안

마을 이장이 봉투를 하나 가져왔습니다. 펼쳐보니 국가유공자를 현충일 날 행사에 초대하는 편지더군요. 국립묘지 참배 초대증과 식권과 교통편 안내, 그리고 '근조'라고 써 있는 리본 하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현충일 행사에 초청하는 봉투였습니다.

이장은 내가 왜 이런 편지를 받게 되었는지 궁금한 모양입니다. 그는 나를 꼭 형이라고 부릅니다. "형은 무슨 유공자야?" 수송버스를 유공자 종류대로 분류한 표에는 독립유공자, 전쟁유공자, 산업유공자, 기타유공자 식으로 분류하고 있었습니다. "응, 나는 이거야, 기타유공자" 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기타유공자가 뭐지?" 하고 또 물었습니다. "민주화운동 유공자일 거야."

그동안 평소 소개하지 않으려 했던 내 전력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들통이 난 김에 더 설명해 주었습니다. "응 나는 5·18 광주항쟁 관련 유공자야, 지금은 사람들이 말을 자유롭게 하고 다니고 예전보다 선거를 공정하게 치르게 되었거든 이게 모두 민주화운동 덕분이야." 나는 묻지도 않는 민주화의 공적까지 덧붙여 설명해주었습니다. 이 외진 산골 농부에게 민주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들통 난 김에 이제 다 말합니다. 나는 당시 서울에서 5·18 진상을 알리는 유인물을 작성하고 뿌렸습니다. 그 후 계엄포고령 위반자가 되어 오랫동안 수배되고 투옥되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5·18관련자 피해보상을 접수한다고 하기에 3차 접수하던 1999년에 신청했는데 그것이 통과되었습니다. 빈손으로 투병하던 병실에서 누워서 살 궁리한 것입니다. 막상 되고 보니 유공자가 어색하고 부끄럽습니다. 살길을 찾으려고 문 두드렸던 일인데 그 후로 유공자라는 훈장이 표딱지처럼 내 몸에 붙어 다닙니다.

이 농부도 세상에서 보고들은 게 있으니 시대가 변한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 마을 주민 대부분은 민주화운동이 아직도 자기 생활에 무슨 이득이 되는지 실감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평생 농사로 먹고사는 일에 빠져서 사는 농부들이라 사는 게 다릅니다. 민주화 이전에는 선거 때만 되면 술과 밥을 쉽게 공짜로 먹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동네주민들끼리 회식도 하게 되고 온천관광도 갔는데 민주화 이후로는 선거가 재미없을 겁니다.

민주화 시대는 이곳 시골 주민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하게 합니다. 선거에 막걸리와 신발이 오가지 않는 거, 말을 막 해도 누가 잡아가지 않는 거 말고는 큰 변화를 못 느끼는 거 같습니다. 반대로 요즘 젊은 것들이 버릇없이 어른에게 대들거나 경제가 나빠진 거가 모두 민주화운동 책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경제발전은 '근대화 정권' 시절이었고 경제파탄은 민주정권 이후라고 생각하는 정치선전이 먹히는 것도 강원도 시골입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내가 처음 이 마을로 이사 왔을 때 수상한 사람이라고 신고하려고 했답니다. 허름한 작업복 차림에 산으로 들로 스케치북 들고 사방을 쏘다니는 행동거지가 아무래도 수상했다는 겁니다. 지금 바로 그 사람이 오늘 찾아온 이장입니다. 언제는 환영한다고 동네사람들 이름까지 새긴 시계를 선물하더니만 신고가 웬 말인지, 이 동네사람들 속을 알 수 없어 어안이 벙벙했었습니다.

지금은 10여 년을 같이 살아 온 덕분에 그들도 나를 많이 이해합니다. 나도 이제는 주민들의 정치의식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냉전과 하향식 통치에 생존해야 했던 누대의 세월이 오늘을 있게 했겠지요. 이곳 원주 문막도 6·25 전후로 좌우익 대립이 극심했던 곳입니다. 말만 안하지 지금도 그 때 복수전으로 상종도 안 하고 사는 집안이 있고 아예 마을을 떠난 집도 많습니다. 피투성이 역사를 덮어두고 기억에서 꺼내지 않으려는 주민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이런 정치풍토가 오래 지속되어 서로에게 발목을 잡습니다. 겉 표현과 속내가 다르고, 속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습니다. 토론하면 힘 있는 사람(마을에서 부자인 사람)과 노인만 발언하고 나머지는 입을 아예 닫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술자리에서 가서는 투덜거립니다. 멍석 깔아 놓으면 안합니다. 이 기회에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말하지 않습니다. 돈 없고 빽 없이는 오금도 제대로 못 펴는 오랜 분단체제의 산물입니다.

나는 국가가 주는 봉투가 익숙하지 않습니다. 동네 분위기가 그러다보니 민주화 전력을 별로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민주화운동으로 국가에서 주는 '기타 유공자' 혜택이 부담도 됩니다. 주변 사람에게 선망으로 비춰지는 것도 미안합니다. 국가인증 표찰이 내게 자꾸 국가에게 충성하라는 요청같이 느껴져 더 부담이 되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젊은 시절 국가의 폭력이 싫어서 싸웠기 때문인지 아직도 국가의 권력이 폭력화될 위험을 걱정합니다. 공권력의 폭력이 상존하는 불완전한 국가가 부담스럽습니다. 국가는 필요악인가. 항상 외부의 가상 적들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세금 내고 심리적 보장을 받는 것인가, 가상위협에 따르는 심리적 안정을 받고 대신 국가권력의 각종 요구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제도의 폭력, 공권력의 힘, 법만능주의, 국가 독점적 국제협약, 국가 독점적 예산편성, 행정편의주의, 각종 인허가, 합법을 앞세운 자연파괴 등은 내 생활을 직간접으로 불편하게 합니다.

현충일 국가가 준 봉투 앞에서 나라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합니다. 국가가 주는 자잘한 특혜들이 성가시기도 합니다. 왜 내가 이런 편지를 받아야 하는지 귀찮기도 합니다. 그냥 내버려 두지 자꾸만 집적거리며 국가와 정부를 기억하게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나라 잃은 시대에는 나라를 되찾으려고 목숨 바쳐 싸울 만큼 나라가 소중했는데 나라를 세우고 국가가 거대한 독점권력이 되고 나니 나라가 굴레가 됩니다.

자유, 인권, 창조정신, 평화, 자연보호, 행복에 오히려 장애가 되는 나라는 민주주의 시대에 누구나 좋을 리가 없습니다. 불공정한 나라, 불편한 나라, 인권을 침해하는 나라를 우리는 겪어 왔기에 과거가 상처처럼 사람들 마음속에 달려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강대국에 눈치 보며 이만큼 키워 온 우리의 나라가 측은하기도 합니다. 아직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나라는 멀지만 그렇다고 차마 내칠 수 없는 고래심술같이 질긴 애증의 나라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목판화는 '아리랑 고개' 1982년 작입니다. 나중에 민요연구회를 조직하고 민요부흥운동을 한 유인렬 씨 연출의 '판놀이 아리랑 고개' 연극 주제그림으로 만든 그림입니다. 집도 땅도 나라도 다 빼앗기고 조선 땅에서는 오갈 데 없던 우리 선조를 그렸습니다. 마지막으로 북간도나 연해주로 떠나 자식 교육도 시키고 독립운동도 해야 했던 개개인의 상처입니다. 나라 잃은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의 심정입니다.

우리 연극사에 자랑할 만한 공연이 있다면 북쪽에 '피바다'가 있고 남쪽에는 유인렬의 '아리랑 고개', 김민기의 '멈춰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 김석만의 '금강' 등이 있습니다. 대학 때부터 동아리 활동을 공연예술로 해서 그런지 내 그림은 공연예술과 조우하며 창작한 것이 많습니다.

우리 역사는 영광의 크기보다 상처의 깊이를 더 오래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민주화운동은 분명 영광스런 역사이지만 영광의 의미를 독점하다시피 해 온 정치권이 영광조차도 속물화 했습니다. 이제 남는 것이 있다면 상처 안에 깊이 내면화된 그늘의 역사 같습니다. 민주화운동사도 영광의 크기보다 상처의 깊이가 더 합니다. 역사의 상처는 결국 개인이 감당하는 몫이 되었습니다. 겨울 장독에 깊이 묻어둔 곰삭은 김치 맛처럼 민주화운동사는 개인의 내면화를 거쳐야 찬란한 문화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가가 내게 준 편지는 이제 미움은 날려버리고 나라사랑 다시 해보라는 연서 같이 보이곤 합니다. 잊지 말라고 날 사랑해 달라고 이것저것 물량공세 하는 편지 같아 성가시기도 합니다. 수북이 쌓이는 이 편지들- 인권소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소식, 보훈처 신문, 국가 기념일 초대장 등등, 내 화실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우체부 아저씨만 바쁘게 합니다.

언제나 가야 저 편지들이 성가시지 않고 사람 냄새가 나는 연애편지처럼 반가운 편지로 보일까. 다시 한번 내 시선에 나라가 정말 소중하고 사랑스런 조국으로 보일까. 사람냄새 물씬 나는 감동의 공문서가 기다려집니다. 나부터 다가가 다시 사랑을 고백해야 하나 봅니다.

"난, 너를 원래 사랑해. 그랬기에 내 청춘이 상처투성이잖아. 이제 내게는 이런 편지 안 써도 돼, 이건 좀 낭비야. 이런 정성 있으면 정말 살기 힘든 사람들에게 다가가, 불쌍한 사람부터 보호하고 봉사하는 나라가 되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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