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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신전략과 한반도 정세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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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북한 신전략과 한반도 정세변화

<전문가 진단> 미 강경주의 차단ㆍ남북간 군사긴장 완화 긴요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에는 분명히 과거의 냉전체제가 소멸하고 새로운 동북아시아 협력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러한 한반도 주변정세의 변화에 가장 큰 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북한이다.

지난 9.17 북일정상회담에 이은 경의선ㆍ동해선 등 남북간 철도연결공사 착공,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최초의 북미회담 등 동북아시아 정세변화는 북한을 중심으로 한치 앞 전망이 불투명할 정도로 급속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북한은 또 내부적으로도 지난 7월 물가와 임금을 동시에 인상한 경제관리개선조치에 이어 지난 달에는 신의주를 중국의 홍콩 통치방식과 심천 개방방식을 혼합시킨 특별행정구로 지정했다. 신의주 특구 초대장관으로 임명된 양빈 어우야 그룹 회장 연금을 둘러싸고 북중간 갈등이 불거지고 있지만 북한의 경제개혁은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 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북한이 경제발전과 대외관계 개선이라는 신전략을 세운 배경은 어디에 있으며 향후 전망은 어떠한가. 또 한반도를 지배하던 냉전질서의 근본적 해체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이러한 긍정적 변화를 한국이 지속ㆍ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전략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 이종석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최근 '북한의 신전략과 한반도 정세변화-북한 경제개혁, 남북ㆍ북일관계 개선의 동학'이란 주제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경제개혁과 대외관계 개선을 동시에 추구하는 북한의 신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미 부시행정부의 대북 강경노선을 최대한 완화시키고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필자와 세종연구소측의 양해를 얻어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북한의 신전략과 한반도 정세변화-북한 경제개혁, 남북ㆍ북일관계 개선의 동학'**

2002년 가을 한반도에서는 냉전의 구각을 무너뜨리는 중대한 변화가 다방면에서 발생하고 있다.

남북관계에서는 6.15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남북철도 연결공사가 시작되고 각종 교류협력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역동적인 움직임을 증명이나 하듯이 역사상 처음으로 남한 대중가수들의 평양공연이 96분간 북한 전역에 생중계되기도 하였다.

국제적으로는 적대적 대결로 일관해온 북일관계를 근본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정상회담이 열렸으며, 북미간에도 부시행정부 출범 이후 최초의 고위급 대화인 될 켈리 특사의 북한방문이 10월초에 실현되었다.

북한 내부에서는 7월부터 '경제관리개선조치'라는 이름으로 경제개혁조치가 광범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신의주가 중국의 홍콩 통치방식과 심천(深川) 개방방식을 결합시킨 특별행정구로 지정되었다.

이와 같은 일련의 변화는 국제적으로 한반도 냉전질서의 근본적인 해체의 가능성을 열어놓았으며, 북한 내부적으로는 남조선 혁명을 역설하고 외부의 적을 설정하여 피포위의식을 강조해온 전통적인 삶의 방식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북한 내부의 경제 변화는 지난 50여 년간 그들이 거부해온 시장경제적 요소의 일정한 수용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한반도 평화와 민족 공동번영의 인프라가 확충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러한 변화들이 각각 분절되어 있는 사건들이 아니라 서로 밀접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변화의 밑바탕에는 경제발전과 대외관계 개선을 하나로 묶는 북한의 신전략이 자리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달라지는 북한경제**

"내게 변화를 바라지 말라."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한사람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씀'이라며 즐겨 쓰던 말이다. 그러나 지금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의 주도 아래 경제적으로 대대적인 정책변화가 시도되고 있다.

지난 7월부터 실시되고 있는 “경제관리개선조치”로 인해서 사회 전체적으로 폭 넓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개혁에는 사회주의경제관리 개선조치라는 비교적 보수적 용어가 사용되었지만, 실제 그 개선의 폭은 북한 사람들 스스로 말하듯이 가히 '혁신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2001년 10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관련 담화를 계기로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되었던 이 개혁조치의 내용은 크게 다음과 같다.

첫째, 재화와 용역에 대한 국가 보조금을 중단하고 그에 따라 가격체계를 변화시켰다. 즉 생활필수품, 공산품 등의 가격을 원래의 가치대로 계산하면서 대폭적인 가격 인상을 단행하였다. 이러한 가격결정은 기본식량인 쌀을 기준으로 설정했는데 국제시장에서의 쌀 가격을 염두에 두고 국내에서의 수요와 공급을 고려하여 가격을 설정하였다.

이에 따라 과거에는 쌀 1kg을 농민들로부터 80전에 수매하여 주민들에게 8전에 판매하였으나, 지금은 40원에 수매하고 44원에 판매하고 있다. 물론 현재는 쌀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을 감안하여 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배급표를 나누어주고 있다.

그러나 쌀을 제외한 나머지 물품들에 대해서는 배급표를 폐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조치에서 북한은 가격의 완전한 자율적 변동에는 못 미치지만 가격을 국가에서 결정하고 나면 그것으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국가나 지방정부가 가격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하여 어느 정도 가격탄력성을 인정하였다. 한편 가격체계의 변화에 따라 과거 1달러에 2.15원이었던 국가 공식환율을 1달러에 150원대로 현실화시켰다.

둘째, 인상된 재화와 용역가격에 맞추어 노동자들의 월급도 인상되었다. 임금은 근로자들에게 생활비를 다시 계산해서 지급했는데, 대체로 15-20배정도 인상되었다. 그러나 직업에 따라 인상률에 차별을 두었는데, 특히 과거의 정책에서 중시되었던 직업과 현재 중시하고 있는 분야의 종사자들의 인상률이 매우 높았다.

예컨대, 기존에 중시되었던 중노동자들에 대한 우대정책을 지속하는 의미에서 광산노동자의 경우 2백원에서 6천원으로 인상하였으며, 현재의 과학기술 우대정책을 반영하여 과학, 교육자를 우대하였다. 이에 따라 대학교수의 월급이 2백원에서 4천-5천원 정도로 인상되었다.

셋째, 농업분야에서 토지사용료를 제정하고, 농민들의 생산증대를 위한 동기 부여 정책을 강화하였다. 농업분야의 가장 큰 변화인 토지사용료의 제정은 국가와 협동농장의 관계가 소유주와 사용자의 관계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북한당국은 협동농장의 토지 소유를 “생산수단이 일정한 집단의 범위 안에서 사회화되어 있는 소유”로 규정하던 과거와 달리 “토지소유권이 아니라 토지사용권에 대한 소유”로 재정의하고 있다.

이는 국가 통제의 협동농장이 중국의 개체농 대신에 사회주의적 성격이 상대적으로 강한 개체농장이라는 새로운 발상을 하는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과거 김일성은 "농민들을 땅의 주인이 되게 하였다"라고 표현했지만, 김정일은 "농민들을 생산의 주인이 되게 하였다"라고 하여 땅의 주인이라는 고전적 표현 대신에 ‘생산’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얼마나 시장 확대와 연결될지는 앞으로 협동농장의 수확량에 대한 자율처분권이 얼마나 보장되는지를 두고 보아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넷째, 경제전반에서 물질적 인센티브 제도가 강화되고, 이것이 경쟁을 촉진하도록 하였다. 노동자가 목표를 초과 달성할 경우 초과 부분에 대해 획기적인 인센티브가 주어지며, 기업소들의 독립채산제가 보다 강화되어 생산성의 고저에 따라 기업소 간에도 빈부격차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구성원들의 소득 차이도 크게 발생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일정기간 동안 기업의 생산성을 평가하여 경영실적이 지극히 부진한 기업은 생산품목을 바꾸거나 도태될 수밖에 없는 정책을 채택하였다. 바로 이러한 정책변화는 궁극적으로 개인과 기업이 모두 경제 경쟁에 나서도록 유도하고 있다.

예컨대, 가계는 시장가격에 기초해서 쌀이나 기타 식량을 구입해야 하므로 국가의존이라는 기존의 관성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으로 가정경제를 꾸려야 한다. 이에 따라 소득증대를 위해서 타인과 경쟁해야 하며, 동종의 기업소들은 다른 기업소보다 나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 서로 경쟁해야 한다.

이상의 경제개혁조치는 7월초 평양을 시작으로 하여 관련 학습을 거치면서 전국적으로 시차를 두고 시행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평양에서는 7월초에 실시되었으며, 양강도 도청 소재지인 혜산은 7월 25일경에, 그리고 평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함경북도 종성은 8월 초에나 시행된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이 이번 조치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목표는 크게 생산의 증대와 국가경제영역의 활성화인 것으로 보인다. 즉 북한당국은 이번 조치를 통해서 국가보조금을 삭제한 상태에서도 공공배급체계를 통해 배급할 수 있는 식량과 물품이 생산을 통해서 증가되길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생산에서의 인센티브 강화가 경쟁적인 생산 증대를 가져오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가기능의 정상화를 위해서 공적 경제영역을 활성화시키고, 이를 통해 국가재정수입을 증대시키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보이고 있다. 또 같은 맥락에서 국가경제영역에 장마당 가격과 관행 일부를 수용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시장경제의 싹이 되는 장마당을 약화시키려는 역진적 의도도 보이고 있다.

북한이 이렇듯 국가 단위에서 시장경제적 요소를 일정하게 수용하면서도 사적 경제영역에서의 시장의 확대를 통제하려는 움직임도 동시에 보이는 것은 그들이 경제개혁조치를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유지ㆍ강화라는 차원에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경제관리에서 일하지 않고 획득하는 평균주의 현상을 없애고, 일한 만큼 분배받는 사회주의 분배원칙을 체현하며, 전체 노동자들의 창조성과 혁명성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 이번 조치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새롭게 등장한 중심화두가 실리보장이다. 물론 북한의 시장을 향한 이중적인 태도는 개방 초기에 나타날 수 있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외형적으로 중국과 비교한다면, 중국은 사회주의 초급단계론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반면에 북한은 사회주의계획경제라는 기존 틀의 유지에 집착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북한 신경제정책의 영향과 중간 점검**

북한은 자신들의 새로운 경제정책을 사회주의 경제원칙의 틀에서 설명하려 하지만, 이 정책은 시장의 확대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지향의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설령 이를 부정한다고 하더라도 이 정책은 의도되지 않은 시장의 확대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서 주목할 점은 지도부의 정책적 의지와 정책효과 사이의 괴리이다. 즉, 북한의 상황에서는 부족한 자원으로 인해서 효과적인 정책수단을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리 사회주의계획경제의 틀을 유지하면서 생산을 증대시키려 해도 결국은 시장의 확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연한다면 북한은 양면효과 정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현재 내부자원의 고갈과 대미관계의 악화, 외교적 고립 상황 등 대외관계의 구조적 제약으로 인해 발전전략 구사시 최선의 전략선택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지도부가 사회주의계획경제와 김정일 정권의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인민생활의 향상과 정권에 대한 주민 지지도의 유지가 필요하다. 여기서 대외관계의 개선을 통한 외부지원의 확보와 생산증대를 위한 시장경제적 요소의 확대는 주민생활을 안정시킬 수 있다.

그러나 주민생활의 향상은 사회주의 제도의 이완을 촉진시킬 가능성이 높고, 부유해진 인민이 정권을 지지할지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고 거꾸로 사회주의계획경제만 강조하면 인민이 배고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고 그것은 원천적으로 체제붕괴의 위험성을 증대시킬 것이다.

바로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북한지도부는 어느 정책을 써도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모두 지니는 '양면효과'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재의 정책적 효과는 지도부의 정책적 목표와 상관없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필자가 판단하기에 북한은 궁극적으로 김정일 정권의 유지와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순기능적으로 결합시킬 수 있는 정책을 지향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을 실천해 가는 과정에서 부득이 시장경제적 요소의 수용도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북한지도부도 이번 조치가 경제구조 변화를 수반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조치가 사람들의 경제에 대한 인식을 크게 바꾸어 놓은 것만은 사실이다"라거나 "개선책의 내용이 재래식 사고에서 벗어난 대담하고 혁신적인 것이다"라는 북한 정책당국의 표현들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북한에서 경제정책의 최적점은 김정일 정권의 안정성 유지와 경제발전을 추동하는 시장화가 교직(交織)되는 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이 바로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의 개혁개방으로부터 확인하고 싶어하는 사항이 아닐까 생각된다.

북한의 이번 경제조치는 북한주민들의 경제마인드를 상당히 변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조치가 분배할 것이 절대 부족한 상황의 장기화로 인해 분배의 철학이 동요되면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분배중심에서 생산중심의 경제관이 빠르게 자리잡아갈 것으로 보인다.

"생산을 늘려야 수요와 공급의 배리가 빨리 해소될 수 있다는 견지에서 노임의 액수를 조정하는 데서 생산자우대의 원칙이 적용되었다"라거나 "가격조정은 생산자를 위주로 진행하는데, 지난 시기의 가격은 소비자를 위주로 정해졌었다"는 북한 해설자들의 발언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한편 그동안 북한 정치경제학의 기본 진리와도 같았던 생산증대를 위한 정치도덕적 자극에 대한 강조가 약화되고 대신에 물질적 자극의 현실적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북한의 경제정책 경제담당자들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장의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생산이 정상화되지 못하게 되면서 수요와 공급의 배리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가격이란 생산원가 그리고 수요와 공급과 관련되는 문제인데 우리는 나라의 부담으로 정해진 원가만을 보았다. 수요와 공급의 배리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이제는 생산물을 제 가치대로 다 계산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 조치는 국가공급에 대한 기본 인식에도 변화를 가져 올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당국자들은 "이러한 사회적 시책이 인민생활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였으나, 사회주의 시장의 붕괴 등 최근 10년간의 변화된 환경과 조건은 나라의 막대한 재정부담에 의거하는 경제사업 방법에서 커다란 장애를 조성하였다"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는 과거의 시책이 현실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특히 이 말은 "상품의 가치와 가격을 능동적으로 배리시키면서 대중소비품의 값을 낮추어 정하여야 합니다"라는 1969년 3월의 김일성 교시와 배치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편 이번 개혁조치는 가격ㆍ임금을 고치는 등 주민생활의 대대적인 변화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성공 여부의 판명은 늦더라도 실패는 곧장 나타날 수밖에 없다. 특히 물품 공급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이 정책은 실패로 끝나고 말 것이다. 이는 단기적으로 급격한 생산증대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외부의 경제지원이 필수적임을 보여준다.

북한의 정책담당자들은 이 정책을 실시하면서 일부 시행착오 속에서도 대체로 자신감을 얻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모든 가격체계의 기본을 이루는 식량의 장마당 판매를 금지시킨 것이 현재까지는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조치의 성패를 가름할 중요변수인 장마당 가격도 상당히 오르기는 하였으나,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번 정책을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품으며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농민들은 정부 수매 값이 55배 상승하는 등 실제적으로 혜택이 크기 때문에 환영하는 분위기이지만 공장, 기업소의 노동자는 사정이 달라 보인다.

즉, 공장, 기업소의 이윤창출이 자신의 수입에 큰 영향을 미치는 노동자들은 불안해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업 정상화를 위한 자금의 부족상태에서 생산증대를 추구해야 하는 공장과 기업의 입장에서는 생산이 제대로 안 되면 자기 노동자의 임금 보장도 어렵게 된다.

물론 정부가 기업의 부채를 탕감해주고 경영이익을 낼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원료가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 공장가동은 여전히 난망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공장기업소들에 대한 평가가 끝나면 동일제품을 만드는 기업간 경쟁 속에서 업종변경과 일부 퇴출기업의 발생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현재 북한의 경제정책 변화는 북한의 지식인들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할 정도로 광범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8월말 필자가 평양 고려호텔에서 환전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안내원들은 달러를 북한돈으로 바꿨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면서 “어떻게 외국인한테 더구나 남조선 사람한테 달러를 조선돈으로 바꿔줄 수 있느냐”며, 호텔의 환전하는 복무원한테 이의를 제기하였다가 일축당한 적이 있었을 정도였다.

***신의주 특구의 의미와 성공조건**

북한은 경제관리개선조치가 단순한 개선이 아니라 개혁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증명이나 하듯이 외국자본의 유입과 그것을 통한 시장경제의 실험을 위해 신의주 특별행정구를 선포하고 관련법안을 공포하였다.

신의주 특별행정구는 단기간에 첨단산업 등을 육성하여 경제회생을 도모하고 싶어하는 김정일위원장의 희망과 단기간에 사회주의 시장경제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화교 재벌 양빈(楊斌)의 야망이 결합하여 나타난 산물로 보인다.

신의주 특구 초대행정장관으로 임명된 양빈은 김정일위원장에게 특구의 ‘확실한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서 경제방식은 심천(深川)방식이되, 행정ㆍ사법적 측면에서는 홍콩방식을 요구한 것으로 관측된다.

그런데 신의주 특구는 북한지도부의 경제개혁의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그 자체로 성공을 기약하는 것은 아니다. 이 특구가 성공하려면 적어도 다음의 네 가지 조건은 충족되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보장하는 법적ㆍ제도적 장치의 신속한 구축.

둘째, 중국ㆍ베트남 등과 경쟁이 가능한 노동자들의 임금경쟁력, 그리고 신의주 특구가 목표로 하는 첨단산업ㆍ금융산업 등에 투입할 수 있는 고급 노동력의 안정적인 제공.

셋째, 특구 가동을 가능케 할 발전ㆍ도로ㆍ항만ㆍ통신 등 제반 인프라의 신속한 구축.

넷째, 남한기업이 다른 서방기업과 차별 없이 투자할 수 있는 상황의 실현. 특히 이 점은 동일한 언어와 상당한 문화적 공통성을 지닌 남한기업이 이 특구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한 서방자본이 과감하게 투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과 남북관계의 불안정은 이 특구 사업의 원만한 진행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결국 북한의 경제관리 개선조치와 신의주 특별행정구 공포는 우리에게 두 가지 명제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고 본다. 첫째, 북한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유지하면서 경제재건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둘째, 북한지도부의 이러한 희망에도 불구하고 이번 경제관리개선조치와 신의주 특구 설정은 시장의 확대를 촉진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북한의 경제개혁 조치가 성공할지 실패할지 아직 누구도 단언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북한의 이 조치가 성공한다면 그것은 결국 시장의 확대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며, 실패한다면 장마당이 더욱 확대되어서 비공식 경제, 즉 암시장이 북한 경제를 지배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실패하거나 성공하거나 관계없이 이번 조치를 통해서 시장의 확대는 불가피하게 나타날 것이다. 이는 이번 조치에 대한 북한지도부의 정책적 목표, 즉 정책적 의지와 그 결과로 인한 정책적 효과 사이의 괴리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부 경제개혁과 대남ㆍ대외관계의 연관성**

최근 북한의 경제개혁조치는 기본적으로 공급증대를 통해서만 성공이 가능한데, 불행히도 북한의 현실은 내부자원의 고갈과 외부 자본 유입의 제약이라는 심각한 난관에 부딪혀 있다. 따라서 이 난관을 극복해야만 성공과 실패를 운위할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북한의 경제개혁조치는 그들의 적극적인 대남ㆍ대외관계 개선과 깊숙하게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외부로부터 경제협력을 구하기 위해서는 경제협력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를 보이는 한편, 외부자본의 유입을 가능케 하는 정세안정과 정상국가로의 인정이 절실히 필요하다.

즉, 단기적으로는 최소한 경제관리개선조치의 조기 실패를 막기 위해서 일본ㆍ남한 등으로부터 가격 기준 품목인 쌀의 지원을 받는 것이 필요하고, 장기적으로는 북일관계 정상화를 통해 들어올 대일청구권 자금과 서방 은행들의 북한에 대한 금융지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한반도 정세가 안정적으로 발전해야 하고, 적대적 북일관계가 빨리 정상화되어야 하며, 북미관계가 개선되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인과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북한의 국내경제정책과 대남ㆍ대외관계가 동시에 그리고 유기적 관계 속에서 진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우리에게 상당한 기회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의 신전략에는 대남관계 진전이 전제되어 있으며. 실제로 이로 인해서 6.15 공동선언의 합의 내용들을 실천적으로 마무리짓는 관계 개선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아울러 신전략의 일환으로 단행된 북일정상회담은 2003년으로 예상되었던 안보위기를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전기가 되고 있다.

한편 최근 한반도 정세의 발전과정에서 주목되는 것은 한ㆍ일 지도자들의 역할분담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2월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부시 대통령에게 대북정책에서 한국정부의 입장을 존중해줄 것을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한편 북일정상회담에서 보여준 김정일 위원장의 납치문제에 대한 결단이 있기 전에 김대중 대통령은 특사회담을 통해서 납치문제의 과감한 해결을 김위원장에게 권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한반도 정세발전을 위해서 한국과 일본의 지도자가 여전히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북미에 대해 건전한 조정자 역할을 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북일정상회담 이후 북미대화에 거는 고이즈미 총리의 역할에 대한 기대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듯 최근 한반도 정세는 기회적 측면이 크지만 이 추세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의 두 가지 도전 요인들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첫째, 미국 변수를 잘 막아야 한다. 미국은 북한의 주목할 만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한에 대한 불신을 접지 않고 있으며, 북한을 악의 축으로 남겨 놓기를 원한다. 이는 미국지도부가 생각하는 미국의 이익이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보다 군사주의라고 생각하는 데 기인한다. 미국지도부의 생각은 좀처럼 변하지 않겠지만, 그 태도는 그동안 미국의 대북정책에 동조해온 일본의 입장 변화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 여전히 불안정한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에 대처하여 우발적으로 발생할지도 모를 분쟁을 사전에 방지하고, 또 관리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아직도 국내에서는 남북간의 분쟁이 발생할 경우 그것을 평화정착으로 가는 진통으로 보기보다는 냉전시대로의 회귀의 가교로 삼고 싶어하는 세력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유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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